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기적 - 완결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HTS를 바라보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홀딩스 +7.2%’
장이 끝날 때까지. 이윽고 3시 30분. 장이 마감되고, 나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HTS에 기사 하나가 뜬다.
‘한상훈 회장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홀딩스 자사주 매입 루머 사실로 밝혀져. 오늘 하루만 7%올라’
나는 그걸 슬핏 보고, 다시 돌아와 우리 회사 시가총액을 보았다.
‘3413조. 그리고 SHH그룹이 440조. 312조...’
확실히 넘었다. 4000조가. 분명 오늘은 경제사에 길이 남을만한 날이 될 것이다.
‘잠깐 뿐일지라도 말이지.’
이 주가는 오래가지 않는다. 내가 돈을 풀어서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주가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등급이 올라가 있더라도, 언제 내려갈지 모른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장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오늘 대금은 지불하지 않았지요?”
“네 회장님. 오늘은 단 한주도 매수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그러면, 그 돈은 내일부터는 오늘 종가 기준에서 –3%이하로 더 떨어지지 않게 최대한 수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지시를 마친 나는 내 메일함 쪽으로 가보았다.
‘어찌되었든 일단 요건은 충족했으니 안내서가 와 있겠지?’
내 예상대로다. 내 메일함에는 마지막 등급 안내서가 와 있다.
‘P등급 안내서’
이것은 나의 마지막 희망이다. 여기서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세현이에게는 가망이 거의 없다.
‘제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일 오전 8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
다음 날 아침. 7시. 나는 아내와 일찍 아들 세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세현이를 보고 아내는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오빠. 그래서 미국에서는 언제 연락이 오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아내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수술을 늦추는 이유’를 미국의 최첨단, 최고급 의료진에게 문의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오늘 오전까지 온다고 했어. 그 쪽 이야기 들어보고, 오늘 결정하자. 여기서 수술할지, 아니면 미국 가서 수술을 시킬지.”
사실 문의를 한 지 30분 만에 답변이 와 있었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수술 성과는 거의 비슷합니다. 소아수술에 있어서는 오히려 손재주가 좋은 한국 의사가 더 성과가 좋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8시에 올 안내서를 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아내는 내 말에 세현이에게 고개를 돌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아프다. 그러던 중
‘위이잉’
정각 8시에 알람이 울린다. 나는 잠시 화장실에 들러서, 날아온 메일 안내서를 받아들었다.
‘Publisher 등급 안내서.’
등급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어 본 나는.
‘...정말?’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들을 안쓰럽게 보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영아.”
“응?”
“미국에서 연락이 왔어. 여기서 하는 게 더 좋대. 오늘 당장 수술 하자.”
*
우리 부부 앞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자가 서 있다. 소아뇌종양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최다 수술 경력을 가지고 있는 최문석 교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가능 할까요? 최고의 성과만 낼 수 있다면 경비는 얼마든 지원하겠습니다.”
내 말에, 최 교수는 말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러면 오늘 오후 5시 바로 수술 일정 잡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아내가 묻는다.
“수술은 얼마나 걸릴까요?”
최 교수는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대략 12시간 정도... 어쩌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다시 한 번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 세현이를 바라보았다. 저 어린 것이 12시간의 대수술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된 듯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불안해하지마. 모두 잘 될 거야.”
아내는 내 말에 조금 위안을 얻었는지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아내와 아들을 두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가로질러 출구로, 주차장으로 나왔다. 주차장에는 내 차, 벤틀리가 있다. 나는 벤틀리의 문을 열며 말했다.
“노트북.”
안에 있던 박 비서가 내게 준비해온 노트북을 건네준다. 나는 그 노트북을 받으며 말했다.
“너는 잠깐 나가 있어.”
박 비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문 밖을 나섰다. 나는 노트북을 켜서 와이파이를 잡은 뒤, 내 메일함에 갔다.
‘Pb 12시간 뒤’
오늘 아침, 마지막 등급을 달성하고 받은 메일이 와 있다. 나는 제일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거기에는 새로 생긴 액티브 스킬이 있다.
‘기사 발행’
나는 잠시 그 스킬을 보고 오늘 아침에 읽었던 안내서를 떠올렸다.
‘Publisher 등급 안내서’
‘축하드립니다. Publisher 등급으로 승급하신 한상훈 독자님. 드디어 미래뉴스의 마지막 등급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Publisher 등급은 이하 등급과 달리 ‘신적인’능력을 넘어서서 ‘신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당신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딱 하나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뒤따른 다는 것’만은 잊지 마십시오.
