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하이에나와 사자
박 비서가 모는 롤스로이스는 유려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주황색으로 ‘Invictus’라고 쓰여 있는 빌딩이 보인다. 우리 회사에, 집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나는 창밖으로 덤덤하게 우리 빌딩을 바라보다가, 툭 하고 내뱉듯 말했다.
“기분 나쁘네 그거...”
내 말에 깜짝 놀란 박 비서가 내게 묻는다.
“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운전해”
“아... 네.”
박 비서는 내 말대로 계속해서 운전을 했고, 나 역시 다시 우리 빌딩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차 가까워지는 우리 빌딩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한테 가끔 조언도 해주던 차인데. 우리가 전에 도움 받았으니 어려울 때는 우리가 도와 줘야지. 안 그래?’
방금 전까지 있던 가든 로얄. 탁문수가 내게 했던 그 말을. 그 말이 나오니 다른 사람들도 한 두 마디씩을 보탰다.
‘그러엄. 우리 탁 회장님 생각이 백번 맞지.’
‘하하하 나도 동의 동의.’
대사만 두고 봤을 때는, 아주 좋은 이야기들이다. 남이 곤경에 빠졌으니(실제로 그렇지 않지만)도와주고 살자는 말.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있으니 바로, 탁문수가 그 말을 하면서 했던 손짓이었다. 한쪽 손을 수도로 만들어 다른 쪽 손목을 툭툭 치는 그 행위. 현실에서는 처음 봤지만, 나는 이미 까마귀 꿈에서 한 번 그걸 봤었다. 탁문수가 탁준기를 제거할 때 말이다. 나는 손짓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마도 그건... 절교 혹은 절단...을 의미하는 것 같았는데...’
만약 탁문수의 말이 거짓이고 그 손짓이 진심이었다면. 방금 전 그 상황은 대사와 완전 정반대 상황이 된다.
‘네가 정말로 중국에 전 재산을 투자해서 거지가 되었다면 우리랑은 바로 절교야.’
‘그러엄. 우리 탁 회장님 생각이 백번 맞지.’
‘하하하 나도 동의 동의.’
나는 그 때 그 분위기를 생각했다. 딱히 웃을 타이밍도 아닌데, 대놓고 웃거나, 적어도 피식피식 거렸다. 어쩌면 그 손짓은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암호 혹은, 오랫동안 사귀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나는 그걸 가지고 놀림을 받았고 말이지...’
탁문수는 대단히 주도면밀한 성격이어서,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을(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짓을 포함해서)절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는 아마 내가 자신의 그 손짓에 대해 인식조차 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걸 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그 손짓을 정말 그 파티에서 처음으로 봤다면 아마 이상하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평소처럼
‘역시 탁문수 회장은 말을 참 좋게 한단 말이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탁문수는 딱 한 번 실수를 했다. 나는 그 손짓을 한 번 봐서, 그 뜻을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탁문수가 말과 손짓을 반대로 하면서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운이 나쁘게 걸리셨군. 여태까지 완벽했는데 안 되셨어.’
나는 여태까지 늘 그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리고 조금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를 관찰하곤 했다. 뒤로는 사촌동생도 잔인하게 죽였던 그가, 앞에서는 매번 그렇게 좋은 말과 행동을 하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실상은 완벽하게 훈련된, 겉과 속이 다른 괴물 같은 인간이란 확신이 든다. 그는 부하들에게 존경받고, 대중들에게 칭찬받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가면, 기만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도 나름 능력이긴 하지만 말이다.
‘확실히 탁문수에 비하면 탁준기는 그런 면이 부족했지... 자신을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남을 속이는 것 말이야.’
돌이켜보면 탁문수에 비하면 사촌동생 탁준기는 대단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었으니까. 물론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을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보다보면 뻔히 바닥이 보였다. 그래서 패배했고, 탁문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 때 까마귀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문득 걸리는 대사가 또 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승리의 DNA를 물려받아 태어난 사람들이야. 그런데 패배라니... 패배는 일반인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이제 넌 수연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보면 탁문수는 패배자를 경멸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큰 손실을 봤다’하니 그런 말과, 손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신은 한 번도 패배한적 없는 사람처럼 군단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싶다. 수연 그룹의 적자로 태어나 완전히 왕자로 살아왔으니 언제 어디서 패배감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탁준기는 서자로, 늘 언더독으로 살아서 그런 열등감이 있었지만, 탁문수는 반대로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진짜로 패배다운 패배를 해본 적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겪어보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한 번도 패배해보지 않은 자라... 그건 인빅투스... 우리 회사 모토인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에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박 비서가 모는 롤스로이스는 우리 회사 빌딩 지하주차장 내 위치한, 대표 전용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박 비서에게
“응 수고했어.”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내렸다. 박 비서에게 롤스로이스 키를 받고, 헤어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P’를 누른 다음 비밀번호를 눌렀다.
