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0화 (17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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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면전(6)

    장 부사장은 내게 보고서를 건넸다. 나는 그걸 들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보고서에 적혀 있는 금액을 보기 전에, 장 부사장이 먼저 말을 해주었다.

    “수연건설 4.26% 8715억 원, 수연전자 3.66% 1조 1581억 원 보유중입니다”

    숫자 하나 틀리지 않고, 딱 그 액수가 보고서에 적혀있다.

    “그렇군요. 요새 수연 그룹에 뉴스가 자주 떠서 사기 좋았죠?”

    “네. 사장님.”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단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래요. 마침 사려고 했는데, 운이 좋았군요.’

    따위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장 부사장도 내 곁에 있은 지 벌써 4년이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 주식을 사고 기다리면, 호재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반대로 뭐 하나 사려고 하면, 악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 처음 일 이년정도야

    ‘참 우리 사장님은 운이 좋으시군.’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걸 4년 봤으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다 내가 기획하고 실행한 일이라는 것을. 애초에 이번에는

    ‘그래서 탁우경이 죽으면 어딜 공격해야하지요?’

    그렇게 예고를 하고 들어간 지라 장 부사장도 99.9%확신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대원일보를 시켜서, 그 기사를 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 일절 이야기 하지 않았고, 장 부사장 역시, 이에 대해서 내게 일절 묻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눈치가 좋았다. 내가 불편해할만한 것은 묻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요. 근데 두 주식 모두 3%이상 샀는데 혹시 수연건설이나, 전자 측에서 눈치를 채거나 하지는 않던가요?”

    “요새 거래량이 워낙 많아서... 그래도 주의 깊게 주시했다면 아마 어느 창구에서 대량으로 매집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겁니다. 우리인줄은 모를 거구요.”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인줄은 모를 것이다. 과연...?’

    “그래요. 어쨌든 5%까지는 무조건 사고 봅시다.”

    “네 사장님.”

    5%가 중요한 이유는 어떤 회사가 다른 회사의 지분을 5%이상 보유했을 때, 공시를 해야 하는 대주주 공시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적대적M&A를 할 때나, 일반 투자를 할 때나 중요한 기점이 된다. 왜냐하면

    ‘아무개가 이 회사 5%를 가지고 있소.’

    라는 것은 주가가 요동칠 수 있는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투자를 할 때는 대개

    ‘나 들어갑니다. 이거 산다. 앞으로 더 산다?’

    하고 대놓고 광고를 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왜냐하면 공시에

    ‘이 주식은 슈퍼개미 모모모 씨가 5% 산 주식이다.’

    가 나오면 다른 개미들이 ‘저 주식 좋은 주식인가 보다.’하고 우루루 몰려 들어서 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일종의 후광효과를 이용한 매매법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슈퍼개미들 뿐만 아니라, 워렌 버핏이나 그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들도 하곤 한다. 의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케이스와 반대로 적대적M&A를 할 때는 매우 조용히, 들키지 않고 주식을 사들이게 된다.

    ‘모모모 씨가 이 회사의 경영권을 노린다. 이제 5%샀으니 10%, 20%까지 살 가능성이 있다.’

    라는 이야기가 돌면, 개미고 기관이고 외국인이고 다 같이 사들여서 가격을 올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손 털고 나오면, 다른 사람들은 물 먹이면서 돈을 챙길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돈이 아니라 수연전자, 건설의 소유권이었다. 한 큐에 그랜드마스터까지 달려갈 수 있는, 소유권 말이다.

    “그래서 다른 대주주들하고는 이야기 해봤습니까? RMI하고는 접촉 했나요?”

    RMI란, 레드모스 인베스트먼트Red moss investment의 약자다. 한국말로 하면 ‘붉은 이끼 투자회사’정도 되는, 글로벌 헤지펀드. 회사가 위기에 쳐해 있을 때, 조용히 지분을 사들였다가 회사가 정상화되면 높은 값을 받고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수연전자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때 주가가 휘청하자 그 때 정말 이끼처럼 끼어 들어서, 7% 지분을 사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분 11%를 가지고 있는 수연건설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이 많은 대주주였다. 이 사람들은 까다로워서 수연전자에서 ‘이번에 탁준원 씨를 상무 이사로 정하려고 합니다.’라고 할 때

    ‘그 사람은 탁 씨 일가 잖소. 너무 친기업적인 사람입니다. 반대.’

    하고 반대표를 던지거나, ‘올해는 영업이익이 잘 나왔으니 배당 3%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할 때

    ‘3%는 너무 적소. 4%즘 합시다.’

    라는 식으로 태클을 걸기도 해서, 수연그룹에게는 짜증나는 존재였다. 하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내가 돈만 주면, 그들은 내 편이 되 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애초에 헤지펀드란 정말 도박판에서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이, 돈만 쫒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장 부사장은 그들을 두고 말했다.

    “일단 매수의사는 표시하지 않고 조용히 접촉 중입니다. 근데... 우리가 경영권을 노린단 사실을 알면 아마 매우 비싸게 부를 겁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래도 너무 비싼 값만 아니면 적당히 주고 사자 라는 마인드로 접근합시다.”

    “네 사장님.”

    내가 5%는 장내매수를 하고 RMI로부터 7%를 사게 되면 딱 12%로. 11% 수연건설을 제치고 대주주가 된다. RMI만 뒤로는 국민연금이 3%정도 가지고 있는데, 국민연금은 내 편을 들어주거나, 혹은 최소한 중립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하면 국민연금 이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니까.

