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예상치 못한 뉴스
뿔테 안경에 하얀 피부, 정돈된 머리를 한 남자가 내게 묻는다.
“왜 비밀로 하셨지요?”
“굳이 비밀로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때는 저를 제외한 다른 투자자들이 한창 좋지 않던 시기라... 저희의 성공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투자자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수익을 비밀로 하셨던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한 말을 중얼거리며 메모장에 뭔가를 적어 넣는다.
“그렇군요.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수익을 비밀로 했다.”
잡지 포브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지 중 하나다. 이 경제지의 특징을 꼽으라면 바로 순위 세우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스포츠 구단’이랄지 ‘세계에서 가장 영업이익이 높은 회사’랄지. 지금 하고 인터뷰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100대 부자’. 그리고 나는 순위표의 그 정점에 선 사람이었다.
“수연전자를 인수한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중국 투자를 마친 후, 저는 국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물색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수연전자가 눈에 띄더군요. 장래성에 비해 주식이 저평가 상태였고, 지분구조가 약한 상태다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적대적M&A를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수연그룹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오너의 사망소식이 들려오고, 탈세 문제가 불거지고, 차기 회장이 구속되는 등등...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인터뷰어를 살짝 보다가,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덕분에 주가가 싸졌으니까요.”
“그런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일각에서는 한상훈 대표가 만들어낸 일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물론 제가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저는 일개 투자회사 오너였고, 수연그룹은 50년이 넘은 재벌기업인 걸요. 어떻게 투자회사 오너가 재벌을 상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겠지요.”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장에 무언가를 쓱쓱 더 집어넣는다.
“그러면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한동안은 M&A를 더 하려고 합니다. 중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이긴 했지만, 이제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니까요. 괜찮은 회사가 있으면 몇 개 더 사서 같이 꾸려보려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더욱 더 회사를 키우시겠다.”
“물론입니다. 한국에서 최고 부자가 되긴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니까요. 저는 수연전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지만 아직 배가 고프다. 더 많은 돈이 가지고 싶다.”
나는 거기서 살짝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아 그건 조금 뉘앙스가...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그는 펜을 놀리다 말고 내게 묻는다.
“어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다. 그 부분 말입니다. 저는 사실 이제 돈 보다도, 성공에 더 집착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성공이요?”
“네.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것, 어떤 일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해서,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 말입니다. 돈은 그 결과물일 뿐이고요. 사실 예전에, 3년 전 즘이죠? 계좌에 100억 이상 돈이 있을 때부터 돈에 그다지 집착을 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돈이 아쉬워서 뭘 못하고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아 그러신가요?”
“네. 그 때에 비해서 지금 수 백배 더 많은 자산을 가지게 되었지만... 딱히 더 사치스럽게 살거나 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더 많은 돈이 가지고 싶다. 라는 건 조금 맞지 않고. 조금 더 많은 성공을 하고 싶다. 그게 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돈은 문제가 아니에요. 굳이 따지면... 앞으로는 돈을 버는데 성공한만큼, 돈을 쓰는데도 성공을 하고 싶어요.”
“그 말은... 자선 사업 같은 것 말씀이십니까?”
“네. 뭐 빌 게이츠 같은 경우가 제 롤 모델이 되겠지요. 뭐 기아 구제랄지, 난치병 치료랄지, 그런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그럼 여기까지, 공식적인 인터뷰는 끝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혹시 더 하시고 싶으신 말 없으신가요?”
“딱히 없군요.”
“네 그러면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비서가 다가와 내게 외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사장님. 인터뷰 하시는 동안, 장 부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응.”
나는 바로 전화기를 받아서 전화를 걸었다. 바로 장 부사장이 받는다.
“네 사장님. 인터뷰는 잘 하셨는지요?”
“네네. 무슨 일이시죠?”
“별다른 건 아니고, 인수 건 두 개, 진행상황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아 그래요 말씀하세요.”
“일단 수연건설은 상속세 납부되는 즉시, 우리가 그걸 받기로 했습니다. 기존 지분 4.99%합쳐서요. 탁문수 씨는... 뭐 재판결과 나와 봐야 하긴 할 텐데... 아마 그분도 처분하는 쪽으로 친척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호인단이 최고급이긴 한데 거기서도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판사들이 매번 중립적이진 않다. 피고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적은 사람인지, 권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그리고 위로 권력자 눈치도 보고, 아래로 대중들 여론도 본다. 탁문수는 돈은 있었지만, 위로는 권력자에 찍힌 상태였고, 아래로는 대중들에게 악마와 같은 대기업 3세처럼 되어 있어서 판사 입장에서도 형벌을 가볍게 할 수는 없었다.
“워낙에 탁문수 씨에게 여러 사건들이 중첩되어 있고, 여론이 거세서 쉽지는 않을 거라 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탁 씨 일가에서도 아예 탁문수가 가진 상속권을 포기시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회사든 대주주가 교도소에서 20년 이상 썩게 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니까요.”
