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5화 (185/198)

# 185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2)

세상 사람들은 대개, 평소에는 여분의 에너지를 남겨놓고 살기 마련이다. 한 사람에게 100%의 힘이 있다면 조금 게으른 사람들은 60~70%의 힘을 쓰고, 평범한 사람은 70~80%의 힘을 쓴다. ‘근면하다’소리 듣는 사람들도 80~90%정도 힘을 쓸 뿐이지 100% 전력을 다해서 매일 매일을 살진 않는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치열하게 사는 것은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근원적 생명력을 까먹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여분의 에너지를 남겨 두고 산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소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그 여분의 에너지를 폭발시켜 최고의 효율을 내곤 한다.

단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 때 열심히 해야, 장기적으로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계의 종말이 다가옴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왜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계획과 촉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내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있었다. 미래 뉴스를 기반으로 세워진 ‘완벽한 계획’, 그리고 3년 뒤 세계 종말이라는 ‘촉박한 시간’ 말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왔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와 사장실로 오니, 박 비서가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리고 동시에, 뒤편에서 피부가 하얗고 안경을 쓴, 귀여운 느낌의 20대 여자애가 따라 고개를 숙이며, 그 대사를 똑같이 말했다.

“오... 오셨습니까? 사장님?”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이다. 나는 두 사람에게 살짝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아아 그래요. 오늘도 열심히 해봅시다. 박 비서, 이 비서.”

내 말에,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사장님.” “네 사장님.”

박 비서 옆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이지선 비서, 얼마 전 공채를 통해서 내 2비서로 낙점된 사람이었다. 특장점은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 여러 곳에 거주한 덕분에, 우리나라 말을 비롯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를 전부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디가드로서는 완벽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1개 국어 밖에 할 줄 모르는 박 비서의 약점을 채워주기 위해서 채용되었다.

“그럼 일단 박 비서. 장 부사장님에게 연락해서 광고 안 받아오고. 이 비서는 터너 사장님에게 연락해서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사안 어떻게 됐는지 답장 받아오세요.”

두 사람은 내 지시에 다시 한 번 더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사장님.”

동시에 대답을 한 뒤, 서로의 전화기를 잡았다. 나는 그걸 보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연락이 먼저 온 것은 장부사장 쪽이다.

“사장님. 메일로 보냈습니다. 한 번 봐보시지요.”

“네에”

나는 회사 메일을 통해서 장 부사장이 보낸 메일을 받았다. 거기에는

‘SHH그룹 광고안 1’

이라는 첨부파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다운 받아 보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앞으로 걸어 나오며 손을 내미는 사람은 OH엔터테인먼트의 간판스타, 김준형이다. 한한령이 풀리면서 중화권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명실상부 최고의 탑스타 중 한 명. 그 때,

‘세계 최고의 서비스로’

오현주가 걸어 나오며 말한다. 최근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서구권에도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녀다. 중화권과 서구권 글로벌 스타인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주어진 대사를 말한다. ‘고객과의 신뢰’나 ‘상생하는 기업’과 같은 다소 진부하지만, 정석적인 대사들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는 김준형과 오현주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업 SHH그룹’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나쁘지 않군. 다소 재미 없고 평범하다 싶긴 하지만... 수연 그룹이 그렇게 몰락한 상황에서 조금 모범생 이미지로 가는 게 좋겠지.’

나는 장 부사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좋군요. 바로 광고 집행하도록 하세요.’

이 광고는 수일 동안 공중파건 케이블TV건 유투브건 간에 엄청나게 쏟아질 것이다. 내 SHH그룹은 3년 내로 국내에서 가장 큰 회사. 새로운 재벌이 될 예정이니까. 국민들과 첫 인사를 한다 치고 제대로 밀어 붙일 참이다. SHH라는 새로운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키기 위해서. 장 부 사장과의 건이 지나자 이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터너 사장님 말씀으로는 언제고 될 거라고. 미국에 오시기 일이주일 전에만 말씀해주시면 된다고 하네요.”

“아아 그래. 알겠어요.”

새로 수연전자 사장으로 부임한 매버릭 터너 사장에게 부탁했던 것은 바로, 그 형인 윌리암 터너 상원의원과의 저녁식사였다. 미국 정치부에 손을 대는 첫 발걸음.

‘좋아. 상원의원이 형이라니. 하여간 잘 됐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 비서가 말했다.

“아 저 사장님 저... 말 놓으셔요. 저보다 연상인 박 비서님한테는 말 놓으시면서 저한테 말 높이시면 조금 이상하잖아요.”

나는 잠시 그녀의 말을 듣다가, 답했다.

“아... 그래요.”

나는 그 말을 했다가, 바로 정정해 말했다.

“아니, 그래. 그럼 앞으로 말 놓을게.”

“네 사장님. 그러세요. 그게 저도 편해요.”

이 비서는 귀엽고,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소 딱딱한 박 비서와 대조되어서, 조합이 좋다는 느낌이 든다.

