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80화 (18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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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뒤 미래(2)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아내의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다행이야. 단순 감기라니.”

    “그러게.”

    “그래도 조심해야지. 선생님 말대로 오늘은 어디 나가지 말고 푹 쉬어. 알았지?”

    아내는 두 번 고개를 끄덕인다.

    “응.”

    “혹시 또 아프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

    “응. 아 참 그런데 휴대폰은 왜 꺼놓은 거야? 계속 연락했는데.”

    “아아 오늘 아침에 조금 중요한 일이 있었거든.”

    “으음... 그래. 지금은 켜놨고?”

    나는 내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거기에는 ‘부재중 전화 3통’이 지금도 찍혀 있다.

    “응. 미안 미안.”

    “괜찮아. 그래도 비서님한테 전화하니까. 바로 연결되더라고.”

    “그러게 다행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앞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잘했어. 고마웠어.”

    그는 백미러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박 비서는 운전을 계속했다. 곧 우리를 태운 차는 회사 빌딩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박 비서가 말했다.

    “아 참 사장님. 저... 시간 조금 애매한데. 이제 저희는 다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일정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 그래. 맞아 그거 있었지?”

    “네. 시간 다 되었습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셔도 되긴 하는데 거의 바로 내려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래. 그럼 와이프만 올려 보내고 올게.”

    “네 사장님.”

    아내는 나를 보며 묻는다.

    “뭐야? 무슨 일 또 있어?”

    “응 새로 들여온 회사들 있잖아. 가서 내가 너희 주인이다. 얼굴 보여주고, 충성 맹세 받아야지.”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었다. 새로 인수된 수연건설 휘하 회사 대표들과의 미팅 말이다. 아내가 아픈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잠시 까먹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상승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흐음 다들 긴장들 하겠네.”

    “뭐 그렇지. 아 참. 오늘 거기에 회식도 있는데.”

    “회식?”

    “응. 커다란 일 끝났으니까. 내가 장 부사장님 하고 이사님들한테 한 번 크게 쏘기로 했지...”

    오늘은 나도 오랜만에 거하게 취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픈 아내를 두고 그러기가 미안하다.

    “그냥 밥만 먹고 들어올까? 너 아픈데.”

    “괜찮아. 뭐 가벼운 감기라잖아. 회식도 일인데 뭐. 막 인사불성 될 정도로 진탕 취해서 들어오지만 마”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흐음. 걱정 마. 나는 누구랑 달라서 술은 꽤 강한 편이거든. 취해서 누구한테 업혀서 들어오는 일은...”

    내 말에 아내는 내 팔을 탁 치며 말했다.

    “됐어요.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왜. 다 추억이지. 뭐. 그 일들 아니었으면 우리 이렇게 결혼해서 부부가 되지도 못했을 걸.”

    “흐음. 그런가.”

    아내도 옛날 생각, 그러니까 취해서 나한테 업혀 다니던 때 생각을 했는지. 피식 웃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와서 우리 앞에 선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쨌든, 10시 이전에는 들어올게. 몸 조리 잘하고 있어.”

    “응.”

    아내를 집으로 올려 보낸 뒤, 나는 다시 박 비서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지금 가면 늦지 않은 거지?”

    “네 늦는 게 아니라 조금 빠르게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응 그래. 그럼 조금 빨리 가지 뭐. 가자.”

    “네 사장님.”

    *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빌딩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수연전자 빌딩. 내가 주차장에 들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 부사장이 먼저 나와 나를 맞이한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네. 다들 만나보셨습니까?”

    “네”

    “어떻든 가요?”

    “다들 긴장하고 있지요. 다들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보여야 잘 보일 수 있을까. 그거 고민하는 눈치더군요.”

    “아아 그래요. 탁 씨 일가는?”

    “대부분 정리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 남아 있긴 한데, 장부만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 사실상 다 나갔습니다. 오늘 온 사람들은 일단 대체자로 뽑혔거나, 뽑힐 사람들만 와 있고요.”

    “음 그래요. 잘됐군요.”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가신들, 김 이사, 정 이사, 강 이사 등등이 서 있다. 그들은 나를 보고 허리 숙여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들은 나를 위해서 엘리베이터도 잡아놨다.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래요. 가시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로 올라가는 와중,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참. 오늘 아침에 이 회사 이름 하나 생각해봤는데.”

    “무엇으로?”

    나는 적당히 꾸며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는데, 오늘 자 기사에 제 이름이 떴더라고요. 뭐 천재 투자자네 뭐네 하는 식으로요.”

    “자주 있는 일이시잖습니까?”

    “네. 근데 그래서. 그냥 내 이름으로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여태까지 쌓아온 브랜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상훈, 상훈한. SHH그룹으로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장 부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 말에, 장 부사장은 말한다.

    “조금 단순하지만, 뭐 나쁘지 않군요. 창업자 이름을 딴다라... 한국 기업치고 조금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요...”

    그의 평가는 사실상, ‘그저 그렇다’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나도 동의한다. 그저 그렇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내 이름을 딴 회사가 ‘인물검색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인물검색이 아니었다면 나도 SHH라는 이름은 하지 않았을 거 같긴 하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나머지 세 이사들에게 물었다.

