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8화 (168/198)

# 168

전면전(4)

눈이 뜨겁다. 나는 눈에 손을 가져가 비비고 다시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거미줄보다도 더 복잡하게 생긴, 도식표가 있다. 이것은 수연그룹 지분 관계도이다. 수연전자, 수연화학, 수연생명, 수연건설 등등 앞에 ‘수연’이 붙어 있는 회사 50개가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이어폰처럼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되어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를 만큼. 나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서 가장 약한 고리가 어디일까요?”

옆에 있던 장 부사장이 대답한다.

“딱히 약한 고리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이쪽 전자, 화학, 생명, 건설, 조선. 그룹의 핵심 기둥이 되는 쪽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조밀하게 짜놓은 터라 어딜 치고 들어간다 한들 비슷하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흠... 쉽지는 않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는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꼼수를 쓴 것이라... 매우 안정된 구조를 가지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자본이 들어와 회사 경영권에 손을 뻗치려고 해도, 다른 쪽에서 합심해 막아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40조를 전부 쏟아 부으면 이기기야 이기겠지만.’

물론 내가 무대포로 치고 들어가면 어디고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연 그룹의 쌍두마차인 수연화학, 수연전자 둘 다 40조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역시, 상처뿐인 승리가 남는다. 사는 과정에서 가격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의 소유권을 가지게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주주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탁문수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질문을 바꿔보았다.

“그러면 여기서 말입니다. 탁우경 현 회장이 사망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디 약해지는 곳이 있을까요?”

내 질문에 장 부사장의 눈빛이 변한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과 도식표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수연그룹은 크게 두 줄기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인 탁우경이 소유하는 회사, 그리고 아들인 탁문수가 소유하는 회사. 본래는 탁우경이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탁문수가 지배하는 회사의 지분이 점차 높아져 갔다. 그 와중에는 말도 안 되는 전환사채, 주주가치를 대놓고 훼손하는 배임 수준의 합병, 그리고 당연히, 불공정거래인 일감몰아주기 등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지난 정부에서 모두 눈감아주기가 실현되어서, 탁문수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든 수연그룹의 절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일은 계속해서 진행되어서 탁우경 회장이 쓰러진 직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탁우경이 죽으면 그것도 못하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장 부사장이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되면 수연건설을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연건설. 수연전자 지분을 23%가지고 있는 회사이자 탁우경이 대주주인 회사다.

“탁우경 회장이 죽었다고 하면, 상속을 받게 되는 탁문수는 그것을 현금으로 내거나, 혹은 주식으로 내야 합니다. 그런데 현금은 낼 재간이 없으니 주식으로 내야하는데, 본인이 많이 가지고 있는 수연생명 지분으로 내지는 못할 겁니다. 탁우경이 수연건설을 통해서 수연그룹을 지배했다면, 탁문수 본인은 수연생명으로 그룹을 지배하도록 설계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도표의 화살표들을 가리켜가며 말했다.

“그렇군요. 만약에 우리가 적대적 M&A를 진행한다고 할 때, 탁우경이 죽게 된다면 탁문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는 거지요? 건설-전자냐 아니면 생명-화학이냐 말입니다.”

“네 사장님.”

“거기서 탁문수는 생명과 화학을 지키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탁문수는 꼼수를 써서 수연생명을 물려받았고, 그로인해 생명과 화학 쪽에 그룹의 무게를 그쪽으로 많이 옮겨 놓았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탁우경이 가지고 있던 건설 쪽을 매각할텐데 그러면 건설과 전자 쪽에 지분율이 낮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지금부터 이사들 시켜서 수연건설과, 수연전자. 이쪽을 사들이도록 해보지요. 조용히 말입니다. 동시에 수연건설과 수연전자의 다른 대주주들과 이야기해보고요.”

“네 사장님. 그런데.... 이건 모두 탁우경 회장이 죽었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입니다. 그 분 최근 기사에서는 누운 상태로 영화도 보고 한다던...”

나는 그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 사람 죽었습니다. 이미.”

“네에?”

“며칠 지나면 아시게 될 거에요.”

