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46화 (47/261)

#46화. 막장 드라마의 반격

스타탄생 사무실에서는 축하 파티가 한창이다.

빈선예는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계속 인터넷 반응을 확인했다.

얼굴을 구긴 빈선예가 와인 잔을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강하나는 진짜 도움이 안 돼요. 왜 거기서 엎어지냐고.”

이락이 치킨을 씹으며 빈선예에게 물었다.

“아직도 인터넷은 강하나 이야기뿐이에요?”

“응. 장난 아니야. 실트도 강하나가 다 먹었어. 우리 이렌 씨 신인상도 이진아 최우수상도 다 묻혔어. 다들 강하나 엎어진 이야기만 해.”

빈선예와 이락이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며 화를 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강하나가 계단을 오르다 엎어지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하나가 그냥 넘어지기만 했으면 이렇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거다.

강하나는 드레스를 밟고 삐끗하면서 뒤로 넘어지며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대배우 윤준상의 머리를 쳤다.

그런데 그때 윤준상의 가발이 벗겨져 하늘 높이 솟구쳤다.

카메라맨이 놀라 황급히 카메라를 돌렸지만, 찰나의 순간 가발이 날아가던 모습이 모두 찍혔다.

영화로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윤준상은 화를 내며 시상식장에서 빠져나갔고, 강하나도 인기 스타상을 포기하고 그대로 시상식장에서 도망쳤다.

지금 인터넷은 강하나가 넘어지며 윤준상의 가발을 날려 버리는 장면의 플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빈선예와 이락을 뒤로 하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서이렌을 바라봤다.

서이렌은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박힌 트로피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웃고 떠들지만 LOK는 조금 걱정이 됐다.

강하나가 스타병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강하나는 서이렌과 엮이면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사람이다.

원래는 그저 소소하게 이슈였던 피치업 광고가 서이렌 때문에 대박이 났고, 보그의 주연도 따내지 않았던가?

내가 본 미래의 강하나는 LOK의 푸쉬에도 불구하고 주연급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이렇게 스타의 자리에 올랐으나 문제는 그녀가 오래 갈 만한 스타의 자질이 없다는 거다.

자질도 없는데 푸쉬를 인기라고 믿고 스타병까지 걸렸다라.

강하나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자, 인제 그만 정리합시다. 이렌 씨 내일 아침부터 촬영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표님. 아직 11시인데요. 딱 12시까지만 더 놀면 안 되나요?”

“락 군. 매니저가 돼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내가 이락에게 한소리를 하자 이락이 금방 시무룩해진 얼굴을 했다.

“아니 왜 락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빈선예가 나서서 이락을 감쌌다.

둘이 치고받고 싸울 때는 언제고 이럴 때는 쿵짝이 잘도 맞는다.

그때 서이렌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이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무슨 말이요?”

“제가 사실은 강철 체력입니다. 일주일 동안 한숨도 안 자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저건 여우비 추가 촬영 때 진기오 감독에게 한 말이 아닌가?

나도 알고 있다.

서이렌은 마네킹이라서 피로를 모르겠지.

서이렌뿐만 아니라 모두의 얼굴에서 더 놀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였다.

나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럽시다. 오늘이 다시 오겠습니까? 즐깁시다.”

* * *

드디어 마네킹이 방송하는 주가 밝아왔다.

KBC에서는 새로 시작하는 신작 드라마 홍보에 열을 올렸다.

드레스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던 강하나와 요즘 대세 서이렌 주연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렸다.

관심이 집중된 사이 월화 드라마인 강하나의 보그가 첫 시작을 끊었다.

강하나는 취준생 강지유 역을 맡았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힘들어하던 강지유는 드디어 기회를 잡고 유명 패션잡지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주희 작가의 섬세한 대사와 속도감 있는 박호중 감독의 연출로 보그는 호평과 함께 시작했다.

7.8%라는 준수한 시청률과 함께 시작한 보그의 인기로 강하나 굴욕 플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강하나는 지금 밴에서 촬영 대기 중이다.

핸드폰으로 보그 기사를 찾아보던 강하나의 굳은 얼굴이 펴졌다.

