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7화 (16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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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면전(3)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회의실. 좌우에 쭈욱 길게 이사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우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수연그룹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먼 자리에 앉아 있는 최 이사가 내게 묻는다.

    “저... 대표님. 전쟁이라니요?”

    “물론 총성이 오가는 전쟁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 이권을 두고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다. 그런 말입니다.”

    “수연그룹과요?”

    “네.”

    역시 먼 쪽에 있는 권이사도 손을 들며 말한다.

    “수연그룹과 전쟁이라니... 이건 완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아닙니까? 될 수 있으면 피해야...”

    뭐 당연한 반응이다. 이 테이블 먼 쪽에 앉아 있는 이사들은 여전히, 우리 회사에 40조원 가까이 되는 현금이 쌓여 있는 줄 잘 모르고 있었다. 그건 회사 내부에도 절대 비밀로 하도록 해두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네에?”

    “오늘 창해식품하고 OH엔터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수연그룹 쪽 거래처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기로 했다고.”

    내 말에, 테이블 먼 쪽에 있는 이사들은 물론 가장 가까운 쪽에 앉아 있는 장 부사장, 강 이사, 김 이사, 정 이사도 나를 쳐다본다. 우리 회사에 40조원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놀라운 뉴스란 소리다. 이사 중 누군가가 읊조린다.

    “대체 어째서...”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와 탁문수가 개인적인 문제가 있다가, 울림전자 인수전에서 만나서 이렇게 기업 대 기업으로 마찰을 겪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에 대해서 말을 하는 대신 강 이사에게 손짓을 했다. 강 이사는 들고 있던 들고 있는 자료를 옆으로 돌린다. 자료의 제목은

    ‘대중국투자 수익 현황 보고.’

    이다. 나는 멀리 앉아 있는 이사들에게 말했다.

    “일단 이거 읽어보시고...”

    내 곁의 네 사람 말고, 그 밖의 멀리 앉아 있는 이사들은 아까 수연그룹과의 전쟁을 알았을 때보다도 더더욱 놀란다.

    “에에?”

    “이거 설마... 진짜...”

    이제 살짝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 ‘40조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해 볼만 한 싸움’이라는 생각.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오너의 적은 지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이사님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수연도 마찬가지. 탁우경 11조. 탁문수 3조원 밖에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지고 120조의 그룹 전체를 움직이고 있죠. 물론 친족들, 그리고 오래된 가신들 다 합쳐서 20조는 넘을 테지만. 하지만 40조원이라면 한 번 승부를 봐 볼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말에, 이사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른 이사가 손을 들며 말한다.

    “그런데 대표님 사실. 이 돈이면 해외 투자를 하거나 해도 되지 않을까요. 굳이 수연 그룹과 갈등을 빚어가면서 까지. 전쟁을 하시려는 의도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이 일련의 과정 중 최종 목적에는 국내 상장사 중 10조를 넘어서서 20조 30조 50조 이상 되는 회사를 사들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그랜드마스터를 넘어서, XXX로 이어지는 등급의 미래뉴스를 받아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그걸 원하니까요.”

    내 단순한 답변에, 장 부사장이 이어 나를 보조 해준다.

    “아무래도 저희도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 하는 게 유리하기는 하지요. 정보를 얻기도 쉽고, 정부와 소통도 가능하고 하니까요. 저희가 현금 40조로 국내에서 몸집을 키운다고 하면... 수연 그룹이 아니더라도 다른 재벌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나와 장 부사장이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이 둘이 우리 회사의 핵심 결정을 내리는 두 사람이니까. 내가 말하고 장 부사장이 동의하지 않아 일이 성사되지 않거나, 장 부사장 의견에 내가 거절해서 진행되지 않는 일은 있어도, 나와 장 부사장이 공동으로 하자고 하는 일이 멈추어진 적은 없다.

    애초에 100%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래 뉴스를 알 수 있는 나,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연륜의 장 부사장, 두 사람이 인빅투스의 좌뇌와 우뇌 역할을 하는 그런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사님들에게 수연그룹의 문제점들, 지배구조상 취약점이나, 재무건전도, 대중국투자 현황들을 조사해오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수연그룹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서, 그걸 끊어버리고 저희 것으로 만들어 내고 싶거든요. 그러니 가서, 조사해오세요. 수연그룹의 모든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네 사장님.”

    나는 고개 숙여 인사 하는 이사들을 보며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그리고 제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최대한. 이 자료. 이 자료에 쓰여 있는 사실은 비밀로 합시다. 적들이 우리를 깔볼 수 있게. 그래야 진짜 전투에 들어갔을 때 유리하게 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복창했다.

    “네 사장님.”

    *

    그렇게, 나는 이사들을 불러모아 수연그룹과의 전쟁 준비를 시켰다. 하지만 이어진 2월 한 달간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창해식품, OH엔터테인먼트에 이어서 오라클 뉴스에서도 연락이 왔다.

    “대표님. 수연증권에서 배너 광고 계약을 이번 달로 종료하겠다고 해서... 그래서 단순히 조건 문제냐고 물었더니. 저희 회사가 인빅투스 자금을 받은 게 문제라고 하네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아아 그렇군요. 마침 송원양조 쪽에서 신제품 밤막걸리 광고를 해줄 곳을 찾고 있다고 하니까. 제가 그쪽에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빈 배너자리는 그 것으로 대체하세요.”

