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5화 (16/261)
  • #15화. CF 데뷔

    “대표님. 보셨어요? 미쳤어요. 우리 이렌 씨 너무 예쁘게 나왔어요.”

    “큰 화면으로 보니까 실감이 안 나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CF 온에어였군요. 촬영 때문에 너무 바빠서 까먹고 있었어요.”

    빈선예는 리모콘을 잡고 다른 채널로 마구잡이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익숙한 수영장 화면이 떴다.

    “아싸. 처음인가 보다.”

    하지만 빈선예의 예상과 달리 새초롬한 표정의 강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뭐야. 우리 이렌 씨 아니잖아.”

    빈선예가 채널을 돌리려는데, 내가 막았다.

    “잠깐만요. 그냥 놔둬요.”

    “어휴. 얘는 보기 싫은데요.”

    빈선예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리모컨을 내려놨다.

    강하나의 생기발랄한 얼굴 위로 상쾌한 자극 피치업이라는 카피가 떴다.

    나쁘지 않다.

    강하나의 상큼한 매력을 잘 살렸구나.

    그때 연달아서 같은 수영장 장면이 반복됐다.

    강하나와 서이렌의 광고를 동시에 편성한 것이다.

    곽이석 본부장은 처음부터 이렇게 두 편을 연달아 방송한다고 했었다.

    음료 광고 역사상 처음 있는 역대급 물량 공세다.

    빈선예는 두 손을 모으고 브라운관 너머의 서이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물에 빠졌다가 올라오는 서이렌의 모습을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니 나도 심장이 철렁했다.

    감독이 아주 혼을 불태웠구나.

    강하나의 광고도 잘 나왔지만, 서이렌의 인어공주 편은 구도도 예술이고 조명도 환상이었다.

    화면 가득 서이렌의 얼굴로 가득 차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방금 본거지만 다시 봐도 좋다.

    아니나 다를까 LOK 강진석 팀장이 보낸 톡이 들어와 있었다.

    [원세강 이 미친놈아 ㅋㅋㅋ.

    어디서 저런 대단한 분을 알게 된 거냐?

    네가 사표 내던졌을 때 어디서 로또 당첨된 거 아닌가 했는데 로또긴 로또구나.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라 ㅋㅋ.]

    강진석 팀장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빈선예는 어느새 태블릿 PC를 꺼내 들고 내 눈앞에 보여 줬다.

    포털 사이트에 피치업 광고가 대규모로 걸려 있었다.

    강하나와 서이렌이 각기 다른 컨셉으로 포털의 수문장을 맡고 있었다.

    나는 움직이는 서이렌을 클릭했다.

    그러자 태양제과에서 준비한 피치업의 광고 사이트가 떴다.

    “보셨어요? 광고 사이트도 강하나랑 우리 이렌 씨랑 분리해 놨더라고요. 곽이석 이 치밀한 놈.”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포탈을 끄고 미튜브 앱을 켰다.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를 챈 빈선예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역시 미튜브에도 피치업 오피셜 광고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대표님, 조회 수 좀 보세요. 방금 올린 거 같은데 벌써 오천 뷰예요.”

    “그러네요.”

    미튜브에 올라간 광고는 텔레비전 광고와 달리 육십 초 분량이었다.

    촬영장에서 실물로 수백 번 본 장면이지만 편집된 영상으로 보는 건 느낌이 또 달랐다.

    “조회 수가 벌써 천 뷰나 늘었는데요.”

    “그새요?”

    육십 초짜리 광고를 보는 사이 조회 수가 천이 늘어 있었다.

    나같이 찾아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나는 댓글을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자 연관 영상에 뜬 강하나의 광고가 보였다.

    “강하나 꺼도 한번 볼까요?”

    “아, 인심 썼다. 좋아요.”

    나는 웃으며 강하나의 영상을 클릭했다.

    강하나 영상은 조회 수가 삼백이었다.

    “푸핫. 고작 삼백이에요. 우리 이렌 씨는 벌써 육천인데. 하하하.”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그럼 우리 이렌 씨 영상도 조회 수가 낮아야지요.”

    강하나의 육십 초짜리 광고도 잘 빠졌다.

    이 CF를 시작으로 피치업 음료 광고의 전설이 시작된 거겠지.

    강하나의 광고를 다 보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조회 수가 만이 찍혀 있었다.

    “대박이에요. 벌써 만이야. 무슨 조회 수가 올라가는 속도가 아이돌 가수 못지않아요.”

    * * *

    LOK 사무실에서도 피치업 광고를 보며 사람들이 떠들고 있었다.

    “원 팀장 진짜 대단하다. 어디서 이런 여신을 모셔 왔지? 무슨 여배우 키우는 데 도가 튼 사람 같아.”

    “원 팀장이라면 결국엔 잘되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보란 듯이 회사 나가자마자 바로 성공하네.”

