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8화 (18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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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PO(2)

    “그럼 서현이 어머님, 아버님 두 분이 서현이 안고 한 번 사진 찍겠습니다.”

    안내자의 말에, 나와 아내는 서현이를 든 채로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를 든 여직원이 다가와 우리를 찍는다. ‘찰칵’ 소리가 들리고, 사회자는 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러면 이어서 다들 고대하시던 서현이의 돌잡이 시간입니다.”

    2024년 5월. 서현이의 첫 돌을 맞이해, 나는 회사 빌딩 한 층을 빌려서 돌 축하잔치를 열었다. 사회자는 OH엔터 소속 유명 개그맨, 내가 전화 한통 넣어놓자 권 사장은 바로 그를 잡아주었다.

    “어머님 아버님 서현이 데리고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우리는 서현이를 데리고 사회자가 이끄는 곳으로 갔다. 예쁘게 치장된 탁자 위에는 미니어처로 된 판사봉, 청진기, 마이크, 축구공, 명주실, 마우스, 연필, 엽전 등등이 놓여 있다.

    “그럼 돌잡이 시작하기 전에... 아버님은 서현이가 뭘 잡으셨으면 좋으시겠어요?”

    나는 놓여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눈길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은 명주실이었다. ‘장수’를 의미하는 명주실 말이다. 하지만 나는 무난한 답변을 택했다.

    “뭘 쥐든 저는 좋습니다. 서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입니다.”

    “아하하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니 서현이는 정말 뭐든 할 수 있겠군요.”

    그건 사실이다. 내 딸 서현이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매사 오냐오냐 키울 생각은 없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르기 까지 대적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금수저였고, 인간성이 결여된 측면이 있었다. 아무리 내 딸이 귀해도 그렇게 키울 수는 없다.

    “어머님은?”

    “저도 아무거나 좋아요. 서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군요. 서현이는 참 운이 좋군요. 너그러운 부모님을 만나서. 그럼 돌잡이 시작하겠습니다.”

    아내는 서현이를 안은 채로 미니어처들 앞에 데리고 갔다. 서현이는 신기한 듯 그것들을 쳐다보다가, 핑크색으로 된 마이크를 붙잡았다.

    “아~ 마이크! 마이크를 잡았군요! 서현이가 예술이나 방송 쪽에 관심이 있나봅니다! 힘쓰는 일은 기계가 하고, 머리 쓰는 일은 컴퓨터가 하는 요즘 시대 예술가가 유망한 직업이지요.”

    사회자가 열심히 떠드는 동안 나는 이 파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가까이로 어머니, 아버지, 동생 그리고 매제. 가족들에서부터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사촌 동생, 첫째 이모와 이모부와 같은 친척들이 쭈욱 앉아 있고, 반대쪽 테이블에는 아내의 친척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 친척 뒤쪽으로는 장 부사장 이사들 몇몇, 그리고 박 비서, 이 비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사람들과, OH엔터 권 사장, 독립해서 열심히 회사를 꾸리고 있는 전 ‘서 비서’ 지훈이, 그리고 옛 고향친구들이 보인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오랫동안 맺어진, 그야말로 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대충 눈으로 사람 수를 셌다.

    ‘대략 50명 정도 되는 것 같군. 내 전용기로 두 번 정도 실어 나르면 되겠어. 거기에 생존에 필요한 의사, 전기기술자, 프로그래머 같은 사람들 몇 명 더 고용해서 가면 되겠지.’

    500억 예산이 책정된 아이슬란드의 지하벙커는 거의 완공이 끝나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최대 100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거주시설과, 거의 30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발전기, 물과 공기청정시스템, 작물재배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벙커생활이 지루하지 않도록, 도서관, 피시방, 보드게임방, 극장, 헬스장, 농구장과 같은 놀이, 운동시설도 구비되어 있었다. 거주자들이 부족함이 없도록 말이다. 둠스데이가 반년 남은 내년 중순에는 2000억을 더 들여서 확장을 할 생각이다.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니까 말이다.

    ‘100명 정도라면 지하에서 살아도 뭐 아주 외롭거나 하지는 않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그럼~ 박수!”

    사회자의 말에 박수소리가 파티장에 울려 퍼진다. 그러는 사이, 아내가 내 귓가에 대고 귓속말을 한다.

    ‘왜 그래 오빠? 표정 좀 펴.’

    쉘터와 종말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표정이 조금 좋지 않았나보다. 나는 살짝 어설프게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데 동참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어진 식사 시간 나는 그 때도 장 부사장과 이사들과 붙어서 일 이야기를 했다. 빅 이벤트,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IPO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차에는 별 문제 없고요?”

    “네 금융감독원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는데, 아무 문제없다고 합니다.”

    “그래요. 수요는?”

    “충분합니다. 다들 역대 최대의 IPO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좋군요.”

    IPO는 규모, 일정 할 것 없이 내 의도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제 다음 달이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코스피에 상장 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다음 등급 레벨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이나마 희망이 생긴다. 나는 멀리서 박 비서, 이 비서와 식사를 하고 있는 전 비서, 지훈이가 있는 테이블에 걸어갔다. 걸어가서, 지훈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때, 서 사장. 일은 할만 해?”

    지훈이는 나를 올려다보니, 씨익 웃으며 말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 만 합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오 그래?”

    “네 자기 회사를 꾸려간다는 게 참 뭐랄까... 힘든 와중에도 보람찬 면이 있거든요. 충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열정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 됐군. 열심히 해봐. 상장해서 나한테 투자금도 돌려주고 말이야.”

    “네 사장님. 안 그래도 내년 중순이나... 말 쯔음에는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내년 말.’