“그게 사실입니까?”

나는 그의 그 말을 두고 잠시 멈칫했다. ‘사실’이라는 그 때 그 때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실은 진실에 가깝지만 부정당하고, 어떤 사실은 거짓에 가깝지만 진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로 만들어지게 해야지요.”

*

2021년 3월. 나는 전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먼저 가장 분명한 방법으로 수연건설과, 수연전자의 주식을 매입했다. 아주 티가 나지 않게, 주가를 올리지 않는 선에서, 신고 요건인 5%에 만족하지 않는 수준에서 아주 조금씩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면서 한동안 묵혀놓았던 내 개인계좌도 움직였다.

나는 한상훈으로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오너로서도, 두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수연전자 역시 중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주가가 꽤 내려간 상태였다. 대기업이여서 조금 영향을 덜 받은 것일 뿐, 연중으로 보면 꽤나 낮은 가격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사는데 별 부담은 없었다.

‘반격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기 신경 쓰지 못하도록 교란작전도 펼쳐놔야겠지?’

나는 오라클 뉴스를 통해서 꾸준히 사설도 써서냈다.

‘대기업의 불법상속. 언제까지 눈감아 줄 것인가. 적폐 청산해야.’

대놓고 수연생명, 그리고 탁문수의 꼼수 상속을 겨냥한 글로 말이다. 수연그룹에서도 오라클 뉴스의 광고를 끊었으니, 그대로 되돌려 준 셈이다. 물론 수연그룹에서야

‘오라클 뉴스? 뭔 개가 짖나 했더니 완전 애완견이잖아?’

하고 말테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이 제일 유심하게 보는 뉴스라는 것을 말이다.

*

이어진 4월. 꾸준하게 올라온 오라클 뉴스의 사설에 결국 청와대에서 응답이 왔다.

‘수연생명 불법 상속 다시 캔다. 특검 실시’

‘수연건설 세무조사.’

그것도 두 개나. 탁문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사실 그에게 우리 회사와의 싸움은 거의 자존심 싸움에 가까웠다. 울림전자에 돈을 조금 더 쓰고 마는 그런 수준의 싸움.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특검은 탁문수의 위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고, 세무조사도 한 번 맞으면 회사 자체가 휘청이는 큰일이었으니까.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대체로 반응은 이랬다.

‘역시 주성원 대통령. 잘하시네요. 적폐청산하고 정의로운 경제구축합시다.’

‘수연생명 너무 쉽게 넘어갔었죠. 이번에 제대로 조사해봐야 합니다.’

‘수연건설도 유명하죠. 단가 조정하고 남은 돈 회장님 차명계좌로 받는다는 루머. 업계 사람들은 다 알아요.’

주성원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이

‘뭐지? 탁문수 부회장 주성원 대통령에게 밉보였나?’

‘본래 정권마다 때려 맞는 기업들이 있잖아요. 고진용 때는 태수그룹이 쳐 맞았고, 지난 번 박형준 때는 수성그룹이 대법원 왔다갔다 했고, 이번에는 수연인가보죠.’

‘그래도 뭔가 미운털이 박힌 게 있나보네. 대선 때 돈 안 줬나?’

그런 말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에이 주성원 대통령님이 얼마나 청렴한 분인데. 수연이 쳐 맞을 만하니까 쳐 맞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여론이 움직였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정도면 주성원 대통령이 의리는 지켜줬다고 봐야겠군. 아니면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두려워하는 건가?’

어느 쪽이건 간에, 잘 됐다. 이것으로 한결 수연공략이 쉬워졌음은 확고하니까. 역사를 되짚어 봐도 그렇다. 예전 군부독재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군부독재 정권 이후로도 정부에 밉보이는 대기업들은 모두 탈탈 털렸다. IMF시절 때는 정부에서 보조지원금을 받느냐 마느냐에 따라 살아남느냐 망하느냐 차이가 갈리기도 했었고 말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세무조사를 맞아 떡락한 수연건설의 주식을 싸게 사들였다.

