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0화 (프롤로그) (1/261)

#프롤로그 1000일의 매니저

서른다섯 살의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내게 남은 시간은 단 삼 년.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십 년간 내가 사랑했던 내 배우들이었다.

심하영. 내 첫 번째 배우.

군대 제대 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로드 매니저를 하며 나는 하영이를 만났다.

하영이는 나의 첫 번째 배우였다.

‘로드 매니저는 그저 운전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졌던 나는 하영이가 자살하기 전날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오빠. 잘 가요.’

만년 무명으로 지내며 끝내 삶을 놓기로 한 그녀는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복학을 위해 로드 매니저를 그만둘 예정이었던 내 인생은 그날 이후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윤조. 내 두 번째 배우.

정식으로 로드매니저가 된 내게 순수하게 웃던 윤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오빠. 우리 이제 잘해 봐요.’

나는 윤조의 손을 잡으며 결심했다.

‘내가 널 꼭 스타로 만들어 줄게.’

나는 윤조와 함께 고민하며 대본을 골랐고, 그녀가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윤조는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나는 매니저로서 내 배우를 사랑했고, 여자로 그녀를 마음에 품었다.

너무나 사랑한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뒤흔든 스캔들에 휘말린 윤조는 결국 은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윤조가 떠나던 날 나는 다짐했다.

반쪽짜리 매니저는 이제 끝이다.

이자현. 내 세 번째 배우.

윤조가 떠난 후, 나는 달라졌다.

나는 철저한 플랜을 세우고 이자현을 키웠다.

눈에 불을 켜고 흥행할 시나리오를 찾아다녔고, 그토록 싫어하던 끼워팔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현이가 원하던 예술 영화를 거절하고 흥행이 보증된 신파 영화도 찍었다.

클리셰 범벅인 장면을 촬영하고 난 그날 밤, 자현이는 이러려고 배우가 된 게 아니라고 내게 눈물을 보였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자현이 그 예술 영화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시의 어린 내 배우는 그 역을 감당할 그릇이 아니었으니까.

천만 영화의 조연으로 이름을 올린 자현의 배우 인생은 그날 이후 탄탄대로였다.

나는 자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윤조처럼 마음을 주지 않았다.

다시 내 배우를 사랑하는 잘못을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여신으로 거듭난 이자현은 결국 나를 떠났다.

‘당신은 나를 배우로 보지 않았어. 오로지 스타로만 봤지.’

앞만 보고 내달렸던 지난 십 년간의 내 인생은 이자현의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내게 남은 짧은 삼 년의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련다.

다시 내 배우를 찾을 거다.

내가 마음껏 사랑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

온갖 루머가 판치는 이 바닥에서 오로지 내 말만 믿고 따라와 줄 사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배우.

그렇게 유통기한이 명시된 내 삶에 기적처럼 그녀가 찾아왔다.

“나는 배신하지 않아요. 나는 마네킹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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