    “아아... 그래.”

    그 때 되면 종말이 몇 달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훈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세상 빛을 몇 달 보지도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에게 내 걱정까지 옮길 필요는 없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네. 끝까지 열심히 해봐”

    지훈이는 내 말에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사장님! 기대에 꼭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씩씩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낫다. 나도 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훈이는 갑자기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박 비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제가 일할 때보다 박 비서 근무환경이 대폭 개선됐던데요?”

    “그래? 뭐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는 이 비서를 앞에 두고도 능청스럽게 말했다.

    “저런 미녀랑 짝을 지어주시고, 저도 있을 때 그렇게 해주시지.”

    그의 말에 이 비서는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고, 박 비서는 그를 한번 곁눈질로 쳐다본다.

    “아니 그냥 능력 위주로 뽑은 거야. 이 비서가 외국어를 엄청 잘한단 말이야.”

    “그것도 그렇습니다. 사장님. 저랑 있을 땐 해외 출장 한 번 안 나가시더니... 최근에는 상해도 갔다 오시고 뉴욕도 갔다 오시고 심지어 그...”

    그가 말 꼬리를 흐리자, 박 비서가 대신 말을 해주었다.

    “아이슬란드.”

    “네 아이슬란드도 자주 왔다갔다 하신다면서요?”

    나는 간단하게 답변했다.

    “응. 우리 회사는 이제 글로벌 회사니까.”

    “참 좋겠습니다. 해외도 같이 나가서... 또 비서들도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그럴 거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참 부럽습니다. 저도 뉴욕도 가보고 싶고, 상해도 가보고 싶었는데. 아이슬란드도 좋고요.”

    “뭐 때가 안 맞은 걸 어떻게 하니. 너도 휴가 쓰고 가던가.”

    “에이 그건 안 되지요. 빨리 회사 굴려서 사장님께 투자금 10배로 돌려드려야 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는 한창 일에 미쳐 있는 게 눈에 보인다. 해외여행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행사도 내 딸 돌잔치니까, 내가 직접 초대장을 보냈으니까 왔을 것이다. 지훈이는 오렌지를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이슬란드는 왜... 가시는 겁니까? 저도 거기가 금융 강국이라곤 들었는데.”

    “아... 투자 때문에.”

    “아이슬란드 회사에요?”

    “아니... 뭐 일종의 부동산 투자지.”

    서 비서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아아 그러시구나. 요새는 부동산 투자도 하십니까?”

    “응 뭐 일종의 별장인데...”

    나는 살짝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데려가 줄 게.”

    지훈이는 내 속도 모르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럼 좋지요. 기대하겠습니다.”

    *

    다음 달, 2024년 6월. 나는 회사 IPO가 이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나는 잠시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폴 오션으로부터

    ‘벙커가 완공되었습니다.’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내 전용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레이캬비크. 그리고 거기서부터 200km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내 벙커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안정된 구조로 건설되어 있었다. 폴 오션은 이 비서를 통해 내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대표님? 만족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만족스럽군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내 칭찬에 폴 오션은 씨익 웃었다. 그는 ‘둠스데이 프레퍼스’의 CEO로서 이 일에 꽤나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방공호를 다 둘러보고 나올 때 즈음 그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정말로 확장 공사를 원하십니까? 지금도 개인 벙커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 최대 규모인데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에게 말했다.

    “네. 그래도 일단 준비는 해주세요.”

    내 말에, 그는 꽤나 놀라워했다.

    “아... 정말... 네... 알겠습니다.”

    이 일을 업으로 삼는 그조차도, 당장 몇 년 후에 핵전쟁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최대한 빨리 새 도안 짜서 대표님에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단 도안이 짜여 지면 그 때부터는 첫 계약 때 명시했던 추가 계약이 진행된 것이 되므로, 그 때부터는 취소하셨을 때, 저희에게 위약금을 주셔야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만약 핵전쟁이 온다면, 벙커 밖의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몇 십조에 달하는 내 자산도. 거기에 돈을 아낄 필요는 없다. 나는 이 때만 해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

    아이슬란드로부터 돌아온 지 이주일 뒤, 나는 예정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코스피 상장절차를 마무리했다. 증권거래소 안에서 거래소 간부들과 함께 길게 이어진 리본을 가위로 끊고, 축포를 받았다. 이날 상장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주당 15만원에서 시작해 바로 상한가에 직행해버렸다. 그것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400조원이 넘는 회사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30%’

    우리 회사 이름 옆에 빨간 색으로 30%라 쓰인 숫자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기연을 얻었을 때부터 여태까지, 남의 회사 주식이 오고가는 것만 봤는데, 우리 회사가 저렇게 상한가를 가 있는 것을 보다니.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세상이 망할지언정... 이 때 이 광경만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증권거래소를 빠져나왔다. 그 날 밤, 여태 수고를 한 장 부사장과, 이사들을 치하하고 상여금을 내리고, 술을 진탕 마신 다음.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에게 다음날 7시에 반드시 깨워달라 이야기는 해놓았다. 내일 8시에 다음 등급 ‘Exxxxx’의 안내서를 받고 스킬을 찍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날 아침. 아내의 생체 알람을 받고 일어난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아직 떨 깬 술을 억지로 깨어가며 출근을 했다. 아내가 타다 준 뜨거운 꿀차를 마시면서 8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윽고 온 안내서를 보고는.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리고 한참을 그걸 바라보다가, 2번 전화기를 들어서 이 비서에게 말했다.

    “이 비서”

    “네 사장님.”

    “폴 오션에게 연락해서. 확장 계약은 없던 것으로... 당장 취소 해 달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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