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스타메이커 입소
“와. 이자현이랑 서이렌 불꽃이 장난 아닌데.”
강진석은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강진석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세강아. 나 서이렌이 연기하는 거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말이야. 대단하다. 이자현도 장난 아닌데 서이렌이 그 기를 다 받아 내네.”
강진석이 보기엔 두 사람이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진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건가?
나는 평소보다 진심이 잔뜩 들어간 서이렌을 보며 손에서 땀이 났다.
서이렌과 이자현의 타이틀 촬영이 끝나고 이번에는 하경민과의 촬영이 시작됐다.
이자현이 먼저 하경민과의 촬영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님. 저는 미팅 때문에 먼저 가 볼게요.”
“그래. 촬영도 곧 끝날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형님.”
나는 강진석에게 현장을 맡기고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스튜디오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내가 타고 온 스타탄생 카니발로 걸어갔다.
그런데 카니발 옆에 익숙한 밴이 보였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니발로 앞에 서자 밴의 차 문이 열렸다.
“이자현 배우님?”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이자현이었다.
“할 말이 있다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 연락을 했는데 끝까지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이자현에게 말했다.
“내가 밴에 탈게요. 안에서 이야기하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자현이 밴에서 내렸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이자현에게 물었다.
“이 스튜디오 건물 안에 연예계 종사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습니다.”
“이렇게 구석진 곳에 차를 대셨잖아요. 아무도 못 볼 거예요.”
이자현은 차에 탈 마음이 없는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자현은 너무 가깝다 싶을 정도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녀가 부담스러워서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이자현의 손이 내 뺨을 매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서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많이 야위었네요. 괜찮은 거예요?”
“자현 배우님은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왜 거짓말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는 거죠?”
“전부 다요. 대표님이 아프다는 거랑 내가 사막을 못 하게 된 이유.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를 악녀를 만들 생각이었나요?”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두 눈이 커졌다.
“어디서 무슨 소릴 들은 겁니까?”
“대표님은 항상 그랬어요. 내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죠. 난 내가 대표님이 만드는 스타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없고 대표님이 세운 계획을 하나씩 수행하는 인형이라고 말이에요.”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내가 이제 다 알아 버렸으니까. 대표님이 날 위해서 그랬단 것도 알아 버렸고, 대표님이 아프다는 것도 알아 버렸어요.”
나는 너무 몰라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아프다는 것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순간 나는 상견례장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혹시 내가 쓰러졌다는 것 때문에 그래요?”
이자현은 내 눈을 바라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그냥 단순한 과로였어요.”
이자현은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데 사막 이야기는 뭡니까? 뭘 알았다는 거죠?”
“강진석 팀장님께서 다 말씀해 주셨어요. 왜 대표님이 내가 사막을 못 하게 말렸는지 전부 다.”
갑자기 사막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걸까?
그건 이미 한참 지난 일인데.
“대표님께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요. 나는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대표님을 미워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자현의 떨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 나와 처음 일하던 순수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좋아요. 이제라도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차 타고 돌아가 봐요. 늦었어요.”
“싫어요.”
“안 가면 지금 당장 TOP 엔터 한지욱 대표한테 전화할 거예요. TOP 여신 데려가라고.”
“아뇨. 난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이자현이 또 내 얼굴을 만질까 봐 두려워 뒷걸음질 쳤다.
“또 나를 피하는 건가요?”
“나는 스타와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또 가장 멀리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아시잖아요.”
나는 그녀를 피해 돌아섰고 카니발 차 문을 열었다.
“오늘 일은 우리 사이의 오해가 풀렸다는 것만 기억하겠습니다. 갈게요.”
나는 이자현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곧바로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마침 주차장에 들어오는 다른 차량의 불빛이 보였다.
이자현은 그걸 보고 황급히 밴에 탔다.
나는 이자현이 밴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주차장에서 떠났다.
* * *
두 여자의 첫 번째 티저가 뜨자 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 티저 사진에서도 연기 존잘들이네 귀여워.
- 뭐야? 이거 로맨스였어? 케미 무슨 일이야.
- 70년대 배경의 시대극임. 로맨스 아님.
- 연기합 기대된다.
- MBS 작정했네. 사진 퀄리티 무엇.
- 하경민이 남주인가? 대박. 데뷔하자마자 좌 이자현 우 서이렌 사이에서 연기하네.
- 이자현이랑 서이렌 서로 노려보는 사진이 최고네.
- 이자현, 서이렌이라면 믿고 봐야지.
- 포스터 분위기 넘 좋다.
첫 번째 티저 사진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보정된 사진을 미리 봤기에 티저가 잘 나온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경민도 잘 어울렸지만 묘하게 이자현 서이렌의 케미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 두 여자의 케미에 대한 말이 제일 많이 나왔다.
나는 두 사람이 노려보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날 촬영장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자현이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자현이 갑자기 그렇게 나오니까 이상하다.
차라리 내게 차갑게 대했을 때가 편했다.
갑자기 미안하다고 먼저 다가오니 불편하기만 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제일 먼저 약부터 챙겼다.
바쁘다 보면 약을 까먹고 안 먹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뉴욕에서 쓰러졌던 일 때문에 나도 많이 놀란 탓이다.
“요즘은 약을 빠트리지 않고 잘 먹어서 그런가? 발작이 없네.”
약을 한입에 털어 넣은 내가 달력을 확인했다.
마지막 발작이 2월이었고, 지금이 8월이다.
육 개월 동안 한 번도 발작이 없었다.
역시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건가?
