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47화 (48/261)
  • #47화. 시청률 파워

    시청자들은 놀라움과 배신감에 어쩔 줄 모르는 서이렌의 연기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지훈 역을 맡은 최지환도 쓰레기 배신남의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서 시청자들의 혈압을 상승시켰다.

    서지훈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내가 진짜로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야?”

    “지훈 씨. 왜 이러는 거야?”

    “아냐. 난 너를 좋아했었어. 하지만 이혜성이라는 완벽한 대체재를 찾았으니 이제 너는 필요 없어.”

    “이혜성과 대체 무슨 사이야? 혹시 두 사람 나 몰래 만났어?”

    “너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애인도 나 같은 사람을 만났고, 친구도 이혜성 같은 사람을 만났잖아.”

    서지훈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윤서라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그녀는 맥없이 쓰러졌다.

    스타탄생에서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이락과 빈선예가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저 천하의 나쁜 놈이 감히 우리 이렌 님을.”

    “아오. 최지환 배우가 연기까지 잘해서 더 짜증 나네.”

    장면이 바뀌고 깨어난 윤서라는 자신이 쓰레기가 가득 찬 트럭에 버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이는 것은 밤하늘의 별뿐이었고 주위에는 쓰레기 더미뿐이었다.

    윤서라는 입에 재갈이 물려 있고 살려 달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그때 트럭 아래에서 서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을 주사했으니 조만간 사망할 겁니다. 잘 처리해 주세요.”

    “입금만 잘해 주이소.”

    “착수금은 입금했고, 일이 잘 끝나면 잔금도 넉넉하게 챙겨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수다.”

    트럭 운전사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차에 탔다.

    더러운 계약을 마친 서지훈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지금 처리했어.”

    서지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서라가 만든 작품집도 빼내 왔어. 이제 그건 네 거야. 그래. 사랑해. 혜성아.”

    서지훈의 통화 내용을 들은 윤서라의 두 눈이 커졌다.

    이혜성.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겼던 그녀가 내 작품집을 탐내다니.

    이혜성은 절친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일부러 그녀에게 접근하는 서지훈을 알고도 받아 준 거였다.

    윤서라는 그제야 두 남녀의 실체를 깨닫고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그때 트럭의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윤서라는 당장이라도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주사제를 맞은 이후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윤서라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건 분명 꿈일 거다.

    지독한 악몽임이 분명했다.

    텔레비전을 보던 시청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서지훈 개새끼를 외쳤다.

    - 윤서라 살려ㅠㅠㅠㅠㅠ

    - 서지훈 연기 개살벌해 ㅜㅜㅜ 아오 스트레스야.

    - 서이렌 어떡해.

    - 이혜성도 나쁜뇬이네. 쓰레기들끼리 잘하는 짓이다.

    마침 촬영을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강하나도 마네킹을 보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멈춘 것일 뿐인데 홀린 듯이 삼십 분 내내 보고 있었다.

    강하나가 욕을 내뱉었다.

    “뭐 저런 나쁜 놈이 다 있어?”

    윤서라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세상이 온통 새카매졌다가 그녀가 눈을 뜨자 마네킹이 보였다.

    1화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윤서라는 자신의 삶이 이걸로 끝임을 직감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용서 못 해. 혜성이도 지훈 씨도 죽어서도 용서 못 해.’

    윤서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듯한 천둥소리가 들렸고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그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네킹이 쓰고 있던 면사포가 거센 빗줄기에 날아가 마네킹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서이렌이었다.

    마네킹 서이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뭐냐? 윤서라가 서이렌 아니었어? 성형 수술해서 복수하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왜 마네킹이 서이렌 얼굴인데?

    - 윤서라가 죽기 전이라 환각 보는 것 같은데.

    시청자들의 상상이 무색하게 마네킹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지가 꺾여 있던 마네킹의 다리와 팔이 제자리를 찾아왔고 그녀는 멀쩡한 상태가 되어 쓰레기 더미 위에 일어섰다.

