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9화 (169/198)
  • # 169

    전면전(5)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박 비서.”

    “네 사장님.”

    “잠깐 들어와 봐.”

    “아 네”

    곧 박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안녕하십니까. 홍용표 병원장님 아내 분 되시지요? 근시일 내로 남편분이 곤경을 겪게 되실 텐데. 저희 쪽에서 어느 정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라고 쓰여 있었다. 박 비서는 그걸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이거 그 옆에 쓰여 있는 번호에다가 보내. 그리고, 답장이 오면 나한테 연결 시켜 주고. 아마... 답장은 이틀 뒤나... 삼일 뒤?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올 거야.”

    박 비서는 그 종이를 주머니에 집에 넣으면서 말했다.

    “네 사장님.”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대원일보는 초특급 특종을 기사로 써서 냈다.

    ‘탁우경 사망 논란. 그 감춰진 진실을 파헤쳐 본다.’

    거기에는 크로우가 두 달 동안 조사해온 수연병원 최상층 VIP실에 관한 정보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탁우경이 실제로 죽은 시간,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한 의사, 간호사. 수연미래전략팀에서 이것을 비밀로 붙이고, 그를 ‘살아 있는 것’으로 하게 된 이유 등등. 당연히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와 이거 실화냐.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둔갑시킨다고?’

    ‘이게 가능한 건가요? 근데?’

    ‘가능할걸요. 우리나라는 자가 호흡 못하고 심박 안 뛰어도 의사가 사망선고 안 해 주면 법적으론 죽은 거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론 죽었는데, 물리적으론 죽지 않은 상태를 만들 순 있어요.’

    물론 이 이야기를 예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거 예전부터 썰 돌더니 역시 그렇네요. 이거 원래 다들 쉬쉬하던 내용 아닌가요?’

    ‘솔직히 다 아는 내용인데, 수연그룹 파워가 쌔니까 다들 입 막고 있었던 거죠.’

    ‘수연 그룹 측에서는 탁우경 재산 좀 빼돌린 다음에 죽이려고 했을 텐데. 대원이 먼저 쳤네요.’

    ‘최근에 탁문수 집 수리비 탁우경 수표로 결재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뭘 의미하겠어요?’

    그런 내용도 있었다.

    ‘근데 대원일보는 대기업의 개 아닌가? 왜 이런 기사를 써준 거지?’

    ‘수성이랑 싸웠나봄. 아니면 미래그룹이나. 대원 일보 혼자서 작업했을 리는 없을 듯.’

    ‘요새 수연 세무조사에 특검에 이런 것도 터지고 누군가에게 밉보이긴 한 듯.’

    ‘누구한테 걸렸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대단히 잘 못 걸린 듯. 수연그룹 이대로 가다가 공중분해 되는 거 아닌지.’

    그 누구는 바로 나다. 대한민국, 정, 재계를 뒤흔드는 흑막. 나는 댓글에 쓰여 있는 대로 수연그룹을 반으로 쪼개 공중 분해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알짜회사들만을 챙겨서 가져갈 것이다. 탁 씨 성을 가진 사람은 내쫒고 말이다. 이 기사가 나간 뒤에 대중들의 시선은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탁우경의 주치의 홍용표 수연병원 병원장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는 이 보도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언론에 일절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나는 대충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나름 국내 서울대 의대에서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이것은 조 단위 돈이 걸린 사안이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아마 수연그룹에게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겠지.’

    크로우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이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수연그룹에서 거액의 금품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계약금 60억은 이미 현찰로 받았고. 그 뒤로 탁우경이 ‘병실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데 일 년마다 40억씩을 더 받도록 말이다.

    의사에게 주는 돈이 일 년마다 40억이니 아마 탁우경 지갑에서 1년마다 수천억씩은 어떻게든 탁문수 지갑에게 옮겨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봐서, 크로우에게 그것도 조사를 시킬 참이었다. 홍용표 병원장이 끝끝내 부인을 하면 말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 바로 다음 날, 박 비서가 나에게 말했으니까.

    “저 그 홍용표 병원장 부인 분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냐고 하시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화 연결 해줘.”

    “아 네. 사장님. 제가 들어가서 연결 시켜드리겠습니다.”

    “응? 그래.”

    곧 박 비서가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왔다.

    “통화 버튼 누르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나는 그를 슬쩍 쳐다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녀는 꽤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 이틀 전에 연락주신 분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죄송한데 혹시... 뭐 하시는 분이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꽤나 위축이 되어 있는 듯 했다. 그도 그럴 만도 하다. 세간의 이목이 바로 자신의 남편에게 집중되어 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그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남편 분이 살아 나냐. 못 살아 나냐 그거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금 뉴스에는 구체적인 금액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60억 계약금 받은 거, 그것도 이미 언론사는 정보를 쥐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풀자고 하면 그거 자금추적 들어가는 것도 금방입니다.”

    내 말에 그녀는 벌벌 떨며 말했다.

    “저 60억 아니에요. 40억... 40억으로 받아서 가지고 있는데...”