나는 약통을 서랍 안에 집어넣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일어섰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터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터폰에 비추는 이자현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제 헛것이 보이는 건가?
나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인터폰을 확인했다.
역시 이자현이었다.
이자현이 지하 주차장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황급히 거실 불을 끄고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 불까지 끄고 커튼을 열고 바깥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는 이자현의 밴이 보였다.
이자현 미쳤구나.
스캔들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단단히 미쳤어.
* * *
TOP 엔터에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 앉아 있다.
내가 내 발로 TOP 엔터에 직접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차가운 얼음이 가득 찬 커피를 마시며 감정을 다스렸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현미가 들어왔다.
“대표님.”
“왔어요?”
현미는 내 앞에 앉았고 나는 그녀를 위해 주문한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건넸다.
“제가 치즈 케이크 좋아하는 거 아직도 기억하고 계세요?”
“그럼요. 치즈 케이크랑 아메리카노. 그게 현미 씨 소울 푸드잖아요.”
“아. 대표님.”
현미는 눈앞에 놓인 치즈 케이크를 보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언니 때문에 저 부르신 거죠?”
“요즘 이 배우님이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전 언니 맘 다 이해해요. 사실은 제가 그러라고 시켰어요.”
“뭘 말이에요?”
“제가 언니보고 대표님 집에 찾아가서 직접적으로 다 말하고 오라고 했어요.”
“현미 씨가 그랬다고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집까지 찾아오는 겁니까?”
“대표님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정확하게 직구로 꽂아 주지 않으면 절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요.”
현미는 또 내게 왜 이러는 걸까?
속이 탔던 나는 차가운 커피를 반이나 들이켜고 현미에게 물었다.
“이건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는데요. 웃지 말고 들어요.”
“말씀해 보세요.”
“혹시 이 배우님이 나를 좋아하는 건가요?”
현미의 눈이 순간 커지더니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대표님은 정말 바보예요. 그걸 몰랐어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언제부터 그런 거예요? 얼마 전까지는 나를 싫어했을 거고. 혹시 사막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그렇게 된 건가요?”
“와. 진짜. 대표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처음 봐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니는 처음부터 대표님 좋아했어요.”
“네? 처음부터라고요?”
“데뷔 때부터 대표님 좋아했어요. 정말 몰랐어요?”
“난 배우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막이 틀어진 이후로는 내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했잖아요.”
“그거야. 대표님이 언니 마음을 몰라주니까 언니도 엇나가기 시작한 거죠.”
나는 일은 몰라도 연애에는 둔한 사람이다.
서이렌처럼 좋아한다고 말해 줘야 알지.
그렇게 차갑게 구는데 나보고 어떻게 알아차리라는 건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두 눈만 끔벅였다.
“언니한테 충고하길 잘했네요. 다음에 언니가 또 대표님 집에 찾아가면 그땐 언니가 고백할 거예요. 그때는 절대로 지금처럼 하지 마세요. 고백하는 사람 무안해져요.”
“하지만 난…….”
“왜요? 혹시 대표님 사귀는 사람 있어요? 그새 생긴 거예요?”
현미는 놀란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뭐라고 답 해야 할지 몰랐다.
이자현이 고백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난 이 년 안에 죽을 사람이니 딴 사람 찾아보라고 해야 하나?
대체 뭐라고 하며 그녀의 고백을 거절해야 하는 거지?
* * *
강원도 속초의 모 리조트에 일흔 명이 넘는 배우와 매니저 그리고 스타메이커 스태프가 탄 차량이 도착했다.
이백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이락과 윤이슬은 그제야 그들이 예능을 찍는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에서 먼저 내려 이락과 윤이슬을 기다렸다.
“대표님.”
이락이 짐을 들고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뛰지 말아요. 넘어져요.”
“대표님. 강진석 이사님께 오늘 아침에 연락받고 깜짝 놀랐어요. 이사님 대신 대표님이 스타메이커 찍으신다면서요?”
“예. 그렇게 됐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대표님 부끄러움 많이 탄다고 절대 방송은 출연 못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하. 그랬죠.”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미소 지었다.
이자현을 피해 도망칠 곳을 찾아서 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락은 누나인 윤이슬을 챙겼다.
“누나. 제 쪽으로 오세요.”
“고마워. 락아.”
“떨지 마세요. 아직 오디션 하려면 멀었어요.”
“응. 알았어.”
그때 스태프가 다가와 말했다.
“B동은 스태프들이 쓰고 A동은 배우분들과 매니저분들이 쓰실 겁니다. 모두 이분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스태프의 인솔하에 마흔 명의 배우들와 열 한명의 매니저 A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스태프는 인솔만 해 주고 바로 쌩하니 뒤 돌아 나갔다.
A동 로비에 모인 배우와 매니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리조트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들의 당황한 얼굴을 찍고 있다.
A동의 객실 컨디션이 천차만별이다.
제일 좋은 방은 레지던스로 취사가 가능했고, 나머지는 일반 객실이다.
객실 뷰도 다 달라서 어디는 바다 뷰인가 하면 B동 벽만 보이는 곳도 있었다.
초반부터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고 일부러 제작진이 A동에 우리를 버리고 간 거다.
내가 본 미래에서는 배우와 매니저들이 원하는 방을 얻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하고 서로 고성이 오가고 첫날부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서로 싸운 사람들은 미션이 진행돼서도 계속 라이벌, 앙숙으로 엮어서 방송을 탔다.
이걸 원래는 진석 형님이 하셔야 했는데. 내가 하게 됐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