    마네킹은 쓰고 있던 면사포를 날려 버리고 발아래 쓰러져 있는 윤서라를 내려다봤다.

    윤서라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살려면 뭐든 해야 했다.

    윤서라는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뻗었다.

    ‘제발. 제발 나를 좀 살려 줘.’

    아무리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윤서라의 손가락이 까딱하기 시작했다.

    윤서라는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었고 마네킹의 발을 붙잡았다.

    ‘살려 줘. 나를 두고 가지 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윤서라의 울부짖음에 시청자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네킹이 윤서라의 앞에 주저앉더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마네킹이 윤서라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복수할래?”

    윤서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나 두 눈을 감았다 뜨며 마네킹의 말에 대답했다.

    그때 천둥이 내려치며 눈앞이 번쩍거렸다.

    강렬한 빛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 쓰레기장 전경 속에는 윤서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네킹만이 홀로 그 쓰레기 더미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네킹 서이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마네킹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 와. 엄청나게 몰입해서 봤는데 마지막에 저게 뭐냐? 진짜 마네킹이 주인공이었어?

    - 역시 시남 작가다. 시남보다 더한 걸 내놓으셨다.

    - 작가님 이번에 완전 미쳐 버리셨음.

    - 윤서라가 서이렌 얼굴하고 ‘짠’ 하고 나타나서 서지훈 조져 버렸으면 좋겠다.

    - 이게 무슨 어린이 드라마도 아니고 무슨 마네킹이 주인공이냐? 장난해? 드라마가 장난이야?

    - 시어머니의 남자 안 봤음? 이 작가 원래 이래.

    - 무리수 쩌네.

    - 그럼, 보지 말든가.

    - 본격 마네킹이 대신 복수하는 드라마.

    시청자들은 무리수다 역대급 반전이다로 갑론을박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보던 강하나는 예고까지 다 챙겨 보고 허망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미쳤구나. 이래서 막장 막장 하는 거야. 어떻게 주인공이 마네킹이야. 참나. 어이가 없어서.”

    강하나는 텔레비전을 꺼 버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대를 하고 침대에 누운 강하나는 누운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뒤척이기 시작했다.

    내일 새벽부터 촬영이 있어서 잘 시간이 부족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이던 강하나가 결국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진짜 왜 머릿속에서 안 떠나는 거야. 짜증 나게.”

    강하나와 마찬가지로 마네킹을 본 시청자들은 밤새 드라마 클립을 찾아보고 커뮤니티에서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시청률이 떴다.

    마네킹 14.5%

    1화에 비해 4%나 오른 수치였다.

    14%면 지난 오 년간 KBC 수목 드라마 최고시청률과 같다.

    단 2회 만에 시청률이 수직상승하자 여기저기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친 반전으로 시청률 대폭 상승한 수목 드라마 마네킹.]

    [마네킹으로 돌아온 서이렌. 시청률 제조기 등극.]

    최고의 영업은 시청률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막장 드라마는 안 본다며 시청을 거부했던 사람들도 시청률이 폭발하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드라마 클립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반나절 만에 포털사이트 영상 상위권 클립이 모두 마네킹으로 도배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네킹을 까는 기사도 많았다.

    [무리수 일관인 마네킹. 한국 드라마계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등공신.]

    [막장에 심취한 시청률표.]

    [서이렌. 막장의 여왕 대관식 치르다.]

    신랄한 기사 속에서도 마네킹의 촬영장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시청률이 역대급으로 터졌기 때문이다.

    서이렌이 촬영을 위해 차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락이 그녀를 붙잡았다.

    “이렌 님. 이진아 배우님께 문자 왔어요.”

    서이렌은 이진아의 문자를 확인하고 피식하고 미소를 흘렸다.

    [너 대관식 치렀다며? 마네킹 재미있더라. 근데 거기 카메오는 필요 없어?]