‘상대를 조금 부드럽게 대할 때는 이 비서를 쓰는 게 좋겠군. 다소 까칠하게 대할 때는 박 비서를 쓰고 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참. 뷰박스 김민철 사장님한테, 중국 쪽 보고서 언제 준비 되냐고. 한 번 물어봐 줄래?”

“네 사장님.”

중국 정치 쪽은 이미 20년 전부터 중국소비시장에 진출해 있던 SHH건설의 자회사들을 통해 접촉하기로 했다. 애초에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밀착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확장을 한다는 것은 중국 정치인들과 친해진다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말이었으니까.

어찌되었든 그래서 전자 쪽은 미국, 건설 쪽은 중국으로, 나는 양 쪽에 정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과 친해진다고 해서, 내가 ‘전쟁을 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개인 단위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팍스 아메리카나 제국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팍스 시니카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싸움은 역사적인 흐름이었다. 단지 나는 그 갈등이 심화되어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만 막으려 할 뿐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로 한정을 시켜 봐도 아무리 내가 주성원 대통령 목줄을 붙잡고 있는다 한들, 주성원 대통령더러 ‘수도방위군을 재편성 하는게 좋겠다’든지 ‘전투기를 더 사는 게 좋겠다’든지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편입되는 게 좋겠다든지, 명령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국방이라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과 친해져 놓는다면, 크로우를 통해서 뭔가 전쟁을 막을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단 것이 내 생각이었다. 크로우의 능력만큼은 두 강대국을 상대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만큼 최고였으니까 말이다.

*

그렇게 SHH그룹을 해외진출, 글로벌 정치계의 인맥 허브로 만들어가면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현금을 창출하는데 주력했다. 투자 회사 답게 말이다. 얼마 전 내가 장 부사장을 시켜서 만든 내 직속 ‘선물 트레이딩 팀’은 그 현금 창출의 기수가 되었다.

‘오일 매수, 달러 매도’

내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는 트레이딩 팀은 첫 번째 달부터 엄청난 성과를 냈다.

“김태곤 씨 이번 달 수익률 1등이로군요. 성적에 따라 3억 8천7백만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성과금은 1%. 그러니까 그가 한 달에 벌어들인 돈은 387억 원이었다. 아무리 미래뉴스에 기반한 가이드 라인이 있다고 해도, 엄청난 성과임은 분명하다. 다른 9명의 트레이더들도 많든 적든 이익을 냈다. 손해를 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총 벌어들인 돈은 2000억 원에 육박했다. 한 달에 2000억. 중소기업 하나가 생겨나는 수준의 수익이다. 다른 회사가 봤다면

‘저긴 어떻게 저렇게 하지? 뭔가 편법을 쓰는 거 아니야?’

싶은 수준의, 엄청난 수익률. 하지만 나는 부러움 반, 질투 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지금 당장 누구 시선을 의식해가면서 움직이기에는 사안이 촉박하다 느껴졌으니까. 번 돈은 대체로 나는 새 회사들을 사는데 주력했다. ‘3년 뒤’밖에 보여주지 않는 ‘12년 뒤 뉴스’를 토대로 대체로 1~2년 뒤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들 위주로 사들였다.

“정 이사님. 고려신약. 예산 2조 잡겠습니다. 가서 물어오세요.”

“강 이사님. 이스트에이전트. 4천억 정도면 인수할 수 있겠지요? 가서 이야기 해보세요.”

그런 식으로 말이다. 대개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많은 일은 ‘더 많은 돈’으로 해결 되는 법이니까. 앞으로 3년 내로 무슨 일이 벌어지건, 크로우가 무슨 사건을 물어오건 간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준비를 해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될 수 있으면 그 다음 등급인 XXX의 조건. 그러니까 ‘스무 개, 시가총액 400조.’를 최대한 빨리 달성해보기로 했다. XXX에서 새로운 기술이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레벨 업을 하면 크로우를 한 달에 두 번 조사를 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크로우는 지금 매달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일을 해주고 있었다. 그 횟수가 두 배로 늘어나면,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기회도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

그렇게 여느 때보다도 바쁘게 살아가던 중. 2023년 5월. 아내는 딸 서현이를 무사히 출산했다.

“축하드려요 대표님.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나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루에 수조원의 돈을 벌어들인 날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기쁘고 감격스러운 날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딸이 태어난 지 하루만에 바로 딸 바보가 되어버렸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40조가 넘는 내 전 재산을 딸아이에게 쓴다고 하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만 같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나는 그렇게 열심이던 회사 일을 잠시 잊어버릴 만큼, 딸 서현이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내가 딸을 사랑하는 만큼, 딸의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생겨나곤 했으니까.

그것은 누구나 다 그렇다. 누구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감정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첫째는 순수한 사랑, 그리고 둘째는 그 사랑이 없어질까 봐 불안해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용감하게, 그 불안에 맞서기로 했다.

‘그래, 나는 해낼 수 있어.’

나는 딸을 안은 채로 다짐했다. 반드시, 내 딸에게 밝고 희망찬 미래를 선사해 주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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