‘현재 Publisher 등급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은 모두 한 가지입니다. 현재 배분되지 않은 스킬 포인트는 100점입니다.’
기사 발행 Lv1(액티브스킬 – 포인트 100점 필요)
새로운 기사를 발행Publish합니다. 발행은 ‘글자 수’와 ‘개연성’항목에서 제한을 받지 않으며, 발행된 뉴스는 발행 즉시, 뉴스에 나온 사건을 시간에 맞춰 우주를 변화 시킵니다. 발행된 뉴스는 다시 ‘미래뉴스’에서 나오지 않으며 기사 발행으로 인해 변화된 우주는 ‘미래뉴스’에서 정정보도로 나오지 않습니다. 횟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개연성 제한도 받지 않고 횟수에 제한도 없다고...?’
그야말로 신적인 능력이다. 나는 ‘기사 발행’을 클릭했다. 내 앞에 A4용지 모양의 창이 하나 뜬다. 거기에는 두 줄의 문장이 있다.
[개연성 %]
[기사를 입력해주세요.]
그런데 개연성 파트가 있긴 하다.
‘아니 상관없다며?’
나는 잠시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4분. 나는 그걸 보고 기사를 써내려가 보았다.
‘오늘 오전 11시 10분경 서울 강남 일대에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매우 짧은 기사.
[개연성 2.4%]
개연성은 2.4%다. 세현이가 수술을 받고 후유증 없이 생환하는 것보다도 가능성이 낮다. 나는 그래도 그대로 두고 ‘발행’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경고 메시지 하나가 뜬다.
[개연성이 너무 낮습니다. 개연성이 지나치게 낮은 기사는 자칫 세상에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발행하시겠습니까?]
나는 그 문구를 바라보았다.
‘과연 갑자기 너무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세상에 혼란이 온다 이거지.’
하지만 경고 메시지는 나와도, 막지는 않는 듯하다. 나는 조금 기사를 바꾸어 썼다.
‘오늘 오전 11시 10분경 서울 강남 일대에 국지성 소나기가 5분 정도 내렸습니다.’
고쳐서 쓰니 개연성이 4.3%로 조금 늘긴 한다.
‘5분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여기서 발행을 해보았다. 시간을 보니 11시 7분. 나는 3분여를 더 기다렸다. 그런데 정확하게 3분 뒤. 차 밖에서
‘후득 후드득’
정말로 소나기가 내렸다. 멀리 팔짱을 끼고 서 있다가 병원으로 대피하는 박 비서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되는 군.’
나는 다시 돌아와 ‘기사 발행’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 아들을 위한 기사를 썼다.
‘한상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회장, 아들 한세현 군(3)의 뇌종양 수술이 대성공으로 끝났다. 얼마 전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았던 한세현 군은 이날 강남 B병원에서 받은 수술로 뇌종양이 후유증 없이 완치되었다.’
개연성은 전에 봤던대로 ‘4%’ 하지만 그 와중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잠깐, 굳이 수술을 해야 할까?’
‘후유증은 없다’라고 써놓았지만, 어쩌면 수술 자국 같은 것이 남을 지도 모른다. 나는 기사를 바꿔보았다.
‘한상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회장에게 다시 한 번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아들 한세현 군(3)의 뇌종양이 수술을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한세현 군을 담당한 주치의 최문석 교수는 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고, 의학계에 보고해야할 특이 케이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개연성이 [0.0003%]다.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 ‘발행’ 버튼을 눌렀다.
[개연성이 너무 낮습니다. 개연성이 지나치게 낮은 기사는 자칫 세상에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발행하시겠습니까?]
경고음이 떴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기사를 발행시켰다. 죄 없는 우리 아들이 건강해지는데, 세상에 무슨 혼란이 생겨날 것이란 말인가. 내가 두 번째 기사를 쓰고 나니, 마침 밖에서 내리던 비가 멈추었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11시 15분이었다.
*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교수님.”
우리 부부는 최 교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수술실 밖 대기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12시간 동안. 하지만 최 교수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20여분 뒤. 수술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최 교수가 걸어나왔다. 나는 덤덤했지만, 아내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대체.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내에 말에, 최 교수는 당황해 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저...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그는 아내가 오해를 사게 말을 더듬었다. 아내는 기절 일보 직전이 되었지만, 최 교수가 이내 말을 이은 덕에 그런 사태는 피했다.
