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95화 (19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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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이 필요한 일

    나는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걸쳤다. 거울을 한 번 본 다음, 옷 방을 떠나, 거실을 통해, 아이들 방으로 갔다. 거기에는 천사처럼 자고 있는 서현이, 세현이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아내가 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아내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더니, 아이들 깨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준비 다 됐어?”

    “응. 세현이는 조금 어때?”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세현이를 보았다. 갓 세 살이 되었는데, 어제부터 잠도 안자고 우는 통에 어제 우리 부부가 애를 써야했다.

    “글쎄 지금까지는 잘 자는데... 오늘도 그러면 데리고 병원 가보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밥은?”

    “됐어. 내려가면서 대충 사 먹지 뭐.”

    “미안해. 중요한 날인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세현이 때문에 잠 거의 못 잔 건 나나 아내나 똑같다.

    “아니야. 미안하긴 내가 미안하지. 최대한 빨리 마치고 올게.”

    내 말에 아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게 오빠 마음대로 돼?”

    “그럼. 내 마음 대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대개 이런 말은 다른 사람이 하면 자신감의 표현 정도 되는 말이지만, 내가 하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 나에게는 정말로 내 마음 대로 안 되는 게 없었으니까.

    “다녀올게.”

    “응”

    나는 아내에게 인사를 한 다음, 아이들 방을 나섰다. 거실을 통해 현관문 앞에 오면, 내 자동차 키 컬렉션이 있다.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걸 사다보니 이젠 12개 정도 되었는데, 그래도 내 재산에 비하면 매우 검소한 수준이었다.

    ‘오늘은... 조금 근엄한 컨셉으로 가야겠지?’

    나는 거기서 대문자 R 두 개가 겹쳐져 있는 롤스로이스 키를 들고,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지하 1층 내 전용 주차장에는 두 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들고 온 롤스로이스 키를 박 비서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래. 가자.”

    박 비서는 내게서 받은 차키의 로고를 확인 한 후, 롤스로이스의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이 비서도 그를 따라 쪼로로 롤스로이스의 뒷자리에 가서 선다. 나는 뒷자리에 타고, 말했다.

    “가지.”

    ‘부으응’

    소리와 함께 롤스로이스는 인빅투스 빌딩을 떠나 강남 대로를 질주한다. 박 비서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이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왔대?”

    이 비서는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거의 대부분 오셨습니다. 일단 저희 회사 임원들은 모두 참석하셨고요. 자회사는 대표분들은 모두 오셨고, 거기에 해외 지사 고위직분들도 오늘 행사 참석하기 위해 입국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오늘은 빠지면 안 되지.”

    오늘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재출범일이었다. 수년간 나는 엄청난 속도로 돈을 벌어들이고, 그리고 그 돈을 다시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회사들을 사들이는 바람에 자회사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관리하기 힘들 만큼. 그래서 장 부사장의 권유에 따라서 회사를 나누기로 했다.

    사업부분은 투자사로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어 장 부사장이 사장을 맡고, 나는 홀딩스 즉 지주회사의 주인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홀딩스의 회장이 되어 자회사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박 비서가 운전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딩에 ‘Invictus’우리 회사 로고가 박혀 있는 회사 건물이 보인다.

    인빅투스 빌딩 2호. 나는 이곳에 따로 살림을 차려주었다. 내 곁에서 오랫동안 헌신한 장 부사장, 아니 장 사장이 이곳의 총괄하게 될 것이다.

    *

    수많은 인파가 회장에 몰려 있다. 나는 그들을 헤치고 나아가, 오늘의 주인공에게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장 사장님.”

    늘 부사장 부사장 부르다가, 사장이라 부르니 조금 어색하긴 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나 역시 회장님 소리 듣기도 어색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장 사장과 인사를 마친 나는 두 비서를 대동한 채로 행사장을 조금 걸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회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다가와 고개를 조아린다. 이렇게 보면 조금 비굴해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들은 나름 제 분야의 실력자들이었다. 다들 자기 회사에서는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군림하는 자들. 내가 황제여서 머리를 숙일 뿐이지. 그들도 왕이나 제후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인사를 받으면서 그들 하나하나 이름과 얼굴을 새겨놓았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인사를 받도록. 인물검색으로 정기적으로 스캔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법이다. 가끔 이렇게 변경의 왕들을 불러 인사를 받아놔야, 제국이 유지 될 수 있다. 개중에는 그런 충성확인 과정이 필요 없는 왕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형님. 회장님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서 사장을 보며 말했다.

    “너도 축하한다. 상장사 사장이 된 거.”

    “다 형님 덕분이지요.”

    예전에 비서를 하던 지훈이는 이제 어엿한 코스닥 상장사의 사장이 되었다. 내가 이끌고, 본인이 노력한 덕분에. 조금 분명하게 지분을 가르자면 내가 7이고, 그가 3정도 될 것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녀석은 나름 열심히 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것만 가지고는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부족한 ‘운칠’이 되어 주었다. 내가 이 녀석 비즈니스를 위해서, 병원도 알선해주고, 사설을 써서 규제도 혁파시켜 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투자도 더 넣어주었다. 뭐 그만큼 우리 자금을 불려서 회수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의 회사가 상장하면서 예전에 내가 그에게 했던 약속

    ‘너 내 곁에 있으면 포르쉐 탄다.’

