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1화 (181/198)

# 181

12년 뒤 미래(3)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계속해서 뉴스를 보던 내 머리 속에, 한 가지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가능성은 낮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 그런 가설 말이다.

“설마...”

나는 기사들을 앞에 둔 채로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띠리리~’

전화기가 울렸다.

“응.”

“사장님. 20분 뒤에, 회의실에서 수연전자 차기 사장 면접이 잡혀 있습니다. 신재철 전 수성전자 CTO님이랑 매버릭 터너 인텔 전 부사장님 두 분 다 일찍 와서 기다리고 계시다고 합니다.”

“아아 그래. 오후에는. 오후에도 누구 한 명 보기로 하지 않았어?”

“네 수연건설 임시 사장님이요. 장 부사장님은 그쪽도 바로바로 인사로 넘어가시길 원하시던데...”

“...그래. 알았어. 일단 나갈게.”

“네 대표님.”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미래뉴스가 올라와 있는 메일함을 보다가, 그걸 닫아버렸다. 지금 당장 수연그룹 인수 직후인지라, 해야 할 일이 너무, 너무, 많았다.

‘...그래 이 가설은... 아직 확실하진 않잖아? 퇴근한 후에... 저녁에 뉴스 한 번 더 받아본 다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혹시... 우연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을 해둔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는 손을 모은 채로 물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신가요?”

“제가 수성전자에 처음 입사한 것은 1992년.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입니다. 저는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고, 그 덕분에 나름의 통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음... 그래? 통찰이라...’

어쩌면 그것보다는 ‘내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할 지도 모른다. 아무리 통찰이 뛰어나다고 해 봐야, 나보다 뛰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를 보고 오니까.

“만약에 한상훈 대표님을 비롯한 인빅투스 이사진들께서 저를 사장으로 뽑아주신다면...”

머리 절반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는 내 앞에서 마치 공약을 외치는 정치인처럼 이야기를 해댔다. 신재철 전 수성전자 CTO.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수성전자에 평사원으로 들어와 별다른 빽 없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수성그룹 내부의 싸움에 휘말려서 수성그룹과 마무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제 경험을 살려서 회사를 슬기롭게 운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내년 영업이익을 지금보다 20%향상 된 수준으로...”

나는 그를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한 푼, 두 푼짜리 회사도 아니고, 무려 30조짜리 회사다.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저와, 저희 이사진이 상의하고, 결정이 나는 대로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가 수연전자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내게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대표님.”

역시 수성그룹에서 길대로 긴 사람이라 그런지, 내가 원하는 답변을 빠르게 말해주는 센스도 갖췄다.

“네... 그럼 결과는 한... 두 달 뒤 즘 통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 두 달이냐면, 차기 사장 후보가 두 명이었기 때문이다. 크로우가 두 사람의 뒤를 캐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두 달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는 내게 꾸벅 고개를 끄덕인 후, 면접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장 부사장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공학 박사 출신이어서 조금 언변은 모자랄 줄 알았는데, 말씀도 곧잘 하시는군요. 카리스마가 있다고 할까요?”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프로필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게다가... 회사 사비로 미국 가서 MBA도 하고 오셨네요.”

“수성 그룹에서 누군가 키워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장. 최소한 부사장? 그 정도 까지는요.”

“근데 그 와중에 밀려났다?”

“네. 회사란... 정글이니까요.”

사실 장 부사장도 예전에 정치싸움에 휘말려서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은 여기서 그 때 받던 연봉보다 10배가 넘는 연봉을 받게 되었고 말이다. 나는 신재철 전 수성전자 CTO의 프로필을 옆으로 옮겨 놓으며 생각했다.

‘음... 사내 정치의 희생양이라... 이 분은 그런 건 아니겠지.’

그 다음 프로필에는 전형적인 백인. 금발벽안의 남자의 사진이 있다.

“다음은... 미국에서 오신 분이네요. 매버릭 터너.”

내 말에, 한 다리 떨어져 앉아 있는 권 이사가 말한다.

“네 인텔 전 부사장으로, 전자 업계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신 분이시지요.”

나도 꽤 여러 번 들어 봤다.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들여보내주세요.”

*

“그럼 가 볼게.”

“네 올라가십시오. 사장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너도.”

박 비서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진 나는

‘후우...’

나는 두 눈덩이 비비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꽤나 피곤한 날이었다. 오전에는 연달아 면접(한 사람당 한 시간 반씩 보았다.)보고, 오후에는 수연건설 임시사장을 불러서 단기 경영방침, 그리고 자회사 개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방금 전까지 인수한 회사들 이름을 SHH로 개편하는 방안까지 이사들과 논의했다. 하루 종일 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 하지만 아마 며칠은 더 이런 강행군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수연전자 30조. 수연건설 30조. 도합 60조 짜리 공룡 회사들을 인수인계 한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영이가 내게 말했다.

“늦었네?”

“응 오랜만에 했어. 야근.”

“피곤하지?”

“응 그렇긴 한데... 할 만 해. 옛날에 회사 다닐 때 하던 야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라서.”

