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6화 (17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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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리품 챙기기

    ‘띠리리~ 띠리리~’

    나는 전화기를 받으며 말했다.

    “응 왜”

    “대표님 신현철 총경님 전화이십니다.”

    “아아 그래 바로 바꿔줘.”

    “네”

    박 비서가 통화를 연결해주는 사이,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곧 굵은 목소리의 신현철 총경이 인사를 건네 온다.

    “여보세요? 대표님 저 신현철입니다.”

    “아아 예 총경님. 무슨 일이십니까?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전화도 주시고.”

    “아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신현철 총경을 나랑 통화를 하면 할수록 저자세로 들어갔다. 그게 단순히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청와대에서 무언가의 압력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점점 더 나에게 깍듯하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눈에 보였다.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대표님 시간 뺏은 게 아닌지...”

    “아닙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예예 수사 진행과정 보고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수연 그룹과 연관점을 파보니까. 그쪽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긴 있더군요. 지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열심히 해서 입을 열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언론에는 아직 퍼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찰 입장에서도 꽤나 놀라운 케이스였다. 기업의 대표를 노린 표적 살인. 그것도 타 회사와 한창 지분 싸움 중인 대표를 노린 살인 이었으니까.

    “아아 역시 그렇군요... 수연그룹이라...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해주세요.”

    “네 대표님. 그럼 계속해서 몸조심하시고요. 사건이 사건인 만큼 제가 책임지고 입 열게 하겠습니다. 대표님.”

    “네 수고하셔요.”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잠시 물끄러미 통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럼 대한민국 경찰이 얼마나 유능한지 볼까?’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그 녀석은 입을 불게 될 것이다. 사건 직후 나는 케이먼 제도에서 돌아온 크로우를 바로 이 사건에 투입했으니까. 아무래도 경찰이 해주는 게 더 좋겠지만, 경찰이 그를 자백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시킬 참이다.

    *

    9월 12일. 수연전자 임시주주총회가 열렸다. 나는 장 부사장을 대동하고 그곳에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현 사장이자, 대표이사 변경안의 주인공인 탁문수는 이 자리에 불참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딥블루코퍼레이션이 탁우경의 페이퍼컴퍼니로 밝혀진 이상, 이 투표의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탁문수는 여기 와서 자신이 잘리는 것을 보는 것보다도 자신의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 듯 해 보였다. 그는 불법상속 특검에, 탈세, 심지어 살인교사미수 혐의까지 쓰고 있었으니까. 임시주총은 진행되었다. 탁 씨 일가 사람들 때문에, 만장일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수준으로 대표이사 해임안이 가결되었다.

    이것으로 탁문수는 완전히, 수연전자에서 아웃되게 되었다. 그 자리를 이어 받은 사람은 김장훈이란 사람으로, 수연전자에서 중심부에서 살짝 떨어져 있었던 그런 인물이었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탁문수에게 직언을 했다가, 미움을 사서 목이 간당간당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을 높이 사서, 일시적으로 임시 사장을 맡기기로 했다.

    그에게는 인생사 새옹지마 꼴이 된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들여와 그 자리에 앉혀 놓을 생각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것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게 되었다. 국내에서 손가락 꼽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도 갖춘 대기업 말이다.

    그 과정이 꽤나 험난하고 복잡하긴 했지만, 그 보람은 있었다. 이것으로 나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세계로 도약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말이다.

    *

    9월 20일. 결국 탁문수는 구속되었다. 신현철 총경에 따르면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경찰은 결국 그 범인으로부터 ‘탁문수’이름 세 글자를 받아냈다고 한다. 이제 그는 최대 무기징역에 달하는 형량을 놓고 법원에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는 판사 출신의, 최고급 변호사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라클 뉴스에다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되는 일 없이, 법의 준엄함을 보여야’

    와 같은 사설을 써서 내보냈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이라고는 해도 대체로 대통령의 입김이 가장 쌘 건 사실이다. 국회는 야당은 아니라고 해도, 여당이 대통령의 위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고 법원도 판례도 대통령 눈치 봐가면서 내린다는 게 정설이다. 몇 달 전부터 내가 주성원 대통령에게

    ‘수연 그룹 때립니다. 때립니다. 때렸습니다. 잡아 넣으세요.’

    계속해서 소리를 쳐댔기 때문에, 그도 내 의도 정도는 잘 알아 줄 것이다. 그가 여기까지 나와 합을 맞춰 준다면, 나는 4년 더 그를 대통령에 앉혀놓을 생각이 있었다.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맞춰가면서 말이다.

    *

    탁문수가 구속된 지 이틀 뒤, 그러니까 9월 22일. 박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저 사장님... 또 다른 분에게서 전화가 오셨네요.”

    그런데 그 말이 조금 요상하다. 본래 내게 전화를 하는 사람은 다양하니까.

    “다른 분이라니?”

    “아... 탁우성이란 분인데... 탁 씨여서...”

    그럼 대충 말이 이해가 된다. ‘다른 탁 씨’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탁우성이라... 탁우성이라면 분명...’

    나는 빠르게 키보드를 움직여 검색을 해보고, 바로

    ‘역시 그렇군.’

    옛 기억을 떠올렸다. 탁우성. 이름을 보고 대충 짐작했지만, 그는 탁우경의 동생이자, 탁문수의 작은아버지, 그리고 탁준기의 아버지였다. 탁문수가 죽고 나니, 그가 가문의 수장이 혹은 대변인 같은 것이 된 듯하다. 나는 전화기 앞에서

    ‘또 뭘 어쩌려고 이러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응 연결해.”

