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91화 (191/198)
  • # 191

    신이 되어버린 황제

    “오늘 미국에서 동창들 오는 날이지?”

    “응. 이게 몇 년 만인지.”

    아내는 기대에 한껏 부푼 채로 말했다. 여태 서현이를 낳은 뒤로 제대로 밖에 나가보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미국 대학 동창들을 한국에 초대해서 같이 놀기로 했다. 아내가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고향에서 올라 온 어머니 아버지가 서현이는 봐주고 말이다.

    “그래 잘됐네. 미국 친구들 오면 어디가려고?”

    “한국에는 처음인 친구들 많으니까. 경복궁 주변에 데려가려고. 북촌한옥마을도 가고, 인사동 문화거리도 가고... 밤에는 청계천에 가보고.”

    “그래. 호텔은 어디 잡았어?”

    “청계천 바로 근처에 잡아놨어.”

    “그래. 노는 동안 혹시 뭐 부족한 거 있으면... 박 비서한테 연락해. 해결해줄 거야. 아니 박 비서 아예 운전기사로 붙여 줄까? 보디가드 겸 해서.”

    아내는 질색을 했다.

    “됐어. 친구들 위화감 생기게. 나 재벌한테 시집갔다고 친구들끼리 벌써부터 떠들어댄단 말이야. 그냥 옛날처럼 모여서 맥주 마시고, 수다 떨면서 놀 거야. 대학시절처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창밖을 보니, 구름이 짙어서 하늘이 조금 어둑어둑하다. 지금은 2025년 2월 중순.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때다.

    “그나저나, 오늘 너무 춥지 않으려나?”

    “괜찮대.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눈도 안 오고 날씨 창창하다던데?”

    “음. 그래. 그럼 잘 놀다와. 사라 씨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

    “응.”

    이어서, 나는 고개를 숙여 아내에게 안겨 있는 딸 서현이에게 말했다.

    “서현아 아빠 회사 다녀올게”

    “암마~”

    서현이는 ‘아빠’와 ‘엄마’의 중간정도 되는 발음으로 내게 손짓했다. 나는 서현이에게 키스를 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내와, 서현이에게 손을 흔들며 사장실로 출근했다.

    “박 비서, 이 비서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

    두 비서와 인사를 나누는데, 달콤한 커피 향이 내 코를 찌른다. 나는 이 비서 앞에 놓여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보며 말했다.

    “이 비서.”

    “네?”

    “그거 화이트초코모카인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빌딩에 들어와 있는 카페 커피인데 그 정도는 맞춰야지. 나도 똑같은 것으로 하나 사다 줘.”

    “지금요?”

    “응.”

    이 비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내 말에, 박 비서가 불쑥 일어서며 말한다.

    “그럼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박 비서와 이 비서를 살짝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지? 기사도 정신인가? 잘 보이려고? 둘 사이 뭐가 있나?’

    어쨌든 나는 커피만 마시면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커피면 되시는 겁니까? 샌드위치나 머핀...”

    나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아침은 아내가 차려준 거 충분히 먹고 왔거든. 커피면 돼.”

    “아 네 알겠습니다.

    박 비서는 그대로 커피를 사러 간다. 나는 남아 있는 이 비서에게 말했다.

    “이 비서, 오늘 중요한 일정 같은 거 있나?”

    “네. 오늘 트레이딩 팀 보고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 11시로 잡혀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알겠어.”

    나는 사장실로 들어와 느긋하게 컴퓨터를 켰다. 8시 20분. 아직 미래뉴스가 오기까지는 30여분 남았다. 나는 마우스로 유투브 영상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곧 1층 카페까지 내려갔던 박 비서가 커피를 들고 온다.

    “고마워.”

    박 비서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박 비서와 이 비서가 눈을 맞추는 게 보인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두 비서 끼리 사내연애 하면 문제가 되려나...’

    잘 모르겠다. 문제가 생기면 좀 어떻겠는가. 미연에 방지하면 되지. 8시 50분. 미래 뉴스가 온다. 나는 늘 상 그랬듯 메일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뉴스가 하나 있다.

    12시간 뒤 문화, 생활 카테고리.

    ‘오늘 오후 급작스런 강풍과 눈 휘몰아 쳐. 서울에 기록적 폭설.’

    나는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음? 오늘 날씨... 좋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오늘 오후 경에 서울에 폭설이 내려서 교통이 마비된다는 기사다. 거기에 강풍이 동반 되서 매우 춥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다. 분명 어디 놀러 다니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날씨다.

    ‘설마 이거...’

    나는 포털사이트로 와서 오늘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포털사이트에는 오늘 날씨가 매우 쨍쨍하고, 기온도 풀린다고 쓰여 있다.

    ‘하... 나 이 기상청 놈들... 또 틀렸네?’

    나는 당장 휴대폰을 들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대신 10시 30분 경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아내 전화.’

    그리고는 나머지 미래 뉴스를 다 찾아보았다. 요새 가장 재밌게 보는 것은 아무래도 12년 뒤 뉴스다.

    ‘미국 소형 제약사에서 간암치료제를 발명하다니 여긴...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인가?’

    이것들은 다 투자 거리가 되는 뉴스들이다. 호재가 나오기 전에 회사를 사버릴 수도 있고, SHH전자나 SHH건설이 선점할 수 있는 분야라면 먼저 그쪽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 12년 짜리 미래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다음 단계에 필요한 4000조짜리 투자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뉴스도 많다.

