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4화 (184/198)
  • # 184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

    미래 뉴스의 설정을 미국으로 바꾼 뒤로, 나는 한 달 정도 더 미국의 미래 뉴스를 받아보았다. 한국의 미래뉴스만 받다가, 미국의 미래뉴스를 받으니, ‘12달 뒤’ 뉴스. 그러니까 1년 뒤 뉴스라고 하더라도 놀랍고 신선한 뉴스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 뉴스 중에서는 2026년 이후로도 뉴스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딱 하나긴 했지만. 그리고, 꽤나 괴상한 뉴스긴 했지만 말이다.

    ‘정치 - 듀크 장군님의 마흔 둘 생일잔치가 열리다.’

    그것은 정말 이상한 뉴스였다. 대개 미국의 정치 뉴스라는 건

    ‘상원의원 클로디아 모리츠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규탄하며~’

    라는 식이거나

    ‘하워드 국방장관은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상황이~’

    라는 식인데, 갑자기 장군의 생일잔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다.

    ‘뭐야 이건? 대체? 장군의 생일이 왜 뉴스가 뜨지?’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듀크 장군님이 2030년 7월 13일을 맞이해 마흔 둘 생신을 맞이하셨다. 2026년 대재앙 이후, 뛰어난 지도력으로 우리 군을 남부의 정상에 세우신 듀크 장군님은...’

    기사를 대충 읽어보니 듀크 장군이란 자가 미국 남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왕 행세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야말로 디스토피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진짜로 핵전쟁이 일어나서 정부가 붕괴했을 때 기계화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이라면 왕 노릇을 할만하다. 굳이 쿠데타를 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듀크 장군님 군대는 핵무기를 피해 가셨나보군...’

    그나마 정상국가였던 미국이 이렇게 됐으니,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도 핵무기에 서울, 평양이 날아가면 지방에 있던 군대가 광역시 한두 개를 장악해 군부정권을 수립할 지도 모를 일이다. 투표로 대통령 뽑고, 그런 것은 평화로울 때 이야기. 전시상황에서는 총구가 곧 권력이 된다.

    ‘아니 그래도 장군님 생일이 정치 뉴스라니... 이거 뭐 옛날에 반목하던 북한이랑 다를 게 없군.’

    어쨌든 그거야 그렇다 치고, 미국 뉴스에서 유용한 점도 많았다. 특히 인물검색이 많이 유효했다. 미국 인물검색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람은 단연 두 사람,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연방준비위원회 FRB 의장 제롬 파월이었다. 이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슈퍼파워 인물들로. 이들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도날드 트럼프 이란 제제 강화. 유가 상승 불 보듯 뻔해’

    ‘제롬 파월 FRB의장. 비둘기적 발언. 금융위기 완화 위해 달러 더 풀 것 시사.’

    그런 뉴스들이 튀어나왔다. 이들이 뭐라고 하는 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국제유가가 올라가고, 달러 인덱스가 떨어지는 등 전 세계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내게는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이들 말과 실제로 시장이 동조화 되는 것을 깨닫고, 장 부사장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아 예. 부사장님. 다름 아니고, 제 직속 팀을 하나 꾸렸으면 해서요.”

    “팀이요?”

    “네. 국제 선물 트레이딩 팀 말입니다. 손 빠르고, 눈 빠르고, 될 수 있으면 눈치도 빠른 녀석들로 해서요. 열 명 정도?”

    물론 예전에도 가끔 선물 트레이딩을 하긴 했었다. 운 좋게 ‘경제’란에서 베팅할만한 뉴스가 걸릴 때 말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이름을 검색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적극적으로 트레이딩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내가 평소 한국 뉴스를 받아가며 하던 것(코스피 코스닥의 호재를 미리 알고 사고 팔아서 월 400~500억의 남기던 것)보다도 훨씬 큰 수입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선물시장이나, 달러 외환시장에 비하면 코스피, 코스닥은 완전히 구멍가게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아... 예 그러면 제가 일단 지원자 위주로 스무 명 정도 명단 추려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래주세요.”

    장 부사장은 3일 뒤 즈음, 스무 명의 프로필을 가져왔다.

    “사장님 직속 팀이라고 하니 다들 하고 싶어서 안달이더군요.”

    “아아 그래요.”

    우리 회사, 아니 회사를 넘어 투자업계 전반에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한상훈 사장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수억 원대 연봉은 기본이다.’라는 식으로. 대개 투자업계에서 돈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뜬소문이 많았지만 이 소문은 사실이었다. 장 부사장이나 몇몇 이사, 그리고 내 곁을 지킨 비서들은 하나 같이 수십 억대 부자가 되었으니까. 내 직속 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고액 연봉, 고속 승진을 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딱 스무 명이군요. 봐서 마음에 드는 녀석들 위주로 열 명만 뽑아가겠습니다.”

    “네 그러시지요. 사장님.”

    나는 면접을 통해 내 직속 선물 트레이더 팀을 만들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하루 종일, 24시간, 선물을 트레이딩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각각 천억 원씩 들어 있는 계좌를 주고, 미국에서 나온 뉴스에 기반을 두어 전략을 짜주었다.

    “내년 2월까지 달러는 하방을 보고, 유가는 상방을 봅니다. 반드시 달러는 매도 및 청산만, 유가는 매수 및 청산만 하세요. 매달 말일에 수익을 정산해서 1%는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단 두 달 연속으로 손실을 내는 사람은 그 즉시 잘릴 겁니다. 그럼 달려보세요.”

