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65화 (66/261)
  • #65화. 액션 스쿨 에이스

    박주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쏟아 냈다.

    “와. 대단합니다. 나 방금 발레 공연장에서 공연 보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하는 거죠?”

    “박 대표님. 그만 좀 자리에 앉으시죠?”

    김윤서가 주책을 떠는 박주오의 팔을 잡고 끌어 앉혔다.

    박주오의 입이 닫히자 김윤서가 서이렌을 바라보며 물었다.

    “서이렌 씨. 혹시 뉴욕 시티 발레단 삼십 주년 기념 공연 백조의 호수 봤어요?”

    “실제로는 못 보고 실황 영상을 봤습니다.”

    “한 번만 본 건 아니겠죠? 지금 보니까 마르고 닳도록 본 수준이던데?”

    서이렌은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삼 주 내내 영상을 외울 정도로 봤습니다.”

    서이렌의 깔끔한 답변을 들은 김윤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박주오 대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이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함께 일합시다.”

    박주오 대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윤명현 감독이 벌떡 일어섰다.

    “대표님? 제 의사는 들어 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박주오 대표가 윤명현 감독을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윤 감독은 반대야?”

    “아뇨. 저도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됐잖아.”

    윤명현이 오케이 하자 박주오는 김윤서를 돌아봤다.

    김윤서는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이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박주오는 서이렌에게 내민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서이렌 씨. 우리 함께합시다.”

    서이렌은 박주오 대표의 손을 잡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서이렌이 오디션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결정될 줄은 몰랐다.

    나는 서이렌의 옆으로 다가가 박주오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서이렌 씨도 무척이나 기쁠 겁니다.”

    내가 박주오의 손을 잡자 서이렌은 그제야 박주오 대표와 윤명현 감독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때 김윤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내 일은 다 한 거 같으니까 이만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김윤서가 나와 서이렌의 앞으로 다가왔다.

    김윤서의 등장에 나와 박주오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김윤서는 서이렌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국립발레단 이사 김윤서]

    서이렌이 명함을 받아 들고 김윤서를 바라봤다.

    김윤서가 서이렌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연락처 찍어 봐.”

    서이렌이 두 눈을 깜박거리자 나는 급하게 그녀들 앞으로 달려가 내 명함을 김윤서에게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서이렌 씨가 소속된 스타탄생 대표 원세강입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제게 연락해 주시면 서이렌 씨와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김윤서는 내 명함을 손가락으로 치우더니 서이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락처 줄 수 있지?”

    “드릴게요.”

    서이렌은 김윤서에 손에 들린 핸드폰에 번호를 찍고 그녀에게 돌려줬다.

    김윤서는 서이렌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선글라스를 썼다.

    “자주 연락하자고.”

    김윤서가 뒤돌아서자 박주오 대표가 다급하게 물었다.

    “김윤서 선생.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할 건가요? 영화 들어가면 발레 감수가 필요한데. 제자 중 한 명 보내 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겠죠?”

    김윤서는 오디션장을 나서며 박주오 대표에게 말했다.

    “제자는 못 보내 줄 거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제 배우도 구했고 바로 제작 일정 잡을 겁니다. 도움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김윤서는 오디션장을 나서며 말했다.

    “내가 직접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국립발레단의 이사이자 한국 발레계의 산증인인 김윤서가 영화 감수를 직접 봐준다니.

    박주오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윤명현 감독도 어느새 서이렌의 앞으로 다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나리오 봤죠?”

    “이미 대사도 다 외웠습니다.”

    “그래요? 시나리오를 봤겠지만, 액션 분량이 상당합니다. 할 수 있겠어요?”

    서이렌은 걱정하는 윤명현 감독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보탰다.

    “당장 액션 스쿨에 들어가서 연습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모두 조정해 놨습니다. 듣기론 나비가 뉴액션팀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계약되면 바로 뉴액션팀이 운영하는 액션 스쿨에 들어가서 배우겠습니다.”

    “마치 오디션에 붙을 걸 확신하신 것 같네요.”

    “제 배우를 믿으니까요.”

    내 말에 윤명현 감독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박주오 대표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원 대표. 지난번에 있었던 일은 우리 잊읍시다. 내가 소인배처럼 굴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대표님이 대인배라는 증거죠.”

