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4화 (164/198)

# 164

사자와 하이에나(2)

전화로 장 부사장을 호출한 나는 그 사이 잠깐 기사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기사에 쓰여 있는 울림전자 인수 날짜는 2022년 6월. 그러니까 한 4개월 뒤였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조금... 애매하지만...’

이정도면 지금 협상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협상이 끝난 타이밍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미 현재 뉴스에서 소문이 솔솔 흘러나왔을 것이다. 나는 이어서 협상 가격을 확인해보았다.

‘수연전자는 대주주가 가지고 있던 울림전자의 지분 38.1%를 1조 6520억원에 사는...’

그런데 그 사이

‘띠리리~ 띠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1조 6520억원.’

그 숫자를 기억한 다음, 창을 닫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들어오시라 그래.”

곧 방금 나갔던 장 부사장이 다시 내 방으로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아 네. 다시 오시라고 하건 다름이 아니고요. 저... 부사장님. 울림전자 아십니까?”

“예 알지요. 예전에 제가 다른 회사에서 일 할 때, 그 회사에 탐방도 갔었는걸요.”

나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아 그렇군요. 잘됐군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아니 다름이 아니라 이 회사 어떤가 해서요.”

“아 네. 제가 아는 바로는...”

장 부사장은 자신이 아는 것을 술술 풀기 시작했다. 울림전자는 90년대 초 설립되어서 음반시장의 진화에 따라 카세트 테이프, CD플레이어, MP3를 만들던 회사였는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시장이 죽자, 전장사업으로 급하게 방향을 선회했던 회사였다.

변신 초반에는 기존 매출이 줄면서 힘들었지만 최근 스마트카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매출이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한다. 90년대부터 쌓아온 노하우로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였다. 찾아보니 현재 시가총액은 3조원. 본래 중국발 금융 위기 이전에는 7조원정도 하던 회사였는데 지금은 반토막 이상 났다. 나는 차트를 보면서 말했다.

“최근 가격이 많이 싸졌군요.”

장 부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제조업 쪽은 다들 힘든 편이긴 한데... 여기는 특히 심하군요.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나봅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술력도 있고, 스마트 카 전장부품 회사라면 장래성도 밝을 것 같군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탁문수가 탐을 낸 건가?’

역시 중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싸게 나온 M&A매물을 노리는 것은 나뿐만 아니었다. 탁문수 이런 매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지난 번 가든 로얄에 갔던 것도 M&A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갔던 것이었다. 물론 거기서 얻은 것은 정보 대신 모욕뿐이었지만. 늘 그랬지만 탁문수는 이런 이야기는 절대 남에게 흘리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점은 역시 인정해줄만 하다. 또 다시 나에게, 운 나쁘게 걸렸지만 말이다.

‘탁문수가 탐을 낼 정도라면 나쁜 회사는 아니겠지. 인수할 회사 따로 찾아보는 수고를 하느니... 탁문수의 식견을 한 번 이용해볼까?’

마침 인수할 회사를 찾던 중에 딱 잘 걸렸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사들 시켜서 이 회사에 대해서 알아오게 하세요. 인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말해주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모이게 할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 협상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수연전자가 지켜보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루라도 빨리 선수를 쳐야한다.’

“최대한 빨리... 오늘 오후 4시 까지 될까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인 사안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오후 4시까지. 이사들 대회의실로 부르는 겁니다.”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사장실을 나갔다. 그가 나간 뒤. 나는 다시 모니터로 돌아와 울림전자 차트를 보며 가장 핵심 사항들을 다시 한 번 체크했다.

‘5개월 뒤 38.1% 1조 6520억. CEO이름은... 오규석 회장 오케이.’

*

“중국 진출한다고 투자를 해놓은 게 다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 날 오후 4시, 나는 예정된 대로 대회의실에서 상석에 앉아, 이사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대규모 공급 계약을 했었던 중국 회사들이 다 픽픽 쓰러져서... 매출채권을 회수할 방법이 없답니다.”

“몇몇 거래처는 살아 있긴 한데... 그것도 살아 있는 수준이라서... 위안으로 대금을 결제 받는다고 해도 환율 떨어진 거 생각하면 적자 메꾸는 수준일 겁니다.”

확실히, 7조 회사가 3조까지 떨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장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장 부사장은 결론을 종합해 내게 조언했다.

“물론 악재는 여전히 산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 업체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지요. 여기서 더 나빠질 것이 없다고 한다면... 알짜회사를 싸게 구입하는 기회가 됩니다.”

‘역시... 그렇군.’

본래 기술력 있고, 매출도 잘 나오던 회사다. 스마트 카 시대를 맞이해서 전장사업도 점점 커져가는 추세고 말이다. 지금 잘못된 투자로 일시적으로 흔들렸을 뿐.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주가도 오르리라.

‘그러니까 수연그룹 실무진도... 그렇게 결정을 내렸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사들에게 물었다.

“대주주 의사는 어떨까요?”

내 질문에 말석 즈음 앉은 권 이사가 말한다.

“이 회사는 특이한 것이 창업주 오규석 회장님은 결혼도 하지 않으셨고, 후사도 없으십니다. 홀로 회사 차려서 이만큼 꾸려오셨는데... 내년에 칠순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름 자신이 없어도 회사는 굴러가도록 후계 구도는 마련해 놓으셨는데... 주식은 아마 처분하기가... 돌아가시면 재단 만들어서 사회에 환원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만약에 매수한다면 얼마정도가 좋을까요?”

역시나 말석에 앉은 박 이사가 대답을 해주었다.

