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77화 (78/261)
  • #77화. 예고편 대란

    이자현이 쉬고 있는 밴 안으로 현미가 뛰어 들어왔다.

    “언니. 이것 좀 보세요.”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예고편 떴어요.”

    “알아. 아까 봤잖아.”

    “두 여자가 아니라 스타메이커 예고편이 떴어요.”

    현미는 놀라서 안대를 벗는 이자현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자현은 긴장한 채 현미에게 물었다.

    “예고편에 대표님도 나와?”

    현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능에 많이 출연하지 않았던 이자현도 요즘 예능이 자극적이고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혹시 대표님 이상하게 나오는 건 아니지?”

    “언니가 한번 보세요.”

    이자현은 핸드폰을 가득 채운 예고편 섬네일을 바라봤다.

    [선공개: 스타메이커, 꿈을 이루려는 신인배우 X 내 배우를 스타로 만들기 위한 매니저들의 고군분투.]

    이자현은 긴 한숨을 몰아쉬고는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 * *

    스타메이커 예고편은 시작부터 마흔 명 배우들의 프로필 영상을 빠르게 훑으며 시작했다.

    수초 분량의 프로필 영상에서 이락과 윤이슬의 긴장한 얼굴도 짧게 스쳐 지나갔다.

    영상은 곧바로 사인극 미션으로 이어졌고, 서로 주인공을 맡으려고 싸우는 모습이 짧게 편집되어 지나갔다.

    생각보다 오디션장의 분위기가 험악해 보이자 서이렌을 비롯한 스타탄생 식구들은 긴장했다.

    절박해 보이는 배우들의 열연.

    자신의 배우를 띄우려는 매니저들의 싸움.

    자극적인 컷이 끝나고 갑자기 화면이 밝아졌다.

    우왕좌왕하는 배우와 매니저들 앞에 나타난 깔끔하고 단정하게 생긴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대해 잘 알거든요. 제가 정보를 공유해 드릴게요.”

    살얼음판 같던 오디션 현장이 원세강의 출현으로 갑자기 화사하게 바뀌었다.

    배우들은 연습하며 동료들과 함께 웃었고, 매니저들은 서로 자양강장제를 내밀려 응원했다.

    힐링 타임이 끝나자 아무도 없는 복도가 보였다.

    복도를 홀로 걸어오는 사람은 원세강이었다.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 원세강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떠올랐다.

    원세강은 웃으며 복도를 걸어갔고 그가 사라진 복도에 불이 꺼지며 예고편이 끝났다.

    예고편을 모두 감상한 서이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빈선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진석을 향해 물었다.

    “강 이사님. 스타메이커가 배우 뽑는 오디션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대표님 얼굴이 많이 나온 거 같지? 그렇지 않나요?”

    “분량이 많지는 않은데 임팩트가 센데?”

    “아무리 봐도 우리 대표님이 선공개의 주인공 같은데 맞죠? 대표님이 엔딩이잖아요.”

    강진석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세강이가 오디션에 참가하겠다고 해서 큰일 났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반전을 주네.”

    그때 조연출이 다가와 촬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15씬 촬영 시작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서이렌은 재빨리 예고편 영상을 되돌려 원세강이 나온 부분만 다시 돌려 보고 태블릿을 건넸다.

    “충전 완료. 저 잘하고 올게요.”

    빈선예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서이렌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현장에 가 보니 밴에서 돌아온 이자현이 서이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두 여자가 살벌하게 싸우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이자현과 서이렌 둘 다 상기된 얼굴로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서이렌이 이자현의 곁으로 다가가서 속삭였다.

    “선배님도 예고편 보셨죠?”

    서이렌의 물음에 이자현이 즉시 답했다.

    “응. 봤어. 너도 봤구나.”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이 잠시 대기하다가 갑자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대표님이 카메라를 잘 받으시는 거 같아요. 그죠?”

    “난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길래 누가 조명 켠 줄 알았다니까.”

    “신인 배우들이 마흔 명이라던데. 연기는 몰라도 얼굴은 우리 대표님이 압살하죠.”

    “맞아. 대표님은 나이 들면서 더 멋져지는 타입이거든.”

    서이렌과 이자현이 서로 주접을 떨며 원세강 이야기를 하는데 멀리서 강진석과 빈선예가 이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이사님. 저 두 사람은 대체 뭘까요? 친한 걸까요? 아니면 사이가 나쁜 걸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두 사람이 연기 합은 최고긴 한데. 가끔 살벌하게 서로를 쳐다볼 때가 있어서 헷갈리거든.”

