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화 (24/261)
  • #23화. 일타쌍피

    이락은 인터넷에 방금 새로 뜬 기사를 보고 생각했다.

    드디어 떴구나.

    제목만 보면 서이렌 스캔들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기사.

    [집중 취재] 모 연예지 기자와 아이돌 기획사의 유착 관계.

    [단독 입수] 유명 악플러의 정체는 배우 매니저?

    이락은 악플러에 대한 기사를 먼저 클릭했다.

    기사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여배우 악플러로 활동하는 평론가의 정체가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의 매니저라는 제보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평론가가 인터넷에 쓴 수많은 악플에서 배우 이름을 가리고 기사에 예시로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서이렌의 루머였다.

    이락은 해당 기사를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퍼 나르기 시작했다.

    모든 사이트에 기사를 퍼 나른 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기사의 떡밥을 물고 한창 궁예 파티 중이었다.

    - 나 저 악플러 알아. 이자현도 건드린 미친놈이잖아.

    -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들은 저놈이 다 한 번씩 깠을걸.

    - 이진아가 제일 많이 당했어. 저 악플러 완전 개미친놈이라고.

    - 헐. 서이렌 촬영장 영상 처음 공개한 사람도 저 사람이래.

    - 근데 직업이 매니저라고 하지 않았음?

    - 그럼, 여우비에 나오는 배우 매니저인가?

    └대박.

    └미친. 이거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 여우비에 평론가가 제일 싫어하는 이진아랑 요즘 뉴타깃으로 떠오른 서이렌 둘 다 나옴.

    └나 방금 소름 돋음.

    - 다들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 거 맞지?

    - 다 같은 생각일 듯. 그분밖에 없잖아.

    - 대박. 위에 올라온 게시글 봐 봐. 지금까지 평론가가 깐 여배우 리스트 올라왔는데 그분만 없음.

    이락은 마지막 댓글을 확인하자마자 새로 올라온 게시글을 확인했다.

    [평론가가 그동안 깐 여배우 리스트]

    게시글을 클릭하자마자 수많은 배우의 리스트가 떴다.

    평론가가 가장 많이 까고 다닌 이진아가 제일 상위에 이름이 올려져 있었고, 바로 아래 서이렌의 이름이 있었다.

    그 외에도 너무 많아서 한참 동안 스크롤을 내려야 끝이 났다.

    방금 올라온 글인데도 불구하고 댓글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 투명하다. 투명해. 죄다 그분이랑 접점이 있네. 이진아는 같은 소속사. 서이렌은 매일 얼굴 보는 사이. 아이돌 루카는 작년에 동반 CF 찍은 사이.

    - 생각해 보니 그분이 일 중독이었네. 안 나온 데가 없어.

    └숲 엔터 끼워팔기 모름? 그 회사가 유독 끼워팔기로 유명함.

    - 미쳤네. 지는 끼워팔기로 들어와서 다른 배우들 까고 다닌 거임?

    - 얘들아. 각도기 잘 재고 말해라. 매니저가 이상한 놈이지 설마 배우가 시켰겠어?

    - 여기서 아무도 그분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는데?

    - 난 그저 진지하게 이 글을 보고 있었을 뿐이고.

    └악플러가 진지하게 여신들만 까고 다녔네.

    └나는 진지하다. ㅋㅋ.

    └이거 조만간 인터넷 밈으로 떠오르겠네.

    - 항상 진지하고 지혜로운 그분 이야기하는 거 맞음?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너 꽤 지혜롭구나.

    └진지하고 지혜롭대. 큭큭.

    게시글을 새로 고침 할 때마다 댓글이 수백 개씩 늘어나 있었다.

    다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평론가가 진지혜의 매니저가 분명하다며 수군거렸다.

    급기야 그동안 평론가에게 당한 배우의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진아의 팬 갤러리에서 제일 먼저 성명문을 발표했고, 연달아 다른 배우의 팬 갤러리도 성명문을 내놨다.

    이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함께 올라왔던 다른 기사를 확인했다.

    [집중 취재] 모 연예지 기자와 아이돌 기획사의 유착 관계.

    기사는 평론가만큼 대중에게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연예계 종사자들이 있는 곳에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강진석 팀장이 LOK 단톡방에 올라온 글을 캡처해서 내게 보내 줬다.

    [스포츠 엔터에서 나온 기사 보셨습니까? 그거 천재용 이야기지요?]

    [말해서 뭐 해. 그동안 소문 꽤 퍼졌을걸.]