    화기애애한 마네킹 촬영장과 달리 보그의 촬영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보그의 시청률도 나쁜 수치는 아니었고 동 시간대 1위였으나 같이 시작한 마네킹에 비해 화제성이 부족했다.

    스타 PD로서 명성이 자자한 박호중 감독은 다른 것도 아니고 막장 드라마인 마네킹보다 못한 시청률에 분을 참지 못했다.

    그때 조감독이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8화 대본을 박호중에게 건넸다.

    “8화 대본 나왔습니다. 9화는 내일 보내 주신대요.”

    박호중은 8화 대본을 낚아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본을 다 읽고 덮는 박호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감독님. 왜 그러세요? 대본에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박호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 진짜. 서 작가가 감이 떨어졌나? 왜 이렇게 로맨스가 지지부진해? 8화까지 두 남녀가 만나서 일만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래도 드라마가 현실감 있다고 칭찬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요.”

    “칭찬은 무슨. 드라마는 환상을 파는 거야. 현실을 보고 싶으면 다큐멘터리를 보면 되지 왜 드라마를 보겠어? 보라고. 그 말도 안 되는 마네킹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욕먹어도 잘나가잖아.”

    박호중은 마네킹을 떠올리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조감독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감독님. 사실은 말입니다.”

    “뭐가?”

    “사실은 김선우 배우랑 강하나 배우 쪽에서 드라마에 로맨스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어?”

    “예. LOK 록 실장님이 직접 전화하셨어요. 그때는 시놉시스대로 가면 조만간 로맨스 분량이 나올 거라고 말해 두긴 했는데요.”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이야기했어야지.”

    8화 대본을 노려보던 박호중은 결심했는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 *

    나는 마네킹의 시청률 소식에 흡족해하며 이른 아침부터 영화관을 찾았다.

    내가 투자한 영화가 오늘 시사회를 하기 때문이다.

    잔잔 바리였지만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기에 시사회 초대권이 왔고, 나는 홀로 이곳을 찾았다.

    다음 주면 287일의 시사회도 열린다.

    삼십 억짜리 소규모 영화라서 전국 개봉이 힘들 줄 알았는데 서이렌의 인기 때문인지 배급사에서 제대로 밀어주고 있다.

    윤서혁 감독의 말로는 영화가 원하는 만큼 나왔다고 해서 나도 기대 중이다.

    나는 초대권에 적힌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눈에도 나 연예인이라고 하는 듯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으나 미남미녀에 익숙해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지나쳤다.

    “실례합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착석한 나는 언제 시작하나 시간을 확인하고 마네킹의 기사를 확인했다.

    막장이라고 깎아내리는 기사와 시청률로 찬양하는 기사가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었다.

    시사회가 끝나면 바로 촬영장을 찾아가서 이윤기 감독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옆자리의 여성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시죠?”

    “예? 저를 아시나요?”

    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선글라스를 벗은 여자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진설?

    대한민국을 풍미한 전설적인 여배우 진설이라고?

    나는 놀란 눈으로 진설을 바라봤다.

    내가 진설을 아는 것은 당연하지만 진설은 어떻게 나를 아는 거지?

    내가 놀라서 묻자 진설이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얼굴 보고 알았어요.”

    “제 얼굴이요?”

    그때 여우비 촬영 현장을 공개한 게 이렇게 반향이 클 줄은 몰랐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렇게 얼굴만 보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다니.

    나는 순간 창피함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당황한 나는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설 배우님 되시죠?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스타탄생 대표 원세강입니다.”

    나는 명함을 꺼내 진설에게 건넸다.

    진설은 검정 매니큐어를 바른 단정한 손으로 내 명함을 챙겨 갔다.

    다행히 그때 무대 위로 감독과 배우들이 들어왔고 나는 불타는 고구마가 된 내 얼굴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진설의 입에서 놀랄 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서이렌 말이에요. 내 연기 표절인 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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