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전면전(7)
“우리 사이에 시덥지 않은 인사는 됐고. 일 이야기나 하지.”
탁문수는 내 앞에 앉아 손을 모은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일이라... 무슨 일 말씀이신지?”
“너와 나의 일 말이야.”
“...탁 회장님하고, 저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는 단도직입으로 내게 말했다.
“세무조사, 특검, 모두 다 네가 기획한 일 아닌가?”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치 챘나? 아니야 대통령이 입을 열었을 리는 없으니... 추측이겠지. 아니면 떠보는 것일 수도.’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에게 말했다.
“기획을 한다니요. 그런 건 나랏님이 주관하시는 일 아닌가요? 일개 투자회사의 사장인 제가 무슨 권한이 있어서 세무조사나 특검 같은 것을 기획하겠습니까?”
그 역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나도 놀라워. 네가 어떻게 그... VIP를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놀랍게도, 정권의 배후를 나로 생각하는 듯하다.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황인데, 정황만 가지고도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게 놀랍다.
‘하지만 뭐 내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겠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누굴 움직이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물론 조금 소망하기는 했지요. 수연그룹이 조금 곤경에 쳐했으면 좋겠다. 하고요.”
그는 째릿 하고 나를 쳐다본다. 나 역시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자회사에 광고 끊고, 유통거래 끊고, 섭외 물리치고, 네? 그런 회사를 어떻게 좋게 보겠습니까? 말했지 않습니까. 수연그룹이 인빅투스를 적으로 삼는다면, 저희 쪽에서도 수연그룹을 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라고요. 그래서 저는...”
나는 말 꼬리를 흐리다가, 말했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었죠. 나라에서 나서서 대기업을 견제해줬으면 좋겠다... 라고요. 그런데 마침 그런 일이 생기더군요. 우 연 찮 게.”
나는 일부러 ‘우연찮게’라는 말을 끊어 말했다. 절대로 ‘내가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다.’라고 말은 하지 않으면서, 조금 속을 비춰 보인 것이다. 탁문수는 내 말을 듣더니, 양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사과하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꽤나 놀랐다.
‘이 사람이 사과를 해?’
그 답지 않은, 놀라운 일이다.
‘특검이 무섭긴 무서웠나보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단지 아래 있는 애들한테 울림전자 인수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자네를 압박하라고 명령 했을 뿐이야. 그런데, 아랫것들이 너무 충성을 바치는 바람에... 그렇게 됐더군. 울림전자를 인수만 끝나면, 그런 건 풀어줄 생각이었어.”
살짝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확실히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검찰, 국세청은 무서운 듯 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아하.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아래애들 잘못이다. 게다가 인수전만 끝나면 풀어줄 생각이셨다? 흥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는 쳐다보았다. 그는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울림전자는 우리 수연전자와 시너지가 잘 나온단 말이야. 지금 거래하고 있는 것도 있고.”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네 압니다. 그래서, 수연전자를 사기로 했습니다. 통째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비밀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울림전자의 성장성은 저희 회사에서도 놓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투자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울림전자를 인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리 회사는 표면상으로는 아직도 인수전에서 발을 빼지는 않았다. 단지 수연전자가 입찰한 가격 1조 9000억보다 2000억 낮은 1조 7000억으로 불렀을 뿐. 결과를 아는 입찰이니, 사실상 빠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탁문수의 시선을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탁문수는 살짝 톤을 낮추며 말했다.
“그래 그건 이해해 하지만 한상훈 대표. 생각해봐. 우리가 이렇게 까지 얼굴 붉히고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서로 말 잘 맞춰서 나는 물건 좀 싸게 사고, 응? 그럼 내가 자네 회사에 광고 좀 더 붙여주고 그럼 좋지 않았겠어? 자네가 내 편을 들어줬으면, 우리 그룹은 전폭적으로 자네 회사를 도와줬을 거야.”
‘흥 웃기시네 도와주긴 누가 누굴 도와줘. 내가 너보다 더 부자란다. 애송아.’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때였다. 그가 말했다.
“자네 30조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중국에 직접 투자를 한 게 아니고, 자산에 매도를 쳤다고? 정말 대단해. 이제 공식적인 1위 부자가 되었는데 그 돈을 굴리려면 우리나라 재계의 도움도 받아야 되지 않겠나?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10조 정도 금액 차이는 나지만, 그래도 내가 대한민국 제일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잘도 알았군.’
사실 이건 막을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내가 40조원의 거부가 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점차 늘어났다. 지난 번 4명의 이사 외에 다른 이사들에게는 내가 직접 자료를 보여주기도 했었으니까. 게다가 근래에는 수익 실현 후 가지고 있던 외화를 한국 돈으로 바꾸기고 했다. 한 두 푼도 아니고 몇 조 단위로 말이다. 이러니 정확한 자료는 아니더라도 소문은 돌 법도 했다.
‘기사화되는 건 한 달 반 뒤인데... 역시 빠르긴 빠르군... 그나저나... 그래서 사과도 하고... 조금 굽히면서 들어온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그가
‘그건 내가 사과하지.’
라고 했던 것은,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여러모로. 이렇게 내 정체가 들킨 이상 나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더 강해졌으니, 협조적으로 나오시겠다 이겁니까? 아무리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하게 군다지만. 참 졸렬하시군요. 회장님.”
내가 대놓고 비난을 하니,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본래 모습 비슷하게 돌아와 말했다.
“네가 더 강해졌다고? 그건 아니지. 물론 현찰이 많은 건 알겠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자네는 아직 젊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수연그룹의 힘은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고.”
“아아... 그러시군요.”