    은 수 백배로 이루어졌다. 회사 지분 30%를 가진 그는 이제 포르쉐 정도는 이제 100대 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연으로 수 천조의 회사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역시 나름 기연을 얻은 셈이다. 대학생 때 나랑 친했다는 그런 기연. 나는 서 사장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임마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 IPO할 때 들어온 돈 절반은 개미 돈이니까. 남의 돈 받았다 생각하고 책임지고 열심히해야해. 그거 가지고 흥청망청 할 생각하지 말고. 너 주가 내려가면 욕 어지간히 처먹는다.”

    “네 걱정마세요. 형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뒤이어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OH엔터테인먼트의 권오혁 사장이 내가 다가와 인사한다. 나는 그를 보며 반색했다.

    “아 권사장님. 어떠세요? 요즘은? 애 키우기 쉽지 않으시지요?”

    “하하 그렇지요 뭐. 그래도 키울 만은 합니다. 너무 예뻐서.”

    그는 얼마 전에 탤런트 오현주 씨와 결혼, 그리고 득녀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오현주의 팬들은 오현주가 머리 까지고, 배 나온 아저씨를 남편으로 택했다는 것을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오현주 씨가 직접 나서서

    ‘이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고, 일을 하는데 도와줄 사람’

    이라고 밝혀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역시 왕들이지만, 보다 특별한 왕들에 속한다. SHH전자나, SHH건설에 비하면 시가총액은 그다지 크지 않은 회사들이었지만, 회사 초창기 멤버라는 이유로, 내게 더 가깝다는 이유로도 그룹 내에서 대접을 받곤 했다. 따지고 보면 제국의 개국공신들이니까. 두 사람과 인사가 끝날 즈음, SHH전자의 매버릭 터너가 인사를 해왔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한국생활 4년차 그는 이제 한국어를 꽤 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미국 출장은 어떻던 가요? 형님은 보고 오셨습니까?”

    “네. 형님께서 안부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형인 윌리엄 터너 상원의원은 미국 내 차기 대권주자로 점점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차기 대통령으로 그를 ‘편집’할 수 있게 말이다. 그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개연성을 점점 올라가서 거의 50%에 근접하고 있었다.

    여기서 현 대통령을 스캔들로 두 세 번 흔들면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충분히 개연성이 쌓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도 내 덕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이익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 갔을 때 조금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뭐지요?”

    “월가에 회장님이 애플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더군요. 우리 회사랑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

    2010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애플은 2020년대 들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은 이후로 제대로 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우리 회사 SHH전자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플은 미래를 예측하지만, 나는 미래를 보니까. 상대가 될 수가 없다. 터너 사장은 내게 물었다.

    “저도 단순 루머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애플이 흔들리면서 다른 오너를 찾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혹시나 하고 있었습니다. 진실이 뭡니까 회장님?”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그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요새 애플 시총이 한... 1400조 하지요?”

    “네 1460조 정도 됩니다. 많이 내려왔지요.”

    ‘1460조라...’

    나는 잠시 그 금액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 내가 소유한 계열사 시가총액은 총 3600조. 가지고 있는 현금을 동원해 애플을 인수하면, 거느리고 있는 회사 시총이 5000조가 넘는다. 그러니까 단박에 마지막 P등급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요. 제가 왜 굳이 애플을 사겠습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SHH가 시장을 점령하는 건 시간 문젠데.”

    애플은 시간이 지나면 더 싸질 회사다. 굳이 지금 살 필요는 없다. 터너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마침 오늘의 주인공이자, 개국공신 중 하나인 장 사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운을 뗐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찾아주신 많은 귀빈 분들.”

    나는 그가 뭐라고 할지, 기대한 채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 때, 박 비서가 나를 찾았다.

    “저... 회장님.”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방해라니. 그런데,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저... 직접 들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휴대폰을 받아서,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오빠. 세현이가...”

    아내의 몇 마디, 목소리를 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나가자. 운전해.”

    *

    우리집 인근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 흰 가운의 입은 의사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저 회장님.... 그러니까... 그게...”

    잔뜩 긴장을 한 표정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핵심만 말해주세요.”

    그는 침을 한번 삼킨 다음, 말했다.

    “소아뇌종양입니다.”

    나는 울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래서, 치료 가능 합니까?”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드님 같은 경우는 많이 위험한 위치에 종양이 자라고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마지막 말꼬리를 흐린다. 나는 그를 다그쳐 물었다.

    “쉽지 않은 정도가 어느 수준인데요?”

    개연성이 얼마나 되나 해서.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수술이 끝나고 아이가 제대로 후유증 없이 돌아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봐야...”

    기적이 필요한 일. 그것은 개연성이 0% 가깝다는 말이다. 나는 아내 어깨를 어루만지면서도, 살짝 넋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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