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얼굴 천재 매니저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탄생 매니저로 참석한 원세강이라고 합니다.”
우왕좌왕하던 배우와 매니저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매니저 중 상당수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일전에 촬영 때문에 이 숙소에서 장기 투숙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대해 잘 알거든요. 지금 보아하니 제작진들이 우리가 알아서 방을 선택했으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여러분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정보를 공유해도 될까요?”
사람들은 내 말에 긴가민가하면서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때 나와 친분이 있는 유스케이(YouthK)의 서유림 매니저가 나섰다.
“원 대표님 말씀이 맞는 거 같은데요? 저기 앞에 객실 열쇠 같은 게 붙여져 있잖아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유림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서유림의 말대로 로비 안쪽의 칠판에 A동의 모든 열쇠가 걸려 있었다.
“가 봅시다.”
“밑져야 본전이지. 갑시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우를 챙겨 재빨리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도 가요.”
“예. 대표님.”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챙겨서 열쇠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칠판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곳에 걸린 열쇠를 보며 함부로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서유림이 내 이름을 불렀다.
“원 대표님. 아까 객실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하셨죠? 지금 설명해 주세요.”
나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래요. 뭔지 좀 들어 봅시다.”
“말해 봐요. 우리도 알아야 어디로 갈지 결정할 테니까요.”
몇몇 매니저의 외침을 시작으로 모두 동의하는 의사 표시를 했다.
나는 그때부터 A동의 객실 구조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지던스와 일반 객실, 천차만별인 객실의 뷰까지 완벽하게 설명을 마치자 참가자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와. 대체 그걸 어떻게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겁니까?”
“대단한데요. 원 대표.”
그때 뉴스타의 강철구 매니저가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제작진한테 미리 이야기라도 들은 거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지?”
그곳에 모인 참가자들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나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촬영 때문에 이곳에서 장기 투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렇게 배우랑 다른 스태프분들 객실 배정하느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작 방 배정하는 건데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서겠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빨리 방이나 정합시다.”
내가 해명하자 사람들이 그제야 의심이 해소된 듯 표정을 풀었다.
나는 그들의 풀어진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 살얼음판이네.
대체 진석 형은 어떻게 이 정글이 재미있는 추억이라고 회상한 걸까?
나는 사람들을 통솔하며 리더쉽을 발휘했던 강진석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때부터 내가 주축이 돼서 객실을 조율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옆에서 이락과 윤이슬이 도와줬고 유스케이의 서유림 매니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난 원래 뭐 해 먹는 타입이 아닙니다. 레지던스는 필요 없고 객실 방이 좋을 거 같아요.”
“저는 커튼 치고 살아서 뷰는 상관없어요. 제가 벽 뷰 할게요.”
삼십 분이 흐르자 드디어 방 배정이 완료됐다.
내가 봤던 미래와 달리 고성도 없었고, 눈치 싸움도 없었다.
리조트에 설치한 카메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욱환 PD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배우들이 좋은 방을 얻으려고 신경전 하는 장면이 나와 줘야 하는데 원세강 때문에 너무 평화롭게 지나간 것이다.
“최 PD님.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계속 진행할까요?”
조연출의 질문에 최욱환이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이미 다 해결 본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잖아. 그냥 가.”
“그래도 마지막 한 수가 남았으니까 그걸로는 싸움이 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 위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건데.”
최욱환 PD는 상황실에서 매의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봤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참가자들은 각자의 짐을 배정된 숙소로 나르기 시작했다.
이락은 윤이슬이 짐 나르는 것을 도왔다.
“됐어. 락아. 내가 더 힘세다. 내가 할게.”
“힘이야 누가 세든 그게 중요한가요? 난 그냥 카메라가 찍고 있어서 도와주는 건데요?”
“참나. 너 그런 거였니?”
“나도 도울게요.”
내가 나서자 이락이 안 된다며 나를 가로막았다.
“대표님은 그냥 계세요. 제가 돋보여야 하잖아요.”