강하나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스타일리스트 영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 강하나의 히스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영은과 매니저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언니. 드라마 평이 좋아서 잘됐어요.”

“당연하지. 내가 대본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고. 너도 알잖아. 내 안목 엄청 좋은 거.”

“그럼요. 알다마다요. 이제 실장님도 나올 테고 두 사람이 썸타기 시작하면 인기가 더 올라갈 거예요.”

강하나는 영은의 말에 미소 지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반응이 꽤 올 거 같았다.

“그런데 일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 빨리 남주랑 엮이고 싶은데. 안 그래. 매니저?”

강하나가 매니저를 쳐다보자 아무 생각 없던 매니저가 깜짝 놀랐다.

“응? 그. 그래.”

“뭐가 그렇다는 거야?”

“네 말이 다 맞아. 로맨스. 그러니까 로맨스가 중요하지.”

“그럼, 매니저가 이렇게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되겠어?”

“내가 뭘?”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지금 나가서 감독님 붙들고 이야기 좀 해 보라고. 6화 대본까지 제대로 썸도 안 타잖아. 대체 언제 연애하는데? 그거라도 알아 오라고.”

“아. 알았어.”

매니저는 그제야 옷을 챙겨입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강하나는 싱글거리며 인터넷을 보다가 서이렌의 마네킹 기사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서이렌 얘는 뭐야? 막장 드라마 작가에 한물간 PD까지.”

시어머니의 남자를 재미있게 본 영은은 강하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어떨 거 같아?”

강하나가 갑자기 영은에게 질문하자 당황한 영은이 허둥지둥 답했다.

“아침 드라마도 아닌데 미니시리즈로 막장이 먹히겠어요? 당연히 망하죠.”

“네 생각에도 그렇지?”

“그럼요. 막장 드라마에 출연하면 배우 이미지에도 득이 될 게 없어요.”

“맞아. 이미지가 그쪽으로 가면 광고도 다 끊기지. 서이렌 회사가 동네 구멍가게 같던데.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때 누군가 밴 밖에서 외쳤다.

“강하나 배우님. 십 분 뒤에 촬영 시작합니다. 대기해 주세요.”

강하나는 보던 핸드폰을 영은에게 건네고 밴에서 내렸다.

* * *

모두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마네킹 1화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시어머니의 남자 같은 화끈한 막장을 기대했고, 누군가는 여신 서이렌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섰다.

하지만 오늘 첫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 중, 상당수가 얼마나 막장일지 두고 보자는 사람들이었다.

마네킹은 시작부터 충격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서이렌이 분한 윤서라가 쓰레기 더미 속에 누워 있었다.

윤서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쳤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윤서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쓰레기 처리장에 도착한 트럭의 살벌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윤서라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윤서라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살…… 살려, 주세요!’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지만 외침은 그녀의 입 안에서만 맴돌다 끝날 뿐이었다.

재갈을 입에 물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읍……! 으읍!”

윤서라는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트럭은 그녀가 쓰러져 있는 그곳으로 쓰레기 더미를 쏟아 냈다.

가녀린 윤서라의 몸 위로 더러운 쓰레기가 쏟아져 내렸다.

철제 쓰레기가 쏟아졌고 날카로운 쇠꼬챙이에 의해 그녀의 발목이 관통당했다.

“읍!”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그녀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때 윤서라의 눈앞에 망가진 면사포를 쓴 마네킹이 떨어졌다.

아름다웠던 마네킹의 면사포는 찢기고 더러워졌으며 사지가 꺾인 채 윤서라의 앞에 나뒹굴었다.

윤서라는 마네킹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곧 눈앞의 마네킹처럼 생기를 잃고 쓰레기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삶의 의지를 잃은 윤서라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윤서라가 눈을 감자 어두워졌던 화면이 그녀가 눈을 뜸과 동시에 밝아졌다.

지금으로부터 육 개월 전.

윤서라는 절친인 이혜성의 저택에서 일어난다.

뉴욕의 패션스쿨에서 만난 이혜성과 윤서라는 둘도 없는 친구다.

