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4화 (174/198)
  • # 174

    전면전(10)

    2022년 7월 4일.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결국 RMI과의 협상이 끝냈다. 최종가격은 2조 7210억. 다소 비쌌지만 나는 그 값을 치르기로 했다. 내게는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 동시에 나는 계속해서 크로우와 이원재의 도움을 받아 집요하게 탁문수의 뒤를 쫒았다. 쥐새끼가 어디로 도망갈지 미리 알면 잡는 것은 쉬우니까 말이다. 이어진 7월 20일.

    “대표님 부탁하셨던 자료입니다.”

    결국 크로우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매우매우 두꺼운 보고서를 들고 말이다.

    ‘인터폴도 이렇게는 못하겠군. 설마 지구 반대편 지브롤터까지 갔다 온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은 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크로우의 일하는 방식은 내가 물어볼 것이 못된다. 나는 그걸 받아서 읽어보았다.

    “흐음... 역시 그렇군요.”

    거기에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물들이 쓰여 있었다. 딥블루코퍼레이션. 대표 이름은 한성진이다. 나와 같은 한 씨. 빼도 박도 못하고 한국인. 나는 ‘한성진’을 포털사이트에 쳐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뉴스가 나온다.

    ‘성진은 흔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색어를 바꾸어보았다. ‘한성진, 수연’ 그리고

    “빙고.”

    기사 하나를 보았다. 2005년도. 옛날 옛적 기사.

    ‘수연생명 새로운 임원 및 이사 임명. 재무이사에 한성진 씨.’

    그런데 2005년도 이후로는 언급이 없다. 아마 도중 퇴사를 했거나 했을 듯하다.

    ‘수연생명 재무이사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박차고 나가서 어디서 난 돈인지 모를 돈으로 투자회사를 세웠는데 마침 수연건설이 구리광맥을 팔더라. 그래서 사봤더니 뙇! 구리가 산더미 같이 매장이 돼있었더라. 그래서 그 차익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서 딥블루코퍼레이션을 세웠다. 그러다가 옛 주인이 위기에 빠져 있기에 그거 도와주려고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했다. 2조 가까운 돈을 써서 의리를 지킨 것이다... 주인에 대한 충성 때문에.’

    라고 판사 앞에서 말하면, 자연스럽게 교도소로 가게 될 것이다.

    ‘좋아 그러면...’

    나는 크로우의 조사를 더 읽어보았다. 그런데

    ‘얼레?’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것도 있었다. 바로 액수.

    “7조나 있네요?”

    7조. 내가 생각보다도 많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탁문수가 내가 국내 제일의 부자가 된 것을 알면서도

    ‘그건 헛수고야’

    라고 큰소리를 칠만한 수준이다. 크로우는 덤덤하게 말했다.

    “돈이 오고간 것을 보면... 아마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79 페이지를 보시면 자세한 내역도 나와 있습니다.”

    지금 보니 이 회사는 다른 회사와 돈을 여러 번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들도 다 딥블루코퍼레이션처럼 헤쉬브라라던지, 팅커벨로라든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회사들과 돈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뿌리가 깊군.’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이것은 모두 범죄의 결과물이니까.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것을 뽑아낼 때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제 탁문수가 가진 모든 패를 파악한 나는 어떻게 해야 우리 회사에 가장 이득일지를 따져보았다.

    ‘지금 터트려? 아니야. 지금 탁문수는 한창 수연전자를 사들이고 있겠지? 다 사고 나면... 그 때 맞춰서 터트리자. 딥블루코퍼레이션의 자산에 대해 환수가 들어오게 되면 그 주식이 싸게 나올 수도 있어. 그것까지 싼값에 사들이면 우리 회사 위치가 더 공고해지겠지.’