    “이사님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 의견이라면 이견이 있을 수 없지요.”

    “저도 좋습니다. 해외에서도 사장님 명성은 자자하니까요.”

    “사장님 이름을 딴다니 좋은 아이디어십니다.”

    세 사람은 다소 아첨이 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 중에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나? 둘?’

    그렇게 생각을 했다. 상사의 아이디어에 ‘그건 별로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견이 있다 해도 이대로 강행했을 테지만... 뭐 됐다. 그럼 SHH로 좋은걸로.’

    그러던 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사들이 먼저 나가 내게 손짓을 해주었다.

    “이쪽입니다. 사장님.”

    나는 그들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 만나볼 사람은 몇 명이라고 했지요? 17명이던가요?”

    “네. 정확히 17명입니다.”

    수연전자, 건설, 자회사를 합치면 모두 17개다. 재벌 특유의 문어발식 확장 때문인데, 여기에는 아동 전용 장난감 회사에서부터 뷰박스 영화관에 팝콘과 나쵸, 구운 오징어를 납품하는 회사까지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곳은 탁우경 사돈의 팔촌까지.

    ‘너도 탁 씨구나 자 이거 하나 받아라.’

    그런 식으로 배분이 된 것들이었다. 개 중에는 역시 탈세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회사들도 많았다. 탁우경의 유산인 셈이다.

    “모두 다 유지하는 건 비효율 적인 것 같은데... 적당히 합쳐야 될 것 같군요. 제 생각에는”

    장 부사장도 내 말을 받았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탁씨 모두 나가면, 바로 지분관계 정리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요 좋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를 걸었다. 앞서 가던 정 이사가 어느 홀의 문을 열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사장님.”

    나는 그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에는 총 17명의 사람들이 긴장을 한 채로 서 있다. 그들은 내가 적당히 앞으로 걸어오자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상석 자리에 선 채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장 부사장 말대로, 그들은 한껏 긴장된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씨익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조금 긴장될 법도 한데, 하나도 긴장이 되질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내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곧 SHH그룹이 될 이 회사들은, 수 년 내로 엄청난 성장을 보일 것이다. 나는 자신감 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사장님들.”

    *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찍 왔네?”

    곧 잠옷 차림의 아내가 나를 보러 온다.

    “안 잤어?”

    “응. 회식은? 안 했어?”

    “아니 하긴 했는데... 빨리 마시고 왔지.”

    아내는 잠깐 내 주변 공기를 킁킁대더니,

    “흐음. 그렇긴 하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맡지 마. 뱃속 아이도 술 냄새 맡을라.”

    지금은 9시 10분. 7시 반 회식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빠르게 진도를 빼서, 적당한 만큼만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괜찮은지 보기 위해.

    “열은? 괜찮아?”

    “응. 많이 나아졌어. 하루 자면 거의 괜찮아 질 거 같아.”

    “그래. 잘됐다. 가서 쉬어. 나 샤워 할게.”

    “응.”

    샤워를 하고 나니, 아내는 이미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어쩌면, 졸린데도 나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도록, 그녀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9시 20분이네...’

    오후 8시 50분. 메일이 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볼까 했지만, 살살 도는 취기에, 포기했다. 뉴스를 봐도 잘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에이 자자 오늘은. 내일 아침에 두 통 한꺼번에 보면 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보니, 아내가 없었다. 나는 침실에서 나가 거실에 가보았다. 주방에서 인기척이 난다.

    “아영아. 요리해?”

    “응.”

    나는 거기 가보았다. 뭔가 구수한 냄새가 난다.

    “육개장이야. 먹고 가.”

    “그나저나 감기는? 괜찮아?”

    “응 조금 으슬한 감이 있는데. 열은 거의 없어진 거 같아. 두통도 없고.”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머리를 만져보았다. 확실히 열이 내린 것 같다.

    “다행이네.”

    “그치? 정말 단순 감기였나봐.”

    “다행이네. 그래도. 다음주에 주치의 선생님 오시면, 말씀 잘 들어. 임신 중이니까. 만에 하나라도 조심해야지.”

    “알겠어요. 알겠어.”

    나는 그렇게 아내가 해준 육개장을 먹고, 출근을 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박 비서와 인사를 하고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함을 열었다. 어제 오후 8시 50분에 온 메일이 여전히 있다.

    ‘Gm 12시간 뒤’, ‘Gm 12일 뒤’, ‘Gm 12주 뒤’, ‘Gm 12달 뒤’, ‘Gm 12년 뒤’. 나는 그걸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런 다음. 오전 8시 50분이 되자 다시 한 번 다섯 개의 메일이 더 왔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그걸 읽었다. 그런데, 이 연속으로 읽은 이 미래 뉴스들에서, 나는 묘하게, 묘하게,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잠깐... 이게... 뭐지?“

    그 생각은, 메일을 반복해서 읽어볼 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나는 그 메일을 펼쳐둔 채로, 턱에 손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이러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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