    “네 사장님.”

    그리고 얼마 뒤, 이번엔 블루E&M에서도 연락이 왔다.

    “대표님 저희 방송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저희 BJ들 방송 전 나가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광고 다섯 개 중에 세 개가 연달아 끊겼습니다. 그런데 광고주들이 하나같이 인빅투스 이야기를 해서... 이 건 저희도 문제지만... BJ들 수입 분배에도 들어가는 사안이라... ”

    “아아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OH엔터테인먼트에 연락해서 들어오는 광고 블루E&M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해놓겠습니다.”

    “아아... 네... 그럼 일단 대표님만 믿고 BJ들에게 말해놓겠습니다. 대표님.”

    “그래요. 길게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장 부사장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저 사장님. 울림전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수연전자가 인수 의향을 표해왔다고 합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네. 그래서. 저희 회사 인수에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대략 1조 6천억 언저리를 써서 사려고 했는데... 수연전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그쪽에서는 얼마나 써서 낼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나는 알고 있다. 1조 9000억.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더 써서 내보는 걸로 하지요.”

    “네 사장님. 그런데...”

    장 부사장은 그 답지 않게 내 말에 토를 달았다.

    “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수연전자가 마음먹고 울림전자를 인수하겠다고 하면... 저희가 막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써서 낸다고 해도... 어려울 겁니다.”

    “어째서요?”

    “울림전자가 매출구조를 보면 수연전자에게 물건을 공급하고 올리는 매출도 꽤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여기서 우리 회사가 인수를 한다고 하면...”

    “그러면 수연전자에서 그 공급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장 부사장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애초에 지금 들어와 있던 광고계약들도 끊는 판인데, 탁문수를 대놓고 물 먹인 회사가 수연전자에 납품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울림전자가 사용하는 소비재를 납품 받는 곳이 모두 수연그룹과 다 연관이 있어서... 그쪽으로 압박이 오면 울림전자의 이익률이 훨씬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장 부사장 말을 듣고 생각했다.

    ‘한 2조 쏟아 부어서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이러나저러나, 탁문수나 수연전자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1조 9천억도 남는 장사니까 그렇게 베팅을 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수연전자에게 국한 된 일일 수도 있다. 우리 회사가 2조원을 쏟아 부어서 그 회사를 산다고 한들, 그 가치는 그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다. 수연 그룹 때문에.

    ‘돈을 부어서 인수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상처뿐인 승리가 될 거야.’

    내가 사려는 것은 일시적으로 가격이 싸진, 전망 좋은 회사다. 수연그룹 때문에 가격도 비싸지고 전망도 어두워진다면 굳이 살 필요는 없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해놓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인수전에서 발을 빼지는 말고. 계속해서 타진을 하는 것으로 해두세요.”

    장 부사장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네 사장님.”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도 살짝 표정이 어둡다. 지난 번 이사 모임 때야 내편을 들어주었지만. 그 역시 일편

    ‘이 싸움은 우리에게 불리하다.’

    혹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건 그럴 만도 하다. 지금까지는 계약 끊기고, 회사 인수도 어려워지고. 여러 모로 우리 회사가 밀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표정을 모르는 척하고 보냈다. 나에게는 40조의 돈과 더불어 미래를 아는 힘, 거기에 현재의 정보도 마법 같이 알아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2월 내내, 겨울이 끝나갈 때까지 우리 회사는 수연그룹의 공격을 방어하고 수습을 하느라 바쁘게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어진 3월. 봄. 꽃샘추위가 가실 때 즈음. 크로우가 돌아왔다. 수연그룹의 회장인 탁우경 회장의 생사에 관한 비밀을 가지고 말이다.

    *

    3월 모일. 나는 회사에 출근 하자마자, 박 비서를 통해 장 부사장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그를 앞에 두고 먼저, 이사들 일을 물었다.

    “그래서, 수연그룹 정보 수집은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아... 네. 사장님. 딱히 취약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일단은... 지속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울림전자에게서 연락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이제 슬슬 인수희망가를 확정해달라고...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예전에 말입니다. 이 울림전자를 두고, 수연그룹 부회장 탁문수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 탁 부회장이랑 직접이요?”

    “네.”

    내 말을 들은 그는 꽤나 놀랐다. 내가 탁문수와 전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와 탁문수의 접점이라고는 가든 로얄 밖에 없었다. 가든 로얄은 존재 자체가 절대 비밀이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시에도 탁문수가 그러더군요. 저한테. 우리 회사가 울림전자를 사봐야 평범한 투자 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네 수연전자가 울림전자를 사면 시너지도 나고 좋다. 라고요.”

    장 부사장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탁문수 말이 맞아요.”

    “네?”

    “수연전자와 울림전자가 만나면 시너지가 나겠지요. 우리 같이 단순 투자회사가 사서 운영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을 겁니다.”

    “아... 네...”

    장 부사장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적으로 상정한 수연그룹의 말을 칭찬하니, 조금 묘한 느낌이 드나 보다.

    “그래서 말입니다. 장 부사장님.”

    내가 그의 호칭을 부르자, 그가 고개를 숙여서 대답한다.

    “네. 사장님. 말씀하십시오.”

    그 때, 나는 그에게 본심을 말해주었다.

    “울림전자는 수연전자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그 수연전자를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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