    모든 정보는 수집되었고, 모든 수는 예측되었다. 나는 그에 맞춰서 장 부사장과 우리 회사 이사들, 그리고 이원재 대표와 대원일보 계열 언론사들, 그리고 오라클뉴스와 그것을 직통으로 받아보고 있는 주성원 대통령까지. 천천히. 천천히 내 장기 말들을 옮겼다. 그리고 7월 30일. 우리는 RMI와의 계약을 완료시켰다. 동시에 기사가 대문짝하게 났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RMI로부터 수연전자 지분 7% 매입. 대주주 지위에 올라서.’

    ‘투자의 귀재 한상훈 대표. 수연전자 지분 매입. 단순 투자인가? 적대적 M&A인가?’

    ‘재벌 지위를 위협하는 한상훈 대표. 수연전자 인수하나.’

    동시에 수연전자 주가는 급등했다.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한상훈 진짜 거물 다 됐네요. 수연전자를 노린다고?’

    ‘최근에 탁우경이 죽어서 경영권이 불안정 해졌죠. 그거 제대로 노린 듯.’

    ‘그런데 한상훈 중국 투자로 망했다고 하지 않았나? 돈이 어디서 나서 저걸 샀대?’

    ‘그러게요. 소문대로 완전 폭삭 망하지는 않은 듯?’

    대중들 중 몇몇은 내가 중국 투자로 망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8월이 넘어서면서, 몇몇 언론에서부터 기사가 나왔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대중국 투자로 40조 번 것으로 알려져.’

    ‘산 것이 아니라 팔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작년 금융위기를 타고 대박. 50조 대 수익’

    ‘극적인 반전. 한상훈 대표 대한민국 제일 부자 지위에 올라.’

    이 뉴스가 나가고 나니, 완전히 난리가 났다. 재벌 2세, 3세, 4세 줄 세우기였던 우리나라 부자 순위에 내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맨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와 진짜 대단하네요. 30대에 40조. 그것도 본인 혼자서 번 것이라고요?’

    ‘거의 미래를 미리 아는 수준이라던데, 그런 능력만 있으면 나도 할 듯.’

    ‘한상훈 전 처음 듣는데... 유명한 사람인가요?’

    ‘투자 쪽에서는 몇 년 전부터 거물이었는데...’

    ‘한상훈’이란 이름은 하루 종일 검색어 순위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최고 부자, 그리고 최고 유명 기업인이 된 것이다. 인터넷 모든 커뮤니티, 게시판, 채팅창이 모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 파워를 실감했다. 한상훈 국회의원이 실각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8월 10일. 이날 대주주 총회가 있었다. 전반기 실적 공시 겸사겸사 하는 대주주총회. 나는 1대 주주 자격으로 그곳에 참여했다. 탁문수가 여전히 부회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곳으로 말이다.

    *

    “건물 좋네.”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위로 ‘수연’이라는 붉은 색 로고가 보인다. 곁에 있던 장 부사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표님. 사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수연 말입니다. 계속해서 가지고 가실건가요?”

    나는 그 수연 로고를 보며 생각했다.

    “그거 참... 계륵이네요.”

    그건 그랬다. 수연전자. 아무리 그래도 창업 이후 40년 가까이 업력을 유지해온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연하면 전자제품은 인정해줄 정도. 그러니까 브랜드는 그냥 갖다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다. 하지만 그대로 수연을 유지하자니 탁씨 일가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게 된다. 탁준기 때부터 지지고 볶고 해온 나에게는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다. 나는 그 로고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 하도록 하지요. 일단 경영권부터 넘겨받고요.”

    “그러시지요.”

    나는 장 부사장, 그리고 박 비서와 함께 수연전자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홀에는 주주총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전반기 성적은 전체적으로 회복기에 있는 것으로... 중국 금융위기가 끝나면 더더욱 빨리 회복세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딱 빠르지도 않게, 늦지도 않게 온 듯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채로 그 자리에 난입했다. 내가 들어서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상석에 앉은 탁문수의 두 눈 역시 말이다. 나는 거기서 내가 할말을 바로 내뱉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수연전자 탁 회장님을 비롯한 대주주분들, 이사님들, 그리고 투자자분들. 기사에서 다 보셨겠지만 저는 RMI의 지분 7%그리고 시중에서 5%의 지분을 사들여서 이 회사의 1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이번 총회야 제가 없을 때 기획되었으니 딱히 할말이 없습니다만, 딱하나 1대주주로서 근시일 내에 임시주총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를 보는 남자가 내게 묻는다.

