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96화 (196/198)

# 196

마지막 등급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니.”

밤중에 부모님이 병원에 오셨다. 나는 거의 탈진에 빠진 아내를 부모님에게 맡겨둔 후 잠시 병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라도 조금 맞아야 정신이 차려질 것 같아서. 복도를 걷는 와중

“어머 사장님. 안녕하세요?”

간호사 한명이 내게 인사를 해 온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사정을 모르는 지, 내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자선행사는 없는 걸로 아는데.”

“...개인적인 일입니다.”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을 한 뒤,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착잡하다. 희귀암 재단에 수백억을 써왔는데, 우리 아들이 그 희귀암이 걸리다니. 나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신이라는 게 있다면 대답해 보세요. 내가 뭘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나름 시간 쪼개고 돈 쪼개서 열심히 해왔는데 이렇게 돌려주다니, 너무하잖습니까? 이건’

하지만, 그래봐야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하지만 나는 이내 주먹을 쥐며 고개를 들었다. 신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한상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자.’

나는 다시 한 번 내 능력들을 떠올려보았다. 당장 기자들을 불러서 우리 아이에 대한 기사를 쓰게 만든다. 그럼 바로 미래뉴스에 내 아들 이름이 나오긴 할 것이다.

‘거기서 어떻게든 편집을 하면...’

하지만, 개연성이 뒷받침 될지 잘 모르겠다. 세현이의 뇌종양은 악성으로 위치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한다 해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한다. 후유증이 생길 확률도 매우 높고.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후유증이 없다고 까지 하면 개연성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런 식으로 쓰면 50%까지는 될 지도 몰라.’

일단 그렇게는 해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등급을 얻게 되면... 뭔가 방법이 생길지도?’

아직 마지막 등급이 남아 있긴 했다. 마지막 P등급. 나는 오늘 점심에 있었던 ‘애플 인수’건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 회사 있는 남은 가용금을 모두 짜내서 딜을 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 애플이 아무리 몰락해 매물로 나왔다고 해도, 여전히 시가총액이 1000조가 넘었다.

돈 문제가 해결 되도, 미국의 반독점법이니 뭐니 하는 것을 피해가려면 최소한 1년은 걸린다. 1년 후면, 세현이는 살아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애플이 아닌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조금 작은 회사를 사면 부담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몇 달은 소요 될 것이다.

‘그건 안 돼...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지금 상장된 회사를 부풀리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 회사 지분관계를 따져보면 당연히 모회사인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홀딩스가 가장 높다. 총 3600조 중에서 혼자서 2800조 정도, 가지고 있는 현금뿐만 아니라, 국내의 비상장회사, 그리고 해외 회사들 지분까지 우리 회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계산을 해보았다. 곧 답은 나온다.

‘일시적으로 우리 회사 주가를 15%를 올리면 돼.’

하지만 우리 회사 주가를 올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미 2800조.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어버려서, 가격이 매우 안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청난 어닝 서프라이즈를 올려도 3~4% 정도만 오르고 그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가 총액에서 우리회사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언론을 조작해서 주가를 올려도 10%이상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남은 방법은 딱 하난데...’

딱 하나 있긴 하다. 조금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이라도 쓰는 수밖에 없다.

*

다음 날, 살짝 충혈 된 눈으로 출근을 한 나는 먼저 박 비서와 이 비서를 호출했다.

“박 비서 이 비서, 둘 다 안으로 들어와 봐.”

곧 두 비서가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준비해뒀던 문서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두리은행, 신현은행, BK은행과 같은 우리나라 은행들 고위급 인사 전화번호였고, 나머지 하나는 시티은행, JP모건체이스, 도이체방크와 같은 해외 은행 연락처였다. 나는 국내명단은 박 비서에게, 해외명단은 이 비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두 비서는 각자 받은 전화번호에 전화해서, 내가 은행장들 직접 보고 싶다고 해. 최대한 빨리. 조 단위 대출 건이니까.”

두 비서는 각자 지시한 대로 자리에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금방금방 돌아왔다.

“회장님. 두리은행 김지훈 은행장님이 직접 찾아뵙고 싶다고 합니다.”

“회장님. 모건체이스에서 한국지부 지부장 오전 내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당연한 반응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조 단위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내 계획은 바로 자사주 매수였다. 몇 년 전 ‘E’등급을 달기 위해서 공개했던 우리 회사 주식을 재매수해서 시가총액을 끌어올리는 방법 말이다. 그러면 단기간에 15%를 올릴 수는 있다. 내 매수가 끝난 뒤 주가는 제 자리를 찾겠지만, 일단 이렇게 하면 일시적으로나마 4000조를 뚫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은행장들을 부른 것은 최대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3000조에 달하는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금은 10조 정도 밖에 없었다. 일반인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이지만 그것 가지고는 우리회사 주식 15%를 상승시킬 수 없다.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대출할 생각이었다. 조 단위로.

“회장님 BK은행 은행장님이 언제 찾아뵈면 되냐고 물으십니다.”

“도이체방크에서 은행장님이 부은행장 한국으로 보내시겠다고 합니다. 지금 비행기 타면 내일 도착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은행장들은 내게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전화를 해왔으므로. 이건 쉽게 이루어질 것이었다. 나는 적당히 만남 일정을 잡고, 그 다음에는 대원일보 이원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이 대표.”