    “하.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고.”

    박주오는 차마 서이렌이 개망신당하는 걸 함께 지켜보고자 불렀다고 말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삼켰다.

    “박호중 감독과도 인연 정리했어요. 사실 우리 그렇게 친한 건 아닙니다. 대학 후배이기도 하고 엔진에 영입하려고 하다 보니 가까워진 거죠.”

    “예. 이해합니다.”

    박호중 감독은 작가 사건이 터지고 KBC에서 나와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엔진에 가지 않고 지금은 혼자 활동하고 있다.

    “그럼, 지난 감정은 다 털어 버린 거라고 믿겠습니다. 앞으로 함께 잘해 봅시다.”

    박주오 대표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고 나는 박주오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 * *

    서이렌이 캐스팅되자 나비의 제작은 박차를 가했다.

    하반기에 시작할 두 여자 때문에 상반기에 영화 촬영을 모두 마쳐야 하는 극악의 스케줄이었으나 엔진에서도 연말 개봉을 목표로 삼고 최대한 우리 일정을 맞춰 줬다.

    서이렌의 차기작 두 개가 동시에 뜨자 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 천만 감독 윤명현 영화에 MBS 창사 특집극이라니. 서이렌 슈스 된 거 맞지?

    - 이렇게 기세 좋은 라이징은 오랜만에 보는 듯. 이자현도 이렇게 빨리 뜨진 않았던 거 같은데.

    - 이자현은 무명이 일 년쯤 됐어. 천만 영화 조연으로 빵 뜬 거지.

    - 이자현도 조연이었는데 우리 렝이는 주연이드아아아아아아.

    - 다들 영화 이야기만 하는데 두 여자도 대박임. MBS 창사 특집극이잖아. MBS에서 올해 엄청나게 밀어주는 작품이라고.

    - 나 아이돌만 파다가 배우 덕질은 처음인데. 이게 이렇게 좋은 거였냐? 스트레스도 안 받고 엄청 좋은데?

    - 서이렌 덕질이 ㅆㅌㅊ임. 배우 덕질하면 기다림의 연속이다. 언제 작품 할지 몰라서 맨날 과거 작품 재탕삼탕한다고.

    - 원래 라이징 덕질이 제일 재미있는 거다.

    - 서이렌도 톱스타 되면 작품 줄이는 거 아니겠지?

    - 수상 소감 못 봤음? 우리가 지겨워할 정도로 많이 나올 거라잖아.

    - 빨리 9월 됐으면 좋겠다.

    서이렌은 영화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뉴액션팀이 운영하는 액션 스쿨로 출근했다.

    뉴액션은 특히 스턴트우먼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영화에서 서이렌의 대역을 소화할 스턴트우먼도 그곳 출신이다.

    파주 액션 스쿨의 주차장에 새하얀 밴이 멈춰 섰다.

    엔진이 꺼지고 이락이 한숨을 푹 내쉬며 운전대에서 손을 뗐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나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락을 보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고생했어요. 카니발 몰다가 이렇게 큰 밴을 몰려니 힘들죠?”

    “어휴. 말도 마세요. 처음엔 어색해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연수받을 때랑 실제로 이렌 님 태우고 운전하는 게 하늘땅 차이더라고요.”

    “그래도 뒤로 갈수록 능숙해지던데요?”

    “제가 기계랑 사이가 좋거든요. 이 정도면 늦게 친해진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서이렌이 먼저 액션 스쿨 안으로 들어가고 나와 이락은 밴에서 박스를 꺼냈다.

    액션 스쿨 식구들과 함께 먹을 간식과 음료수다.

    몸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일부러 간식도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들로만 가져왔다.

    “대표님. 제가 할게요. 대표님은 쉬세요.”

    “같이 해요. 그래야 빨리 끝나죠.”

    “아닙니다. 제가 다 할 테니 대표님은 차 안에 들어가서 좀 쉬다 나오세요.”

    이락은 요즘 나보고 차에 가서 쉬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뉴욕에서 과로로 쓰러져서겠지.

    “그럼, 난 가벼운 것만 들게요.”

    나는 말만 그렇게 하고 제일 무거운 음료 박스를 들고 액션 스쿨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액션 스쿨 안에 박스를 들여다 놓고 서이렌이 어디에 있는지 고개를 돌렸다.