탁문수의 몰락이 확정되자, 수연그룹의 남은 상속자들은,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마치 부상당한 동료를 공격하는 상어 떼처럼. 그들은 탁준기처럼 대놓고 수연을 장악하려는 욕심을 내보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탁문수가 교도소에 가게 되었으니 이때다 싶었던 모양이다.
수연전자, 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수연그룹은 다시 탁 씨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갈기갈기 분해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나도 거기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그 쪽이야 알아서 하게 두고 우리는 우리 일만 해나갑시다. CEO인선과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매버릭 터너 인텔 전 부사장, 신재철 전 수성전자 CTO. 두 사람 모두 수연전자 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이 왔습니다. 두 분 다 회사로 모셔서 우리와 이야기 나눠보고 결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좋군요. 미팅 일정 확정되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네 그리고 FC세종 말입니다.”
“아아 네네.”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뭐 말할 것도 없이, 대표님 투자를 환영한다 하고.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대표님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잘 됐군요. 그럼 세종시에 한 번 내려갔다와야겠어요. 구장 이야기도 좀 해보고.”
“네네. 그러시지요.”
수연전자 인수가 마무리 된 직후, 나는 내게 줄 보상으로 차를 고르려다가, 대신 축구 구단 하나를 골랐다. 바로 FC세종. FC세종은 세종시 출범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프로 스포츠 구단인데, 한동안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 세종시장이 구단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세종시는 점점 더 규모가 커져서 이제 인구 80만 명의 대도시가 되었는데, 그래도 시민들에게 걷는 세금만 가지고는 운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스태프도 선수도 부족하고, 구장도 남의 구장 빌려 쓰는 입장이어서, 하부 리그에서조차 하위권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와중에 내가, 이 FC세종의 메인스폰서로 되기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싼 취미였다. 왜 컴퓨터 게임 중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해서 구단을 성장시키는 게임이 있지 않은가. 나는 돈을 써서 그것을 현실에서 할 참이었다. 돈 주고, 구장도 짓고, 감독도 데려오고, 스태프도 데려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 3년? 아니 그래도 유망주를 데려와서 키워야하니까. 5년 정도면 한국 제패는 가능하지겠지.’
물론 나는 미래에서 누가, 얼마나 어떻게 뛰어난 선수가 될 지도 알고 있으니, 운영도 쉬울 것이다. 미래를 보는 구단주. 그것이 바로 나다. 장 부사장과의 통화를 마친 나는
‘흐흐 재밌겠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가실까요?”
박 비서가 내게 다가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박 비서가 모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평소처럼 팔짱을 낀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마침, 한 빌딩 대형전광판에서 수연패션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연패션, 수연건설의 자회사. 결국 내 소유가 될 회사란 말이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미래뉴스에서... 의류사업 쪽으로 뉴스가 뭐가 나왔지?
생각해보면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은 분명했다. 전자든, 건설이든, 패션이든, 내 통찰을 필요로 하는 곳이 더 많아질 테니까. 심지어 영화 흥행 같은 것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잠깐 흥행하는 영화 맞춰서 배급사를 사고 빠지는 식이었지만, 나는 이제 내가 그 배급사의 오너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뉴스를 더 꼼꼼히 봐야겠는걸.’
나는 이제 투자자 뿐만 아니라 경영인으로서도 어느 정도 활약을 해야만 했다. 거느리는 회사가 많아졌으니까 말이다.
‘경영도 쉽지 뭐. 어차피 위에서 결정을 내리는 건데. 미래를 알면 늘 옳은 결정만 내릴 수 있으니까. 이제 곧 그랜드마스터 등급 달고 12년 뒤 뉴스까지 알게 되면... 뭐건 무슨 뉴스건. 내 손을 벗어날 수는 없지.’
나는 박 비서가 모는 차 뒤에 타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만이었다. 집에 와 보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
“정말이야?”
“응.”
아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찌 할 줄 몰라 잠시 머리를 긁었다. 아영이는 부가 설명을 해주었다.
“두 달째 생리가 없어서... 그런데 가끔 그러긴 했거든? 그래서 긴가 민가 했는데. 진짜래. 의사선생님이.”
아영이가 임신을 했다. 이것은 최근 들었던 뉴스 중에 가장 충격적인 뉴스였다. 왜냐하면 미래뉴스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뉴스니까. 하지만 충격에서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건 나쁜 뉴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좋은 뉴스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영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잘됐다. 요새 오히려 결혼하고 문제 있어서 고민하는 커플도 많은데, 우리는 그런 문제는 없이 시작하는 거잖아?”
내가 긍정적으로 말하니, 아영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응. 요새 그렇다곤 듣긴 했는데...”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내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늦춰졌지. 최대한 빨리 식 잡자. 너 배부른 상태로 드레스 입는 건 싫잖아?”
아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응.”
“프로포즈는 다시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래 그래.”
내가 아버지가 된다. 어쩌면 그것은 올해 내가 수연전자를 산 것보다도, 더 큰 빅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