“네 한 사장님. 아니 이제 회장님이시지요? 회장님. 무슨 일로 전화 거셨습니까?”

그도 역시 우리 아들 이야기는 잘 모르는 듯 했다. 나는 담백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우리 둘째 아이가 강남 B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악성뇌종양으로요.”

“네? 뇌종양이요? 허 참 저런...”

그가 말꼬리를 흐리던 때, 나는 바로 이어 말했다.

“그거 기자들 보내서 취재해주세요.”

“네에?”

내 말에, 이원재 대표는 꽤나 놀란다. 나는 우리 가족이 남의 혀 위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여태껏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세현이가 뇌종양이란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나는 덧붙여 말했다.

“취재 할 때 세현이나 아내가 노출되지 않게 직접 취재하지는 말고, 병원장이나 담당의 같은 사람에게 돌려서 취재하도록 하세요. 국내 최대 부자의 아들이 뇌종양에 걸렸다고.”

“아니... 그런데 왜?”

나는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세요? 네?”

내가 강압적으로 말하자. 그는 대답한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중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네.”

“3일 뒤에 소문 하나 퍼트려 주세요. 은은하면서, 적당히. 투자자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무슨 소문이요?”

“제가 저희 회사 주식을 사기로 했다고. 적게는 30조. 많게는 100조 다시 살수 있다고 루머 뿌려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이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아내는 힘이 빠진 채로 내 전화를 받았지만, 나는 아내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영아. 너무 걱정 하지 마. 내가 뭐든 해볼 테니까.”

*

며칠 뒤, 대원일보를 위시한 그 가지 언론에서 세현이에 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상훈 대표의 아들. 뇌종양으로 투병 중’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 한상훈 대표에게 내려진 악운’

나는 여기에서 인물 검색으로

‘한세현’

을 검색해보았다. 나온다. 우리 아들 기사가.

‘한상훈 대표 아들. 뇌종양 수술 도중 끝내 숨져.’

참담한 뉴스. 하지만 나는 그걸 참고 편집으로 가위를 쳐보았다.

‘한상훈 대표의 아들 한세현(3)이 결국 뇌종양 수술 후 사망했다. 평소 소아암재단에 거액의 기부를 해온 한상훈 대표에게...’

나는 빠르게 타자를 두들겨 그걸 ‘편집’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상훈 대표의 아들 한세현(3)이 뇌종양 수술 끝내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수술진은 위험한 위치에 있는 종양을 깔끔하게 수술해 냄으로서 한세현 군의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후유증이 없도록...’

하지만 나온 개연성은 6%. 나는 기사를 고쳐보았다.

‘한세현 군의 생명을 가까스로 구하는 데 성공했다.’

후유증을 남기고 성공하는데 개연성은 23%다. 이거 가지고는 50%에 한참 모자르다. 편집이 되지 않는다. 아니 편집이 되기 전에, 가능성이 너무 낮다.

‘수술 성공률이 이정도로 낮단 말이야?’

절망적이다. 나는 결국 두 번째 방법에 걸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등급을 달성해본 뒤에, 안되면, 수술진을 바꿔서 최대한 살아나는 개연성이 높을 때, 수술을 실행한다.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일 것이다. 세현이가 죽을 확률이 더 높더라도 말이다.

*

세현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일주일이 지났다. 세현이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채로 지냈다. 아내는

‘한시라도 빨리 수술하는 게 좋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내게

‘빨리 수술 날짜 정하자.’

고 했지만, 나는

‘일주일만 미루자.’

라며 그녀를 만류했다. 평소 내 의견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던 아내였지만, 이번만큼은 동의하지 못했다.

‘대체 왜? 최대한 빨리 해야 수술 성공이 확률이 높다잖아.’

아들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수술 날짜를 일주일 미루었다. 마지막 등급에 희망을 걸기 위해서. 그러면서, 그 동안 대출이 집행되었다. 나는 돈이 들어오는 대로 내 개인 창구로 장 사장의 팀을 시켜서 우리 회사 주식을 매입하도록 시켰다. 조 단위 금액으로 말이다.

내 지시에 시가총액 2800조짜리 회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 2%, 3%. 우리 회사가 3% 움직였다는 것은 시총이 100조 가까이 생겨나는 것이었기에, 예전 수연그룹 같은 것이 하나 생겨나는 것과 의미가 비슷했다.

‘이거 뭐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왜 이렇게 많이 올라?’

‘뭔가 숨겨진 호재 같은 게 있는 거 아닌가?’

그런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호재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이건 돈으로, 힘으로 강제로 올리는 것이었다. 내 목표를 위해서. 그 다음 날도, 3% 상승. 이제 사람들은

‘뭔가 있나보다 사자.’

추격매수에 동참했다. 대원일보에서 돌린 찌라시도 몇몇 투자자들 귀에, 입에 나돌았을 것이다. 내가 자사주 100조원 치를 매입한다는 소문이. 그리고 그 다음날도 3%. 삼일 연속 3% 올렸을 때, 나는 대원일보를 통해서, 기사를 내보냈다.

‘한상훈 대표가 회사 자사주를 매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액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100조원 가까운 규모가 될 것.’

그 이야기가 전해지자, 다음날은 무려 7%가 뛰었다. 내가 돈을 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결국 마침내, 내가 소유한 회사 지분 4000조가 넘으면서 나는 마지막 등급을 손에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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