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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뒤-192화 (19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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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되어버린 황제(2)

    예전부터 그랬지만, 나는 빌딩 숲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높은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더더욱 좋아한다. 나는 오늘도 빌딩의 최상층에서 팔짱을 낀 채로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 풍경은 평소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까이로는 커다란 공원이 보이고, 멀리로는 강남보다 더 많고, 큰 빌딩의 숲이 보인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원조가 좋긴 좋군.’

    가까이 있는 공원은 센트럴 파크요. 멀리 보이는 것은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이 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뉴욕의 빌딩 숲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내가 서 있는 곳은 얼마 전 퇴임한 미 대통령 트럼프가 세운 5성급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이고 말이다. 나는 잔에 담긴 샴페인을 홀짝거리면서 생각했다.

    ‘여기 근처에 집하나 사놔야겠다. 별장 느낌으로 아영이, 서현이랑 가끔 놀러오게.’

    SHH전자 신제품 컨퍼런스 참석 차 온 뉴욕에 왔지만, 나는 컨퍼런스 내용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용도 결과를 미리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 나오는 신작 홀로그램 폰은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고, SHH전자를 스마트폰 사업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려 줄 것이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서 대충 박수 좀 쳐주다 오면 된다.

    나는 오히려 컨퍼런스 보다 뒤에 있을 미국 기자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내 이름은 한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내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내 이름이 더 멀리 퍼져야, 신문에도 자주 나올 테고, 그래야 내 미국 내 행보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도, 미국의 기자들도 내게 대단히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자본주의의 본진인 이곳에서도 흙수저로 태어나 한국 최대의 갑부이자, 한국 최대의 투자회사 오너가 된 사람의 스토리는 꽤나 관심이 쏠린 듯 했다. 내가 미국 일정을 잡자마자, 미국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나와의 약속을 잡기 위해서 연락을 해왔으니까.

    ‘윈win-윈win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때, 내 뒤로, 키가 큰 거한의 음영이 보인다. 나 홀로 예약한 호텔 방. 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이 들어온 거한.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크로우였으니까. 크로우는 언제나 그랬듯 두터운 문서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잔을 살짝 들며 말했다.

    “의뢰물은 거기 두고, 이리 오세요. 한 잔 하지요. 어떻습니까?”

    크로우는 내 말대로 들고 온 문서는 소파 위에 두고, 대신 샴페인 잔을 들었다.

    “대표님이 권하신다면.”

    나는 호텔 바에서 가져온 샴페인(가격은 보지 않았지만 아마 300만원이 넘을 것이다.)을 들어 크로우의 잔에 채워주었다. 그런 다음 그와 살짝 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크로우.”

    “별 말씀을.”

    우리는 서로 잔을 들이켰다. 톡 쏘는 탄산과, 풍부한 과일향, 그리고 뒤에 살짝 느껴지는 알콜의 향이 환상적이다. 나는 샴페인이 들어 있는 잔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좋군요. 뉴욕의 야경은. 크로우는 작년에 좀 왔었지요? 여기?”

    “아니요. 뉴욕은 처음입니다. 저는 워싱턴만 자주 왔다 갔다 했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작년, 핵전쟁 위기가 있을 때 크로우는 매달 이 미국과, 중국을 번갈아가며 돌아다녔었다. 그런데, 그런 그도 뉴욕은 처음인 듯하다. 나는 마치 센트럴파크가 내 앞마당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가 바로 이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입니다.”

    크로우는 잠시 그 이국적인 눈으로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정말 화려하군요...”

    그는 그러다가,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다행입니다. 이곳이 잿더미가 되지 않아서.”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상의 종말을 미리 알고, 그것을 막았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크로우뿐이다. 그래서 크로우와 대화를 할 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친 것처럼, 시원한 감이 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라는 것은 아내한테도 말 하지 못했었으니까. 나는 살짝 취기가 올라, 그 말을 반복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다행.”

    크로우는 내 빈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정말 큰일을 하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이렇게 내 업적을 치하해 줄 수 있는 것도 역시 크로우뿐이다.

    “뭐 저도 저 살자고 한 일인걸요. 제 아내와 제 딸을 살리기 위해서도요.”

    크로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마스터 크로우께서, 축하한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상사 분이요?”

    “네. 그리고, 신에 비견될 권능을 가진 것도 축하해드린다고.”

    “음...”

    그 마스터 크로우라는 사람은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알게 된 모양이다. 나는 그 미스테리한 인물에 대해 생각하다가, 말했다.

    “고맙다... 라고 전해주세요.”

    크로우 역시 남은 잔을 모두 들이키고는,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그가 가져온 문서 쪽에 다가갔다. 크로우는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그 말에는 ‘핵 전쟁 때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송구하다’라는 말이 깔려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아.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크로우. 전에 가져온 정보들은 핵전쟁을 막는데 쓰이진 않았지만 제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입니다.”

    크로우는 다소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행입니다.”

    “그래요. 다음 달... 아니 15일 뒤에 보도록 하지요.”

    “네 대표님.”

    그 말이 들린 후, 잠시 내 방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은 사라졌다. 나는 크로우가 놓고 간 문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의 권능이 생긴 지금도 크로우는 정말 유용하군.’

    *

    “미스터 한. 미스터 한”

    밀려드는 기자들 마이크에, 나는 기자들을 진정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몇 몇의 기자들에게 질문을 할 기회를 주었다.