    많은 사람이 원세강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거 너무 보정이 빡시게 된 거 아녜요? 너무 인조인간 같은데요? 강하나랑 너무 다르잖아요.”

    “원 팀장 말이야. 태양제과의 숨겨진 자식 그런 거 아니야? 태양제과 삼남도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이라고 소문이 파다하잖아.”

    강진석은 동료의 성공을 축하는 못 해 줄망정 루머를 퍼뜨리는 모습이 꼴 보기가 싫었는지 한마디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록 실장의 방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LOK 사무실이 일순 고요해졌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사무실 직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록 실장은 지금 사무실에서 강하나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실장님,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우리는 모델일 뿐인데 어떻게 광고 프로모션에 관여를 하니? 잘 생각해 봐.”

    [광고를 이렇게 연달아 방송하면서 걔만 뽀샵 잔뜩 해 주고, 나는 똑같잖아요. 너무 비교된다고요.]

    “내가 광고 대행사에 전화해서 시정해 달라고 할게.”

    [빨리 처리해 줘요. 광고도 또 미친 듯이 편성해서 텔레비전만 틀면 나온다고요. 나 지금 노이로제 걸리겠어요.]

    “알았어. 지금 의상 맞추러 간다고 했지?”

    [압구정 갤러리스 백화점에 가고 있어요. 명품 협찬해 준다고 해서요.]

    “그것 봐 봐. 명품 협찬까지 받는 강 배우가 이제 갓 데뷔한 조무래기를 신경 쓸 게 뭐가 있어? 강 배우는 이제 탄탄대로야. 갤러리스에서 모델 제의도 받았잖아.”

    록 실장의 듣기 좋은 말에 토라졌던 맘이 풀렸는지 강하나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록 실장은 강하나와 전화를 끊고 광고 대행사에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 팬파라치의 천재용 기자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록 실장은 거절로 돌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천 기자가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강하나 광고 잘 봤습니다. 그런데 그 서이렌이라는 배우는 누굽니까?]

    “지금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겁니까? 원세강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원 팀장이랑 저랑 사이가 별로잖습니까? 뭐 아시는 거 없으세요? 엄청난 미인이던데.]

    “미인은 무슨. 내가 촬영장에서 봤는데 그거 다 뽀샵빨입니다.”

    [그래요?]

    록 실장의 핸드폰에는 여우비 촬영 중인 서이렌의 사진이 떠 있었다.

    아는 사람을 시켜서 몰래 찍어 달라고 한 사진이다.

    사진 속의 서이렌은 광고 속의 인어공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피치업 촬영장에서 서이렌의 실물을 본 록 실장이지만, 그때 봤던 여신이 기억이 안 날 만큼 달랐다.

    “생각해 보세요. 같은 광고인데 우리 강하나 배우랑은 보정 자체가 다르잖아요.”

    [비교되긴 하더라고요. 같은 광고인데 대놓고 보정을 차별한 건 신기하긴 합니다.]

    “이만 끊읍시다. 나도 광고 대행사에 클레임 넣으려던 참이니까.”

    [그런데 뽀샵만으로 저렇게 나온 겁니까? 성형은 아니고요?]

    “그렇게 궁금하면 내가 사진 보내 줄 테니 직접 확인해 봐요.”

    [사진을 보내 주신다고요?]

    “그 배우가 지금 여우비라는 드라마 찍고 있습니다. 마침 내가 현장 사진 가지고 있으니까 보내 드리죠.”

    [그래 주시면 저는 좋죠.]

    * * *

    전화를 끊은 천재용 기자가 미튜브의 서이렌 광고를 재생했다.

    “와. 그러고 보니 조금 현실감이 없긴 하네. 너무 인공적이야. 이렇게 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

    그때 천재용의 톡으로 서이렌의 촬영장 사진이 전송됐다.

    사진을 본 천재용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이거 잘만 요리하면 클릭 수 좀 나오겠는데.”

    * * *

    여우비 제작사 소울은 난데없는 호재에 고민하고 있었다.

    홍보팀장이 여우비 제작팀장을 찾아왔다.

    “요즘 인터넷에서 피치업 광고가 난리라던데 들었어요?”

    “그 인어공주 말씀이시죠?”

    “광고 찍은 신인 배우가 여우비에 단역으로 출연한다면서요?”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침부터 예고편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예고편이요?”

    제작팀장은 편집 중인 여우비의 예고편 영상을 홍보팀장에게 보여 줬다.

    첫 번째 티저 예고편에서는 서이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 차 예고편에 서이렌의 촬영본을 급하게 추가한 것이다.

    “단역이라는데 쓸 만한 컷이 있어요?”

    “하나 있더라고요. 여기 보세요.”

    화면 속에는 단오 역으로 분장한 서이렌이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재생됐다.

    남루한 의상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방금 본 피치업 광고와 사뭇 달랐다.

    “이거 같은 사람 맞아요? 다른 사람 같은데요?”

