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8화 (178/198)

# 178

그랜드마스터 등급

2022년 11월. 나는 아영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임신 소식을 들은 지 거의 한 달 반만의 일이었다. 빠르다면 빠르다 싶지만, 본래 동거를 결정했을 때부터 예정된 일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식은 회사 빌딩 내에서 친척,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만을 불러서 수수하게 치렀다. 내 결혼이 내 가족이 외부인에게 노출되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축하한다. 아들아.”

“축하해 오빠.”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참석한 사람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으며 나와 아영이는 무사히 식을 마쳤다. 신혼여행은 15박 16일 호주, 뉴질랜드 여행. 마음 같아서는 3~4달 갔다 오고 싶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일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 일들이란, 수연건설 인수 및 수연그룹 리브랜딩 건이었다.

“부사장님. 그럼 제가 없는 동안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돌아오실 때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수연건설 인수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탁문수의 여동생들은 빨리 주식을 처분해서 다가올 2차전(다른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을 대비하려고 했기 때문에 협상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수연건설은 신혼여행이 끝날 무렵, 12월 달이면 딱 맞춰서 내 회사가 될 참이다. 실질적인 문제는 수연건설 인수 후에, 리브랜딩이 문제였다.

내 자회사로 들어온 수연그룹 회사들을 그대로 경영하기에는 큰 문제들이 있었다. 내가 수연부수기를 하던 중에 수연이란 이름이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 것(그 덕분에 싸게 사긴 했지만)이 첫 번째 문제였고, 잘려나간 수연그룹의 반쪽, 탁씨 일가들의 회사들과 차별화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영화관 브랜드 뷰박스 같이, 수연그룹 자회사임에도 수연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 다른 곳은 개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처음에는 우리 회사 이름 ‘인빅투스’를 갖다 쓸까 했지만. 그 오만함과 절대성, 경쟁성은 투자회사 이름으로나 적절했지 그 외에는 잘 어울리질 않았다. ‘인빅투스 전자’, ‘인빅투스 건설’처럼 말이다.

“새 회사명은 호주에서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시지요. 대자연을 걷다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몇 가지 일을 남겨 둔 채, 나는 아영이와 둘이 함께 호주로 떠났다. 정확하게는, 아직 아들일지 딸일지 모를 내 자식과 함께 셋이서 말이다.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 퍼스트 클래스 자리에서, 나는 잠시 아영이의 배에 귀를 대보았다.

“어때? 뭔가 들려?”

“아니. 아직.”

아영이의 홀쭉했던 배는 평소보다 살짝 동그래져 가고 있었다. 그걸 보면 내가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난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한두 달 뒤에나 들을 수 있대.”

“그래? 조금 아쉽네.”

“아쉽기는. 어차피 몇 달 후면 밖으로 나올텐데. 뭘.”

나는 아영이의 배에 귀를 댄 채로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 건강하게만 나와다오. 그러면 아빠가 너를 위해 온 세상을 다 가져다 주마.’

*

2022년 12월. 신혼여행을 갔다 오니, 장 부사장은 본인이 말했던 대로, 내가 사인만 하면 되도록 인수 절차를 마무리 해놓고 있었다.

“그럼 이름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아...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 중에 몇 가지 떠올렸는데 확실히 이거 다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하질 못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사장님이 정하기 어려우시면 전문가 자문단을 꾸려서 새 이름을 정해도 좋고요.”

“...그러지요. 일단 인수부터 마무리합시다.”

“네 사장님.”

나는 탁문수의 동생들 그리고 친척들 지분을 모두 사들이는 계약에 사인을 했다. 이것으로 나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총 63조. 코스피와 코스닥 합쳐서 10개의 상장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계약이 성사되고, 공시가 나간 날 저녁.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랜드마스터 등급 안내서’

그 메일을 받게 되었다.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 밖의 박 비서에게는

‘누구도 아무도, 들이지 말라.’

라고 말해놓은 뒤다.

