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1화 (22/261)
  • #21화. 기레기

    준비를 끝낸 나는 방금 만든 Geemail 계정으로 천재용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제목은 [서이렌과 대표가 만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일을 보낸 지 일 분도 안 돼서 천재용이 메일을 확인했다는 알람이 떴다.

    옆에서 지켜보던 빈선예가 다짜고짜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와. 나쁜 새끼. 빨리도 확인하네요.”

    나는 데프콘쓰리 터미널을 열고 해킹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시작했다.

    곧 천재용의 컴퓨터 속의 모든 것이 속속들이 내 컴퓨터의 모니터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천재용에게 보낸 메일에 데프콘쓰리의 해킹 프로그램이 깔려 있던 것이다.

    빈선예는 놀란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박. 이게 진짜 되는 거였어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거 아니었나요?”

    “이메일을 통해 악성코드를 설치하는 건 해킹 방법 중에서도 하급에 속합니다.”

    “방금 대표님 완전 다른 사람 같아 보인 거 아세요?”

    “내가 어땠는데요?”

    “찐 해커 같았어요.”

    나는 천재용의 메일함부터 열었다.

    수많은 업무 메일 속에서 ‘서이렌’이 들어간 제목을 먼저 확인했다.

    [서이렌 매니저가 촬영장에서 난입해서 깽판 치는 영상]

    나는 차분하게 해당 메일을 클릭했다.

    [여우비 촬영장에서 서이렌 매니저가 깽판 치는 영상입니다. 밤에 인터넷에 올라왔다가 지워진 영상인데요. 서이렌 매니저가 진지혜한테 달려들면서 화를 내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습니다. 매니저가 감히 배우한테 이래도 되는 건가요? 서이렌이 매니저와 사귄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팬파라치에 제보하니 진실을 밝혀 주세요.]

    나는 제보자의 메일을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제보자가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이내 그가 사용하는 아이디 수십 개를 발견했다.

    그중에는 악플러 평론가도 있었다.

    역시 평론가였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자 내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다른 메일도 확인하고자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런데 모니터링하고 있는 천재용의 컴퓨터가 이상했다.

    어라? 이거 다른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스타탄생 회사 대표 메일 계정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떴다.

    [서이렌 1호팬이 보냅니다. 천재용 기자 메일 해킹해서 보내…….]

    * * *

    스타탄생에 메일을 보낸 이락이 보고 있던 천재용의 컴퓨터와 접속을 끊었다.

    “넌 죽었어. 기레기 놈아. 내가 이날을 위해 기술을 배웠다고.”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이락이 찬물을 마시려고 일어서는데 그의 핸드폰의 SNS 알람이 떴다.

    이락이 하는 SNS라면 하나밖에 없다.

    ‘서이렌 1호팬’ 계정.

    이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람을 확인했다.

    그러자 ‘진짜 서이렌 1호팬’에게 온 다이렉트 메시지가 보였다.

    이락은 최근에 ‘진짜 서이렌 1호팬’과 친해져서 서이렌에 관한 이야기를 사심 없이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했다.

    ‘진짜 서이렌 1호팬’의 메시지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짜 화나셨네. 하긴 나도 지금 손이 떨리는데. 이분은 오죽하시겠어.”

    이락은 자신이 캐낸 정보를 간단히 적어서 ‘진짜 서이렌 1호팬’에게 보냈다.

    그러자 십 초도 안 돼서 답장이 도착했다.

    [그게 사실이에요?]

    [정말입니다. 팬파라치 기자가 수상한 제보자한테 받은 영상을 토대로 기사를 쓴 거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보자가 수상해서 확인해 봤더니 유명한 악플러였습니다. 제가 스타탄생에 천재용 메일이랑 찾은 자료를 보냈으니 이제 해결될 겁니다.]

    [1호팬 님.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저한테 전화번호 좀 알려 주지 않으실래요?]