    나는 그렇게 사냥개를 풀 듯 열 명의 트레이더들을 풀어놓았다. 내 사냥개들은 1%의 성과금을 보고 미친 듯이 트레이딩을 해댔다. 시드 머니가 천억이었기 때문에 잘만하면 한두 달 만에 수 천 만원에서 수 억 원까지도 가져갈 수 있었다. 실제로 일주일만에 백억을 버는 팀원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이 수익만 지켜도 월 말에 1억을 타가는 셈이었다. 그를 보고 주변 팀원들이 자극을 받고 불타오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러나저러나,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평소 코스피, 코스닥에서 개인들 눈먼 돈 벌어가는 것보다도 이편이 훨씬 더 수익도 크고 마음도 편했으니까 말이다.

    내 가이드라인만 따른다면, 이 팀은 한 달에 최소 천억 원에서 많게는 5천억 원까지도 수입을 낼 수 있을 듯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예전에 포브스와 했던 인터뷰를 떠올렸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더 많은 돈보다 더 많은 성공을 원할 뿐입니다.’

    살짝 기름기 낀, 아름다운 대답이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내게는 확실히,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미국, 그리고 중국의 정치권에 영향력을 높이려면 천문학적인 수준의 로비가 뒤따라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대충 로드맵을 정해놓았다.

    ‘앞으로 파국까지 3년... 1년은 돈을 왕창 벌고, 2년차부터 로비를 시작해서, 3년차 때는 미국과 중국의 정치인 중에 내 돈 안 먹은 놈이 없게 만든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

    2022년 12월. 겨울. 아영이는 산전 진단을 받았다. 나는 배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로 뱃속을 보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일시불 10억을 받고 아영이의 주치의가 된 여의사는 우리에게 말했다.

    “요새는 유전자 기술이 발달해서 산모의 피만 가지고도, 아이의 유전 형질을 파악할 수 있어요.”

    배에 초음파를 문질러 보던 것은 2010년대 까지만 하던 것이었고, 2020년대 들어서는 체했을 대 손 따듯이 피 한 방울만 체취해서 거의 모든 질환에 대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미래뉴스에서 그런 뉴스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진GC 상한가. 태아진단용 유전자 키트 특허 받아’

    한 2년 전쯤 말이다. 과거의 미래가, 이제 현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음... 어디보자.”

    검사 결과를 보던 주치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건강하네요. 유전자 변형이나 결손 같은 것도 없고, 크기나 몸무게도 적당하고, 잘 크고 있네요.”

    우리 부부는 입을 모아 말했다.

    “다행이네요.” “다행이군요.”

    그러자 그녀는 우릴 보더니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저... 아이 유아복 같은 것은 사 놓으셨나요?”

    ‘아니 아이 나오려면 아직 몇 개월 남았는데 벌써 사놔야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요. 아직.”

    그러자, 그녀는 스쳐지나가듯 말했다.

    “그래요. 유아복은 분홍색으로 사시는 게 좋겠어요. 요새 분홍색이 예쁜 게 많이 나오니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왜 유아복 이야기를 꺼냈는지 깨달았다.

    ‘딸이구나.’

    “아아 알겠습니다.”

    몇 달 후면, 내 딸이 나온다. 건강하고 예쁜 딸이. 하지만 그녀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세계 평화 말이다. 미래뉴스를 엿보았을 때, 미중 핵전쟁은 계획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닌 듯 했다. 물론 둘 사이에

    ‘미국과 중국과의 마찰 심화’

    ‘중국 대만에게 무기 팔지 말 것 경고.’

    라는 식으로 전쟁의 징후는 보이긴 했지만

    ‘~ 때문에 ~ 전쟁을 결심했다.’

    거나

    ‘~ 구축함이 먼저 발포했다.’

    와 같은 구체적인 뉴스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오히려 둠스데이 일주일 전에도

    ‘미국 중국에게 화해의 제스처’

    ‘미중 정상. G20회의에서 만난다.’

    그런 뉴스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계획된 전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전 세계를 황폐화 시키는 그런 결말은 둘 다 원치 않았을 것이다. 원치 않았을 텐데, 한 쪽에서 어쩌다가, 핵무기가 하나 나가고, 다른 한쪽은 자동으로 그것으로 반격하고, 하다가 세계의 종말을 가져온 듯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쪽을 파보면, 굳이 내 돈을 대지 않더라도 미래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돈을 벌고, 회사를 확장하는 동시에, 나는 내 나름대로 첩보전을 시작했다. 내게는 누구보다 유능한 첩보요원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나는 우리 집 옥상에서 크로우와 조우했다. 나는 평소보다 살짝 무거운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크로우 앞으로 조금, 바빠질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명령만 하십시오. 대표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과, 중국 주석부터 해서 미국군과, 중국군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프로필이었다. 인터넷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와 주세요. 특히 정치적 약점이나, 핵무기와 관련된 정보를 위주로요. 조사 결과를 보고, 제가 다시 의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대표님.”

    나는 평소처럼 허공으로 사라지려는 그를 두고, 한 마디를 더 했다.

    “이번 임무는 특히 유의해주세요. 크로우. 어쩌면...”

    내 말에, 크로우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잠깐 말을 바꿔 그에게 물었다.

    “크로우,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다고 했지요?”

    “물론입니다. 저는 이 세계에서 대표님 외에 다른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럼 됐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요. 크로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행성의 모든 문명이 파괴될지도 몰라요. 3년 내에.”

    “...그렇군요.”

    크로우는 예상보다 덤덤하게 내 말을 받았다. 마치 이런 일을, 세계의 파멸을 한두 번 겪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나는 그를 보다가 더 뭐라 묻는 대신 부탁을 했다.

    “이번 일은 그것을 막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각별히 신경 써서 잘해주세요.

    크로우는 잠시 내 말을 듣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저 크로우, 대표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크로우는 자리를 떠났다. 앞으로 3년, 나는 양지에서, 그리고 음지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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