‘후우...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 걸렸군. 그랜드 마스터 등급까지는.’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 마스터까지는 쉽게 쉽게 올라온 것 같은데, 그랜드마스터 등급을 달기까지는 유독 많이 걸렸다. 그것은 아마도, 올라오는 과정에 상대해야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치 쪽에서는 한상훈 의원을 비롯한 주성원 대통령. 경제 쪽에서는 탁 씨 일가들 말이다.

‘하지만... 다음번은 더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돈이 30조 넘게 남아 있으니까...’

30조면 웬만한 글로벌 기업도 인수 할 수 있는 돈이다. 수연 전자, 건설처럼 약간의 ‘연하게 다지기’과정을 거치면 더더욱 쉬워 질 것이다. 오전 8시. 오늘도 50분 일찍

‘그랜드마스터 등급 스킬 안내’

그 메일이 왔다. 나는 바로 그걸 클릭했다. 역시나 익숙한 문구가 나를 반겨 준다.

‘축하드립니다. 그랜드마스터 등급으로 승급하신 한상훈 독자님. 그랜드마스터 등급 역시 각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해 사용, 강화할 수 있습니다.’

나는 슬슬 스크롤를 내렸다.

‘현재 그랜드마스터 등급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은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현재 배분되지 않은 스킬 포인트는 21점입니다.’

이번에 주는 점수는 21점이다.

‘21점이라... 블랙잭이로군. 그나저나 다섯 개라면... 하나가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나는 그 숫자를 기억한 채로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인물검색 Lv4 (액티브스킬 – 포인트 4점 필요)

인물을 검색할 수 있는 슬롯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된 상태로 사용 가능합니다.

랭킹뉴스 Lv2 (액티브스킬 – 포인트 2점 필요)

특정 카테고리에서 누적 조회 수가 많은 뉴스 1위와 2위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2회 사용가능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된 상태로 사용 가능합니다.

미래뉴스 Lv5 (패시브스킬 – 포인트 5점 필요)

기존 뉴스들과 함께 ‘12년 뒤’뉴스를 한 번 더 받아 봅니다. 기존 뉴스와 형식은 동일하며, 액티브 스킬 역시 동일하게 사용가능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과 중첩됩니다.

잠입취재 Lv2(액티브스킬 – 포인트 10점 필요)

특정 대상에 기자를 특파합니다. 기자는 15일간 대상에 대해서 집중조사를 하며 15일 뒤 기성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기사거리 한 개를 가져옵니다. 기자를 특파할 때는 주로 조사할 내용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전에 분배했던 바로 그대로다. 여기에, 하나가 더 생겨났다.

글로벌뉴스 Lv1(액티브스킬 – 포인트 10점 필요)

뉴스의 판본을 사용자의 모국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설정합니다. 설정은 12시간 전 변경 할 수 있으며, 변경을 한 다음 바로 다음 메일부터 그 나라의 뉴스가 나옵니다. 뉴스의 형식은 동일하며, 내용은 자동으로 번역되어 나옵니다. 스킬 역시 동일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단 인물 검색의 경우 정확도를 위해서 그 국가의 언어로 써야만 합니다.

‘호오... 글로벌 뉴스라...’

마침 딱 내게 필요한 스킬이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세계’파트에서 꼴랑 하나 나오는 뉴스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세히 그것을 읽어보았다.

‘아예 뉴스를 다른 나라 뉴스로 바꿔버리는 식이로군... 미국으로 바꾸면 다음 뉴스가 완전히 미국 정치, 경제, 세계, 문화...가 나오는 것처럼. 인물 검색도 그렇게 바뀐다니, 그럼 이제 나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걸 검색해 볼 수도 있는 건가?’

매번 등급 업 때마다 그렇지만, 새로 생긴 스킬은 매우 좋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미국 대통령이나, 세계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연방준비제도(FED)위원장 같은 사람들도 검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말 한 마디, 단어 선택 하나에 세계 경제를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 뉴스를 계속해서 볼 수 있다면, 글로벌 투자도, 회사 운영도 쉬워질 것이다.

