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2화 (182/198)
  • # 182

    불길한 환상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내가 본 것은 분명하다. 4년 뒤, 정확하게는 2026년 2월 16일.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핵미사일을 쏜다. 누가 먼저 쐈는지, 그런 것은 전혀 나와 있지 않지만, 두 나라가 양측에 핵미사일을 쐈고, 그것으로 각국의 수도가 날아가고, 수천만 명의 인명피해가 났다는 것은 팩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뉴스가 끊긴다는 것도.

    ‘...워싱턴과 베이징... 둘 다 핵심 정치 지도부가 있는 곳... 하지만 거긴 시작이겠지.’

    핵무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쓰는 순간 인류 문명의 절멸을 각오하고 쓰는 것. 때문에 한방만 쐈을 리는 없다. 워싱턴과 베이징은 시작일 뿐. 뉴욕과, 상하이, LA와 홍콩 등, 주요 도시들에게 수십, 수백 발을 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거기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동맹이고, 북한은 중국의 동맹이다. 2018년도 이후로 민족끼리 화합과 교류의 장이 이어졌지만,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양측 다 참전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한다면, 한반도 역시 불바다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이상 뉴스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까지 갔겠지.’

    어쩌면 우리나라 서울, 부산, 인천과 같은 대도시나 북한의 평양, 함흥, 청진과 같은 곳에도 핵폭탄이 쏘아졌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다니... 아니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은 2018년 이후로 지속되어왔다. 무역전쟁으로 시작한 그 둘은, 이어서 환율전쟁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작년. 중국의 경제위기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중국 내 시장 개방, 무역불균형 해소, 중국 정부의 시장개입 저지 등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몇 가지 가져갔지만, 그것은 자부심 강한 중국 국민들에게 강한 반감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미국-중국의 사이는 20세기 미국-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냉전 구도에 들어서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도 남중국해에서 또 미국군함이랑 중국군함이랑 스쳐갔다고 했지?’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상황 발생은 2018년 이후로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게 될 수준이 되었는데, 그래도 매번 정면충돌만큼은 번번이,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그런데... 2026년의 어느 날에는 더 이상 그러지 못했나보군.’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반복되는 역사의 축인 것 같기도 하다.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제국과 그에 반해 새롭게 급성장하는 국가의 탄생, 갈등, 무역전쟁, 경제위기, 그리고 전 세계적 경제위기 뒤에 오는 전쟁. 근현대사를 보면,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지난 전쟁과 이번에 있을 전쟁 다른 것은, 이번에 있을 전쟁은 문명을 절멸시키는 수준의 전쟁이라는 것일 것이다. 일반적인 뉴스도 못나오게 할 정도로 말이다.

    ‘2026년 2월 16일... 그야말로 둠스데이로군... 모든 것이 부셔지고, 모든 사람이 죽는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 위에 열려 있던 창을 모두 닫아버리고, 컴퓨터를 끈 다음. 서재에서 나와 거실로, 거실에서 아내가 있는 침실로 왔다. 아내는 침대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일 다 끝났어?”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아... 응.”

    말하면서,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나를 빤히 보더니, 내게 말했다.

    “뭐야. 이번 일은 정말 어려운가 보네?”

    “응?”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내가 말했다.

    “오빠. 표정이... 조금 묘해서.”

    나는 내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그랬어?”

    “응. 원래 오빠는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얼굴이 밝고, 자신감이 있는 표정을 짓거든. 그런데 오늘은 조금 표정이 어두운 것 같네.”

    아내는 역시 나를 잘 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늘 자신만만할 수는 없지.”

    ‘핵무기가 오가는 세계 3차 대전 앞에서는 말이야.’

    나는 뒷말은 생략한 채로 아내, 아영이의 손을 잡았다. 아내는 나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 오빠. 여태 잘 해 왔는걸. 다음 일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아... 응.”

    아내는 맞잡은 손을 자신의 배 위로 가져가져 말했다.

    “들었니? 아가. 아빠가 너를 위해서 근심 걱정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단다. 너도 세상에 나오면 아빠한테 효도해야해. 알았지?”

    아내의 말에, 나는 겉으로는 살짝 웃었지만. 속으로는 웃을 수 없었다. 임신한 아내. 그리고 곧 나올 아이. 하지만 몇 년 뒤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 내 자식은 세상에서 빛을 본지 2년 만에 세상의 종말을 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절대 편하게 웃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나를 보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 자자 오빠. 일 생각은 내일 하고.”

    “아... 응.”

    우리와 TV와 거실 등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쩌지? 핵전쟁이 나면... 안전한 곳이... 제주도? 아니야. 제주도도 해군기지가 있지. 우리나라는 아예 떠나야해.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한반도는 전체가 다 불바다가 될 거야.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 유럽? 유럽도 어찌될지 몰라. 대부분 미국과 동맹이니, 러시아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그건 됐고. 그것과 상관없이 안전한 곳... 스위스? 뉴질랜드? 아니면 캐나다? 아니야 그냥 대서양 쪽에 무인도를 하나 살까?’

