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IPO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보았다.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간다. 나는 그걸 보다가, 곁에 있는 이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몇 분 남았지?”
“탑승까지 45분 남았습니다.”
“그래... 45분.”
타이트하게 일정을 짰음에도, 45분이 남는다. 나는 그 시간을 되뇌다가,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네 사장님.”
“다음 해 내 첫 일정은 내 전용비행기 사는 걸로 하자. 귀국하자마자 어떻게 사야하는 지... 구매루트 좀 알아와.”
“네 알겠습니다.”
나는 요새 점점 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더더욱 싫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45분 동안, 세계 멸망이 다가오고 있을 테니까.
‘개인비행기를 사면 그 문제는 해결되겠지. 생각해보면 진작 샀어야 하는데...’
내 업무 특성상 사무실에서 클릭 몇 번, 그리고 이사들과의 미팅 몇 번, 하고 끝나다보니 대한민국 최고 부자가 되놓고도 비행기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해외에 자주 드나들게 된 건 요 몇 달 사이일 뿐이다. 다시 한 번,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더 지나간다.
나는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백인, 황인, 흑인,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간다. 이곳은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 어제 메버릭 터너의 형인 상원의원인 윌리엄 터너와 저녁식사를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SHH그룹의 대 미국 투자 증액’을 이유를 삼고 말이다. 윌리엄 터너는 나를 몹시 반가워했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한국으로부터 투자를 얻어냈다. 일자리를 얻어냈다.’
라는 식으로 홍보를 할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정치인들이란 미국이든 한국이든 늘 돈이 고픈 법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미국 시간으로 12월 31일 오후 7시다. 나는 그걸 보다 중얼거렸다.
“한국은 지금 이미 새 해가 밝았겠구나... 2024년이라... 시간 참 금방이다.”
박 비서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동안, 해는 바뀌어 2024년이 되었다. 둠스데이는 2년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뉴스는 여전히 2026년 2월까지 밖에 나오질 않았다. 크로우가 열심히 일을 해주긴 했지만, 그조차도 핵전쟁에 대한 단서는 찾아오지 못했다. 핵전쟁이 일어난 이후라면, 뭔가 물어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사실들 밖에 가져올 수 없었다.
‘크로우가 캐온 기밀을 확 풀어버릴까? 하지만 그러면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 게다가 미국과 중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한국 재벌들 상대할 때는 몰래 정보를 뿌릴 수 있었지만 군사기밀을 풀고 미국과 중국의 특수요원들 눈까지 속일 수 있을지는...’
그러면 어쩌면 나로 인해 정치적 문제까지 불거질 수도 있다. 핵전쟁이 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것도 최후의 수단 중 하나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일단 본 계획대로 간다. 앞으로 2년 동안 남은 돈을 미국, 중국에 투자 하면서 내 영향력을 끌어올려야겠어. 양측 국가 기업 쇼핑을 해서라도 말이야...’
SHH그룹 나름 글로벌 시장에 큰 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업종이 정해져 있다보니 확장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 중국 시장에 침투하려면 직접 투자. 그러니까 돈을 싸들고 가서 현지 회사를 사들이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와 동시에 그것이 이루어져야 겠지.’
‘그것’은 바로 바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기업공개IPO. 즉 한 마디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코스피 시장에 상장을 시키는 것 이었다. 현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미국, 중국 회사를 인수하는 데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금전적인 문제,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래뉴스’의 문제 말이다.
미래뉴스는 룰 상 한국시장에 상장된 회사 지분가치만 인정했다. ‘미래뉴스’는 아무리 해외 회사를 사더라도, 그 가치를 등급을 올리는 데는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돈은 쓰는데, 등급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일시에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상장이었다.
그렇게 되면 해외 주식을 사면 그 가치가 고스란히 코스피 상장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주가에 반영되니까 외국 회사도 인수하고, 동시에 그만큼 등급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장하는 즉시, 등급이 올라갈 것이다. 현재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현금만 40조, 지분가치는 10조가 넘었다.
그러니까 순수한 현금성 자산, 주식 가치만 50조가 넘었다. 거기에 각각 30조가 넘는 SHH전자, SHH건설을 합치면 100조는 금방 넘어가는데다가, 핵심적으로, 매 분기 조 단 위에 가까운 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그것도 순수한 투자로 말이다.
우리회사는 상장하는 즉시, 등급 업그레이드에 400조원을 넘길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Exxxxx’등급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후 인수하는 외국 회사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회사들이 되고 말이다.
*
한국에 돌아온 직후, 장 부사장과, 이사진들을 소집했다. 나는 상석에 앉고, 장부사장을 옆에 앉혀 놓은 채로 이사진들에게 말했다.
“오늘 안건은 모두들 들어서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앞에 놓여있는 문서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코스피 상장 건에 관한 논의.’
라는 제목의 문서가 놓여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대한민국 최대 부자가 되었다는 게 세상에 밝혀질 때부터 언론에서 나오곤 했었다.
‘국내 최대 부자 한상훈 대표. 기업공개는 언제 즘?’
‘우리도 투자하게 해 달라. 한상훈 대표에게 연일 이어지는 러브콜.’
‘돈 다발 들고 한상훈 대표를 기다리는 투자자들.’