    ‘VR을 통한 MMORPG라 정말 게임판타지소설에서 나올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군. 아바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꾸밀 수 있다라... 나도 나오면 해봐야겠는 걸’

    미래에서는 정말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다 내 덕이다. 핵전쟁을 없애버린 덕 말이다. 작년 12월에 새로운 스킬 ‘편집’을 써서 핵전쟁 기사를 없애버린 후, 2026년 뒤의 뉴스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계속되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각자 이익을 챙기는 선에서 그쳤다. 신냉전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 껴서 미국과, 중국 양측의 러브콜과 견제를 동시에 받았다. 주성원 대통령은 그 와중에서 견제는 피하고, 당근은 잘 받아먹으면서 줄타기를 해나간 듯하다. 12년 뒤 뉴스에 따르면 후임 대통령은 주성원 대통령과 같은 당에서 나왔다.

    ‘안현준이라...’

    4플러스 4년. 8년 재임한 주성원 대통령 후임으로 뽑히는 것은 같은 당의 안현준이다. 지금은 안양시장인데, 후에 경기도지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통령 순.

    ‘...언제 시간 날 때 안양에 투자한다는 빌미로 한 번 만나 봐야겠군.’

    나는 내 일정표에다가,

    ‘다음 달 내로 안현준 안양시장 만나고 올 것.’

    예정을 해놓았다. 만나봐서 내 마음에 들면, 대통령 시켜주고.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울 생각이다. 갈아치우는 법. 쉽다. 크로우를 보내서 뒤를 캘 수도 있지만, 그 전에 개연성에 맞춰서 몰락을 시켜버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매장시켜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편집’스킬이 생겨난 지금 내게는 말이다. 나는 기사를 쭈욱 내려서 맨 아래 있는 ‘편집’스킬을 보며 생각했다.

    ‘이 스킬은 너무 강력해.’

    이것은 정말, 여태까지 나왔던 스킬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스킬이다. 내가 직접 미래를 편집해버리는 것이라. 수동적으로 뭔가를 읽고 그에 대해서 대응을 하는 것과는 아예 다르다. 현실조작. 그야말로 신에 가까운 능력인 것이다. 나는 잠시 그걸 보며 생각했다.

    ‘황제가 되기를 꿈 꿨는데... 이대로면 신이 되어 버리 겠어.’

    *

    이윽고 시간은 지나 10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아내 전화.’

    나는 그걸 보고 잠시 생각했다.

    ‘음... 편집으로 바람 멈추고, 눈 내리지 말게 해줄까. 오늘 많이 기대했을 텐데.’

    하지만 개연성이 허락을 해줄지 모르겠다. 대개 개연성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멀수록 관대해진다. 지금 당장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놓으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명약관화하듯이 지금 즈음 기상청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람과 눈이, 한반도 근처에 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의 하루 휴가 때문에 한 달짜리 스킬을 쓰는 건 조금 아깝다. 사실 이 ‘편집’스킬은 잘만 쓰면 몇 조 짜리 스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날씨 바꾸는 데 쓰는 건 좀 아깝지. 아영이 설득해서 일정을 바꿔줘야겠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응?”

    “오늘 친구들 데리고 북촌 놀러가는 거 취소해야 할 거 같아.”

    “왜에?”

    “오늘 오후에 강풍 불고 폭설 내린대. 그것도 역대급으로.”

    “그래? 아닌데? 오늘 일기예보는 날씨 쾌적해질 거라던데?”

    “일기예보 자주 틀리잖아. 방금 들어온 정보로는 그 예측이 틀렸다네.”

    “그래?”

    “응. 대원일보 쪽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뉴스야. 오늘 눈 때문에 교통도 혼란해질 것 같으니까. 그냥 강남에서 놀아. 내가 여기 더 좋은 호텔로 바꿔줄게. 북촌은 내일 날씨 풀리면 가.”

    “으음...”

    아내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내 말을 따랐다.

    “그래 알았어.”

    아내는 경험적으로, 일기예보보다도 내 말이 더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럼. 오늘은 강남 투어로 바꿔서 여기서 놀아. 그러면 나도 시간 나면 잠깐 얼굴 보일 수도 있잖아.”

    “응 오빠.”

    아영이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이어서 다음 일정을 진행했다.

    “사장님 가시지요.”

    “응 그래.”

    나는 박 비서, 이 비서와 동행한 채로, 트레이딩 팀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내가 들어서자 30여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내게 인사를 한다.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네 다들 잘 지내셨지요?”

    “네!”

    트레이딩 팀은 왠지 기합이 들어가 있다. 아무래도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수억 원의 포상금이 오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요 그럼 거두절미 하고. 성적부터 볼까요.”

    나는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트레이딩 팀 전담 박 이사가 쪼르르 달려와 내게 보고서 한 개를 건넨다. 그것을 보던 나는 트레이딩 팀원들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이번 달은 성적이 영 좋질 않네요?”

    내 말에, 다들 살짝 위축된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실망하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대충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크지 않은 달은 수익이 적게 날 수 밖에 없다.

    “뭐 괜찮아요. 다음 달에 많이 벌면 되니까. 어쨌든 약속했던 인센티브는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몇몇은 기쁜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몇몇은 분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문다. 뭐 좋다.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야, 사람은 열심히 하는 법이니까. 나는 다음 달 의제를 정해주었다.

    “다음 달은 오일 매수로 갑니다. 목표치는...”

    나는 잠시 생각을 하는 척 하다가,

    “84.5달러 정도. 거기를 최고가 정도로 생각하고 매수해보세요.”

    미래 뉴스에서 본 수치를 가지고 그들에게 말했다. 내 지시가 내려지자, 트레이딩 팀원들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 병사들은 다음 달은 아마 꽤나 많은 수입을 벌어올 것이다. 그렇게 오전 일정을 마친 나는 다시 사장실로 돌아왔다.

    컴퓨터에 앉는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내가 12시간 뒤 뉴스에서 본 대로 슬슬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밖에 있으면 좀 춥겠지만, 여기서 보기에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그걸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스스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완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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