    얼마 지나지 않아, 중후한 목소리가 귀가로 흘러나왔다.

    “아아. 한상훈 대표 되십니까.”

    나는 잠깐 그를 경계했다.

    ‘...설마... 노인네가 구질구질하게 2차전 하자고 하려는 건가?’

    하지만 다행이도 그런 우려는 이내 풀렸다.

    “...저희 가문 쪽에서는 우리 실수도 있었다. 생각하고, 한상훈 대표와 협상을 하려고 합니다.”

    “무슨 종류의 협상이요?”

    “일종의... 항복 협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더 이상 한상훈 대표와 싸움을 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누가 더 강한지는... 이미 드러났다고 봐야하니까요. 단지, 우리의 일 몇 가지는 우리가 챙겨가게 해주십시오.”

    그가 가져온 것은 탁 씨 일가의 항복 문서였다. 탁문수가 구속되는 것과 동시에 탁 씨 일가는 이미 대세가 기울였음을 깨달은 듯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구체적인 조건이 어떻게 되지요?”

    “그건 바로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보시고 검토해보시고, 답장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나는 그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탁 씨 일가는 수연전자, 건설 및 그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을 모두 팔고, 권한에서 모두 손을 떼겠다. 대신. 생명, 화학 라인은 우리에게 남겨주시오.’

    라고 할 수 있었다. 탁문수가 구속되고 나니, 더 이상 내게 저항할 구심점도 없어졌으니, 남은 사람들끼리 남은 지분을 갈라먹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 듯하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 단 생각이 든다. 전자를 뺏기는 것은 수연그룹의 위상에 크게 금이 가는 것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탁문수 없는 수연그룹은 완전히 새로운 기회의 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장 부사장과 며칠 상의를 한 다음 그 항복제안을 승낙했다. 앞으로 수연전자, 수연건설을 경영하는 데 탁 씨 일가 사람들이 잡음 없이 나가는 것은 내게도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승부가 났다지만 원수가 같은 집에서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탁우성에게 답장을 보냈고, 곧 그쪽에서 지분 정리를 위한 로드맵을 다시 보내주었다. 내가 거기에서 확인 도장을 찍는 것으로, 나와 탁문수 간 거의 반년 간 이어졌던 기나긴 접전은 내가 수연전자, 건설을 사들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

    나는 ‘12달 뒤’의 뉴스에 ‘탁문수’를 검색해보았다. 탁문수의 재판은 얼마 뒤 시작이었는데, 1년 뒤 뉴스를 미리 살펴본 바, 그는 아무래도 살아 있는 동안 바깥 구경하기 어렵게 될 것 만 같다.

    ‘이번에도 정의가 구현되었군. 조금 압력이 들어간 정의긴 했지만.’

    나는 그걸 보면서 미래뉴스 메일을 닫았다. 그러면서

    ‘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옆에는 산더미 같은 보고서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발 금융위기는 이제 점차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새 주인을 얻은 수연전자를 빠르게 정상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열심히 일 해볼까.’

    내가 그 보고서들을 읽어 내려가는 와중에

    “장 부사장님 오셨습니다.”

    장 부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응 들어오시라 그래.”

    내 말에, 장 부사장이 인사를 하면서 들어온다.

    “검토하실 게 많으시지요 사장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이정도 일은 해야지요. 저보다 더 바쁜 건 장 부사장님하고 이사님들이지 않습니까?”

    장 부사장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수연전자, 건설은 둘 다 30조짜리 공룡회사였다. 뒤처리를 하는 데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연전자는 주요 인사 물색 중입니다. 수연건설은 인수 진행 중으로 탁문수의 두 여동생들, 탁진희와 탁선영은 상속세를 수연건설 지분으로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우리는 그 지분을 정부로부터 사들이기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바로 대주주의 지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시점은 언제 쯤 될까요?”

    “이르면 11월이면 될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최대한 빨리 진행해주세요.

    “네 대표님”

    내가 그를 재촉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모두 그랜드마스터 등급 때문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등급을 달기 위한 조건은 ‘지분가치 10조, 상장사 10개’ 지분가치 10조는 이미 수연전자를 인수하면서 그 액수를 훌쩍 넘었지만, 상장사 10개. 그 개수가 부족했다. 수연전자는 상장된 자회사가 수연디스플레이 딱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기까지가 7개. 수연건설은 전형적인 문어발들의 모회사여서 자회사가 대단히 많았는데 상장사로 의류브랜드인 수연패션과 영화관 사업을 하고 있는 드림박스를 자회사로 가지고 있었다. 그 세 개를 합치면 딱 10개가 된다. 수연건설 인수가 마무리되는 즉시, 나는 그랜드마스터 등급이 달게 되는 것이었다.

    ‘그랜드마스터가 되면 무슨 스킬이 있을지 궁금하군...’

    생각해보니 일단 딱 하나 아는 게 있었다. 이미 지난번에 봐서, 알고 있었던 것.

    ‘12년 뒤 뉴스’

    여태까지는 ‘투자 단위로 길어봐야 1년’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 필요성이 없었지만, 수연전자와 같이 거대한 그룹을 경영하려면 5년 뒤 10년 뒤를 보고 움직일 필요성도 있었다.

    ‘게다가... 그냥 궁금하기도 하군. 10년 뒤, 12년 뒤 무슨 일이 있을지.’

    그 때 되면, 정말 전기자동차가 대세가 되어서 매연이 없어지고, 일반인 우주여행이 가능해지고, VR기술이 발달해서 게임도 세대가 넘어가는 등의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12년 뒤를 상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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