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전면전
나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정말 그래야만 하겠어?”
미세하긴 하지만, 탁문수는 살짝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평소보다 살짝 높고, 평소보다 살짝 빠르다.
‘흥분했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정확하게, 탁문수가 하고 싶을 말만 골라서.
“네. 울림전자는 저희 측에서 오랫동안 추적을 해온 회사입니다. 누구한테 넘기고 싶지는 않군요.”
“......”
다시 한 번 짧은 침묵이 이어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분노에 차 부들부들 떨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탁문수도 울림전자를 ‘오랫동안 추적’을 해왔고, ‘누구한테 넘기고 싶지 않을 것’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랴, 세상 사람들 누가 봐도, 울림전자에 오퍼를 넣은 것은 우리 인빅투스 인베스트가 먼저다. 그가 지금 들어오면, 대기업이 추하게 남의 인수전에 따라 들어와 산 꼴이 된다.
‘본랜 내가 따라온 거지만.’
내가 피식 웃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탁문수가 말했다.
“한 대표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솔직하게 말하지. 우리 회사도 이 회사, 오랫동안 지켜봐왔어. 그리고, 우리 수연전자와 시너지를 생각해 봤을 때 꼭 필요한 회사야. 나도 꼭 사고 싶은데.”
그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가든 로얄에서는
‘그래? 정말? 대단한 걸?’
‘재밌겠는데? 좋아.’
‘그거 좋은 생각이군.’
좋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역시 자기 이권에 관한 일에서는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고 날카롭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어쩌지요? 저희도 이거 인수하고 싶은데... 수연그룹하고 경쟁을 하게 되면...”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그가 반색을 하며 말한다.
“그렇지? 나도 그건 원하지 않아. 한 대표가 이번에 통 크게 양보를 해주면 내가 크게 감사하도록 하지.”
그는 아직도 내가 수연그룹의 위세에 꼬리를 내릴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요 양보는 없습니다. 수연 그룹하고 경쟁을 하게 되면 인수가가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뭐?”
그는 결국 당황한 티를 내고야 말았다. 내가 정면으로 맞붙자고 할 줄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수연전자도 노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울림전자가 포텐셜이 높다고 봐야겠네요. 저는 본래 생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이 써서 내겠습니다. 만약 탁 회장님이 인수전에 참여하시려면 돈을 꽤나 듬뿍 들고 오셔야 할 겁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한 대표. 지금 그 말. 우리 수연그룹과 대적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괜찮겠어?”
나는 여기서 잠시 고민했다.
‘탁 회장 여기서 나를 압박하려고 드는 군. 일단 여기서 고개를 숙이고 뒤통수를 쳐 줄까. 아니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정면대결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후자 쪽이 어울린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는 결국 내 앞에서 자신의 분노를 드러냈다.
“그래. 한 대표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군. 한 대표와 한 대표의 회사는 오늘 이후로 나와 우리 수연그룹의 적이 된 거야.”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탁 회장님과 수연 그룹은 저와 우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적이 된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그답지 않게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핫! 알았네. 알았어. 한 대표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정말 상상치도 못했네. 감히 수연에게 대들다니.”
그는 아직도 본인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도 뭐. 처음 뵀을 때부터 탁 회장님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탁 회장님은 딱 제 예상대로 수준이시더군요.”
“뭐?”
“...제 말 뜻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그래. 한 대표 참 나를 여러모로 놀라게 만드는 군. 좋아. 우리 수연을 적으로 돌리고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지.”
“네. 회장님. 저도 기대되는 군요.”
격렬한 통화가 끝난 후,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슬슬 아웃복싱 하면서 약만 올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전면전이 되어버렸군.’
그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늘 좋은 사람 역을 했었지만, 그걸 벗으니 자비심 없이 강한 탐욕, 높은 프라이드, 그리고 응집된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마 그는 그렇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 내가 깨갱하고 수그려 둘 줄 알았나보다. 그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으니까.
내게 위협을 해서 이권을 취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사냥한 하에에나 무리를 쫒아내고 그것을 취하는 것처럼.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런 것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가 사자라면, 나는 코뿔소고. 그가 코뿔소라면, 나는 코끼리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의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좋아 전면전에 들어간다고 하면... 나도 준비를 해야겠지? 귀찮은 건 싫으니까.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 녀석이 어떻게 치고 들어올까...’
수연 그룹은 50년 간 대한민국 재벌로 군림하며 정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 쪽이 빠르기는 가장 빠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 주성원 대통령은 내 편이다.
‘좋아 그럼 그쪽부터 쉴드를 쳐 놓자고.’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오라클뉴스 정 대표님에게 연락해. 투고 할 게 있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통화를 마친 나는 바로 원고 작성에 들어갔다.
‘대기업의 시장 독점.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핵심 문제.’
일단 제목은 이렇게 뽑았다. 그리고 A4용지 첫줄에 그렇게 써놓았다.
‘내용은 수연그룹 비판... 수연그룹을 언급하지는 않아도 수연그룹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수 있게...’