    빈선예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웃고 떠드는 서이렌과 이자현을 보며 두 사람이 소울메이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15씬 시작합니다. 레디 액션.”

    강진완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고 서이렌과 이자현은 곧바로 서로를 죽일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촬영장의 공기가 바뀌자 빈선예가 웃으며 말했다.

    “소울메이트 맞네.”

    * * *

    두 여자와 스타메이커의 첫 번째 예고편이 뜨고 인터넷은 뒤집혔다.

    - 와. 강진완 연출 미쳤네.

    - 섬네일 무엇?? 이자현이랑 서이렌 케미 미쳤는데???

    - 헐. 드디어 떴네.

    - 와 분위기나 컨셉 진짜 잘 잡았네. 역시 강진완이다.

    - 두 여자가 대비되는 삶을 사는 거를 저렇게 표현하네. 역시 연출장인.

    - 10월 빨리와 ㅠㅠㅠ

    - 얼굴 연기 이미 대유잼.

    - 얼굴 합 난리 났다. 서이렌이랑 이자현은 물론이고 하경민까지.

    - 영화네 걍ㅋㅋ

    - 오랜만에 MBS 보겠네.

    특히 이자현의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드디어!!!

    - 끼야아아아악!!!!!

    - 이자현 연기 좀 마니 해 주세요ㅠㅠ

    - 기대만큼 좋다. 언니 기다렸어요 ㅠㅠㅠㅠ

    - 이게 얼마 만이야. 자현언니.

    - 나 지금 우냐? ㅠㅠㅠㅠㅠㅠ

    - 여기 홍수 났어. 다 울고 있네 ㅠㅠㅠㅠ

    첫 번째 예고편과 맞물려 스타탄생에서는 서이렌의 팬들이 쏜 커피차 사진을 SNS에 올렸다.

    여고생으로 분한 서이렌이 갈래머리를 하고 팬들의 커피차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팬들은 열광했다.

    - 서이렌 회사 열일하네.

    - 이자현은 팬들이 커피차 안 쏨?

    - 이자현도 커피차랑 간식차 들어갔어.

    - 근데 왜 홍보를 안 하지?

    - TOP는 뭐하냐? 좇소도 저렇게 일을 잘하는데 TOP는 왜 아무것도 안 해?

    - TOP야 스본 좀 본받아라.

    - 스본이 뭐임?

    - 스타탄생. 스타이즈본이라고 팬들은 줄여서 스본이라고 부름.

    - 이번에 뜬 스타메이커 예고편은 봤음?

    - 그건 또 뭐냐?

    - NGB에서 만드는 배우 오디션. 거기에 잘생겼다고 난리 났던 스본 대표 나온다.

    - 대표가 배우 오디션에 왜 나와?

    - 그 오디션 프로가 매니저 참견 시점 만든 PD가 이적하면서 만든 거라서 혼종이거든. 매니저도 나온다.

    스타메이커 선공개 예고편도 두 여자 못지않게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 NGB 어그로력 ㄷㄷ 시작부터 싸우면서 시작하네.

    - 저 매니저는 뭔데 저렇게 화를 내냐?

    - 자기 배우가 좋은 역을 맡아야 한다잖아.

    - 누가 보면 배우 오디션이 아니라 회사빨 오디션인 줄 알겠네. ㅋㅋ- 이거 보면 발연기 배우들이 어떻게 캐스팅되는지 알 수 있는 거냐? 큭큭.

    - 근데 솔직히 재미는 있겠다.ㅋㅋ

    - 근데 마지막에 나와서 자애로운 표정 짓는 배우는 누구냐? 초반에 프로필 나올 때 못 본 거 같은데?

    - 스본 대표. 매니저로 참가했어.

    - ㅅㅂ 그게 매니저라고? 배우가 아니라?

    - 스본 대표는 벌써 팬 붙기 시작하는 거 같네. SNS에 이름 검색해 보면 짤 뜨네.

    - 미친. 배우 오디션인데 다들 매니저들 이야기만 하네.

    - 예고편을 매니저로 어그로 끌어서 그럴걸. 막상 예능 시작하면 배우가 중심이겠지.

    - 난 다른 건 모르겠고 스본 대표가 키우는 배우 찍을래.

    - 이런 게 바로 회사빨로 캐스팅되는 거라고. 큭큭.

    * * *

    지금쯤이면 두 여자 예고편이 떴을 텐데.

    내가 말한 대로 예고편이 뜨자마자 촬영장 서포트 사진도 풀었겠지?

    나는 달력을 보며 바깥의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을지 예상했다.

    두 여자는 10월 1일 첫 방송을 한다.

    스타메이커는 벌써 두 번째 미션까지 끝낸 상황이다.