“그거 알아요? 지금 말하는 것도 다 방송에 나갈 거예요.”
“예? 정말요?”
이락이 놀란 얼굴로 입을 막았다.
우리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객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 층 객실 앞에 선 서유림 매니저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서유림과 그녀가 데리고 온 윤세라라는 배우가 선택한 방 앞에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던 것이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먼저 올려 보내고 그곳으로 돌아왔다.
이게 뭐지? 공사 중인 객실이 있었네.
나는 엑스 자로 표시된 객실의 문을 살짝 열어 봤다.
객실 안은 바닥 공사를 하는지 가구가 모두 치워져 있었고 시멘트 바닥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 되겠는데요. 여기서는 묵을 수가 없겠어요.”
나는 참가자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객실이 남아야 정상인데 무려 사 분의 일 정도가 공사 중이라서 묵을 수가 없었다.
셈을 해 보니 정확하게 하나의 객실이 모자랐다.
이건 나도 모르는 일인데.
뭔가 상황이 달라졌나 보다.
나는 다시 이 층으로 내려와 서유림의 앞에 섰다.
서유림과 윤세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 앞에 서 있었다.
“그러지 말고 올라갑시다.”
“위에는 방이 있나요?”
“다 공사 중인데 하나가 남아 있더라고요. 두 사람이 같이 묵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서유림이 그녀의 배우인 윤세라를 쳐다보자 윤세라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저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못 자는데요?”
“배우님 걱정하지 말아요. 나 조용히 자는 편이에요. 배우님이 침대 써요. 난 바닥에서 잘 테니까.”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나는 서유림과 윤세라의 짐을 내 방에 함께 옮겨 주고 밖으로 나왔다.
공사 중인 방을 제외하면 A동에 더는 남은 방이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이락의 방으로 가서 함께 묵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겠지?
결정을 마친 나는 내 짐을 들고 이락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뭐 하는 거냐. 원세강.
이자현 피해서 도망이나 가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오는 게 맞는 일일 수도 있다.
오디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지 않는가?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 * *
상황실이 일순 고요해졌다.
조연출이 당황한 얼굴로 최욱환 PD를 바라보며 말했다.
“PD님. 저 원세강이라는 사람은 대체 뭐죠? 우리가 파 놓은 함정을 다 해결하고 다니는데요?”
최욱환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우리가 참가자들 싸우라고 프로그램을 만든 건 아니잖아. 갈등이 너무 없으면 심심하니까 조금 양념을 친 거고.”
“지금 갈등이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저 원세강이라는 사람이 평화롭게 방 배정 다 끝냈고 지금은 모자란 방 때문에 싸워야 하는데 양보하고 끝났잖아요.”
“갈등은 없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방송 타면 괜찮을 거 같지 않아?”
“예?”
“멋있잖아.”
“예?”
“난 멋있는데.”
“그렇긴 하지만…….”
“스타탄생 대표라고 했지? 그럼, 진석이 형 대신에 온 그 사람인가?”
“예. 강진석 이사님이 촬영 이틀 전에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해서 짜증 냈던 그 사람 맞습니다. 대표를 참가시켜도 되냐고 의견이 분분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국장님이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넣어 보자고 하셨고 말이야.”
최욱환 PD는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간다고 느꼈다.
한편 상황실의 다른 모니터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아까 마지막에 웃는 모습 봤어?”
“그 대표 말이지?”
“응.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 방송하면 인기 좀 얻을 거 같지 않아? 매력이 넘치는데?”
“근데 우리 지금 촬영 망한 거 아니냐? 원래는 여기서 다들 싸우는 그림이 뽑혀 나왔어야 했을 거 같은데.”
“그건 국장님 스타일이지.”
“근데 저 매니저 때문에 매운맛 확 빠지고 갑자기 힐링 예능 됐다.”
“그게 바로 최 PD님 스타일이지. 난 사실 지금이 훨씬 마음에 든다.”
