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9화 (179/198)

# 179

12년 뒤 미래

아침 8시 50분. 4년 전 기연을 얻은 이후로, 이 시간만큼은 늘 컴퓨터 앞에 있었지만, 이번만큼 마음이 설렌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옛날 생각나는 군. 회사 다닐 때, 처음 이 이메일을 받아보던 때 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메일함을 열어보았다. 메일함에는 모두 다섯 통의 메일이 와 있다.

‘Gm 12시간 뒤’ ‘Gm 12일 뒤’ ‘Gm 12주 뒤’

‘Gm 12달 뒤’ ‘Gm 12년 뒤’

나는 그 다섯 개의 메일을 보고 양 손을 한 번 맞잡았다가 뗐다.

‘이거 일이 더 늘어났군.’

나는 마우스를 잡고 바로 ‘Gm 12년 뒤’에 커서를 가져갔다가

‘아니, 가장 좋은 건 맨 마지막에 봐야지.’

라는 생각에 다시 커서를 올려서 ‘Gm 12시간 뒤’에 가져가, 클릭해보았다. 12시간 뒤 뉴스는 딱히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맨 아래에

‘국가 설정 : 한국    변경’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게 새로운 액티브 스킬... 그 글로벌 설정 창이로군. 이걸 유지하면 한국 뉴스가 나오고... 이 옆에 있는 변경 버튼을 누르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 이거지?’

나는 그 변경 버튼을 눌러보았다. 곧

‘미국,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주요 국가들 순으로 정렬이 되어 주루루 흘러나왔다. 여기서 설정을 변경 시키면, 다음 뉴스 때부터는 그 나라의 미래 뉴스가 나오는 듯하다.

‘그렇군... 생각보다 간편한 걸? 봐서 급한 뉴스가 있을 때는 바로바로 변경만 하면 되겠군.’

새로운 액티브 스킬 사용법을 익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하나 기사를 체크했다. 중요한 것이 있으면 따로 메모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Gm 12년 뒤’

그 뉴스에 커서를 가져다 댔다.

‘뭐라고 나올까?’

나는 기대감에 부푼 채로 그것을 클릭했다. 바로 내용이 흘러나왔다.

정치 – 여당과 야당 국회에서 격렬한 몸싸움, 부상자도 생겨.

경제 – 부산에서 리스본까지. 이제 일반인도 기차타고 다닌다.

사회 – VR게임이 저출산을 부른다?

생활/ 문화 – 프롬헬 작가 ‘차기작은 아마 게임판타지가 될 것’

세계 – 터키에서 50년 수염 기른 남자. 기네스북 등재.

IT/과학 – 엔비디아 사 GTX 6080Ti 출시. 출고가는?

스포츠 – LG 트윈스 2024 프로야구 우승!

연예 – 배우 신승주 백상문화대상 수상.

나는 천천히 기사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먼저 정치.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부터 아주 식상한 내용이다. 나는 그럼에도, 그걸 클릭해보았다.

‘역시나 반전은 없군.’

기사 내용도 똑같았다. 몸싸움을 하는 국회의원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누가 누굴 밀쳤내, 누가 의사봉을 가지고 튀었네, 하는 식이다.

‘...정치는 변한 게 없구나. 몇 년이 지나도 몸싸움을 하고...’

나는 기사를 읽다가 적당히 닫아버렸다. 다행이도 경제 뉴스는 꽤 괜찮은 뉴스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오오... 드디어... 북한 너머로 기차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할 수 있구나.’

남북관계는 최근 몇 년간 정치 사정에 따라 좋았다가 나빴다가, 매번 그러길 반복했지만 그래도 결국 점차 좋아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북한으로의 철도는 놓여진지 꽤 되었는데 한동안은 민간인 출입은 할 수 없고, 물자들, 그러니까 러시아, 중국에서 오는 수입품들과,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수출품만 오가곤 했다.

그런데 근 미래에는 민간인들도 타고 다닐 수 있게 바뀐 듯하다. 한 마디로, 민간인들도 북한을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서서 북한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철도를 타고 지나쳐 갈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근데 이건 몇 년도 기사지?’

나는 일자를 확인해보았다.

‘...2024년 6월부터 운행될 예정이다.’

2024년이면 2년 뒤 기사다. 그리 멀지 않은 때. 긍정적인 뉴스다.

‘24년 6월... 그 때까지 경협주에 투자해놓으면 수익률이 쏠쏠하겠군. 통일은 아직인가... 하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뭐 이렇게 교류가 왔다갔다 하다보면 언젠가 되겠지만 말이야.’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면 2배의 국토와, 1.5배의 인구수를 가진 나라가 된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과 같은 이런 나라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기본 체격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는 다음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VR게임이 저출산을 부른다?’

대충 짐작이 가는 뉴스다. 클릭을 해보니 진짜 실사와 비슷한, 사이버 모델 남성, 그리고 여성의 모델링이 나와 있다. 뭐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미남, 미녀다.

‘...누구 연예인보고 따라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요새 워낙에 이게 발달하다보니 점차 자유연애는 사라져 가고 다들 VR에 몰입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져가고 있었다. 기술이 발달한 근 미래에는 그게 더 심화되는 듯 하다.

‘VR기술에 투자할까? 뭐 그래도 사회적으로 딱히 좋은 뉴스는 아니로군.’

그 다음은 ‘생활, 문화’. 웹소설 관련 뉴스다.

‘게임 판타지를 미래에도 보나보네...’

