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신이 되어버린 황제(3)
나는 서현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서현아 아. 빠.”
서현이는 귀여운 볼을 움직이며 나를 따라했다.
“앗바”
그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서현아 아. 빠.”
“앗 바.”
나는 서현이를 두어 번 들어 올리며 웃었다.
“아이구 그래 잘한다 우리 딸.”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내게 묻는다.
“오빠. 둘째 이름은 뭘로 하고 싶어?”
나는 서현이를 든 채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글쎄?”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서현이에게 물어보았다.
“서현아 동생 이름 뭘로 지을까?”
서현이는 나를 보며 말한다.
“앗 바~”
나는 피식 웃고는, 서현이 볼을 만지며 말했다.
“아니 아빠 말고. 동생 이름”
아내는 둘째를 임신했다. 아영이의 산부인과 주치의는 이번에는 아이를 위해서 멋진 로봇 장난감을 사놓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자 아이란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했다.
“음... 세현이 어때? 한세현”
“서현이 세현이?”
“응.”
“나쁘진 않은데... 그런데 오빠. 그렇게 굳이 SHH에 맞춰서 지어야 겠어?”
사실 서현이의 이름에는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한서현. HSH. 미국식으로 하면 SHH. 이니셜 네임이 나와 똑같다는 것. 그것은 사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현이와, 곧 태어날 서현이의 동생을 위한 안배였다. SHH그룹을 물려받아도 주인의 이니셜이 같아지도록 말이다.
“기왕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게 좋지 않을까?”
“왜? 아이들한테 회사 경영 시키려고?”
“...아이들이 원한다면.”
돌잡이 때도 말했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뭐든 할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게 해 주고, 예술을 하고 싶으면 예술을 하게 해 주고, 운동을 하고 싶다면 운동을 하도록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재벌 아들이나 딸들은 부모를 따라 경영을 하게 되는 일이 잦다. 외국에서는 아닌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수조원에 달하는 내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주시오.’
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일단은 기본적으로 서현이도, 그리고 뱃속의 둘째도 경영을 할 것이라 가정을 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게 되면, 이니셜을 맞춰 놓는 게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여러모로.
“...오빠 생각이 그러면 그렇게 해. 세현이도 좋은 이름이니까.”
아내는 대체로 내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서현이를 보며 말했다.
“서현아. 동생 이름은 세현이란다. 세현이.”
내가 뭐라고 하든, 서현이는 손을 내밀어 내 코를 잡는다.
“아바~”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나는 빙긋 웃었다. 옛날에 어머니 아버지께서
‘너도 네 자식 가져봐야 부모 마음 이해한다.’
하곤 하셨는데, 나는 요즘 그 마음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서현이, 세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해 줄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전부 희생해서라도 말이다. 나는 서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경영을 하든 뭘 하든 어쨌든 이름 세 글자는 유명해 지도록 만들긴 해야겠지. 그래야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최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서현, 한세현 두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물론 지금도 ‘한상훈의 딸’이나 ‘한상훈의 아들’로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본인들 이름이 뉴스에 나와야, 내가 ‘인물검색’으로 뉴스를 제대로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아이들 미래를 챙겨주기도 좋고 말이다. 나는 딸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생각했다.
‘서현아 뭘 하든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빠가 널 평생 지켜주마.’
그런데 그 때, 딸에게서 묘한 냄새가 난다.
“아이쿠 우리 공주님 싸셨네 싸셨어.”
나는 서현이를 잘 눕혀놓고, 기저귀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때, 아내가 나서며 말했다.
“됐어 내가 할게 오빠. 그나저나 오빠 오늘 출근 안 해?”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8시 35분. 확실히 늦었다. 지금 바쁘게 내려간다 해도, 미래뉴스가 오기 50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이다. 굳이 출근 하지 않아도, 서재에서 보면 되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음... 아... 이 비서에게 업무 보고 받을 게 있었지...’
그 사이, 아내가 내 앞에 있던 서현이를 들고 간다. 아내는 번개같이 기저귀를 벗기고, 새 기저귀를 갈아 끼운다. 나도 나름 해봤는데 역시 이건 아내를 못 따라가겠다. 그걸 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과 더 있고 싶지만, 내게도 할 일이 많았으니까.
*
나는 사장실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랬듯, 12시간 뒤부터, 12년 뒤까지, 다섯 통의 메일이 와 있다.
‘어디보자...’
요새 나는 메일을 보다 주의 깊게 읽어보게 되었다. 읽고 정보를 해석하는 것 외에도, ‘편집’할 거리가 있는지 봐야했으니까.
‘음... 없나. 고칠만한 게?’
현재 내게 커다란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에 까지 손을 닿는 권력이었다. 핵전쟁은 내 노력으로 막아버리긴 했지만, 두 강대국의 긴장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계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새로운 권력이 되고 싶어 하는 중국의 싸움. 이건 정말 이번 시대. 21세기의 문제여서 잠깐 막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윌리엄 터너’ 차기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의 권력에 까지 손을 뻗쳐서 내 영향력을 키울 생각이었다. 한국 대통령처럼 거의 내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영향력에 ‘편집’기능이 더해지면 충분히 대통령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 뉴스를 받아볼 때는 현 미 대통령이랑 윌리엄 터너를 검색하는 걸로...’