“야. 지금을 즐겨. 국장님이 편집본 보시면 다른 어그로거리 투척하실 거야.”
“그렇겠지? 크큭.”
* * *
다음 날 아침, 새벽 여섯 시가 되자 리조트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귀를 찢는 소리에 참가자들은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십 분 후에 리조트 앞 산책길 입구로 모여 주세요. 십 분입니다. 늦으면 감점이 있습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들린 스태프의 목소리에 참가자들은 놀라서 일어났다.
“무슨 배우 오디션이 군대야? 군대 예능도 이렇게까진 안 하겠다.”
배우들은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방송가에서 잔뼈가 굵은 매니저들은 다들 한마디씩 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친 이락과 윤이슬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먼저 갈까요?”
리조트 입구에 있는 산책로 앞에 도착해 보니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씻고 옷까지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우리를 보고 최욱환과 촬영팀은 헛웃음을 지었다.
최욱환은 이미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지켜봤기 때문에 우리가 일찍 일어나서 아침 산책길을 가 보자는 대화를 나눈 것을 모두 들어서 알고 있다.
“대표님. 신기하네요. 우리가 아침 산책길 가려던 걸 방송국에서 어떻게 안 거죠?”
“방송국에서는 당연히 모르죠. 그냥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여기 산책길이 유명하거든요.”
나는 웃으며 대충 둘러댔다.
그때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씻지도 못한 얼굴로 대충 옷만 갈아입고 온 모습이었다.
윤세라와 함께 달려온 서유림 매니저에게 내가 물병을 건넸다.
“원 대표님. 고마워요.”
서유림은 헉헉대며 내가 준 물을 마셨다.
서유림과 윤세라는 숨을 몰아쉬더니 그제야 내게 물었다.
“원 대표님은 왜 그렇게 멀쩡한 모습이에요? 어라? 배우분들도 그렇고. 다들 일찍 일어난 거예요?”
“예. 저희는 산책이나 가 볼까 하고 일찍 일어났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라고요.”
“와. 대박. 대표님 신기 있으세요? 어제부터 뭔가 딱딱 맞추시네요.”
“그러게요. 요즘 들어 감이 좋긴 합니다.”
산책로 입구에 어느새 참가자들이 모두 도착했다.
대부분이 운동복에 엉망인 모습이었으나 스타탄생 식구들만 멀쩡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락과 윤이슬에게 화장을 하지 말라고 했기에 그들은 쌩얼 상태였으나 둘 다 피부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이 방송에 예쁘게 나올 것 같아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와. 아까 아침에 배우들 얼굴 봤어? 역시 배우들이라 그런지 다 잘났더라고.”
“누구 말하는 거야?”
“저기 저쪽에서 밥 먹고 있는 까만 추리닝.”
“어휴. 정말 잘생겼네. 한눈에도 배운지 알겠어. 저 사람이 제일 잘될 거 같아.”
점심을 다 먹은 리조트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옆에서 식사하던 스타메이커 스태프들이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들이 잘생겼다고 하는 사람 배우 아니지?”
“응.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
“참나. 스타탄생은 대표가 직접 참가한다고 해서 대표가 돈에 미쳤나 했는데 아니었네. 얼굴이 미쳤네.”
“그러게. 크큭.”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쉴 틈도 없이 리조트의 대강당으로 몰려갔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라는 걸 알고 있던 나도 목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산책로를 구보했다.
무려 제일 긴 한 시간 반짜리 코스였다.
산책을 마치고 아침을 먹자마자 체력 훈련을 한다며 스태프들이 오전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점심을 먹고 이제야 쉴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대강당으로 모이란다.
나는 이락과 윤이슬을 다독여 가며 대강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대강당에는 놀랄 만한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인의 어머니라 불리는 원로 배우 윤희자.
충무로의 카리스마로 불리는 명품 조연 김건명.
그리고 충무로의 떠오르는 샛별 윤서혁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