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90화 (190/198)

# 190

세계의 구원자

축구경기로 ‘편집’스킬을 시험해본 나는 이제 본 게임으로 넘어 가보기로 했다. 2년 뒤 있을 핵전쟁 말이다. 나는 ‘E 12시간 뒤’뉴스에서 빠져나와 ‘E 12년 뒤’뉴스로 넘어가보았다. 핵전쟁 뉴스를 불러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랭킹 뉴스를 쓰는 것이다.

12년 내로 가장 많이 본 뉴스 1등, 2등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뉴스 이후로 더 이상 뉴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스크롤을 내려서 랭킹뉴스에 갔다. 지난 번 한 번 레벨 업을 시켜 놓은 지라, 이제 1,2,3등을 모두 볼 수 있다. 나는 주저 없이 그것을 클릭했다.

‘1위 - 미국 핵폭탄으로 베이징 타격. 민간인 천만 명 사망 추정’

‘2위 - 중국 핵폭탄 발사. 재만 남은 워싱턴D.C.’

‘3위 – 데프콘 1 발령. 전 국민 전시상태 돌입(속보)’

지난 번 봤던 1위, 2위에 이어서 3위는 우리나라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는 것이었다.

‘적은 아마도 북한, 중국... 그리고 어쩌면... 러시아?’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다음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뉴스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문명이 붕괴한다는 것이었다.

‘제발 막아져야 할 텐데...’

나는 액티브스킬 ‘편집’을 활성화 시켰다. 커서가 가위모양으로 변한다.

‘음... 그런데 뭘 변경한다?’

3위 한국에서 전쟁 났다는 거야 바꿔봐야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중국에 핵이 터지면, 중국 동부해안에 위치한 핵발전 시설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든 안 하든 망하게 된다. 변경을 한 다면 1위나, 2위다.

‘먼저 쏜 쪽을 없애버려야지. 분명 한쪽이 쐈으니까 다른 쪽이 쐈을 거 아냐? 근데 어디가 먼저 쐈을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럼 1위로 가볼까? 조회수가 더 많으니까.’

나는 일단 1위 기사를 찍어보았다. 속보 기사여서 전문이 그리 길지는 않다.

[개연성 100% - 개연성은 50%미만으로 수정할 수 없습니다.]

‘태평양에서 쏘아진 것으로 추정된 핵폭탄, 중국 수도 베이징에 투하. 주석궁을 비롯한 핵심행정기관 전폭, 민간인 사상자 천만 명 추정.’

나는 잠시 그걸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고치지? 아예 다 없애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문장의 맨 뒤에 가서 델리트 키를 눌러 기사를 없애버렸다. 뉴스가 있던 자리에는 뉴스의 내용은 없고, 틀만 남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연성 42% - 현재 기사는 올릴 수 없습니다.]

개연성이 42%가 되었다.

‘...42%라... 당장 없어지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이거로군.’

이걸 보니 핵전쟁이라는 게 아주 우연찮게 일어난 일 만은 아닌 듯하다.

‘42...42...’

나는 속으로 그 숫자를 중얼거렸다. 그런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또 나쁜 숫자는 아닌 것 같다.

‘...8%만 올리면 된다는 말이기도 하잖아? 그럼 어쩐다? 어떻게 개연성 8%를 올리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생각했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 그 개연성은 점차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달 뒤에는 이 기사를 삭제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 편집 스킬을 이 기사를 없애는 것부터 할게 아니라...’

문득 든 생각에 나는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려보았다.

‘국가 설정 : 한국’

그리고 그것을 미국으로 바꾸고, 메일을 닫았다.

*

그날 저녁. 나는 국가가 미국으로 설정된 미래뉴스를 받았다. 인물 검색에 가서 모든 뉴스에 ‘Donald trump’를 적어 넣었다. 당연히 도날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사들이 뜬다. 나는 도널드 트럼트 뉴스들을 보다가

‘찾았다.’

내가 원하는 뉴스를 찾았다. ‘12일 뒤’뉴스.

‘도날드 트럼프. 금융 개방 늦어지는 중국을 재차 압박.’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금융 개방을 한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볼 때, 중국인들은 지난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며, 이것이 더 늦어질 경우 중국에 다시 한 번 금융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며 과격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중국 15억 인민을 무시하는 무례한 발언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어떠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습니다.’

하여간 좋은 이야기가 없다. 나는 ‘편집’으로 그 기사를 클릭한 다음 살짝 만져보았다. 먼저 첫 번째 문장부터.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금융 개방이 조금 늦어지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음 좋아. 젠틀하고, 부드럽게...”

나는 다시 한 번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번에는 두 번째 문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금융위기 사태를 초래한 중국은 금융을 개방함으로서 불공정한 부분을 줄이고, 안정성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좋다. 훨씬 부드럽다. 나는 이에 대한 중국 쪽 반응도 고쳐보았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맞추어 시장 개방 및 공정성 강화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이정도면... 됐나?”

나는 시선을 올려보았다.

‘개연성 57%’

아슬아슬하지만, 세이프다. 나는 고친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생각했다.