“수술을 하려고 봤는데, 영상에서 종양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잘 못 본 것인가 몇 번 확인을 해봤는데... 정말 종양이 사라졌습니다. 뇌 구조도 정상 소아의 것과 똑같이 돌아왔고요.”
“그럼... 우리 세현이는...”
아내의 말에, 최 교수는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현재 환자 상태 완벽하게 건강합니다. 어쩌면 이건... 이건 학계에 보고해야 할만한 기적 같은 일이 벌어 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써놓았던 말을 그대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들었어? 오빠? 기적이래. 우리 세현이 건강하대!”
오늘 오전에 내 손으로 직접 그 ‘기적’을 일으키고 왔음에도, 나는 아내의 그 목소리에 울컥하고 말았다.
*
나는 회장실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 시내가, 내 영토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중에,
‘띠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전화기에 다가가 그걸 들었다.
“회장님. 장 사장님 전화입니다.”
“응 연결 시켜줘.”
이윽고 장 사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회장님. 좋지 않은 일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인데요?”
“저희가 투자했던 해조수산 말입니다. 원양 어선 하나가 인도해 근처에서 해적들에게 피랍 당했습니다. 아직 언론에 밝혀지진 않았지만, 인명 피해가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게 밝혀지면 아마 주가가 급락할 것 같습니다.”
나는 몇 가지 키워드들을 받아서 머릿속에 적어놓았다.
‘해조수산, 인도해, 해적들, 피랍’
“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사장님. 예상외로 잘 풀릴 수도 있겠지요. 뭐 해적들이 착해서 그냥 풀어줬다든가.”
“네에?”
“아니 단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그 말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사건 추이 보면서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셔요.”
장 사장의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 번 더 전화가 온다. 이번엔 이 비서다.
“회장님. 매버릭 터너 SHH전자 사장님이 통화 요청 하셨습니다.”
“그래 연결해줘.”
곧 터너 사장의 외국인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회장님. 접니다.”
“네 터너 사장. 무슨 일이지요?”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네. 그... 저 회사일이 아니고, 저희 형 일입니다만.”
그의 형 일이란, 미 대선이다. 윌리엄 터너 상원의원은, 얼마 전 당내 경선에서 1등을 차지해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내 뜻대로.
“아 네 말씀하세요.”
“저희 형님이, 대통령 선거 이전에 회장님이 한번 뉴욕에 와 주셔서 한 번 더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아 그렇군요. 음... 저는 바빠서 미국은 못 갈 것 같은데... 형님에게 제 말 그대로 전해주세요. 저는 한국에서 일이 바빠서 미국에는 못 갈 것 같다. 대선 앞두고 불안한건 이해하겠지만, 너무 걱정 말라. 내 예상에는 당선이 99.9%확실하다. 그렇게 말입니다.”
내 말에, 터너 사장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전화가 한 번 더 온다. 이번엔 내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아내다.
“응 아영아 왜?”
“오빠. 이번 주말에 서현이 세현이랑 놀이공원 가기로 했잖아.”
얼마전 서현이는 여섯 살, 세현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둘 다 매우 건강하게 말이다.
“응응.”
“그런데 그날 일기예보 보니까. 그 날 미세먼지가 심하다네, 그래서 뒤로 미루는 게 어떨까 해서”
“음... 그런데, 서현이랑 세현이 둘다 엄청 들떠 있지 않았어? 갑자기 연기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애들 데리고 나가는 건 좀...”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글쎄 일단 조금 더 기다려보자. 아직 여행까지 3일 남았는데 뭐. 일기예보 자주 틀리잖아?”
아내는
“그건 그렇긴 하지만...”
“전날 가서 보자. 전날에도 미세먼지가 너무 많으면 아쿠아리움이라고 가고.”
“그래 알았어.”
아내와의 통화가 끝난 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할 일이 많다. 인간으로서, 또 신으로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었다. 늘 언제가 그랬듯 내게 그 메일이 와 있다.
‘12시간 뒤’
나는 그 메일을 열고, 스크롤을 쭉 내렸다. 그리고, 맨 아래 있는 기사 발행을 클릭했다. 내 앞에, A4용지 크기의 한 장의 빈 종이가 나온다. 나는 그걸 쳐다보다가, 한 번 심호흡을 한 다음, 타자를 두드려 글을 써 내려갔다. 내가 창조하는 미래. 내가 창조하는 기적을 말이다.
12시간 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