내가 어렸을 적에 한창 유행했던 건데, 미래에도 여전히 인기인 듯 하다. 하긴 어떤 요리건 어느 요리사가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어떤 장르소설도 어느 작가가 쓰느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오래된 장르라고 해도 새로운 작가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으니까.

‘음...’

나는 그 밑으로 남은 기사들은 한 번 쑤욱 훑었다.

‘터키... 됐고. GTX6080? 음 이거 나오면 나도 컴퓨터 갈아야겠군. LG 결국 우승했잖아 축하축하. 신승주? 누구지? 미래의 탤런트인가?... 적어놨다가 권 사장에게 알려줘야겠군.’

나는 그렇게 기사를 모두 훑었다. 하지만 다소 기대가 컸던 것일까. 경제면에서 ‘북한과의 경협이 늘어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와 이게 미래세상이구나’싶은 뉴스는 없다. 나는 살짝 입술을 삐쭉 내밀며 생각했다.

‘뭐... 보다보면 뭔가 신기한 게 나오겠지. 오늘은 10~12년 뒤 뉴스가 걸린 것도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래로, 인물검색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걸 보니, 딱히 실망할 것도 없다 싶다.

‘생각해보니 이게 있군. 12년 뒤. 나. 내가 뭘 하고 있을까?’

나는 거기에다가

‘한상훈’

내 이름 세 글자를 썼다. 그런데,

‘한상훈 대표의 SHH그룹, 재벌 순위 1위에.’

이번엔 딱 하고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하... 제대로 걸렸군.’

방금 전 ‘그랜드마스터 등급 안내서’를 받고 정했던 이름 ‘SHH’그룹이 재벌 순위 1순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다. 그 말인즉, 지금 있는, 수성이니 미래, LC, 한학 그룹과 같은 재벌들을 모두 제치고 우리 회사가 탑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탑이 수성그룹 400조니, 현재 60조 밖에 되지 않는 SHH가 300조 이상 몸집을 불려서 수성 그룹을 깔아뭉갰다는 이야기가 된다.

‘흠... 역시 그렇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에, 현재의 정보라면 귀신같이 알아올 수 있는 크로우. 인물의 미래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알 수 있는 인물검색. 가장 핫한 뉴스만 골라서 읽을 수 있는 랭킹뉴스까지. 이 능력들만 있으면 재벌 순위 1위를 차지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래 시간문제지. 이건 언제 기사인지 한 번 볼까?’

2025년 1월자 기사다. 지금으로부터 2년하고 3개월 정도 된다. 내가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흠 좋아 좋아. 2년하고 3개월 말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더 내려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띠리리~ 띠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그걸 쳐다보았다.

‘...분명 진짜 위급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마라 했는데...’

나는 보고 있던 이메일 창을 닫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왜?”

“저 사장님. 사모님이 아침부터 조금 열이 있으시다고 하시는데요? 근데 사장님 휴대폰이 꺼져 계시다고.”

아영이가 아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집 근처 커다란 산부인과.

“아~ 해보세요. 아~”

“아~”

진찰을 받는 아영이 뒤에 선 채로, 나는 팔짱을 끼고 초조하게 발을 떨었다. 그러다가,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음. 환자분 증상도 그렇고 요새 날씨도 것도 그렇고... 단순 감기이신 것 같네요.”

나는 바로 다음 질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그걸 말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말했다.

“아이한테는 별 상관없나요?”

“네 괜찮습니다. 안정기에 접어 드셨으니까. 아이한테는 별 문제 없을 거예요. 단지 약 처방은 조금 생각해 보셔야 되는데... 약은 일단 집에서 며칠 쉬시고 증상이 악화되면 그 때 처방해드리도록 할게요.”

다행이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영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찰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문득 든 생각에 나는 아영이를 진찰한 의사선생에게 말했다.

“저 선생님.”

“네?”

“별 다른 건 아니고... 저 제 아내 임신기간 동안 저희 아내 전담의사가 되어 주실 수 없을까요?”

“전담의사요?”

“네. 아영이 출산 때까지 아영이와 동행하면서 같이 건강을 봐주시는 걸로.”

내 말에 여의사는 다소 난감하단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저는 이 병원에 고용된 입장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압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꽤나 부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병원 대신 제가 선생님에게 그 이상의 급여를 드리고 선생님의 시간을 독점하고 싶군요.”

내 입에서 ‘그 이상의 급여’이야기가 나오니, 여의사의 눈빛이 흔들린다. 나는 거기서 생각했다.

‘액수만 말하면 넘어오겠군.’

“지금 임신 한지 3개월 지났으니 7개월 남았지요? 7개월 동안 제 아내 곁에서 전담의사 하시면서 무사히 출산하게 도와주시는데 30억 원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바로 밝아진다.

“네.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7개월 동안 30억. 그녀에게는 다소 많다 싶겠지만, 내게는 30원이나 다를 바 없는 금액이다. 나는 아예 거절 할 수 없게. 일부러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옵션도 붙여놓았다.

“아내가 첫째 건강하게 잘 낳게 해주시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생님을 고용하겠습니다. 저는 참고로 애는 셋 정도 낳으려고 하거든요.”

그녀는 바로 내 말을 알아 듣고, 내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모님 건강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아내는 나를 보고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녀를 보면서 살짝 어깨를 들며 보였다. 굳이 입으로 뭐라 내뱉지는 않았지만

‘왜 우리 가족 건강 챙기는 건데. 그 정도는 적게 쓰는 거지’

라는 느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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