    [증거로 올라온 메일 캡처 보는데 진짜인 거 같죠? 이제 천재용 끝난 걸까요?]

    [기레기가 어디 쉽게 사라질까? 좀 사리다가 다시 기어 나오겠지.]

    [노노. 이번엔 그렇게 안 될걸. 증거로 나온 메일. 그거 비스티보이즈 신인 때 이야기야.]

    [헐. 그 유명한 비스티보이즈요?]

    [비스티보이즈가 신인 때 티아모랑 표절사건 터졌었잖아. 그때 누가 봐도 티아모가 비스티보이즈 표절한 거였는데 천재용이 비스티보이즈가 표절했다며 낙인찍었잖아.]

    [그럼, 천재용이 티아모 기획사 뒷돈을 받았다는 거예요?]

    [당연하지. 캡처된 메일에 그렇게 쓰여 있었잖아.]

    [사람 인생 모르네. 티아모는 지금 인기가 한풀 꺾였고, 비스티보이즈는 지금 비교할 수도 없이 인기 최절정이잖아요.]

    [비스티보이즈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걸? 천재용은 이제 끝이야.]

    [캬. 기레기 한 마리 없어지겠네요.]

    강진석 팀장은 단톡방 캡처본과 함께 짧은 글을 톡으로 남겼다.

    [천재용 이제 끝났으니까. 한 풀어라. 윤조도 기뻐할 거야.]

    강진석 팀장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윤조는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할 아이가 아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조용히 보고 있던 노트북 모니터를 닫았다.

    * * *

    다음 날 여우비 촬영장에 가보니 아침부터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기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촬영장 안쪽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고 그곳에 서이렌과 빈선예를 내려 주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나오니 나를 알아본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서이렌 씨 매니저 원세강 씨죠? 어제 뜬 악플러 기사 보셨습니까?”

    “악플러가 악의적으로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는데 그럼, 서이렌 씨 스캔들은 사실이 아닌가요?”

    “진지혜 씨 매니저가 악플러라는 소문이 돌던데 알고 계셨습니까?”

    기자들이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나는 그들에게 기삿거리를 제공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촬영 때문에 급하게 가 봐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표정을 숨기고 기자들을 피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촬영장에 가 보니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스태프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리허설에 한창이던 이진아의 표정이 엉망이었다.

    이진아는 리허설 중에도 몇 번이나 대사를 까먹고 애를 먹고 있었다.

    그동안 평론가에게 가장 많이 당한 게 이진아다.

    이진아는 아이돌 출신의 배우다.

    아이돌 가수로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배우로 만개한 케이스.

    숲 엔터에서 처음에는 이진아보다 진지혜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고 했다.

    이진아는 초반에 빛을 못 보고 오랫동안 조연을 전전했다.

    그때 아이돌 출신이라 무시당하고, 인기가 없다고 무시당하며 이진아는 지금의 인성과 실력을 키운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숲 엔터 하면 이진아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서이렌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줬었지.

    나는 이번 일로 멘탈이 부서진 이진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평론가가 설치게 놔두는 것보다는 괴롭더라도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게 낫다.

    그때 리허설이 끝났고 힘겹게 뒤돌아서는 이진아 옆으로 누군가 달려갔다.

    짚신을 신고 총총거리며 달려간 그녀는 다름 아닌 서이렌이었다.

    서이렌은 이진아의 옆에 꼭 붙더니 뭔가를 속삭였다.

    축 처져 있던 이진아의 어깨가 들썩였다.

    고개를 돌리는 이진아의 옆 모습을 바라보니 그녀가 웃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이진아가 저렇게 웃는 걸까?

    서이렌은 이진아의 팔짱을 꼭 끼고 그녀와 함께 촬영장에 준비된 의자로 가서 앉았다.

    이진아를 걱정하며 따라오던 매니저도 이진아와 서이렌이 함께 있자 안심하는 듯했다.

    그때 우영민 조감독이 씩씩거리며 진기오 감독에게 다가왔다.

    “큰일이네요. 진지혜가 촬영 못 하겠답니다.”

    “뭐?”

    리허설을 확인하던 진기오 감독이 놀란 눈으로 조감독을 바라봤다.

    “미쳤어? 당장 방송이 오늘인데 왜 촬영을 못 해?”

    “숲 엔터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대요. 자기 찾지 말라고 말하고 전화도 끄고 잠적했답니다.”

    “진지혜 그렇게 안 봤는데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 숲 엔터에서는 뭐라고 해? 어떻게 해서든지 촬영장으로 끌고 오라고 해.”