    스무 명이었던 배우들은 이제 열 명이 남았고 오늘 미션으로 그중에서 다섯 명이 남게 된다.

    오늘의 미션은 하나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두 개의 미션이다.

    윤이슬은 내가 본 미래에서 오늘의 미션에서 탈락해서 떨어진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있으니 떨어지지 않을 거다.

    문제는 이락이다.

    이락은 내가 본 미래에는 없는 인물이기에 어떤 미션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 대표님. 같이 가요.”

    유스케이의 서유림 매니저가 짐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주세요. 제가 들게요.”

    “괜찮아요. 안 무거워요.”

    나는 서유림이 들고 있는 짐을 빼앗아 들쳐 멨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요?”

    “윤세라 배우님이 입소할 때 들고 온 건데 규정 위반이라고 제출하래요. 퇴소할 때 준다고 하네요.”

    나는 씁쓸히 웃는 서유림을 보며 말을 아꼈다.

    윤세라 배우는 연기는 곧잘 하는데 성격이 너무 까칠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이락과 윤이슬이 나왔다.

    이락이 나를 보자마자 놀라서 뛰어나왔다.

    “대표님이 왜 무거운 걸 들고 계세요? 저한테 주세요.”

    “괜찮아요. 이거 가벼워요.”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이락은 내가 사양하는데도 짐을 빼앗아 들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하세요. 빨리 타세요.”

    “알았어요.”

    서유림은 나를 끔찍이도 챙기는 이락과 윤이슬을 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강당에 도착해 보니 남은 열 명의 배우와 매니저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LOK의 이하진, 진성호 배우.

    TOP의 성준하, 천주연 배우.

    숲 엔터의 하재윤, 허은찬 배우.

    스타픽의 박선호 배우.

    유스케이의 윤세라 배우.

    그리고 스타탄생의 이락, 윤이슬 배우다.

    LOK와 TOP가 같은 회사인 걸 생각하면 역시 LOK에서 가장 많은 배우가 살아남았다.

    매니저는 LOK의 김경진, TOP의 김철, 숲 엔터의 박동현, 스타픽의 윤호상, 유스케이의 서유림 그리고 내가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규모가 큰 LOK, TOP, 숲 엔터와 규모가 작은 스타픽, 유스케이, 스타탄생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서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이렇게 돼 버렸다.

    그때 MC 최혁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리를 지어 앉아 있던 우리는 무대 앞으로 다가갔다.

    “합숙을 시작한 지 어느덧 삼 주가 지났네요.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최혁은 긴장한 우리를 편하게 해 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웃으며 분위기가 풀어지자 드디어 최혁이 오늘 미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그럼, 오늘 미션을 함께 보시죠.”

    최혁의 말과 함께 커다란 화면에 미션명이 떴다.

    [세 번째 미션: 캐스팅]

    최혁은 캐스팅 미션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참가자들을 보며 미션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인터뷰 방에 들어가시면 마흔 개의 작품이 나열되어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남아 있는 열 명의 배우들에게 어울리는 역을 골라 주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골라 준 역으로 오디션을 본다니 배우들은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른 참가자들이 맡으면 좋을 것 같은 역을 신중하게 골라 주시면 됩니다.”

    내 말을 들은 이락이 작은 목소리로 나만 알아들을 수 있게 물었다.

    “그럼, 어울리지 않는 거 선택하면 떨어지기 쉬운 거 아닌가요?”

    “시청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골랐다간 속셈을 다 들키죠.”

    “아.”

    “그냥 고민하지 말고 진심으로 골라 주세요. 알았죠?”

    이락과 윤이슬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락과 같은 생각을 하고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참가자도 있긴 했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노림수 때문에 욕만 먹었다.

    나는 인터뷰 방으로 들어가는 이락과 윤이슬을 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 * *

    “인터뷰가 끝나고 여러분들이 골라 주신 배역이 결정됐습니다. 그럼, 함께 보실까요?”

    최혁의 말고 함께 화면에 참가자들이 오디션을 볼 배역의 이름이 떴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이락, 아이돌 마스터의 다온 역.

    윤이슬, 미녀의 조건의 최설아 역.

    이락이 맡을 다온은 아이돌 마스터라는 웹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아이돌과 같은 상큼한 이미지를 가진 이락에게 어울리는 역이다.

    윤이슬은 내가 본 미래와 마찬가지로 미녀의 조건에 나오는 태권도부 주장인 최설아 역이다.

    됐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이락과 윤이슬은 떨리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저랑 딱 맞는대요? 꽃미남 아이돌.”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 태권도 6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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