이어서 두 번째 목표는 바로 우리나라의 통일이었다. 옛날 조선 말기 역사를 보면 알지만, 나라에 힘이 없으면 아무리 외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서로 미국, 중국에 끼어있고 남북으로 러시아 일본에 끼어있는 우리나라 위치 상, 국제 정치에서 발언권을 가지려면 그에 준하는 강대한 국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반쪽짜리 국가 남한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북한과 교류하여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인구도, 국방력도, 경제력도 성장하여 다른 나라에게 당당하게 맞설 힘이 생길 것이다.
‘검색어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대통령하고 북쪽 수령님 이름이겠지.’
다행이도 두 사람 뉴스는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나는 뉴스를 골라서 우리나라를 통일의 길로 이끌 셈이다. 이건 해봐야 알겠지만 보통 일은 아니어서 대략 10년 정도 걸릴 듯하다. 그 전에 첫 번째 목표. 미국과 중국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선결되어야하고 말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겠지.’
마지막 세 번째 목표는 바로 마지막 등급, P등급 달성이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가진 힘으로도 만족을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돈. 대통령과의 인맥, 그리고 미래의 뉴스를 받는 것에 모자라 조작까지 할 수 있는 힘. 과거 있었던 일을 모두 캐올 수 있는 완벽한 스파이까지.
지금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야 말로 신에 가까운 힘. 하지만, 그래도 다음 등급에 대한 갈망은 있었다. 마지막 등급. 마지막 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가져보고는 싶다. 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다음 등급은 P...였지. 그걸 얻게 된다면 아마도...’
다음 등급을 얻는 방법은 쉽다. 바로 돈. 원래 하던 대로 돈을 벌면 된다. 내가 돈을 버는 만큼,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자산 가치는 커져갈 것이고, 등급 조건에 맞추기만 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돈 버는 데는 완전히 귀신이 되었다.
미래 뉴스를 해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작까지 가능하니까. 다음 목표는 4000조. 지금 미국의 아마존이 2000조 정도 하니까. 그 두 배. 세계에서 제일 큰 회사를 가지란 말과 같았지만, 이제 내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뭘 하든 12년 뒤 까지 미래를 미리 아니까. 돈을 버는 일은 이제, 내게는 보물상자가 묻혀 있는 곳에 가서 그것을 꺼내오면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 이거야 회사 경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될 일. 가끔 잭팟 터질 일 있으면 기사 좀 만져 주면 조금 더 빨라지겠고 말이야.’
이건 사실 앞의 두 일에 비해서 여유를 두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돈이 없어서 뭘 못하는 일은 없어졌으니까. 첫 번째,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더욱 더 가속이 붙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내 영향력 확대는 내 수익률 증가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그리고 북한과의 통일은 아예 우리나라 증시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였다.
통일이 되면 전쟁 위기(내가 있는 한 절대 일어나지 않지만)는 아예 없어져 전통적으로 따라붙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고, 내수 시장은 급격하게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된다. 당장 자회사인 창해식품이나 송해양조만 해도, 만두, 막걸리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니까.
통일이 되면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긴 하겠지만, 외국의 투자자들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뛰어난 기술이 결합된 통일 한국에 돈다발을 들고 찾아올 게 뻔했다. 투자계의 전설 짐 로저스도
‘북한에 투자만 할 수 있다면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
라고 번번하게 공언하곤 했었으니까. 나는 사장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생각했다.
‘그럼 이번 달은 일단 미국 쪽 뉴스를 편집해볼까. 아무래도 시작은 여기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띠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응”
전화기 너머로 박 비서가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서 비서... 아니 서지훈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벌써?”
오늘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약속 시간보다 20분 빨리 왔다. 박 비서는 다소 장난끼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까요?”
“아냐 들어오라 그래.”
곧 지훈이가 들어온다. 평소보다 살짝 홀쭉해진 것이 딱 봐도 과로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뭐 일 때문에 요청하고 싶은 게 있다고?”
“다름이 아니라... 저희 이 빅데이터 기반 앱 말입니다.”
“응. 그거 개발 다 됐다며.”
“네. 그런데 아무래도 데이터가 필요할 것 같은데. 대표님이 조금 도와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아아 그래... 뭐 어느 쪽 데이터가 필요한데?”
“돈 되는 쪽이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저희 앱은 어느 데이터만 있어도 스스로 알고리즘을 생성해 낼 수 있거든요.”
“그래? 음...”
나는 잠시, 12년 뒤 뉴스에서 봤던 기사들을 떠올렸다. 3~4년 내로 미국 중국 할 것 없이 ‘빅데이터 기반 의료산업’은 커져 그 쪽에서 거대 기업들이 탄생하곤 했다. 어쩌면 지훈이의 회사를 그렇게 키울 수도 있을 법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의료산업은 어떻니?”
“좋지요. DNA 쪽이라면 더더욱 좋고요.”
“아아 그래 그럼. 내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암 재단 병원 있거든. 그 쪽이랑 연결시켜 줄게. 그거면 되지?”
내 말에 지훈이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사장님. 그거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그가 좋으면 나도 좋다. 우리 회사는 그의 회사 51%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