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5화 (175/198)
  • # 175

    올가미 덫

    주주총회에서 돌아온 나는 바로 그 다음 일에 착수했다. 주주총회에서 한방 먹은 탁문수가 할 일은 바로, 딥블루코퍼레이션의 등장. 탁문수는

    ‘짜잔! 이건 예상치 못했겠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 역시 오산이다. 나는 크로우의 조사내역을 모아서 두 종류의 기사를 더 만들어냈다. 첫 번째 버전은 ‘딥블루코퍼레이션이 어떻게 수연건설 주주의 이익을 해치고 탁우경 주머니에 돈을 몰아주었는지’에 집중한 버전이었다. 타깃은 수연건설 투자자를 비롯한 주식투자자들. 이것은 주주들에게 갈 돈을 ceo가 갈취한, 명백한 배임이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수연그룹 전체에 대해 불신을 일으키기 충분한 일이었다.

    두 번째 버전은 ‘탁우경이 딥블루코퍼레이션을 설립하면서 어떻게 탈세를 했는지’에 집중한 버전이었다. 타깃은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반인들, 그리고 세수가 부족해서 허덕이고 있는 현 정부 관계자, 주성원대통령이었다. 첫 번째 버전은 대원일보를 비롯한 경제전문지에 나갈 예정이었고, 두 번째 버전은 오라클 뉴스와 함께 인터넷뉴스에 내보낼 예정이었다. 이게 나가면, 양 쪽에서 반향이 클 것이다.

    나는 그 불에 열기를 더하기 위해 크로우를 케이먼 제도에 보내 놨다. 감자넝쿨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지 모를 일이니까. 파서 나오는 대로, 후속기사를 내서 국민들에게 ‘수연그룹’이란 부패의 온상으로 찍히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대원일보, 오라클뉴스를 비롯한 언론이 다시 한 번 수연그룹을 때렸다. 반응은 불과같이 밀려들었다.

    ‘와 수연그룹 진짜 쓰레기 새끼들이네요. 탁우경 와...’

    ‘탁우경 진짜 꼼꼼한 양반이네 살아 서도 탈세 죽어서도 탈세.’

    ‘수연그룹 우리나라 회사 맞는지... 이번에 해체시켜서 외국에 보내버립시다. 세금도 안내는데 한국에서 왜 장사하고 있냐’

    ‘이거 포장마차 뭐라고 할 게 아니네... 대기업에서 이렇게 몇 조 단위로 하다니’

    딥블루코퍼레이션은 이미 수연전자 지분을 꽤 매입(역시 5%살짝 안 되게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했겠지만, 이제 전면으로 나오기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혹시나 주주총회에서 손이라도 든다면, 바로 기자들이 몰려들 판이니까. 이렇게 도망치는 생쥐의 마지막 구멍까지 막아버린 나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딥블루까지 막히게 되면... 탁문수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제 손발이 다 짤렸으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모든 구멍이 막힌 생쥐, 그 녀석은 결국 고양이에게 직접 달려드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평소처럼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하던 나는 묘한 뉴스를 하나 받아보았다.

    ‘한상훈 인빅투스인베스트먼트 사장 괴한에게 공격 받아.’

    나는 크게 입을 벌렸다.

    ‘헐... 정말로...?’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것 역시 예상했던 수 중 하나가 아닌가. 같이 바둑을 두다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유일하게 판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법. 그것은 바둑판을 엎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올게 왔다고 해야 하나...’

    이제 정상적인 방법(물론 페이퍼컴퍼니로 지분방어를 하는 것 역시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으로 내 M&A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나대신 회사를 운영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인빅투스인베스트먼트는 내 100%자회사니까.

    내 재산 역시 탁우경 재산처럼 가족들에게 흩어질 것이고 M&A도 흐지부지 될 것이다. 내가 없으면 주성원대통령이건, 이원재 대표건 우리 회사를 막아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탁문수는 나름 위험하지만, 보상은 확실한,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한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란 사람이 결국 이런 짓을 하다니...’

    모든 수가 막히고 난 그는 결국 선을 넘는 짓. 해서는 안 되는 짓까지 해버렸다. 그것은 아마 그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이리라. 여태까지 한 두 번 패배를 겪어 봤다면,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물러서는 법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져보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좋아 그럼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해오나 볼까?’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한상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사장이 괴한에게 피습을 당해 중태에 빠졌다. 8월 24일. 강남의 모 병원에서 이루어진 소아암 자선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한상훈 대표는 자신 소유의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주변에서 흉기를 감춘 채 기다리고 있던 괴한에게 급습을 당했다...’

    24일.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남았다. 나는 그 날 일정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소아암환우 자선행사가 잡혀 있었지. 요새 인빅투스 빌딩 밖으로 나가는 일... 외부 일정이 거의 없었으니 잘도 골랐군.’

    소아암 자선행사는 내가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하고 있었다. 전반기에 한번, 후반기에 한 번. 나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수준의 성인군자와 같은 자선사업가는 못 되었기에, 검색 한 번이면 일반인도 내 일정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저녁 일정. 거기서 그걸 마치면, 나는 인빅투스 빌딩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박 비서가 동행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오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아영이가 기다리는 집이니까. 범인도 그 점을 노린 듯 하다.

    ‘그나저나 범인은... 그 때 그 녀석인가...’

    나는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cctv확인 결과 범인은 190cm미터의 거구로... 경찰은 이를 토대로 수사에 나서기로...’