    ‘국민의 피 같은 돈으로 만들어진 국민연금, 대기업 눈치 보지 말고 수익성에 집중해야.’

    정도로 기사를 써서 내면 대충 알아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어서 건설 쪽인데. 여기는 탁우경이 20%넘게 가지고 있으니... 상속세 납부가 시작 되어야 조금 더 공략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내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탁문수는...”

    그런데, 그 때

    ‘띠리리~ 띠리리~’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손짓을 들어서 장 부사장에게 허락을 구하고는 그걸 받아 들었다.

    “왜? 장부사장님이랑 이야기 중일 때는 웬만하면 전화 하지 마라 했잖아.”

    내 핀잔에 박 비서가 대답했다.

    “저 웬만한 일이 아니어서 그랬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혹시 장 부사장님도 들으셔야 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무슨 일인데?”

    “수연그룹의 탁문수 회장님이. 직접 오시겠다고 하는데요.”

    “직접 온다고?”

    내가 그 말을 하자, 장 부사장도 꽤나 놀란다.

    “네.”

    “언제?”

    “사장님 시간 되실 때 최대한 빨리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흠...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건가?’

    궁지에 몰려서 협상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협상을 해줄 생각은 없는데...’

    하지만 만나서 그가 쩔쩔 메는 모습은 보고 싶긴 하다.

    ‘와서 무릎이라도 꿇으면 나머지 회사에 대해서 조금 관대하게 처리해줄 수도 있고...’

    “음... 뭐 우리가 같이 사이좋게 점심 먹을 사이는 아니고... 내일 오후 세시 쯤 오라 그래. 밥 먹고 소화 다 될 때 즈음 말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들으셨나요?”

    “...네. 수연그룹 탁문수 회장님이 오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장 부사장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탁문수 회장이랑은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번 인수전이랑 관련이 있는 겁니까?’

    ‘탁 회장은 갑자기 왜 온다는 겁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텐데도 말이다. 하여간 인내심도 좋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그에게 말했다.

    “대기업 회장님이 직접 행차하시고, 참 급하긴 급하신가 봅니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단지

    “그럼 혹시... 내일 만남이 우리 회사의 기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일 관련해서만 물어왔을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 사람과 만나든 만나지 않든, 우리는 우리 할 일 합니다. 내일 만남은... 그야말로 사적인 만남이 될 거에요.”

    내 말에,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다음날. 오후 2시. 나는 박 비서와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그와 이야길 했다.

    “박 비서. 예전에 일 기억나? 왜 탁준기 왔을 때. 그 때 내가 말했었지. 오늘 우리 회사 찾아오는 녀석이 내 적이다. 라고 말이야.”

    분명 그 때, 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11시에, 아주 뺀질뺀질 하게 생긴 사람이 올 거야. 돈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쳐 바른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이 내 ‘적’이다.‘

    라고 말이다. 박 비서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기억 합니다. 사장님.”

    “오늘 올 사람도 내 적이야. 수연그룹 회장 탁문수.”

    “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어쩌다보니 일가와 척을 지어버렸네.”

    “무협지나 그런 것을 보면... 흔한 일이긴 하지요. 친척 간에 복수를 한다는 건.”

    “아아...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다.

    ‘그 친척끼리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좋은 사이 정도가 아니라, 탁문수는 탁준기를 죽인 장본인이었다. 탁문수는 탁준기의 복수 때문에 나와 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따져보면 오히려 내가 탁준기의 복수를 하게 된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참 탁준기하고는... 죽어서 까지도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는 군.’

    그는 이미 죽어서 저승에, 아마도 지옥에 있겠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다. 그의 사촌형 탁문수에 대해서 말이다.

    *

    이어진 2시 50분 경. 기다리던 전화가 울렸다.

    “사장님. 수연그룹 탁문수 회장님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몸수색 잘 하고.”

    사실 탁문수가 주머니에 칼이라도 들고 왔을 리는 전무했지만(그랬다간 이미 미래뉴스에서 나왔을 것이다. 탁문수 수연그룹 회장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사옥에서 한상훈 대표에게 흉기 휘둘러 라고 말이다.)그렇게 시켰다. 엿 먹이려고.

    ‘뭐야 이 뭔 개수작이야’

    ‘사장님 명령입니다.’

    ‘됐어. 김 이사 가만히 있게.’

    밖에서는 잠깐 높은 소리가 오갔지만, 잠시 후. 탁문수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비서와 함께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문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탁 회장님. 바쁘신 와중에 이런 곳까지 와주시고.”

    탁문수는 나를 찌릿하고 한 번 쳐다보았다. ‘바쁘신 와중’이라는 것은 그에게 들어간 특검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째려봐야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뒤에 서 있는 박 비서가 위압적으로 말한다.

    “제가 회장님 몸수색을 한다고 하니 같이 오신 수연그룹 이사님들? 이 싫어하셔서 고성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래. 조금 살살 해드리지.”

    “살살 해드렸습니다.”

    나는 탁문수를 가운데다가 놓고 그렇게 박 비서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대놓고 무시. 하지만 이어서는 나는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회장님.”

    이렇게 두고 보니, 예전에 탁준기가 우리 회사에 찾아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그 땐 지금 삼성동 사옥이 아니라, 예전 임대해서 살던, 논현동 사옥이긴 했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탁 씨가 나한테 한 대 얻어맞고, 와서 내게 말했었다.

    ‘휴전하자.’

    라고 말이다.

    ‘어째 사촌들이 하는 짓이 똑같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탁문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 나는 실실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저를 보고 싶어하셨다고... 무슨 일이 십니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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