‘핵전쟁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는 것은 어려워도 이런 식으로 조금씩 고쳐나가면. 8%는 올릴 수 있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뉴스 날짜만 확인 한 뒤 ‘등록’버튼을 눌렀다. 곧 메시지가 뜬다.

‘편집된 기사가 등록되었습니다. ‘게시’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미래에 적용되게 됩니다. 편집된 기사를 ‘게시’하시겠습니까?’

나는 ‘예’버튼을 눌렀다. 한 번 더 메시지가 뜬다.

‘편집된 기사가 게시 되었습니다. 편집된 기사로 인한 미래 뉴스는 정정보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닫으며 생각했다.

‘분명 이 뉴스는 5일 뒤 뉴스였지. 미국에서 5일 뒤 그리고 오전 10시면 한국시간으론 언제지?’

*

6일 뒤, 저녁. 나는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트럼프, 중국’을 검색해 8시 뉴스 기사가 하나 뜬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기사다.

‘좋아 이거다.’

나는 바로 그걸 클릭해보았다. 앵커의 말로 동영상이 시작된다.

“어제 현지시각 오전 10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강경 일변도로 중국을 압박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외로 한결 유화된 발언을 쏟아내 관심이 쏠렸습니다. 뉴욕에서 하지석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화면은 바뀌어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카메라에 대고 말한다.

“중국의 금융 개방은 다른 나라보다도, 중국에게도 많은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중국은 하루 빨리 시장을 개방해 공정성을 키우고, 지난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것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답지 않게, 엄청나게 예의바른 모습이다. 원래대로였다면

‘너네 금융시장 개방한다더니 왜 약속 안 지켜? 내 말 안 들어? 그럼 금융위기 한 번 더 간다?’

아마 그런 식으로 발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사가, 아예 바뀌어 버렸다. 내 손에 의해서. 나는 6일 전에, 내 손으로 미국 대통령이 할 말을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거기에 중국 쪽 답변도 바뀌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이해하며, 중국 금융시장을 세계의 요구에 맞춰 변화시킬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내가 원한 대로 말이다.

‘이거... 정말 엄청나잖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특파원의 말이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앞으로 미중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게 아닌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특파원 하지석입니다.”

나는 그 특파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확실해... 이건 득점이다.’

이번 일은, 작지만, 커다란 한 발자국이다. 이런 식으로 두 나라 관계를 계속해서 부드럽게 만들어 간다면, 두 나라 사이의 마찰은 줄어들고, 궁극적으로는 전쟁은 멀어질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몇 달 내로, 개연성 8% 올릴 수 있겠어.’

*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벙커 확장공사를 다시 해달라 번복하지 않았다. 미래의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달 미국 대통령과 중국 주석의 연설, 기자회견 뉴스를 취합해서, 거기서 나오는 대사를 내 구미에 맞춰 바꿔버렸다.

‘좋아 여기서... 중국이 조금 더 자존심 숙이고 나아가는 것으로...’

‘중국은 금융을 개방하고, 자국우선주의를 경계하며,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동반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몇 번 기사를 수정하다보니, 감이 잡힌다. 개연성을 맞추는 데도 노련해져서. 100%에 너무 가까우면 내 마음에 맞춰서 더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그러다가 50%가 안 되면 조금 현실적으로 바꾸는 등. 한도가 되는 수준 하에서, 내 구미에 맞춰서 현실을 조작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2024년 12월 4일. 미중 핵전쟁을 1년여 앞둔 날, 아침. 나는 마침내 개연성이 54%까지 올라온 핵전쟁 기사를 ‘삭제’해버리는데 성공했다.

*

핵전쟁 기사를 삭제한 날 밤. 8시 55분. 내 서재. 나는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미래 뉴스를 받았다. 그리고 받자마자, ‘12년 뒤’뉴스를 열었다. 다른 뉴스보다도, 딱, 년도가 보이는 뉴스가 하나 있다.

‘스포츠 - 2028/2029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첼시 우승’

클릭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2029년 뉴스다. 본래 있었을 핵전쟁보다 3년 더 뒤 뉴스. 그것을 본 나는 바로 주먹을 쥔 채로 자리에서 일어 섰다.

“됐어!”

나는 결국에 세상의 종말을 막은 것이다. 나는 환희에 찬 채로 방방 뛰다가, 서재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아영아!”

서재 밖, 거실 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나는 그 쪽을 향해 달려갔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서현이를 딸 안은 채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아영아! 서현아!”

소리치며 아내와, 아내에게 안겨 있는 딸 서현이를 동시에 안았다. 난데없이 포옹을 받은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 갑자기 왜 그래?”

딸 서현이는 놀랐는지 나한테 안기면서도 엄마를 찾았다.

“맘마~”

나는 서현이의 이마에 한 번 길게 키스를 했다. 이제 종말의 위기는 끝났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제국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딸 서현이는 황제의 딸이 되어 행복하게 자라게 될 것이다. 아내는 내게 물었다.

“왜 그래 오빠? 무슨 일인데? 뭐 좋은 일 있어?”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질문에,

‘세계가 멸망할 뻔 했어. 하지만 내가 그걸 막았어.’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우리 가족을 꼬옥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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