    “이번 컨퍼런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나는 일부러 SHH전자에서 나온 차세대 휴대폰으로 자동음성 인식 번역을 써서 대답했다.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즉각 그 음성이 영어로 나온다. 명료하고, 확실하게.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SHH의 차세대 휴대폰은 강력한 홀로그램 기능으로 차세대 휴대폰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매버릭 터너 사장과의 관계는 어떠 신가요?”

    “저는 매버릭 터너 사장을 100% 신뢰합니다. 오늘 다들 보셨겠지만. 그는 때때로 스티브 잡스의 환생처럼 보입니다. 머리카락이 풍성한 스티브 잡스 말이지요.”

    내 말에, 기자들 몇몇이 웃음을 터트린다.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 가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보신 분들이라면 미국 내 SHH의 엄청난 성장을 예감하실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SHH그룹의 대 미국 투자를 늘리고, 또 개인적으로 따로 미국 회사에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따로 투자를 한다고 하니, 기자들 눈이 크게 뜨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서 돈 들어온단 뉴스는 대서특필 감이다.

    “혹시 어느 회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물론 어렵지요.”

    “아니 최소한 분야라도 힌트 좀 주십시오.”

    나는 최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건 앞으로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게 뼈가 있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가 하나 있었다.

    “대표님은 매버릭 터너 사장님의 형 윌리엄 터너 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 미국 정부를 로비 창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그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 사람은. 정치부 기자가 섞였나?’

    조금 말을 잘못하면, 나나 터너 형제에게 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아니요. 뉴욕 주에 투자를 하려다보니, 뉴욕 상원의원과 이야기를 나눈 것뿐입니다.”

    “정말이십니까? 오늘 저녁에도 같이 식사를 하시기로 했던데.”

    ‘그 정보는 또 어디서 샌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를 쳐다보았다. 그 앞에 는 ‘BNC media’라고 쓰여 있다.

    ‘BNC라...’

    나는 그것을 속으로 외우고는, 그에게 말했다.

    “아 네. 저한테도 초청이 와서 그 자리에 끼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 조금 눈치 없이 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기자는 내게 뭐라고 더 묻고 싶어 했지만, 마침 다른 기자가 그 자리를 끼어들었다.

    “대표님. 대표님이 아마존에 팔았던 퓨쳐 싱크는 현재 5조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너무 싼 값에 팔았다는 후회는 없으신가요?”

    나는 얼씨구나 하고 그 질문으로 넘어갔다.

    “없습니다. 당시 판돈을 가지고 저는 대 중국 투자로 수십 배로 불렸으니까요. 아마존도 좋고, 저한테도 좋은 딜이었습니다. 윈, 윈인 셈이지요.”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는 내 뒤를 따라오는 이 비서에게 말했다.

    “이 비서.”

    “네.”

    “BNC미디어. 내가 처음 듣는 걸 보면 규모가 작거나 신생인 것 같은데, 거기 회사 지분관계 파악해와.”

    “네 사장님.”

    오늘 있었던 질문은 내 앞으로의 행보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다.

    ‘먼저 돈으로 눌러보고, 그 마저도 안 되면... 편집 시켜 버리던가...’

    *

    그날 저녁. 나는 BNC미디어 기자가 캐온 대로 매버릭 터너, 그리고 윌리엄 터너와 저녁 식사를 가졌다.

    “그래서 새 대통령 에드워드 피트먼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트럼프보다도 과격한 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상 과장된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 행동은 훨씬 신중한 편이었지요. 하지만 반대로 피트먼 대통령은 평소 언행은 얌전한데, 때때로 과감한 행동을 하는 타입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요...”

    지금은 2025년 3월. 원래대로라면 일 년 뒤에, 핵전쟁이 있었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도 문제였지만, 따져보면 지금 피트먼 대통령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다소 부정적인 표현을 써보았다.

    “제 생각에도 피트먼 대통령은 조금 위험한 면이 있는 것 같더군요. 중국에 관한 문제랄지...”

    윌리엄 터너 역시 나랑 생각이 같은 듯 하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을 압박하는 건 좋지만, 그는 너무 지나쳐요. 군사적 긴장은 완화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여태 세 번째 만나는 것인데, 그는 신중하면서도, 성격도 밝고, 무엇보다 신사적이었다. 전, 현 미국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질이다. 나는 잠시 손을 모으며 말했다.

    “터너 사장님.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이 비서 자네도 마찬가지고.”

    내 말에, 매버릭 터너 사장과 이 비서가 자리를 떠난다. 나는 예의 그 동시통역 앱을 써서 그에게 말했다.

    “터너 의원님. 제 이야기를 잘 듣고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동생도 물리고, 비서도 물리고,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윌리엄 터너 상원의원은 살짝 긴장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을?”

    나는 그에게 본심을 말했다.

    “어쩌면 제 생각에는... 터너 의원님께서 차기 대권을 노려봐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네...에?”

    터너 의원은 다는 아니고 반쯤 놀란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네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어.’

    정도 되는 반응이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문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것은 크로우가 조사를 해온 현 미 대통령의 정치 약점이다. 재선을 불가능하게 만들만한. 터너 의원은 그 문서를 받자마자, 거기 쓰여 있는 내용의 중요성을 한눈에 파악했다.

    “이건...”

    나는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떻습니까? 저랑 같이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터너 의원은 다소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대선은 앞으로 4년이나 남았고...”

    나는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4년 남았으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4년이면, ‘편집’에서 개연성을 만족시킬 시간이 충분히 된다. 나는 그에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터너 의원님 4년 뒤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주세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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