‘...잠깐만 그러면...’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다보니 드는 생각도 있다.

‘글로벌 뉴스에서도... 내 이름이 검색되게 해야겠는데?’

내 이름을 뉴스에 나오게 만드는 것의 효용성은 이미 검증되었다. 내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예지력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아직 한국 언론에 한정된 일이었다.

‘해외 언론도 한상훈 하면 알아 들을 수 있게 만드는 거야. 그러면 해외에서 일하기 보다 더 쉽겠지. 그런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린다? 해외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예 회사 이름을 내 이름으로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회사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도 떠올리게 될 테니까.

‘그래 맞아. 회사 이름은 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한상훈... 영문명으로 상훈 한. SHH. SHH그룹’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내 회사 이름을 정해버렸다. SHH. 한국에서는 자기 이름을 쓰는 회사가 그다지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IT업계의 공룡 중 하나인 HP는 창업자인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의 성을 따서 만들어진 회사고, 한국에서는 초코우유로 유명했던 네슬레 같은 경우도 스위스인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회사다. 세계 최대의 곡물기업인 카길 역시, 창업자 가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고 말이다.

‘SHH컴퍼니로 하자 그럼. 그러면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내 이름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보다 단순하게 내 회사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 이제 인빅투스 인베스트 산하 수연그룹은 SHH으로 사명을 변경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배분을 해야겠군.’

나는 21점을 어떻게 찍을지 생각해보았다. 일단 미래뉴스 5단계를 위한 5점과 글로벌 뉴스 10점은 무조건 써야만 한다. 이 두 가지가 이번 레벨 업의 의미라고 해야 할 테니까. 남은 것은 6점. 6점은 인물검색과 랭킹뉴스에 하나씩 분배하면 딱 맞다.

‘그럼 딱 떨어지는 군 21점.’

크로우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리고 경험 상, 크로우는 한창 쓰일 때는 1달이 아쉽지만, 쓰이지 않을 때는 딱히 보낼 데가 없었다. 다음 레벨업때 높여 놓으면 한창 쓸 때 집중력 있게 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보류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른 더 좋은 스킬들이 있었으니까.

‘그럼 이렇게 가자.’

나는 네 곳에 체크를 하고, ‘확인’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역시 익숙한 축하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축하드립니다. 그랜드마스터 등급으로 승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내문

‘Exxxxx 등급으로 귀하의 뉴스를 업그레이드 해보세요! Exxxxx 등급 승급에 필요한 것은 금 100억원의 구독료. 그리고 자격조건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상장사 스무 개 이상 지배하되 그 상장사의 시가총액 합이 400조가 넘는 것입니다.’

나는 그걸 유심하게 읽어보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xxx’등급의 이름이 하나 알파벳 ‘E’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뭐야? E? E.T 라도 불러주나? 에일리언? 외계라도 진출한단 거야 뭐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나는 그 다음 조건에 집중했다.

‘스무 개. 시가총액 합 400조라.’

현재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수성그룹이 400조가 될랑 말랑한다. 그러니까 저 ‘E’등급이 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내가 우리 회사를 국내 최대의 재벌로 키워야한 다는 뜻이었다.

‘흠... 오케이. 알았어. 아주 못할 목표도 아니로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랜드마스터 승급을 마쳤다. 그렇게 승급을 끝내고 시간을 보니 8시 35분이었다. 이제 15분 후면 업그레이드 된 ‘그랜드마스터 등급’신문이 온다. 나는 손을 맞잡은 채로 그걸 받기를 기다렸다.

‘글로벌 신문도 글로벌 신문이지만... 12년 뒤라. 참 궁금하군. 12년 뒤에는 무슨 일들이 있을까?’

그건 투자자가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매우 궁금한 것들이었다. 나는 마치 공상과학 영화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8시 50분에 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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