    ‘진짜 서이렌 1호팬’의 메시지를 읽은 이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1호팬 님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다른 사심은 없어요.]

    진짜 서이렌 1호팬은 곧바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이락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젊은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

    [‘서이렌 1호팬’ 님. 저 ‘진짜 서이렌 1호팬’입니다.]

    ‘진짜 서이렌 1호팬’인 곽이석이 이락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찐1호팬 님. 저 1호 팬입니다.”

    [1호팬 님 목소리가 어려 보이시네요.]

    “그렇게 어리진 않습니다.”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스타탄생 대표가 유능한 사람인 거 같더라고요. 아마 1호팬 님이 보내주신 자료로 이번 위기를 잘 넘기실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죠.”

    그때 이락의 메일함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떴다.

    이락은 곽이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메일함을 확인했다.

    “잠시만요. 스타탄생 대표한테 답장이 왔어요.”

    [정말요?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저도 알려 주세요.]

    이락은 전화를 스피커로 돌리고 원세강으로부터 온 메일을 확인했다.

    [1호팬 님, 계세요? 뭐라고 쓰여 있나요?]

    “해킹해서 보내 준 거 고맙지만 이건 불법이라 쓰기 어려울 거 같다네요. 그래도 정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돼서 정말 고맙다고 쓰여 있어요. 조만간 문제를 해결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요. 팬파라치가 기사를 내리고 사과문을 게재하도록 할 거라고 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곽이석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1호팬 님이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그런가요?”

    [그런데 1호팬 님. 우리 언제 한번 만날까요?]

    “저랑요?”

    놀란 이락의 두 눈이 커졌다.

    [만나고 싶습니다. 팬들이 모여서 정모 같은 거 많이 하잖아요.]

    “제가 그런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락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골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외부인과 어울려 지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석에서 서이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팬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 주말에 볼까요?]

    “예. 좋아요.”

    [제가 이 번호로 주말 즈음에 다시 연락할게요.]

    “예. 찐1호팬 님.”

    * * *

    “1호팬이면 우리 이렌 씨 SNS 팬 계정 운영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거 같네요.”

    “보낸 사람이 [email protected]인데 혹시 대표님 대학교 후배 아니에요?”

    “아닙니다. 모르는 아이디고, 해킹 프로그램도 전혀 달라요.”

    “그럼, 1호팬이 보내 준 자료 쓰면 되겠네요. 나 심장 떨리니까 이건 빨리 끝내 버리죠.”

    빈선예는 뭐가 그렇게 떨리는지 내게 빨리 해킹을 종료하라고 성화였다.

    천재용은 지난 수년간 기레기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지.

    기사를 써 주는 대가로 아이돌 기획사에 뒷돈을 받은 게 걸려서 내년쯤 팬파라치에서 잘린다.

    천재용의 해고 소식에 제일 기뻐하던 게 나였다.

    지수연이 왜 이렇게 좋아하냐며 물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걸 하루라도 빨리 터트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닙니다. 이걸로는 안 돼요.”

    나는 곧바로 천재용의 삭제된 메일함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거로는 스캔들 해명이 안 된다.

    천재용을 끌어내리는 게 우선이다.

    드디어 천재용의 삭제된 메일함을 복구했고 그 내용이 자그마치 오 년 치였다.

    복구한 메일 속에서 천재용을 나락으로 끌고 갈 비리 자료를 찾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오 년이라면……. 혹시…….

    ‘윤조 때의 메일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미 오 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윤조는 지금까지도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검색어를 입력했다.

    [윤조]

    키보드에서 손이 떨어지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윤조는 당시 기세가 대단하던 아이돌 가수의 리더와 스캔들이 났다.

    두 사람이 같은 아파트로 들어가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

    하지만 윤조는 그 아이돌 가수와 일면식도 없다.

    윤조는 그 아파트에 사는 친한 동료를 보러 놀러 간 것뿐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돌 가수가 당시에 연애 중이었고 윤조가 아파트에 들어간 지 한 시간 후에 진짜로 연애 중이던 동료 아이돌 가수가 나타난 것이다.