그건 사실이다. 똑같은 야근이라도 그 때 ‘사람을 갈아 넣는 수준’이었던 야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업무 강도와 시간의 길이 자체도 달랐지만, 지금은 내가 오너라서 누구 눈치를 볼 것이 없다는 게 크다.

“흐음 그 때? 옛날에 평사원일 때?”

“응.”

아영이는 내게서 겉옷을 받아주며 말했다.

“그 때 이야기 좀 더 해주면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정말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된 지금도, 그 때 겪었던 고역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는 바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몸은 조금 어때?”

“이틀 푹 쉬었더니 거의 다 낫은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그래도, 내일까지는 쉬어. 어디 딴 데 나가지 말고. 응?”

“알았어. 오빠.”

나는 내 바지를 벗으며 거기 들어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보니 시간이 딱 8시 42분이다.

‘마침 오후 뉴스가 올 타이밍이로군.’

어제는 술에 취해서, 보는 것을 아침으로 미뤘었지만 오늘은 한시도 지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검증해야 할 가설이 있었으니까.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 신경쓰지 말고 쉬어. 나 샤워하고 서재가서 조금 일 좀 더 할테니까.”

“응? 더 할 일이 있어?”

“응. 일이라는 게 원래 끝이 없잖아 대개.”

*

샤워를 마친 후, 침실에서 TV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나는 내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역시 와 있다. 12시간 뒤부터 12년 뒤까지. 5통의 뉴스가. 나는 이번에는 다른 뉴스보다도 먼저 12년 뒤 뉴스를 클릭했다.

‘설마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치 – 재선 유력 주성원 대통령. 변수는 없을까?

경제 – 기지개를 켜는 글로벌 증시. 중국 악몽 끝났나?

사회 – 홀로그램 시대. 교사가 설 곳은 어디인가?

생활/ 문화 – 걸어서 바다 속으로 VR아쿠아리움.

세계 – 멕시코 포포카테페틀 화산 6년 만에 다시 폭발

IT/과학 – 우주여행 비용 올해 내로 5만 달러까지 낮출 수 있어.

스포츠 – 피파 선정 24/25 시즌 베스트 일레븐.

연예 – 2025그래미 어워드. 스타들의 화려한 면면.

그리고, 나온 뉴스들을 쭈욱 둘러본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맞잖아? ’그 조건‘이?’

이번에도 하나 벗어나는 뉴스가 없었다. 나는 맨 위부터 다시 한 번 따져보았다. 먼저 정치.

‘주성원 대통령 재선 이야기... 작년에 당선되었으니. 2025년 뉴스다.’

그 다음은 경제다.

‘중국 악몽 끝났나... 이건 올해 나올 수도 있는 뉴스야. 올해 아니면 내년.’

사회.

‘홀로그램은 내년 즈음 상용화 된다고 했지. 그럼 이 뉴스는 2~3년 뒤 정도 나올 뉴스고.’

생활, 문화.

‘VR아쿠아리움은 지금도 만들 수 있어. 수준 차이일 뿐이지.’

그리고 세계.

‘포포카테페틀 화산이 터진 건 2018년... 6년 만에 다시 폭발했으니 2024년.’

IT, 과학.

‘우주여행 5만 달러? 6천만 원? 요새 2억이면 갔다 오니 이것도 금방이야’

스포츠.

‘24/25 시즌 베스트.’

연예

‘2025 그래미 어워드’

모두 마찬가지다. 어제 그랜드마스터 등급을 달고 오늘 오후까지. 받은 네 통의 ‘12년 뒤’ 뉴스. 모두 단 한 번도 예외가 없다. 분명 ‘12년 뒤’까지의 뉴스인데 지금으로부터 ‘4년 뒤’ 2026년 뒤로는 뉴스가 나오질 않는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대체 뭐지? 오류?’

하지만 절대 오류일 리가 없다. 이 칼과 같은 미래뉴스는 분명 명시한 내용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 나빠서... 그래서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 상황에서 딱 하나 가능성이 있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설마... 2026년 이후로는... 뉴스가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인 건가?’

그것이 내가 오늘 아침부터 생각했던 가설이다. 나는 인물검색 란에 ‘한상훈’을 검색해보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2025년에도 한국 최고 부자.’

역시 내 뉴스도 2025년 이후로는 나오지 않는다. ‘주성원’대통령이나 탤런트 ‘오현주’를 검색해봐도 마찬가지. 다들 2025년까지 뭘 했다는 이야기만 나오지. 2026년 이후로는 뉴스가 나오질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인물검색 그 아래로 있는 액티브 스킬. 랭킹뉴스. 지정된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본 뉴스 1,2등을 보여주는 그 랭킹뉴스 말이다.

‘...12년 중 가장 많이 본 뉴스 1등과 2등...’

어차피 쿨타임은 한 달에 한 번이다. 나는 랭킹뉴스를 누르고 액티브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두 줄의 뉴스가 나왔다. 그것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씨발...”

욕을 내뱉고 말았다. 12년 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1등과 2등은, 바로 이것들이었다.

‘중국 핵폭탄으로 워싱턴 타격. 미국의 수도, 재만 남아.’

‘미국 핵폭탄으로 베이징 타격. 민간인 천만 명 사망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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