‘탁준기가 살아있다면... 아주 잘한다고 칭찬해줬겠군.’

악재 터트리고, 싸게 주식 주워 담기. 내 호적수였던 탁준기가 주로 써먹던 방법이다. 탁준기도 아마 이걸 그렇게 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사촌 형인 탁문수를 잡아먹기 위해서. 그걸 원수인 내가 대신 한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긴 하지만. 삶은 본래 이렇게 아이러니한 법이다.

*

5월. 수연건설과 수연전자 매입이 진행되고, 수연생명 특검이 진행되는 와중에 나는 또 하나의 폭탄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사장님. 부탁하셨던 자료입니다.”

크로우에게서 두 번째 자료를 받아서 말이다.

“수고했어요. 크로우. 요새 너무 바빠서 같이 치킨조차 먹지는 못했지만. 다음번에는 제가 제대로 식사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별말씀을.”

두 번 째 자료는 탁우경의 주치의인 홍용표에 관한 내용이었다. 본래 첫 번째 레포트에도 그가 어떻게 탁우경의 죽음을 위장하고, 비밀을 유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나와 있긴 했지만, 나는 크로우에게 그를 한 번 더 파보도록 시켰다. 확실히 기사를 내려면 이 사람을 공략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레포트에는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였던 그가 어떻게 학교를 떠나 수연의료재단 병원 병원장으로 취임했는지, 가서 무슨 업무를 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예전 교수 시절에 어떻게 전공의들을 착취하고 금품을 챙겼는지, 룸싸롱을 어디로 몇 번을 갔는지 까지도 조사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종합한 뒤. 전화를 걸었다. 이 모든 것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오랜만입니다. 이원재 대표님.”

“아 예 한 대표님.”

그런데 내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가 떨떠름 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음... 여전히 제가 망한걸로 알고 계시군요?”

“아... 아니요. 무슨...”

그런데 그 부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곡을 찌른 것만 같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요. 어찌되었든. 이번에도 제가 이원재 대표님 힘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용은... 탁우경 사망에 관한 기사입니다.”

“네에?”

그는 깜짝 놀란다.

“네 물론 수연그룹에 엄청난 폭탄이 되는 기사입니다. 하지만 이건 팩트입니다. 지난 번 의뢰들처럼. 제가 확실한 자료만 추려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팩트라도 해도 그건...”

그 역시 수연그룹에 대놓고 엿을 먹이는 건 두려워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게 성공하면, 수연그룹 절반은 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원재 대표님 아버님을 직접 찾아뵙고 설득이라도 해드리지요. 이원재 대표님이 대원일보의 차기 대표감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걸 냈다가 잘못하면 저는...”

“이원재 대표님. 이미 우리는 같은 배를 탔어요. 그리고 바람은 우리 쪽을 향해 불고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수연그룹, 특검에 세무조사 들어간 거. 순풍이 부는데 여기서 내리실 겁니까?”

“......”

그는 잠시 말을 잊고 고민했다. 아마 ‘한상훈은 망했다.’라는 루머에 아직도 영향을 받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원재 대표님 제가 선택권을 하나 드리지요.”

“무슨...?”

“저를 믿고 여기서 기사를 내주시던가. 아니면, 제가 내드리는 팩스를 받고 기사를 내주시던가. 기사를 내지 않는 옵션은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에요.”

“네에?”

“아마 보시면 알겁니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서랍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다.

‘대중국투자 수익 현황 보고.’

“이걸 보시면 100% 제가 원하는 기사를 내주실거예요.”

40조원의 수익이 나와 있는 바로 그 문서다. 나는 그 문서를 든 채로 말했다.

“선택입니다. 성경에 예수님도 그러셨다고 했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해서 자신을 보지도 않고 믿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고, 굳이 허리에 손을 넣어보고 믿는 사람에게는 작은 상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팩스 보내요? 말아요?”

그는 고심고심하다가, 결국 말했다.

“그냥. 믿겠습니다. 소스 보내주시는 대로 써서 내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제가 내용 추려서 이메일로 보낼 테니. 빠르게 써서 내보내주세요.”

“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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