    두 아이돌 가수의 기획사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윤조를 이용한 거나 다름이 없다.

    내가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가수 매니지먼트 쪽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뒤늦게야 진상을 파악했다.

    그때 윤조를 지독하게 물고 늘어졌던 게 바로 팬파라치 천재용 기자다.

    천재용은 윤조가 먼저 아이돌 가수를 꼬셨다며 악의적인 내용의 기사를 쏟아 냈고 윤조는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안 되겠다. 약을 먹어야겠다.

    나는 지난번처럼 쓰러질까 봐 두려워 약을 챙겨 먹고 다시 모니터 앞에 섰다.

    빈선예는 어디서 들은 말이 있는지 내 행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검색창에는 여전히 윤조라는 두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조용히 엔터키를 쳤다.

    그러자 수십 개의 메일이 검색되었다.

    제목만 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글들이 보였다.

    [윤조 스캔들 사이즈 좀 키워 봐.]

    [역대급 조회 수 갱신이야. 윤조 판 좀 더 키워.]

    [LOK가 고소하겠다는데 이 자식들이 매운맛을 덜 봤구나.]

    [원세강인지 하는 걔 좀 말려 봐.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윤조 은퇴한대. 기사 내리자.]

    악마다.

    어떻게 사람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가지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검색된 메일에는 당시 윤조와 스캔들이 난 아이돌 가수 기획사와 주고받은 메일도 있었다.

    이 자식들도 한패다.

    나는 분노로 떨리는 손끝을 부여잡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악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메일이 사라지자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시간을 가진 뒤, 다른 걸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분도 안 돼 나는 천재용이 아이돌 기획사에 뒷돈을 받은 정황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윤조와 스캔들이 난 가수의 기획사도 있었다.

    나는 곧바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강유미 기자에게 연락했다.

    [원세강 대표님이 웬일이래? 지금 나한테 한가롭게 전화 걸 시간이 있어요? 서이렌 씨 기사 진화하느라 바쁠 시간이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깡기자님.”

    [뭔데요? 우리 측에서 반박 기사라도 내줘요?]

    “우리가 반박하면 팬파라치에서 가만히 있고요?”

    [하긴 천재용 그 도사견 같은 놈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그러게 왜 그런 천재용이랑 척을 졌습니까? 천재용은 이 바닥에서도 더럽기로 소문이 자자하다고요.]

    “그래서 더는 안 참으려고요. 천재용 기사 좀 터트려 줘요.”

    [예? 반박 기사가 아니라 천재용 기사를요?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요?]

    “제가 지금 자료 보낼 테니까 기사로 내보낼 수 있을지 확인 좀 해 주세요.”

    나는 깡기자에게 골라 놓은 자료 메일을 전달했다.

    이윽고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한 깡기자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원 대표님. 이거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그건 묻지 말아 주시고요. 어때요? 기사 쓰실 수 있겠어요?”

    [하. 잘하면 나도 천재용한테 물릴 거 같은데요.]

    “역시 위험 부담이 클까요?”

    나는 주저하는 깡기자를 보며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깡기자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내가 기사 쓸게요. 이 정도면 천재용 이빨 다 뽑아 버리고도 남을 거 같아요.]

    “제가 그래서 깡기자님께 전화를 드린 겁니다. 아무도 강유미 기자님을 본명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하하하. 나도 내 별명이 좋습니다. 쎄 보이잖아요. 그럼, 내가 바로 기사 써서 초고 보내 줄게요.]

    깡기자는 화통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내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윤조 때나 지금이나 나는 힘이 없다.

    그때는 LOK 소속이었으나 매니저로서의 경력이 일천했고, 지금은 힘없는 신생 기획사의 사장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천재용을 끌어내릴 증거가 내 손 안에 있다.

    천재용. 당신 실수한 거야.

    난 내일이 없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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