    크로우는 홍용표 병원장이 압구정동 오피스텔에 20대 후반의 젊은 애인을 두고 있는 것까지 조사를 해놨다.

    “아아 그거 20억은 스폰녀에게 갔을 겁니다. 거기도 찾아 볼 거에요.”

    “스폰녀요?”

    “네. 남편 분은 40억 받으신 걸로 되어 있으시지요? 그거 원래는 60억입니다. 파보면 다 나올 거고요.”

    “그... 그래요?”

    이 기점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변한다. 공포에서, 분노가 살짝 뒤섞이면서 묘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네 압구정동 블루빌 오피스텔 405호. 거기 세입자 젊은 여성분이시지요? 그 분 단순한 세입자가 아니고. 애인입니다. 남편 분 애인. 거기 있는 금고에 20억 따로 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누구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게 정말...?”

    “네 찾아보세요. 오피스텔 투자는 부인분이 계획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네 맞아요. 이 냥반을 증말.”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 오피스텔에 쫒아가 젊은 여자 머리 끄뎅이를 잡아 뜯을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는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아 너무 흥분 가라앉히시고. 남편 분이야 어쨌든. 이번 일이 아드님이나 따님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아들은 하버드, 딸은 스탠퍼드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기본 재력이 되시니까. 문제는 없겠지만. 이번 일은 조 단위 일입니다. 남편 분이 혹시라도 배임이나 위증으로 고소라도 당했다간 미국에 보낼 학비를 댈 수 있으실지...”

    “어머머 조 단위라니요. 우리 이는 그냥 그쪽 이야기를 들은 것 밖에 없어요.”

    “네 압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게 그런 식이니까요. 지금 남편 분 덕분에 수연그룹이 수천억 원씩 세금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

    그녀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미 정황은 다 드러났고, 곧 자택에 검찰이 들이치는 것도 금방입니다. 아시잖아요. 지금 수연그룹 검찰조사에, 세무조사 양쪽으로 맞고 있는 거. 남편분 설득해서, 자수하게 하세요. 아마 그편이 대우는 점잖게 받을 겁니다. 형도 양형 받을 것이고요. 수연그룹의 압박에 의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요.”

    “그러면... 그렇게 될까요?”

    나는 칼같이 대답했다.

    “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잘 모른다. 법적인 일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크로우가 한두 달 혹은 두세 달 조사를 더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내게는 병원장이 자수를 해주는 것이 제일 깔끔하다. 그쪽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부인하면, 나는 대원일보와 크로우를 통해서 몇 번 더 디테일을 읊어줄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볼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자수. 아니면 인터넷에 뉴스 도배 되시는 겁니다. 대원일보도 제가 움직이고 있는데, 대원일보 영문판 나오는 거 아시죠? 미국에...”

    “아이구 알았어요. 죄송해요.”

    그녀는 아들딸 이야기가 나오려고 치면, 바로 방어적으로 말이 바뀌었다. 크로우의 보고서를 받고 대충 예견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럼. 일주일입니다.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저도 기자들 입을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네.”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나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휴대폰은 꽤나 손을 탄 것 같은, 구형 휴대폰이다. 나는 그걸 들어올리며

    “이거...?”

    박 비서를 보았다. 박 비서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나는 그 휴대폰을 그에게 넘기며 말했다.

    “아아 그래. 그럼 나는 이거 본 적 없는 거다?”

    그는 그걸 자신의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이 날 이후로 계속해서 탁우경 사망 진실 공방전은 이어져 갔다. 용감한 언론 몇몇은 후속보도를 냈고, 수연그룹에서는 명예훼손이다. 편파보도다. 하는 언론 플레이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내 눈에는우스운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내게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내 눈을 피해갈 수 없다. 이틀 뒤, 결국 홍용표 병원장은 자수를 하고 나섰다.

    ‘의사의 양심을 속인 것은 죄송하다. 하지만 수연병원의 병원장 일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 수연그룹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는 식으로. 수연그룹을 나쁜 놈 만들어가면서 최대한 꼬리 자르기를 했다. 집에서 아내 분한테 어지간히 까여서 그런지, 표정이 정말 좋질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탁우경이 진짜 사망한 시간, 사인, 그 때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 까지 해서. 탁우경 사망의 내막을 토해냈다.

    주치의가 언론에다가 대고 ‘환자가 죽었다’라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에 그것은 공개 사망선고가 되었다. 이제 탁문수를 비롯한 상속자들은 탁우경의 재산 10조의 절반인 5조원에 달하는 돈을 상속세를 내야만 했다. 중국 금융위기 때문에 세수부족으로 고민을 하고 있던 차. 주성원 대통령과, 국세청은 발 빠르게 움직여줄 것이다.

    탁우경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던 수연건설과, 수연전자 주가는 올랐다가 내렸다가, 요동을 쳤다. 탁우경의 죽음이 호재인지 악재인지 잘 몰라서. 하지만 나는 이미 탁우경이 죽으면 탁문수는 상속세로 건설, 전자 지분을 처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요동치는 주식을 저가 매수했다. 하나 둘, 내 계획대로 진행되어가는 수연 분해 작전을 바라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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