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전면전(2)
나는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고, 자켓을 걸쳤다. 아영이가 넥타이를 들고 와 내 앞에 선다. 내가 고개를 숙이니, 그녀가 그걸 내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오빠 오늘 왠지 기합이 들어가 있네?”
“그래?”
내 말에, 아영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응. 나는 딱 보면 알아.”
나는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중요한 일이 생겼거든.”
“오빠는 원래 매일매일이 중요한 사람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번엔 진짜 중요한 일이야.”
내가 조금 진중한 말투를 하자, 그녀의 표정이 살짝 변한다.
“그래? 흐음...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을까?”
“도와줄 거?”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잠깐 미국 좀 갔다 올래?’
혹시 탁문수가 내 지인들에게 이상한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해서 생각한 말이었다. 나야 나 스스로 24시간 매일 인물검색을 돌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저런 일이 있는 다고 해도 미연에 방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영이를 비롯한 가족들, 지인들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길가다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고 해도 뉴스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인물검색을 한다 해도 나오지도 않고.
“말해 뭐든. 뭐든 해줄게.”
나는 아영이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 것.”
“에에?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내가 애도 아니고.”
하지만 탁문수는 탁준기와 달리 본래 깔끔한 성격. 주변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굳이 미국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새 이상한 사람들이 많잖아. 밤늦게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내 곁에 있어줘.”
“흐음. 알겠습니다. 그게 원하시는 거라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대표님.”
나는 아영이 볼에 살짝 키스를 한 다음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오빠 오늘 왠지 기합이 들어가 있네?’
아영이의 말이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수연그룹과 탁문수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최근 중국의 굴기로 전자가 살짝 움츠러든 사이 화학부분이 선전하면서 그룹 시가총액이 120조를 넘어서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그룹 지분 중 총수 일가가 가지고 있는 것은 20%도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50년 가까이 재벌 일을 해오면서 만들어온 인맥과 사업 네트워크가 전국에 뻗쳐 있었다. 전면전을 펼치다보면 나도 손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한번 숙이고 들어갈걸 그랬나? 어차피 천천히 밟아주면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나저러나, 저쪽 사람들. KJ이고, 수성이고, 미래고, 수연이고. 누군가와 마주치게 될 운명이었다. 미래뉴스는 내게 지속적으로 국내 상장된 회사를 사들이는 것을 요구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덩치를 불리다보면 언젠가는 재벌들과 마주치게 되어 있다. 그건 필연이다. 수연그룹과는 탁준기부터 시작된 악연에 자존심 싸움까지 생겨 이렇게 되었지만. 일어날 일이 조금 빨리 일어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셨습니까?”
나는 박 비서 인사를 받으며 출근을 했다. 나는 박 비서에게 경고를 해두었다.
“박 비서.”
“네?”
“봐서 우리 제 2비서 하나 더 뽑을까?”
“왜... 요?”
“너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네에?”
“바빠질 거야. 앞으로. 생각해봐.”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먼저 바로 정소영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사는 언제 나올까요?’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온다.
‘내일 오전 중 내보내겠습니다. 대표님.’
체크.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하다. 대통령이 내 편을 들어주는 것. 수연그룹과 싸우려면 반드시 이게 필요하다. 이어서 나는 8시 50분에 미래 뉴스를 받아서 중요한 이름들로 검색을 해보았다. 한상훈, 탁문수, 그리고 울림전자 오규석. 12시간 뒤 뉴스에는 별 다른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 12일 뒤 뉴스를 보니 그제야 울림전자 인수 경쟁 이야기가 나온다.
‘한상훈 대표. 울림전자 인수에 나서.’
‘탁문수 부회장. 울림전자에 손 뻗치나.’
‘인빅투스와, 수연. 비싸진 몸값에 쾌재 부르는 오규석 회장.’
결국 탁문수는 울림전자 인수전에 급하게 들어 온 모양이다. 사실 이렇게 되면, 기사에서 나오듯 승자는 오규석 회장이 된다. 나도 탁문수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탁문수가 1조 6520억이었지. 그럼 1조 7000억 이상 지르면 이기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12주 뒤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한상훈 대표 울림전자 협상에서 밀려, 매수 취소.’
‘울림전자 결국 1조 9000억에 탁문수 회장 품으로.’
‘1조 9000억. 돈방석 앉은 오규석 회장. 샐러리맨 신화를 되짚어본다.’
12주 뒤에는 그런 기사가 나와 있다.
‘1조 9000억을 태워?“
탁문수는 확실히 울림전자에 꽂혀 있었던 듯하다. 본래 사려던 금액보다도 거의 3000억 가까이 더 질러서 울림전자를 사버렸다.
‘아니 그렇게 까지? 그럼 나는 2조를 질러야 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띠리리~’
박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그걸 받았다.
“저 대표님 창해식품 우해진 사장님 전화입니다.”
‘무슨 일이지?’
나는 의아해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응 연결해줘.”
곧 우해진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대표님. 저 우해진입니다.”
“아 네 잘 지내셨지요?”