“대주주 지분이... 38.1%. 현 주가를 반영했을 때 1조 4318억 원입니다. 하지만 현재 창업주가 30년 이상 경영을 해왔고, 높은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따져봤을 때 최소한 1조 5천억 이상은 제안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대략 탁문수가 산 가격과 비슷하다. 나는 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번 접촉해보도록 하지요. 인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투자를 하고 싶다는 쪽으로. 요새 몇 분기 연달아 기록적인 적자를 맛봤으니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군요.”

장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부사장님 필두로 이사님들끼리 팀 꾸려서 움직이세요. 이상.”

내 말이 끝나자, 이사들 일동은 내게 고개 숙이며 입을 모아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그 날 이후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울림전자 인수전이 시작되었다. 울림전자 측에서도 좋게 화답이 왔다.

‘회장님이 본인이 돌아가시기 전 지분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

는 답이. 오규석회장은 90년대 때 대기업에서 나와 홀로 회사를 차려 회사를 크게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이제 그도 본인의 나이를 실감하고 있었던 듯하다. 내년이면 칠순이 되는데, 중국 발 금융위기로 회사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은 듯하다. ‘이정도면 됐다.’ 하고 말이다.

이사들을 더 쥐어짜본 결과 아직 수연그룹의 오퍼도 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이었다. 만약에 협상이 진행 중이었으면 뒤늦게 들어온 우리 회사가 조금 불리했을 텐데. 오히려 그보다도 선점을 하게 된 것이다.

‘미래뉴스 보자마자 움직인 게 유효했군.’

파는 쪽도 의사가 있었고, 나도 강력하게 푸쉬를 하니 일은 빠르게 빠르게 풀려갔다. 장 부사장은 일이 진행 되는대로 내게 바로바로 보고를 해주었다.

“오 회장님 지분을 전부 인수하는 것으로 이야기 되었습니다. 단. 후임이 장진석 사장이란 분인데 이분이 3%지분을 가져가면서 계속해서 사업을 이어갔으면 하시는 바람이 있으시더군요.”

보고를 받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전통대로 하지요.”

“네 사장님.”

우리 전통이라 함은, 투자만 하고 경영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주가를 망가트리는 아주 큰 위해가 없는 한은. 미래뉴스를 보아하건대 지금은 누가 와서 일을 맡든.

‘위기에서 회사를 구해낸 영웅.’

을 맡게 될 운명이었다. 독이든 성배가 아니라 성수가든 성배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1조 5천억 잡고 세부협상 들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탁문수가 1조 6520억에 샀으니 그 즈음 사면 합리적인 가격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띠리리~ 띠리리~’

사장실 전화로 놀라운 전화가 왔다.

“저 사장님.”

“응?”

그런데 그 말을 하는데 박 비서의 목소리가 살짝 긴장되어 있다. 그 답지 않다.

“저. 수연그룹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라고?”

“사장님에게 직접 통화를 하시고 싶어 하시답니다. 수연그룹 탁문수 부회장님이요.”

“그래?”

나는 살짝 놀라 그렇게 말했다. 수연 그룹과 마찰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탁문수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연결시켜줘.”

“네 사장님.”

양측 비서간의 조율이 끝난 후. 탁문수가 공식적으로 내게 전화를 해왔다.

“여어, 한 대표 잘 지냈나?”

“네. 저야.”

“지난 번 모임 때는 왜 그렇게 빨리 갔어. 조금 더 마시다 가지.”

“약간 감기기운이 있어서요.”

나는 그와 대충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울림전자 이야기는 언제 하시려고 이러나?’

아니나 다를까. 통화 2분여 지날 때 즈음

“아아 그나저나 말이야...”

탁문수가 운을 띄웠다.

‘여기서 나오는군.’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그가 말했다.

“인빅투스가 울림전자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게 퍼졌군요.”

그건 예상하고 있었다. 수연그룹이 울림전자를 주시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정말이야?”

그는 아마도 우리 회사가 오퍼를 넣은 것까지 알면서 그렇게 물어보는 것일 것이었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오오 그래? 회사 사정은... 괜찮고?”

그는 여전히 우리 회사가 중국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니까요.”

그런데 그 때, 그가 갑자기 본심을 터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 회사를 주시하고 있었어.”

‘나도 안다 요놈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더 머리를 굴렸다.

‘이 의뭉스런 사람이 본심을 드러내다니. 대체 왜?’

“응. 우리 수연전자 비전과 맞아떨어지는 회사였거든.”

나는 최대한 그에게 말을 맞춰주었다.

“아아 그러셨군요.”

사실상 비꼬는 것이었지만,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응 그래서 말인데. 이번 딜. 우리 회사에게 넘기면 안 될까?”

나는 그제야, 그가 왜 솔직하게 말했는지 깨달았다.

“넘기...라고요?”

“응. 울림전자 우리가 인수하고 싶은데.”

그는 대놓고 본인이 인수를 하고 싶다고 말하려고, 선전포고를 했던 것이었다.

‘오호... 요것 봐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문 것이다. 그는 내가 대중국 투자로 크게 손실을 본 것으로 알고 있었을 뿐, 40조원의 실탄을 가진 슈퍼파워가 되어 있는 줄 전혀 상상을 못하고 있었다.

‘하긴 중국에서 손실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연그룹과 정면 대결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건 저희 쪽에서도 어려울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내가 그 말을 하자, 통화기 반대편에서는

“......”

짧지만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쉬웠다. 이 전화가 영상통화가 아니어서. 그는 내가 여기서 거절을 할 줄은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은 사바나에서 늘 사자 역할을 해왔으니까. 그런데 먹잇감을 놓고 대치한 하이에나가 갑자기 사자를 물려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가까스로 내게 대답했다.

“음... 그래에? 그렇구나...”

나는 그의 귓가에 대고 해줄 말들을 몇 가지 생각했다. 이제 이 초원에서 누가 사자고 누가 하이에나인지 알려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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