대성모직의 유일한 후계자인 이혜성은 한국에 묵을 곳이 없는 윤서라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고 그들이 함께 지낸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날 밤, 윤서라의 약혼자인 서지훈이 저택에 찾아왔다.

윤서라와 이혜성, 서지훈은 함께 만나는 일이 익숙한지 서로 격이 없이 웃고 떠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저택을 떠나려는 서지훈이 윤서라에게 속삭인다.

“다음 달이 결혼식인데 안 떨려?”

“당연히 떨리지. 내 생애 첫 결혼식인데.”

“결혼이 당연히 일생에 한 번이지. 꼭 나중에 또 하겠다는 말로 들리네?”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말아.”

윤서라가 웃으며 서지훈을 밀쳐 냈다.

“난 이만 가 볼게. 잘자. 일찍 자야 아름다운 신부 된다.”

서지훈은 윤서라의 볼에 뽀뽀해 주고 방에서 나왔다.

윤서라의 방에서 나온 서지훈의 눈빛이 돌변했다.

방금까지 윤서라를 바라보던 따뜻하고 달달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냉혈한 눈빛으로 바뀐 것이다.

윤서라의 방에서 나온 서지훈이 집으로 가지 않고 이혜성의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마네킹 1화가 끝났다.

마네킹을 시청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 미쳤네. 같은 집에 살면서 불륜?

- 아직 결혼 안 했어. 불륜 아님.

- 서이렌을 버리고 이혜성을 택하는 게 말이 되나?

- 이혜성은 재벌 상속녀잖아.

- 근데 이거 왜 제목이 마네킹이냐?

└아까 서이렌 앞에 망가진 마네킹 있었잖아.

└그러니까 그 마네킹이랑 드라마랑 무슨 상관이냐고?

- 역시 시남 작가 차기작답다. 그렇지. 이래야 막장 여제의 작품이지.

- 님들. 오늘이 1화인 건 알고 있나?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어. 큭큭.

- 내용은 막장인데 연출 퀄리티 무엇. 난 처음에 영화 보는 줄 알았어.

- 집도 오짐. 진짜 재벌들이 사는 집 같아.

- 이거 막장 드라마 맞아? 미술이 왜 이렇게 좋냐?

서이렌 분장한건가? 서이렌 아닌거 같네.

나중에 성형수술하고 복수하는 내용인가 봄.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여 밤새 마네킹 이야기를 하며 인터넷을 달궜다.

내용부터 연출까지 말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시청률이 뜨자 다시 한번 인터넷이 뒤집혔다.

마네킹 10.7%

공중파라고 해도 예전처럼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첫 방송부터 10%를 넘겨 버린 것이다.

촬영장에서 이 소식을 들은 박호중 감독이 놀라 재차 물었다.

“정말이야? 정말 10% 넘겼어?”

“10.7%래요. KBC 수목으로는 최근 오 년 중에 최고시청률이라던데요.”

“참나. 막장이 이래서 무섭구나.”

박호중 감독은 마네킹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대놓고 막장이라고 무시했다.

마네킹을 몰래 본 스태프는 드라마 퀄리티가 엄청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마네킹 2화가 시작했다.

윤서라와 서지훈은 이혜성의 요트를 빌려 바다에 나간다.

요트를 몰기 위해 남몰래 요트 면허를 딴 서지훈을 보며 윤서라는 행복을 만끽한다.

서지훈은 갑판 위에 올라가 있고 윤서라는 선실에서 웨딩 화보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드레스는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작품이다.

그때 사진을 확인하던 윤서라의 손이 멈칫한다.

그녀는 사진 한 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 사진은 화보 촬영 쉬는 시간에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서지훈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서지훈의 손이 탁자 아래에서 누군가의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혜성이?”

서지훈의 손을 마주 잡은 사람은 헬퍼를 하기 위해 찾아왔던 그녀의 절친 이혜성이었다.

윤서라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손과 다리가 너무 떨려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서지훈이 들어왔다.

놀란 윤서라는 등 뒤로 사진을 감추고 돌아섰다.

굳은 얼굴의 윤서라를 보며 서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다정하던 그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몰랐는데?”

윤서라는 갑자기 돌변한 그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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