일단 이걸로 청와대 쪽에서도 협조를 해올 것이다. 알게 모르게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것과 상관없이, 본래 우리나라는 어느 정권이든, 들어서면 일단 대기업들과 만나서 서로 기 싸움부터 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내가 대통령이고 살아있는 권력인데 5년간 협조 좀 잘 부탁합니다. 세금 좀 제때 많이 내시고요. 실업자 늘어나지 않게 응? 애들 좀 많이 뽑고. 너무 빨리 퇴직시키지 말고. 아시겠죠?’
‘아이고 대통령님 네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우리는 돈은 영원합니다. 우리 회사 돈 받은 판사, 검사, 기자들 청와대 근처에 쭈욱 깔려 있으니 적당히 적당히 하십시오. 네?’
하지만 이번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중국에서 문제가 터져서 정신이 없어서 그런 과정이 조금 연기되어 있었다. 이제 조금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므로. 겸사겸사해서 수연그룹을 잡아줄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현재 주성원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막강했다.
원래 임기 1년차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 때문에 그 권력이 대단한데, 당선 된 후로 중국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처를 한 것 덕분에 지지율이 뽑혔을 때보다도 더욱 올라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협조를 해준다면, 나는 정재계에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좋아 이쪽은 일단 요렇게 막아놓고... 그 다음은 공격인데... 어딜 파 볼까?’
그런데 ‘공격 쪽’ 생각을 해보니, 퍼뜩 생각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탁문수의 아버지. 탁우경. 그는 작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후 수연재단 산하 병원 최상층에 VIP실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수연그룹 탁우경 회장 심장마비로 위독.’
‘탁우경 회장 의식은 없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어.’
그런 뉴스가 나오고 더 이상 후속기사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 그 상태로 1년이 지나가면서 묘한 루머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다.
‘탁우경은 심장마비에 걸렸을 때 이미 죽었다. 그런데, 수연그룹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 죽었다고 공표하지 않는 것.’
라고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남의 삶, 그리고 죽음 가지고 공격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그 사람의 아들이 내 적으로 돌아섰을 때는 어쩔 수 없다. 전쟁을 할 때는 적의 가장 아픈 곳을 공격해야만 한다. 그의 사촌동생인 탁준기도
‘핵폭탄은 탁우경이 죽거나, 죽으려고 할 때 쏜다.’
고 했지 않았는가. 아직 그 ‘핵폭탄’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그 탁우경이 죽을 때. 그 때가 기회라는 것은 분명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탁문수는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야만 하니까. 현재 탁문수 개인의 자산은 공개된 것은 2조원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탁우경이 10조가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탁문수에게 가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탁문수도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뿐이다. 만약 그가 탁우경이 가진 자산에서 50%를 떼고 받는다면. 그럼 그는 정말 내 상대가 되지 않는 피라미가 되어버린다.
‘수연재단 병원 최상층 VIP실이라면... 경계가 삼엄하겠지. 의사는 당연히 수십 억 받은 상태일 거고. 간호사들도 연봉 수억은 될거야. 특히. 탁우경의 생사에 커다란 비밀이 있다면...’
하지만 수연재단 병원 최상층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까마귀 눈 말이다. 나는 내 메일함을 열어서 12시간 뒤 메일을 열고 맨 아래, 크로우 소환 링크에 커서에 가져갔다.
‘크로우를 부르시겠습니까?(1회 남음)’
이번 달 크로우 소환은 쓰지 않고 남겨두고 있었다. 울림전자와 협상이 진행되면 오규석 회장 뒤를 캐서 뭔가 구린 게 없는지 확인하려고. 그건 예전 창해식품을 인수할 때부터 시작된 필수 검증 절차였다. 인수를 하기 전에 그 쪽 CEO를 한 번 훑어보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너뛰어도 괜찮겠지...’
이번 울림전자를 조사한 임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으니까.
‘오규석 회장님은 회사 밖에서나 안에서나 존경받는 인물로...’
‘배우자도 없고, 상속자도 없어서 지분관계가 깔끔합니다.’
‘은퇴하실 때는 재단을 세워서 기부하려고 하신답니다.’
물론 평판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수연전자도 군말 없이 인수를 한 것 보면 재무관계는 깨끗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환할 위치와 시간을 정해주십시오.’
나는 그 점멸하는 커서에 대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 오늘 오후 7시 30분.’
그렇게 써놓았다.
*
그리고 이어진 저녁. 오후 7시 30분.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나는 우리 집 야외 테라스에서 크로우와 만났다. 오후 7시부터 8시까지는 딱 아영이가 펜트하우스 내 헬스장에서 필라테스 강사를 불러서 개인 교습을 받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을 볼 사람은 따로 없었다. 나는 그에게 준비해두었던 요약본을 건넸다. 빠른 의뢰를 위해서 내가 준비해두었던 것이다.
“이 사람.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혹시 죽어있다면. 어떻게 그 비밀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걸 알아와 주세요.”
요약본 내에는 병실에 누워있는 탁우경의 모습도 실려 있다. 크로우는 내 요약본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그리고 나가실 때 아영이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나가주세요.”
“네 대표님.”
나는 그가 조용히 사라질 수 있도록 일부러 고개를 돌려 멀리 서울의 야경을 잠시 지켜보았다. 곧 그가 있던 자리에서 펄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다시 그가 있던 자리를 보니 거기에는 검은 색 털 한 두 개가 휘날릴 뿐. 크로우는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