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신이 되어버린 황제(4)
“준비 되셨답니다. 그럼 가시지요. 사장님.”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 비서 뒤를 따랐다. OH엔터 권오혁 사장이 나를 따라 걷는다. 자꾸만 넥타이 주변을 만지작거리는 게, 많이 긴장한 모습이다. 나는 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마세요. 권 사장님. 사장님은 그저 옆에서 웃고 있다가, 일 이야기만 하시면 됩니다.”
“아아 네.”
붉은 색 기둥 몇 개를 지나 황금용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깔끔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 하나가 서 있다. 그는 양 팔을 벌리며 빠르고 높은 중국어로 내게 뭐라 말했다.
“....한 쉐자”
내가 알아 들은 것은 마지막 한 단어다. ‘한 쉐자’. 한 사장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에서 내가 자주 불리는 호칭. 이 비서의 통역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
‘어서 오십시오. 한 사장’
이던가
‘환영합니다. 한 사장.’
대충 그 정도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연습했던 중국어로 그에게 화답했다.
“헌까오싱, 젠따오니.”
이건 ‘만나서 반갑습니다.’정도 된다고 한다. 나와 악수를 나눈 그는 내게 맞은 편 자리를 권했다. 나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룽징취안 상하이 당서기. 젊은 나이에 상하이의 권력을 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수도라 불릴 만큼 친 자본적이었으므로, 그는 내가 중국 정치권에 파고 들기 가장 좋은 대상이었다.
“헌까오싱. 헌까오싱.”
그는 내가 허허 웃으면서 나와, 권 사장을 반겼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중국 공산당은 대개 세 개의 계파로 나누곤 한다. 후진타오 전임 주석의 공청단, 현 주석 시진핑의 태자당, 그리고 장쩌민 전임 주석의 상하이방.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이루어지면서 공청단과 상하이방의 위세가 많이 줄었는데, 지난 번 있었던 금융위기 탓이 상하이방이 다시 대두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돈줄을 쥔 쪽은 이 쪽이었으니까. 나는 이 상하이방을 밀어줌으로서 중국의 국수주의 강경파들을 견제할 생각이었다. 경제에서는 이득을 취하고, 안보 쪽 위협은 줄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룽징취안 상하이 당서기는 상하이 방의 차기 유력주자였으므로, 그와 협력해가며 그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만으로도 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이자, 1200조 짜리 투자회사의 오너인 내게 도움이 될 터였다. 그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비서를 통해서 그에게 말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굳는 다는 말이 있지요. 최근 몇 년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저는 중국 경제가 다시 일어서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의 금융위기에 편승해 40조에 가까운 돈 챙긴 내가 그런 말을 한다는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 말 자체는 나도 진심이었다. 급성장을 하다가 미국에게 한 대 얻어맞긴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13억 인구를 가진 잠재력을 가진 나라였다. 이 비서는 룽징취안 상하이 당서기의 말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제일 큰 부자인 한 사장님도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아... 비즈니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이 있습니다. 받아보시지요.”
나는 준비되었던 대사를 하면서 박 비서를 쳐다보았다. 박 비서는 들고 있던 선물함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안에는 고려청자 스타일의 찻잔과 주전자 셋트가 있다. 찻잔에는 학이 그려져 있고, 주전자는 거북이 모양으로 되어 있다. 색은 고려청자 특유의 옥색을 가지고 있다.
“중국 분들이 차를 좋아 하신다기에, 준비해봤습니다.”
공산당의 권력자로서, 여태 수많은 고급품을 봐온 그의 눈에도 고려시대 찻잔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 듯하다.
“오오 그렇군요.”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 찻잔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거북이의 등을 열어보고, 살짝 눈이 커졌다가, 줄어든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색이 정말 아름답군요. 감사합니다. 한 사장.”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괜히 태자당의 견제를 피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군.’
방금 그가 본 거북이 안에는 USB하나가 들어 있다. 그가 공산당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크로우가 긁어온 정보들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아직 관영매체의 힘이 크고, 언론의 자유가 높지 않은 중국에서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거북이는 장수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에... 이 주전자로 차를 내려서 드시면, 오래오래 장수하실 겁니다.”
그는 내 메시지를 100% 전해들은 듯 했다.
“귀한 선물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이 주전자로 차를 내려서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가늘게 웃는 그의 눈에서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윌리엄 터너 상원의원을 떠올렸다. 대개 이런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다 비슷한 면이 있다. 배경이나, 성격, 외모는 다르지만,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다는 점 말이다. 욕망이 있는 사람에게 검을 쥐어 줬으니, 그는 알아서 그걸 휘두를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 점차, 내게 종속될 것이다. 나는 별일 없었다는 듯, 그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그러면 뷰박스 100호점 개점 행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지요. 행사에는 옆에 앉아 계신 OH엔터 권 사장님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
내 첫 번째 목표.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내의 내 권력 확장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미국 뉴스에서는 윌리엄 터너 상원의원을, 중국 뉴스에서는 룽징취안 당서기를 추적해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장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 주석에 취임한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손을 쓰면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 나라의 권력에 손에 쥐는 것도 시간문제. 그리고 이 두 나라의 권력을 쥔다는 것은, 곧. 내가 한국의 넘어 세계의 실력자가 됨을 뜻했다. 내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고, 원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어서 두 번째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두 번째 목표는 북한과의 평화 통일이다.