나 혼자만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지분 100%를 독점한 채로, 10배, 20배, 50배, 100배, 400배. 가치를 튀기다 보니 그게 샘이 난 사람들이 투정을 부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비공개로 쭈욱 유지하면서, 내가 산 회사의 주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간접투자를 받길 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기관, 개인투자자들도 그것들은 곁가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다가 처분한 카이게임즈나, 현영제약들은 내가 판 뒤로 주가가 비실비실 했으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승승장구를 계속해 돈이 쏟아지는 곳은 바로 이곳,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내가 예전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핵심 이익은 내가 독점하는 것 말이다.
“이제, 저는 우리 회사를 상장 시켜서, 국내 최대의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견 있으신 분?”
내 말에, 한 이사가 손을 들며 말한다.
“대표님. 그런데... 왜 갑자기 IPO를 하시려는 겁니까? 저희 회사 지금 현재로도 현금도 충분하고, 이익도 나고 있는데요.”
아주 좋은 질문이다. 사실 나도 IPO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우리 회사 이익을 홀로 독점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2년 내로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것이 꼭 필요했다. 아마 미래의 종말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번 IPO는 아예 기획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소 억지 이유를 가져다 댔다.
“앞으로 계획한 투자를 위해서 자금조달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IPO를 원하는 여론도 있고요...”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완전 거짓말이었으니까. 첫 번째 이유가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이유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여론을 만드는 사람이지, 여론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말하니,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다들
‘대표님 의사가 그러시다면...’
쪽으로 가닥을 굳힌 듯하다. 물론 개중에 한두 명 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도 결국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는 다 큰 뜻이 있다.’
라는 식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그들도 장 부사장과 마찬가지로, 내 승승장구를 수년 간 지켜봐왔으니까. 이상한 것으로 따지자면, 지지난 해 중국 금융위기 때, 선제적으로 매도를 했던 것이 훨씬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사 중 하나가 묻는다.
“그러면, 얼마 정도를 공개하시려고 합니까?”
“그리 크게 하지는 않고, 현재 지분의 10%만 하려고 합니다. 90%는 제가 계속해서 쥐고 가고요.”
애초에 이 IPO는 ‘미래뉴스’의 룰을 뚫어버리는 데 필요한 절차였다. 누군가 내 회사 지분을 사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꼴은 보지 못한다. 딱 10%만 시장에 풀 것이다. 우리 회사 주식을 사게 된 사람은 누구나 엄청난 행운을 쥐게 될 것이다.
옛날에 미국 네브레스카 오마하에 사는 한 치과의사가 이웃집 사람이 투자회사를 꾸린다고 해서 그에게 몇백만원 투자했다가 수십억을 번 사례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이웃집 사람이 바로 워렌 버핏이었고, 그 투자회사는 그의 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였으니까.
그 치과의사 처럼 대한민국 누구라도, 우리 회사 주식을 사는 사람은 10배, 100배까지도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2년 뒤에도 우리 회사가 존재한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다른 문제는 없겠지요?”
“네 순조로울 겁니다. 저희 회사 재무야 워낙에 투명하고... 수요예측을 해보면 엄청나게 몰릴게 분명합니다.”
모 이사도 손을 들며 말한다.
“금감원이나 그쪽에서도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공무원들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이번 정권은 묘하게 우리 회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응 나도 알아.’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세금 많이 내니까. 좋아하나 보지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IPO를 성사시키는 것으로 합시다.”
*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 회사는 IPO를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장 부사장은 IPO쪽에서도 오랜 경험이 있어서 일을 순조롭게 이끌어 갔다. 금융감독원은 마치 우리 회사가 IPO를 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는 IPO를 결정한지 반년 만에, 2024년 7월에 코스피에 상장하기로 결정되었다. 언론에서는 반년 남은 IPO를 앞두고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어댔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코스피 입성’
‘코스피 상장하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벌써부터 투자자 몰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시가총액은 400조 쉽게 넘을 것.’
개미투자자들 반응도 뜨거웠다.
‘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상장. 대박이네요 진짜’
‘여태 한상훈 대표 사는 것만 따라 샀던 1인인데요. 너무 좋네요. 전 재산 몰빵합니다.’
‘저도 지금 있는 거 다 정리하고 총알 장전해 놓습니다.’
IPO 흥행은 따 놓은 당상. 이제 나는 딱 반년 지나는 것과 동시에 ‘Exxxxx’등급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내 상장사 인수도 마무리 과정을 거쳐 19개를 맞춰놓았다. 딱 거기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들어와 20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E... 등급이 되면 크로우를 한 달에 두 번씩 보낼 수 있게 되겠지. 그러면 핵전쟁을 막을 가능성이 훨씬 더 올라갈 거야. 거기에... 뭔가 엄청난 능력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지? 아마?’
나는 예전에, 고객센터와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예전에 고객센터는 분명
‘특히 xxxxxx이상의 등급은 매우 강력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니 꼭 달성해보시기를 권유합니다.’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고객센터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긴 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E...등급에서 얻을 수 있는 새 스킬이 핵전쟁 무마에 도움이 될 수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고객센터가 말한 대로, ‘매우 강력한 스킬’이라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리 회사가 상장이 되기를, 그리고 내 미래 뉴스가 등급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선물을 사고 팔며 돈을 벌고, 미국, 중국을 오가면서 투자를 하고, 가끔 아이슬란드에 들러서 쉘터를 점검하는 등 바쁘게 말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종말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갔다. 그리고 딸 서현이의 첫돌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 회사는 마침내 기업공개를 했고, 나는 ‘E...’의 등급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