    “무슨... 목적으로요?”

    “탁문수 대표 해임을 동반한 대규모 인사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한 번 쓱, 이름표를 훑었다. 탁문수를 제외하고도 이사들 중 몇 명. ‘탁’으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더 있다.

    “탁 씨 성을 가지고 계신 분은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니까요. 몇몇 재벌들이야 피보다도 돈을 더 중하게 여기는 것 같던데...”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일부러 탁문수를 바라보았다. 사촌동생을 죽인 그를 말이다. 그는 눈을 크게 떴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는 그래도 피의 유대를 더 믿는 편이라 서요. 그렇게 아시고 괜히 잡음 나지 않게 알아서 사직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잘리는 것보단 스스로 그만두는 게 더 그림이 좋지 않습니까?”

    내가 그 말을 하는데, 듣다 못한 탁문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게 네 뜻대로 될 것 같아!?”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역시, 그보다는 내게 더 동조를 하고 있다. 이제 누가 더 강한지, 다들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를 보며 덤덤히 말했다.

    “네. 제 뜻대로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기서 저렇게 소리치고 있는 탁문수 대표님과는 다르게, 탁 씨 성을 가지지 않으신 분이라면,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저한테 충성하는 선택 말이지요. 다들 기사에서 읽어보셨지만 저는 40조대. 개인 자산으로 따지면 50조원에 근접하는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말에 다들 시선이 집중된다. 일반적으로 주주총회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돈의 무게를, 그 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여기서 과거로 돌아가 보지요. 4년 전에는 얼마였을까요. 4년 전. 평범한 회사원일 때 저는 총 자산이 마이너스였습니다. 얼마 안 되는 월급 열심히 모으긴 했지만...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었거든요.”

    나는 그 말을 하다가, 옛 생각이 살짝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 웃음기를 없애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대한민국의 최대 부자지요. 이 말은 모두 팩트입니다. 누구와 다르게, 저는 모두 진실만을 말했어요. 집에 돌아가셔서... 아니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들어서 검색해보세요. 2019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한 이후로 여러 번 인터뷰를 했으니 모두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는 이는 없다. 다들 내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나, 내 성대에서 무슨 울림이 떨리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빈손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온,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그걸 지키기만 해온 누군가와는 다르지요.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이 회사의 주인이 더 걸맞겠습니까? 누가 주주 분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주겠습니까? 누가 수연전자를 더 큰 성공으로 이끌겠습니까?”

    탁 씨 성을 가진 이사들조차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임시 주주총회를 열 것을 제안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탁 대표 해임과 대규모 인사가 안건인 주주총회를 말입니다.”

    그 때 개인투자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말한다.

    “좋습니다. 한상훈 대표가 우리 회사를 이끌어 준다면, 그게 훨씬 나을 것 같군요.”

    누구 하나가 치고 나오니, 그 옆의 다른 누군가도 손을 들며 말한다.

    “저도... 제 주식도 한상훈대표에게 의결권 맡기겠습니다.”

    두 명이 나오고 나니 이제 봇물 쏟아지듯 소리가 쏟아진다.

    “저돕니다.”

    “저도요.”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투자자들이 내 편을 들어주니 탁문수와 그의 일가친척들은 얼이 빠져 당황해 했다.

    ‘이정도면 뭐... 페이퍼컴퍼니에서 우호지분이 들어온다 해도... 가볍게 꺾을 수 있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면, 여러분들, 다음 번 임시주주총회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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