북한은 대대로 내려오는 공산주의, 3대 세습 등 우리나라와 타협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경제개방을 하고 싶어 했다. 거기에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의 경제제제를 겪고, 그와중 우방국 중국의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친중에서 친미 쪽으로 살짝 무게추를 움직이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념이라는 게 중요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력이 더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남한이나 북한이나, 운명은 비슷하다.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 보기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상황은 늘 그렇다. 옛날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 때 청이냐 명이냐, 조선 말기에는 청이냐 일본이냐, 해방기에는 미국이냐 소련이냐, 지금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이 계속되는 이지선다를 피하려면, 한민족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나 북한이나 서로를 적대시 하는 환경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 가 없다. 바다 밖으로 전력을 다해도 힘든 마당에 38선에다가 수 십 조씩을 쏟아 붓는데 어떻게 나라가 강성해질 수 있겠는가. 미국, 중국, 러시아는 물론 일본조차 제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분주히 노력했다.
“어떻습니까? 사장님?”
“음...”
나는 들고 있던 패드를 앞으로 놓으며 말했다.
“좋군요. 다만 이 경제 협력 방안에 있어서 말입니다.”
나는 패드 중반 부 쓰여 있는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라클 뉴스의 정소영 사장은 자신의 단발머리를 찰랑 거리며 내가 손짓하는 부분에 집중했다.
“네.”
“대기업들 참가를 촉구하는 내용이 강압적으로 쓰여 있었는데, 조금 유하게 바뀌었군요?”
내가 지적하는 것은, 오라클 뉴스의 사설이다. 내가 초안을 내고, 전문 기자가 손을 본. 마지막으로 기사를 내기 전에, 내가 컨펌을 해야 이게 인터넷에 나간다. 그리고, 주성원 대통령이 이걸 보고.
“아아 네. 이건 조금 표현이 강해서... 친 대기업 독자들에게 오히려 반발을 살까봐서. 조금 톤 다운 시켰는데. 다시 원본으로 변경시켜 놓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본대로 가지요.”
“네. 그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정소영 사장은 고개를 숙인다음 사장실을 나서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정 사장님.”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본다.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더했다.
“대기업들 눈치 너무 보지 마세요. 큰 걸로 따지자면 우리 회사가 제일 크니까.”
정 사장은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사장님.”
정 사장이 밖으로 나간 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박 비서를 불렀다.
“박 비서.”
“네 사장님.”
“오늘 오랜만에 모임이나 한 번 해야겠는데.”
“모임이요?”
“응. 그 있잖아. 동창회.”
“아아 네. 알겠습니다. 하던대로, 각 회사 임원분들에게 전달하면 되겠지요?”
“응 그래줘. 날짜는...”
나는 달력표를 보다가, 내가 원하는 날짜를 정해서 말했다.
“다음 주 목요일로 하는 게 좋겠어. 장소는... 지난 번 그 호텔 라운지로 하자. 거기 편하고 좋더라.”
“네 알겠습니다.”
그 동창회 모임이란, 다름 아닌 전에 ‘가든 로열’이라 불렸던,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굳이 그 이름으로 부르진 않았지만, 참석하는 사람들은 동일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3세, 4세들. 딱 한 명 탁준기만 빼고 말이다. 탁준기가 구속되어 20년 형을 살게 된 이후로. 그 모임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었지만, 우리 회사 시가총액이 1000조를 넘겼을 때부터 내가 다시 그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에 협력 좀 하라고.
예전에는 그들이 나를 신흥부자 정도로 귀여운 졸부로 취급했지만, 이제는 내가 진짜 부자고, 그들이 귀여운 수준이 되었다. 모임의 목적은 간단하다. 내가 사설에서 쓴 대로, 이들에게 북한 투자를 적극 권장할 생각이었다. 사설로 대통령에게 당기고, 모임에서 대기업 오너들을 밀고.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된다.
그렇게 정 사장 보내고, 박 비서에게 따로 일을 시킨 나는 남은 일정을 확인했다. 오늘 일은 다 끝났다.
‘그럼 퇴근할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새는 이렇게 일이 끝나면 한 시라도 빨리 집에 가곤 한다. 딸과, 아들이 보고 싶어서. 이제 막 말이 트인 네 살 서현이와, 갓 돌 지난 아들 세현이는 내 인생의 의미가 되었다.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서 문 밖을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밖에 있던 두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손으로 그들을 앉히며 말했다.
“응 집에. 나 먼저 퇴근할게.”
“네 사장님.”
두 비서를 남겨둔 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상승 버튼을 눌렀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는 그 안에 타서 우리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펜트하우스 층을 눌렀다. 어디에서는 세계 경제를 선두하는 투자자로, 또 어디에서는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흑막으로, 또 어디에서는 직원 수 천명을 거느린 회사의 오너로서 활동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서현이와 세현이의 아빠 말이다.
‘펜트하우스’
기계음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딸 서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와 아빠다!”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딸아이를 안아 들었다.
“다친다 다쳐.”
안쪽에서 아내가 아들을 든 채로 나온다. 타고난 미모 덕분인지, 아내는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
“일찍 퇴근했네?”
“응.”
나는 서현이를 안은 채로, 아내에게 안겨있는 세현이를 바라보았다. 수천 조에 달하는 재산을 버는 동안, 때로는 비명을 지를 만큼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행복한 것으로 따지자면, 지금 보다 행복한 때는 없는 것 같다. 집에서 네 가족이 같이 있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