    대충 맞다. 190cm. 탁준기를 호위하던 그 녀석. 까마귀 꿈 이후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탁문수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쉬고 있었을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 일에 그만큼 적격자도 없었다. 그는 이미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니까. 탁문수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 녀석을 잡아서 불게 시켜야겠군.’

    그것만 되면, 탁문수는 경제인이 아니라, 사회인으로 완전히 아웃이다. 살인교사미수, 그리고 잘하면 탁준기 건도 불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성공한 살인이다. 살인교사. 두 개면, 탁문수는 늙어서 죽을 때까지 감방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이 경우는 아무리 휠체어 타고 쇼를 한다고 해도, 판사가 봐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최악의 수로군. 탁문수... 웬만하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군. 평생 콩밥을 먹히는 수밖에’

    탁문수는 자신이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도망치려고 할수록 점점 더 죄어드는 올가미 덫 말이다. 한쪽 발이라도 자르고 도망갔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아예 덫을 망치려고 했으니, 그는 끝장이다. 탁문수의 계획을 안 나는 다음 날 즉시 박 비서를 불렀다.

    “박 비서.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하던 말 기억나?”

    “무슨 말... 말씀이십니까?”

    “왜 그거 있잖아... 흉기를 가진 적과는 절대로 싸우지 말라.”

    “아아 기억납니다.”

    그는 옛 생각이 났는지 피식 웃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매우 맞는 말씀이시지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흉기를 쓰는 사람과 싸우는 건 좋지 않습니다. 칼을 든 것이 허약한 노인이나, 가녀린 여성이라고 해도,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 게 정석입니다. 뭐 어떻게든 승부에선 이기겠지만 운이 나빠서 급소라도 찔리면 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에 그가 훈련된 전문가라면? 100% 도망가는 게 낫지요.”

    “음 그래... 역시 그렇구만.”

    나는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4년 전, 오현주를 구해줬을 때 말이다. 당시에 엉겁결에 흉기를 든 괴한을 메치긴 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박 비서에게 물었다.

    “자넨 어때?”

    “네?”

    “자넨 어떻냐고. 흉기를 든 적이 있다.”

    “저야 긴 손수건 정도만 있으면 일반인은 안전하게 제압 가능합니다.”

    “음... 그럼 상대가 전문가라면? 자네와 비슷한 거구에... 칼좀 써 봤다.”

    “그럼... 저도 쉽지는 않겠지요. 그 전문가의 실력이 얼마나 어떻게 되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목숨을 건 싸움이 될 겁니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아 그래... 그렇구나...”

    내가 갑자기 옛날 아버지 이야기에 흉기 얘기를 꺼내서인지, 박 비서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

    2020년 8월 24일. 결국 디데이가 되었다. 나를 태운 벤틀리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박 비서는 본래 벤틀리가 있던 자리에 벤틀리를 댔다. 나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박 비서가 내게 벤틀리의 키를 두 손으로 건네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나는 그 벤틀리 키를 받으면서 손을 살짝 들어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그 키를 허공에 두어 번 던지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오름’

    버튼을 누르고, 잠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는데, 그러던 그 순간

    ‘타닥타닥!’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거기에는 검은색 복면을 쓴 거한이 반짝이는 흉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같으면, 놀라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광경이지만,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숨겨두었던 테이저 건을 꺼내 그에게 쐈다.

    테이저 건은 발사되어 그의 가슴에 적중했고, 거한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부들부들댔다. 그를 내려다보는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연기한 경관은 내 양복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리됐습니다. 총경님.”

    ‘정리됐습니다. 총경님’

    무전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진짜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신현철 총경. 그는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시다시피 정리 되었습니다. 대표님.”

    방금 전 상황을 모두 보던 나는 CCTV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저 사람. 죽으면 안돼요. 혹시 자살할 수도 있는데”

    내 말을 들은 그는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아아 걱정 마십시오. 테이저 건에 맞으면 고통 때문에 혀를 깨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애들이 뒤처리도 잘 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의 말대로 나의 대역을 한 서준식 형사(나와 나이도 체격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다만 목소리가 너무 달라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그 거한의 복면을 벗기고, 역시 준비해뒀던 재갈로 그의 입을 봉쇄하고, 천천히 팔에 수갑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신현철 총경에게 물었다.

    “그럼 저도 내려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살짝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시지요.”

    나는 그래서 그와 함께 내 대역 형사가 불렀던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가서 보니 나를 공격하려던 그 괴한은 여전히 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힐끗 보니, 까마귀 꿈에서 봤던 바로 그녀석이다. 탁준기를 죽였던 바로 그 사람.

    ‘...역시로군.’

    나는 그것만 확인한 다음, 신현철 총경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잘 해주었으니, 그를 칭찬하는 기사 하나가 오라클 뉴스에 나갈 것이다. 나야 경찰 계급은 잘 모르지만, 승진을 할 일이 있다면 아마 그 윗자리는 웬만하면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경찰차 몇 대가 우리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쪽을 보다가, 그 옆에 하릴 없이 서 있는 박 비서를 보고 손짓을 했다. 그는 곧 내게 달려왔다. 나는 바닥에서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는 습격범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때? 어땠을 거 같아?”

    “아까 칼 들고 달려오는 폼 보니까... 싸웠어도 이겼을 것 같은데요.”

    “흐음. 언제는 노인이나 여자라도 상대하지 않는 게 좋다며?”

    그는 자신의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클래스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말했다.

    “흐음... 나도 아버지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도 웬만하면 흉기든 녀석이랑 싸우지 마. 너 앞으로 내 곁에 몇 년은 더 있어야 되는데, 혹시라도 칼 맞으면 되겠니.”

    박 비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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