    나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짜보았다. 지금부터 해외 안전한 곳에 투자를 하는 척 내 사유지를 만들고, 개인용 별장을 만든다. 그리고 겉은 어떻게 꾸미든, 속은 지하 한 10층까지 파서 핵전쟁에 대비한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다. 깨끗한 공기, 먹을 것과 물을 수십 년 자급자족 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총과 실탄등도 준비를 해놓는다. 그러면, 어느 상황에서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내 아이는, 지하 방공호에서 햇빛이 뭔지도 모르고 친구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남기는 할 것이다.

    ‘그래... 그러면... 지금. 지금부터 준비하자. 캐나다 북부... 아니면 태평양 무인도... 아니 태평양 보단 대서양이 낫겠군. 일단 거기부터 물색하는 거야. 돈이야 썩어나도록 남으니까.’

    나는 이래저래 생각을 했다. 내일부터는 남몰래, 그쪽 대비를 해갈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내는 새근새근 잠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절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자고 있는 아내를 내버려 둔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실에서 나와, 거실로, 거실에서 집 밖 정원으로 걸어 나왔다.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나의 정원. 11월 달이어서 부는 바람이 꽤나 매서웠지만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그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정원의 끝,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내게 문제가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국내 최고의 부자가 됐고, 대한민국 누구보다 강력한 인맥을 갖췄으며, 미래를 알 수 있는 힘은 만개해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거리 낄 것이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핵무기가 오가는 3차 세계 대전이라니. 미래를 다 알 수 있는데, 그 미래가 사라진다니. 끔찍한 일이다. 나는 잠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보다보면 멀리, 수연전자 빌딩도 보인다. 이제 내 빌딩이 된 것 말이다.

    ‘여기서 하나 하나 씩 늘려가면서, 그야말로 황제의 영토를 가지려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내 자산이 날아가는 것도 슬프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진다는 것 역시 슬프다. 이 거대한 빌딩 숲에 울고 웃으며 사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그 사람들도 모두 죽는다. 수백 년간 쌓아온 이 문명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살짝 이를 깨물었다.

    ‘...어떻게 전쟁을 막아볼 수 없을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디 무인도에 피난처를 지어서, 나와 내 식구들을 연명시킬 수 있지만, 그것도 그 끝이 좋지 만은 않을 것이다. 문명세계가 박살이 나고 나면, 내 돈이며, 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며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하다.

    ‘그래. 그렇게 둘 수는 없어. 도망만 칠 수는 없어.’

    나는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주성원 대통령을 시켜서... 아니. 아니야 우리나라와 미국의 동맹은 주성원 대통령도 깨지 못해. 그걸 강제로 깬다고 했다간 대통령 탄핵감이다. 그럼 어쩌지?’

    현실적으로, 한국의 정치를 건드려서 우리나라가 살아날 수는 없다. 주권국가로서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통일이 된 이후라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스위스처럼.

    ‘우린 중립국이요. 핵전쟁을 하던 뭘 하던 너희 나라끼리 하시오.’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도, 북한도 미국과 중국의 선봉대장처럼 서 있는 형국이다. 두 나라 모두 선택권이 없다. 아직은.

    ‘그럼 미국에 가서 로비를 해볼까? 상원이든 하원이든... 될 수 있으면 대통령을 공략해서라도. 왜 어차피 트럼프는 구설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쪽에 크로우를 보내 보면... 중국... 중국은 어떻지? 중국도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예전에는 정말 딱딱했지만 경제 위기 이후로는 중국 정치권도 조금 유연해졌다는 평가니까.’

    차라리 그 쪽을 파보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길지 모르겠다.

    ‘그러면, 미국, 중국 양 시장에 진출해서, 정계 쪽 인맥을 파본다. 그런 다음 로비를 하던 뭘 하던, 미중 전쟁을 막아보는 거야. 크로우를 써서 여차저차 해보면 그쪽에서도 뭔가가 답이 나오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가 있는 힘은 강대한 힘이다. 미국정부, 중국정부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내가 전력을 다하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문득 아내가 방금 전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괜찮아. 오빠. 여태 잘 해 왔는걸. 다음 일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주먹을 다잡았다.

    ‘그래. 내 아내 아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수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곳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되든 안 되든 해보자. 해보고 차선책은 그 다음에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둠스데이는 3년 뒤다. 그 때까지, 지하벙커도 준비를 하기는 해놓겠지만. 그게 쓰일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해볼 것이다. 전쟁을 막고, 세계 평화를 지킨다. 그게 내 다음 목표다.

    나는 다시 정원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침실로 돌아와 자고 있는 아내 옆으로, 차가워진 몸을 누이고 이불로 몸을 덥혔다. 아내와, 아내 뱃속의 아이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보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자야한다. 아무리 마음이 어지러워도 오늘 잘 자고 일어나야 내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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