    “숲 엔터에서도 사람을 풀어 찾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대요.”

    그때 조명팀 스태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저. 감독님.”

    “잠깐만요.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입니다.”

    “저. 이것 좀 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대체 뭔데 그래요?”

    조명팀 스태프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진기오 감독에게 건넸다.

    핸드폰에는 공항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거 방금 찍힌 거라는데 진지혜가 출국했답니다.”

    “뭐요?”

    드디어 도망갔구나.

    내가 본 미래에서도 진지혜는 사고를 수습하지 않고 무작정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녀가 돌아온 것은 숲 엔터에서 그녀에게 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내년의 일이다.

    이걸로 끝이다.

    진지혜가 도망친 뒤로 여우비의 내용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 * *

    그날 밤, 여우비 10화 방송이 시작했다.

    그동안 여우비를 보지 않던 사람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 와. 뉴스만 보시던 우리 아빠 지금 여우비 본다고 자리 잡으심.

    - 상대편 불륜 드라마 보시던 우리 엄마도 여우비 같이 보자고 하신다. 엄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시고 나는 내 방에서 탭으로 봤었는데. 드디어 서이렌의 미모를 UHD 티비로 감상하는구나.

    - 지금 시작한다.

    - 진지혜 상판은 보고 싶지 않은데 궁금하긴 함.

    마침 오늘 화에서 진지혜가 서이렌의 종아리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회초리를 휘두르는 진지혜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진지혜 미쳤나? 방금 회초리로 풀스윙한 거 보신 분?

    - 우리 단오가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저렇게 세게 때리냐?

    - 연출 모르냐? 저거 다 때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실제 때리는 거 아님.

    - 이거 혹시 평론가가 유출한 그 촬영 장면 아님? 맞는 거 같은데. 진지혜 한복이 똑같아.

    - 헐. 그건가 보네.

    - 그럼, 진짜 때린 거 아냐? 그래서 서이렌 매니저가 화나서 촬영장에 쳐들어간 거고.

    - 아귀가 딱딱 맞네. 진지혜 미쳤구나. 뒤에서는 욕하고 앞에서는 착한 척하는 부류인 줄 알았는데 앞뒤가 똑같은 사람이었어.

    - 아오. 열받아. 진지혜 미국으로 도망가길 잘했네. 내가 걔네 집에 쳐들어갈 뻔. 감히 어디서 여신님을 때리고 지랄이야.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분노하며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관련 기사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인터넷 실검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만약 실검이 존재한다면 일 위부터 십 위까지 모두 여우비일 것이다.

    모든 커뮤니티가 여우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장면을 끝으로 진지혜는 나오지 않았고, 이진아와 서이렌이 극을 이끌었다.

    광에 갇힌 홍리아와 만난 단오는 그녀에게 이성윤이 보낸 서찰을 전달한다.

    그동안 접점이 없던 홍리아와 단오가 만나자 시너지가 폭발했다.

    차분한 연홍과 달리 발랄한 성격의 홍리아는 단오와 천생연분이었다.

    합이 잘 맞는 둘이 만났으니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 진지혜 안 나와도 되겠는데?

    - 홍리아랑 단오 귀여워서 미치는 줄 알았네. 저 귀여운 두 사람을 왜 이제껏 안 붙인 거지?

    - 연홍 갑자기 죽었다고 해도 욕 안 할게. 당장 죽이자.

    이 사달이 나고 한 방송이 10화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은 여우비 이야기로 들끓었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시청률이 떴다.

    20.3%

    마의 20%를 넘었다.

    그 전 회차가 14.8%였으니 무려 5.5%가 오른 셈이다.

    내가 본 미래에서도 사건이 터지고 시청률이 오르긴 했지만, 이 정도로 크게 상승하진 않았었다.

    그것도 단 1화였을 뿐, 바로 원래의 시청률로 돌아왔다.

    촬영장에 가 보니 어제보다는 분위기가 한결 좋아 보였다.

    서이렌이 리허설을 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스태프가 다가와 12, 13, 14화의 수정고를 건네줬다.

    12, 13화는 이미 다 찍었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본을 펼쳤다.

    곧이어 대본을 읽던 내 두 눈이 커졌다.

    대본이 싹 바뀌었다.

    진지혜의 모든 분량을 들어내고 판을 새로 짰다.

    물론 진지혜의 역을 가져간 것은 서이렌이었다.

    내가 본 미래에서도 지수연의 분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건 본 적 없는 파격이다.

    서이렌은 단숨에 극의 서브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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