    서이렌은 어느새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사인해 주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뉴액션의 스턴트맨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와. 서이렌 되게 착하네. 싸인도 잘해 주고.”

    “첫날이라서 이미지 관리하는 거겠지. 좀 더 두고 봐야 알걸. 그런데 오늘 남주는 안 오나?”

    “남주가 김도진이었나?”

    “맞아. 윤명현 감독의 천만 영화 주인공이잖아.”

    “김도진은 지금 영화 찍는 거 있어서 늦게 합류한대.”

    “아. 아쉽네. 나는 서이렌보다 김도진이 더 보고 싶은데. 작년에 회색 도시에서 김도진 액션 죽여줬잖아.”

    나비는 이제 주연급 캐스팅을 모두 마쳤는데, 남자주인공이 무려 김도진이었다.

    김도진은 윤명현 감독의 천만 영화, ‘회색 도시’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로 연기는 물론 액션까지 훌륭하다.

    “대표님. 벌써 연습 시작하나 봅니다.”

    “그래요?”

    고개를 들어 보니 서이렌이 스턴트우먼과 함께 스트레칭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볼까요?”

    “예. 대표님.”

    나는 이락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서이렌과 함께 서 있는 스턴트우먼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누구지? 유명한 스턴트맨인가?

    스턴트맨은 배우의 그림자이기에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내가 얼굴을 알 리가 없다.

    “저분은 되게 강하게 생기셨네요. 뭐랄까. 카리스마가 있어요. 우리 이렌 님도 한 카리스마 하시는데 저분이랑 같이 서 있으니까 두 분이 내뿜는 기운이 대단한데요?”

    이락의 말대로 스턴트우먼은 흔히 말하는 정석적인 미인은 아니었으나 존재감이 확실했다.

    “멋지네요. 여전사 같아요.”

    여전사.

    그때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구나. 윤이슬이다.

    나는 그제야 윤이슬을 알아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슬아. 너 잠깐 이리 와 봐.”

    “예. 선배님. 서이렌 씨는 계속 스트레칭하고 계시면 됩니다.”

    윤이슬이 그녀를 부른 선배에게 달려갔다.

    역시 윤이슬이 맞다.

    윤이슬은 미래의 액션 스타로 크게 이름을 날리는 여배우다.

    배우 오디션에 스턴트우먼으로 참가해 이름을 알리고 난 뒤, 대박이 터진 액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데뷔작이 성공하고 액션 스타란 이미지에 매몰되어 다음 작품은 실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선배에게 받은 장비를 손에 가득 들고 온 윤이슬이 그걸 서이렌에게 건넸다.

    “귀찮다고 장비 착용하는 거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아무리 연습이지만 연습에서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겁쟁이라서 하라면 합니다.”

    자신의 장비를 확인하던 서이렌이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윤이슬에게 물었다.

    “여기에 제 이름 써도 돼요?”

    윤이슬은 서이렌의 엉뚱한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쓰세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집에 가서 스티커 가져와야겠네요.”

    “나중에 갈 때 스티커만 잘 떼 놓고 가면 돼요. 하하.”

    * * *

    액션 스쿨에서 훈련한 지 일주일이 된 후, 드디어 서이렌이 처음으로 와이어를 찼다.

    이 층에서 보호구를 차는 서이렌을 보니 내 심장이 떨렸다.

    주위에 서 있는 다른 액션 스쿨 멤버들이 준비하고 있는 서이렌과 윤이슬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급한데? 벌써 와이어는 아니지 않아?”

    “서이렌 잘하잖아. 기대했던 김도진보다 훨씬 났구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벌써 와어이를 차는 건 좀 그렇네. 아마 공중에 뜨자마자 내려 달라고 할걸?”

    “안 그럴 거 같은데? 내기할래?”

    “됐어. 무슨 내기야.”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내기하지.

    그럼, 나도 돈을 걸 텐데.

    내가 내기 생각을 하고 피식 웃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 층 난간에 선 서이렌이 와이어에 의지한 채 공중에 몸을 날린 것이다.

    “와! 자세 좋고. 서이렌 그냥 날아다니네.”

    아래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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