‘펜트하우스.’
나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빌딩의 최상층을 향해 올라갔다. 가는 도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탁문수 생각을 했다.
‘패배자를 경멸하는 자라... 그런데 그러면... 그러다 본인이 패배자가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어찌되었든 이 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가든 로얄의 모임에 참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한상훈은 망한 게 아니라, 반대로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라는 게 밝혀지면 다시 초청장이 오겠지만, 나는 그래도 가지 않기로 했다. 지난 번 사건으로 이러나저러나 나는 ‘외부인’, ‘개천에서 올라온 특이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도 그들과 섞여서 친해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두세 번 만나면서 서로 예의는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대놓고
‘돈이 없어지면 너는 더 이상 우리와 놀지 못해.’
그런 메시지를 받으니 기분이 퍽 상한다. 따지고 보면 진짜 돈이 없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말이다.
*
1월 28일. 나는 이날만큼은 8시 30분. 아침 일찍 출근했다. 오늘은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출근하면서 박 비서에게 말해 놓았다.
“박 비서 장 부사장님께 말씀드려. 나 출근해 있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 말을 해놓자, 바로 5분 뒤에 장 부사장이 사장실을 찾았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오늘 새벽 있었던 미국 시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매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역을 복잡한데... 그건 따로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결과만 보고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얇은 보고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지난번에 엄청나게 두꺼운 보고서를 읽지도 않고 치워 둔 것이 인상이 깊었나 보다. 잘 됐다. 어차피 나도 세세한 내역은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요 잘하셨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몇 장자리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장부에 적힌 돈들(달러, 유로, 엔)을 원화로 환산하면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36조 7421억원. 본래 있던 돈과 내 개인 계좌의 수익까지 합치면 이제 내 자산은 45조원에 달했다. 이것으로 나는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2등과 30조 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격차로 말이다. 나는 정말로 투자의 신, 돈의 정점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한참 보고서를 보던 나는 고개를 들어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 말입니다. 새 M&A 물색.”
“네 사장님.”
“조금 더 완화된 조건으로 가지요. 이만큼 벌었는데 더 쪼잔하게 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미래뉴스를 보아하니, 앞으로 1년 간 부동산 주식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내 자산 가격은 이 정도에서 더 내리지도 오르지도 않았다. 바닥을 친 상태에서 옆으로 횡보하는 수준. 물론 여기서 조금 더 질질 끌면 속으로 끙끙 앓는 회사들은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엄청 더 싸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매입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랜드마스터 등급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랜드마스터 등급을 달게 되면 나는 12년 뒤 뉴스까지도 받아볼 수 있다 그러면 더 장기적으로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장 부사장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요 잘 부탁드릴게요.”
장 부사장이 나간 뒤, 나는 그랜드 마스터 등급에 대해서 생각했다.
‘12년 뒤라... 그렇다면 거기에 다음 번 경제위기까지도 예측해서 다시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겠지.’
중국 금융위기가 오기 전, 몇 년 전 주식시장을 떠돌던 설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이다. 1984년 남미 외환위기,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략 10년 주기로 글로벌 위기가 온다는 것인데 2021년 중국에 외환위기가 오면서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12년 뒤 뉴스를 알면 나는 언제 다시 한 번 큰 베팅을 할 수 있을지도 알게 될 것이다.
‘한 2030년까지 200조 모아놓고, 다음 위기 때 1000조 정도로 튀기는 거야.’
그러면 아마 나는 한국에서 제일 부자를 넘어서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가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 역사상 제일 부자가 될 지도 모르겠다. 황금의 왕 만사 무사, 철강의 왕 앤드류 카네기, 석유의 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투자의 왕 역사적 부자 말이다.
‘나는 진짜로 이제 역사에 살게 되었군.’
내 이름은 이제 교과서에도 실리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모니터 우하단에 시선을 돌려 시간을 체크했다. 8시 52분. 이미 미래뉴스는 와 있다. 나는 늘 그랬듯 미래뉴스를 보고, 내 이름을 검색했다. 혹시나 무슨 일 있지 않을까 해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암에 걸리거나 하면 끝이다. 그것만 미연에 방지하면 나는 무적이다. 검색 결과는 다행이도 별일이 없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승승장구.’
그게 내 일상이다. 매번 이기는 일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남아 있는 슬롯을 두고 생각했다.
‘주성원 대통령님? 하나 하고... 나머지 하나는 뭐할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걸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이름을 먼저 검색을 해보았다.
‘탁문수’
그런데, 묘하게도 재밌는 뉴스가 하나 떴다.
‘수연전자 울림전자 인수.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탁문수 회장 리더쉽 첫 시험대에 올라.’
나는 그걸 보고 육성으로 말했다.
“오호라.”
언제 한 번 엿이나 먹여주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죄송한데 장 부사장님. 다시 내 방으로 다시 오시라 그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