“네 저는 잘 지냅니다. 잘 지내는데... 사업 관련해서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저... 엘마트 갑자기 만두공급 계약을 취소해왔습니다.”
엘마트는 두 말 할 것 없이 수연그룹의 가지 회사 중 하나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요?”
“네... 저희 회사 창업한 이래로 몇 년간 우리 업체에서 만두를 받아갔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더니. 윗선들끼리 합의를 본 내용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윗선이 대체 누구냐. 내가 창해식품 대표다. 대표가 모르는 합의가 어떻게 있냐... 그러니까. 인빅투스 이름이 나와서...”
“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웃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굳혔다. 우해진 사장은 나름 심각한데, 내가 웃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 엘마트에 납품하는 매출액이 얼마나 되지요?”
“전국 엘마트하고 그 엘마트가 운영하는 소규모 슈퍼마켓까지 합치면 대략 7%정도.”
‘이거 완전 갑질이네 이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너무 걱정마시고. 일단 침착하게 온라인 쇼핑이나 그런 쪽 매출로를 확보하면서 충격을 완화시켜보세요. 제가 어떻게든 손을 써보겠습니다.”
“아 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쓰읍’
아랫입술을 당기며 그걸 살짝 깨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찌질한 짓까지 하는 군.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전 11시 경 OH엔터테인먼트의 권오혁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표님. 저... 묘한 일을 겪었습니다.”
“무슨 일이요?”
“저희 지우 엔터 소속 나인테일. 아시지요?”
“네 물론입니다.”
모를 리가. 나인테일은 내가 평범한 회사원일 때, 지우엔터를 홀로 먹여 살리던 소녀가장 그룹이다.
“그 나인테일이 최근에 교복 CF 계약을 맺고 다음 주에 도장 찍기로 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계약을 취소한다고 통보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냐 하니까... 대답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모회사에... 그러니까 대표님에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인빅투스에 전화해보면 알거라고...”
나는 더 듣지도 않고 물었다.
“혹시 그 교복 회사. 수연그룹 가지인가요?”
“아아... 네. 위너학생복이면 분명. 수연그룹 하에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짐작가시는 일이라도 있으신지...?”
짐작 가는 일. 당연히 있다. 탁문수가 그룹 전체에 지령을 내렸나보다. 우리 회사 자회사와 하는 모든 계약을 끊어버리라고. 나는 침착하게 그에게 말했다.
“권 사장님. 제 말 잘 들으세요. 혹시 앞으로 이런 일이 한 두건 정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
권오혁 사장은 꽤나 놀란 듯하다.
“네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 돌아가는 일을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한 두건 생기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의연하게 대처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데, 권 사장의 말투에서 살짝 불안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권 사장님.”
“네?”
“저 믿으시지요?”
“그럼요. 저야. 뭐... 예전부터 대표님 곁을 지켜온 사람인 걸요.”
“그래요. 그럼 저 믿으시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일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겁니다. 저와, 저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강하니까요.”
그 말에, 권오혁 사장의 말투가 한결 가벼워진다.
“아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그렇게 알고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탁 탁 탁’치며 생각했다.
‘이거 생각보다 빠르군.’
탁문수와 통화를 한 게 바로 어젠데. 하루 만에 이렇게 압박이 들어온다. 수연그룹이 얼마나 잘 정렬되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역시 50년 재벌은 50년 재벌인가. 장악력이 엄청나. 그렇게 회사가 많고 큰데도... 그렇게 잘도 돌아가는 군.’
우리나라 문어발식 재벌구조는 군부시절 때부터 내려오는 거라 확실히 정교한 면이 있었다.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서 오너의 영향력을 받고, 또 동시에 오너에게 수익을 바치도록.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질 수는 없지.’
수연의 강점이 크기와 인맥으로 되어 있다 나와 우리 회사는 돈에 강점이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40조. 이건 수연. 아니 정확히 탁문수로서는 힘들다. 탁 씨 일가는 수연그룹의 오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연그룹 전부가 탁 씨 일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연그룹을 전부 파보면 정확하게는 외국인 30%, 기관투자자 20% 국민연금 10%. 개미들 20%. 그런 식으로 쪼개져 있다. 아무리 120조 그룹의 오너라고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행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탁우경이 ‘의식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지금 상태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좋아 그럼 천천히 시작해볼까.’
나는 장 부사장을 불렀다. 전쟁을 하려면 무기를 가져와야 하니까.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나는 손을 모은 채 그에게 말했다.
“중국 투자 끝나고 외국 돈들 있지요?”
“네 사장님.”
“이제 천천히 우리나라 돈으로 환전해야할 것 같군요.”
“벌써 말입니까? 본래 환차익 때문에 조금 더 쥐고 계시기로...”
“원래 그랬지요. 그런데 이번엔 전쟁이 나라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날 것 같아서요.”
“전쟁...이요?”
장 부사장은 아직 내가 어제 수연그룹과의 전쟁을 시작한지는 몰랐다. 나는 양 손을 모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 전쟁입니다. 이사들 전부 소집하세요. 이제 부터 조금 바빠질 겁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