    “그렇죠? 저도 놀랐습니다. 보니까 역에 맞게 화장도 하나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얼굴색도 죽이고요. 신인인데 대단한 열정 같아요. 예쁘게 보이고 싶을 텐데.”

    “이거 예고편에 넣어도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넣어야죠. 화제의 광고에 나오는데요. 오늘 중에 이 차 예고편 풀 겁니다.”

    “잘 좀 편집해서 내주세요. 홍보팀에서도 기사 준비할게요. 마침 태양제과에서도 연락이 와서 같이 기사 준비할 겁니다.”

    “기대되네요. 여우비 대박 날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날 오후 여우비의 이 차 예고편이 공개됐다.

    제작사 소울은 예고편 공개와 함께 준비된 기사를 풀기 시작했다.

    [단독] 여우비로 데뷔하는 역대급 신인. 복숭아의 여신 서이렌.

    [전격 취재] 역대급 신인 탄생. 서이렌은 누구인가?

    곧 인터넷에서는 서이렌과 피치업 그리고 여우비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 피치업 광고 보고 여기까지 왔다.

    - 이름이 서이렌이래. 심지어 이름도 예쁨. 이진아도 한 여신 하는데 드라마에 여신이 두 명이나 나오네.

    - 이진아랑 서이렌이 주인공인가?

    └노노. 서이렌은 조연이라는데?

    └조연도 아님. 단역이야.

    - 누가 피치업 광고 멈추는 법 알려 주실 분?

    └그냥 쳐 봐라. 나도 한 1000번쯤 보니까 좀 지겹더라.

    - 여신님만 보고 싶은데 강하나는 왜 자꾸 나옴?

    └헐. 나만 그런 줄.

    - 걔 이름이 강하나였구나. 난 무슨 듣보잡을 우리 여신님이랑 묶어놔서 짜증 나던데.

    └강하나 몰라? 작년에 드라마 안 봄? 걔 요즘 제2의 이자현이라고 해서 푸쉬 쩔잖아.

    └이게 미쳤나? 어디서 제2의 이자현이야.

    기사를 읽던 빈선예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갑자기 스타탄생에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대표님. 안 되겠는데요. 사람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아요.”

    내 개인 전화로도 섭외와 취재 전화가 물밀 듯이 몰려왔기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배우를 키워 왔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화제에 오른 스타는 나도 처음이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액정에 뜬 발신자 표시를 보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팬파라치 천재용]

    천재용이 왜 전화를 한 걸까?

    이 새끼는 양심도 없나?

    내가 왜 천재용 번호를 진작에 차단하지 않았지?

    순식간에 굳은 내 얼굴을 보고 빈선예가 놀라서 달려왔다.

    그녀는 액정에 뜬 천재용이란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표님, 뭐 하는 거예요? 혹시 아는 기자예요?”

    “아뇨.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를 악물고 대답한 나는 통화를 거절로 돌리고 내친김에 차단까지 등록했다.

    “누군데 그렇게 차단까지 거는 거예요? 팬파라치면 유명한 데잖아요.”

    팬파라치 천재용은 내 두 번째 배우인 윤조를 은퇴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그가 쓴 거짓 스캔들 기사 때문에 윤조는 괴로워하다가 결국 연예계에서 떠났다.

    빈선예는 윤조와 천재용의 일을 몰랐기에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선예 씨, 나중에 사내 지침서 만들 때 팬파라치 천재용이라는 개새끼 전화는 절대 받지 말라고 적어 놓으세요.”

    내 입에서 개새끼란 단어가 나오자 빈선예의 두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표님같이 젠틀하신 분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면 진짜 나쁜 놈인가 보네요. 신입 들어오면 꼭 천재용 개새끼라고 알려 줄게요.”

    호탕하게 웃으며 답하는 빈선예를 보니 속이 한결 후련해졌다.

    빈선예의 화통한 성격이 참 마음에 든다.

    “고마워요. 빈 팀장님. 빨리 사람 뽑을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빈선예가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언제까지 인터뷰랑 취재 사양하실 거예요? 설마 신비주의 컨셉은 아니죠?”

    “그건 아니죠. 하지만 드라마로 대중의 눈에 먼저 들어야 합니다. 배우라면 그래야 오래간다고 생각해요.”

    “멀리까지 보고 계시네요. 하긴 이렌 씨는 십 년 뒤에도 톱스타일 거예요.”

    십 년 뒤라.

    그땐 내가 이 세상에 없겠지만, 서이렌은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배우이길 바란다.

    * * *

    한편, 전화를 거절당한 팬파라치 천재용 기자의 입술이 비틀렸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원세강. 아직도 기자랑 친하게 지낼 줄 모르지.”

    천재용은 원세강을 비웃으며 쓰고 있던 원고를 확인했다.

    [탐구] 역대급 신인으로 등장한 서이렌의 외모는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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