내가 빈정대자 그는 내게 말했다.
“...좋아.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온다니 나도 어쩔 수 없군. 자네 말이야. 그 VIP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우린 VIP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특검, 세무조사. 둘 다 적당한 선에서 끝날 거야. 그걸로 내 발목을 잡으려고 했던 건 알겠지만 수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딱 거기까지라고 알겠어?”
그건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탁문수’라는 이름으로 미래 뉴스를 계속 봐 왔으니까. 수연그룹에 쏟아진 특검, 세무조사 폭탄은 몇 달 끌다가 벌금 몇 십억 내고 적당히 끝난다. 이번에도.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무대 위에 선 사람들. 검사니, 판사니, 국회의원이니, 국세청장이니 하는 사람들 모두 직간접적으로 수연그룹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럴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찍어 낼 수는 없었던 듯하다. 수연그룹의 불법승계는 구린 곳이 매우 많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난 정권 때 이미 ‘합법’으로 결론이 난 사안들이었으니까. 우리나라 법이라는 것은 한번 판결이 난 사안을 다시 들춰서 뒤집어엎기란 대단히 힘들다. ‘내가 손을 쓰지 않는 다면’ 말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탁 회장님은 검찰 조사 내용을 아신 다는 듯이 말하시는군요....”
그는 턱을 살짝 들며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치 검사도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듯이. 나는 그 면전에다 대고 한마디를 더 했다.
“내 지시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을.”
그러자, 그의 눈빛이 살짝 변한다. 몸수색은 이미 다 해놓은 상태, 나는 이제 완전히 대놓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지요. 수연그룹 역시 대단합니다. 정재계 곳곳에 별별 인맥이 잘도 퍼져있더군요. 암 세포 같이. 하지만 저는 그걸 잘라낼 힘이 있습니다. 검사? 무섭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검사가 무서운 이유가 뭐겠습니까? 털어서 먼지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반대로 해보고 검사는 털면, 뭔가 안 나올까요? 그 위에는 누가 있지요? 검사장? 그런 거? 심지어 대통령이 와도 저를 막을 수 없어요. 아시겠어요?”
그가 내 말에 압도되어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래서 콕 찝어 말했다.
“사랑하는 사촌동생이 말해주지 않던가요? 저랑은 싸우지 말라고?”
사촌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낯빛이 순간 변한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잘 들으셨어야지. 최소한 피해는 가던가. 아무리 나라고 한들 먼저 선전포고를 받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아니... 나라고 자네를 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니야.”
“저도 굳이 당신을 적으로 삼으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아니 그럼 왜. 울림전자 때문에 그래? 그건 내가, 내가 포기하지.”
“아니요. 울림전자 때문이 아닙니다. 40조가 있는데, 투자할 거야 세계에 널리고 깔려 있지요.”
“그럼 왜? 대체 왜 그러는데?”
그 말에, 나는 한 손으로 수도를 만들어서, 다른 손 손목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저를 속이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그걸 매우 싫어하니까.”
그거까지 보니, 그는 완전히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이 되었다.
“너 그거... 난 그걸...”
‘보여준 적은 딱 한 번 밖에 없지. 현실에서는 말이야.’
까마귀 꿈 때를 떠올리면, 탁준기는 탁문수에게 그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 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 어떻게 검찰을 구워삶은 건지... 기자들을 구워삶은 건지... 내가 완벽하게 틀어쥐고 있다고 생각한 정보를 다 알고 있었어.’
그 말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나를 적으로 돌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탁문수는 그렇게 답했었다.
‘흐음 그래? 한상훈이라... 재밌는 녀석이로군. 나도 한 번 만나봐야겠는걸.’
‘재밌는 녀석이라고? 하긴 내가 마법에 가까운 능력을 쓰는지는 모르겠지.’
탁문수는 내게 어림없는 변명을 했다.
“그건 그냥 내 손버릇이야. 단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네요.”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박 비서. 회장님하고 이야기는 끝난 거 같으니까... 밖으로 모셔다 드려라.”
그런데 그 때, 그가 말했다.
“잠깐.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뭐가 더 할 말이 있으신가?’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너 우리 회사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 건설, 전자. 그래서 우리 아버지 일을... 그렇게 퍼트린 거지?”
나는 그걸 들으며 생각했다.
‘...이것도 알고 있군. 심증만 가지고? 아니면 물증도 있나?’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그렇다고 치지요. 그래서, 제 ‘적’인 회장님이 뭘 하실 수 있습니까?”
“왜 우리 회사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바보짓이야 내 장담하지.”
“...왜지요?”
“우리 회사는 절대로 너희에게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주지 않을 테니까. 국민연금? 좋아. 국민연금까지 너희 편을 들어도 그럴 일은 없어. 알겠어? 굳이 쓸데없는 싸움에 힘 빼지 말자고. 네가 만약 끝까지 쳐들어오겠다고 한다면. 나도 수연그룹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응?”
그 말을 들은 잠깐 멈추어 섰다. 그의 위협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수연그룹의 진정한 힘’이라는 단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한 번 지켜보지요.”
“좋아 그렇게 끝장을 보겠다 이거지?”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 하는 거 봐서요.”
그 역시 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 내 결정에 따라 탁문수의 거취가 정해질 것이었다. 잘하면 제대로 상속세 내고, 수연그룹의 반쪽을 가지고 다시 회사를 경영하게 될 것이고, 못하면 최대 살인죄까지 씌워서 감방에 보낼 참이었으니까. 탁문수는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사장실을 나섰다.
분명 ‘당신 하는 거 봐서’라고 말을 했는데. 영 좋지 못한 시작이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