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2화 (162/198)

# 162

페이크 뉴스(3)

사람들은 남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일로 새삼 그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대중국 투자 실패로 큰 손실.’

며칠 전 떴던 그 뉴스는 며칠 간 사람들이 많이 본 뉴스 상위권에 오를 지경이 되었다. 조회수가 늘다 보니 후속기사도 떴다.

‘승승장구하던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위기에 봉착?’

‘오만한 천재의 크나큰 실수? 한상훈 대표 중국 투자했다가 큰 손실.’

별 내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우리 회사가 중국의 모모 회사에 투자했는데 그게 망해서 크게 손실을 봤다는 그러 내용의 소설들이었다. 아주 개연성이 없는 글들은 아니었다. 현재 중국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회사도 ‘그 중의 하나’로 꾸며내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대공황을 미리 예측하고 반년 전부터 매도 포지션을 잡았다는 것이 더 비현실적인 일이긴 했다. 애초에 이걸 실행할 때도

‘이건 위험합니다. 사장님.’

‘명운을 걸기에는 너무 낮은 가능성입니다. 사장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최측근들 마저 말릴 정도였으니까. 지금에야 일이 터지고 난 뒤니까 그렇지만 일 년 전으로 돌아가 누군가 중국에 대공황이 온다는데 5조를 베팅한다고 한다면, 다들 미친놈이라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한상훈 폭망설’은 계속해서 이어져 2022년 1월 새해가 밝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후속기사가 나오고, 계속해서 소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딱히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보다 망해가는 기업들, 그것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분명 한국 내에서 알짜기업인데, 일시적으로 신용이 굳어버린 회사들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현재의 뉴스, 미래의 뉴스를 읽으면서 조용히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1년 뒤 뉴스를 읽어봐도 제대로 그다지 희망적인 뉴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각국정부가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덕에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경기나 자산가격은 반등을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음... 어쩌면 자산 매입은 서두르지 않아도 될지도...’

그러다보니, 나도, 회사도 딱히 할 일이 생겨나질 않았다. 투자회사란 불황이든 호황이든 그 출렁임을 먹고 사는 것인데, 지금은 경기가 완전히 죽어서 바닥에서 설설 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더 팔 것도 없고, 더 살 것도 없다. 나는 숨을 죽인 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로 했다.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남자끼리 대화 좀 하게 먼저 가 있어라 딸.”

스크린에는 벌쳐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오늘의 영화는 ‘스파이더맨 홈 커밍’나온지 꽤 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인데, 나는 그걸 반복해서 보았다. 스파이더맨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악당인 저 마이클 키튼을 보기 위해서. 전에 아영이에게 추천해줬던 ‘버드맨’에서도 나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스파이더맨 역을 맡은 톰 홀랜드는 마이클 키튼의 눈빛을 보고 진심으로 공포에 질려서 따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크... 죽음이다...’

내가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는데,

‘우으응~’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박 비서다.

‘사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KJ물산의 방영우 이사님이시라는데요.’

나는 그 문자를 보고

‘KJ물산? 거기서 왜?’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KJ물산하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KJ그룹,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를 장한설과는 관련이 있었으니까. 나는 직감했다.

‘또 고위직 임원을 집배원으로 써서 보냈구먼.’

그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 우체부로 온 것이다. ‘가든 로열’의 우체부로서.

“에헤~”

나는 입을 모으며 그걸 내려 보았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 조용하게 영화나 보려고 했는데. 하지만 임원이 왔다는데 내려 가보지 않을 수도 없다. 가든 로열의 초청장은 등기우편 같아서 다른 사람이 받아보거나 하게 하지 않았으니까.

“한창 재밌는 부분인데...”

나는 영화를 일시 멈춤 해놓고 휴대폰에다가 답장을 해놓았다.

‘곧 갈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개인 극장에서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옷장을 향해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초 정도. 그 사이 고민이 된다. 어차피 잠깐 내려가서 초청장만 받으면 되는 것을.

‘정장까지 입어야하나?’

하는 고민 말이다. 잠시 고민하다 나는 청바지에 와이셔츠 정도로 절충해 입은 채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거울을 보니 머리도 부스스하고, 수염도 얼기설기 나 있다. 오늘 아침부터 아예 출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조금 결례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이제 대한민국 최고 부자인데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있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장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왔다. 멀리 후덕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사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입니다.”

“KJ물산의 방영우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나는 그와 함께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실 안에 들어온 나는 속사정을 다 알면서도,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아니나 다를까, 그는 품에서

“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장한설 회장님께서 이걸...”

‘R’이라 쓰인 봉투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며 말했다.

“네 잘 받았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용건은 끝났다. 나는 거기서 바로 미팅을 마치려고 했다. 다시 위로 올라가서 보던 영화를 마저 봐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그가 한 마디를 더 꺼냈다.

“네 그리고... 요즘 괜찮으신지 안부를 물어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때,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뭐. 저야 좋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안부 인사를 하는 줄로만 말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장 회장님에게 감사하다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고 전해주세요.”

“아...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내 얼굴을 보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나는 그제야 방금 전 그가 했던 안부인사가 단순한 안부인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가든 로열의 초청장을 든 채로 방금 전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요즘 괜찮으신지’

초청장을 보낸 장한설 역시 ‘한상훈이 망했다’는 루머에 듣고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 그래서 저 뚱뚱한 임원을 보낼 때 안부 묻는 겸 그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 지켜보라 시킨 것 같다. 그 와중에 내가 머리는 부스스하게 하고, 수염은 깎지도 않고 청바지 차림으로 내려왔다. 어쩌면 그 쪽에도 오해를 사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했다.

‘요상하게 계속해서 오해를 사게 되네...’

아니 어쩌면, 이게 다 사람들이 내가 망하길 내심 바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마련이니까. ‘한상훈이 망했다’라는 루머가 ‘진짜였으면’하는 기대감을 만나 더욱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조금 기분이 상한다.

‘아니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나 걱정해주었으면 기분상할까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게 예의 아닌가?’

하여간 보면, 누군가 곤경에 빠졌을 때 속으로 고소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위해주는 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한설이라면 분명...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지.’

내가 일 년 넘게 지켜본 결과 장한설은 질투심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작 본인도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으면서 남이 잘나가는 꼴을 보기 힘들어 했다. 나는 로열 가든의 초청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만 갈까 여기도.’

일 년 정도, 최상류층 사람들의 화려한 사교모임이 신기해서 참석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지루해져가는 참이었다. 나는 그걸 찢어버릴까 하다가, 멈추고 얌전히 봉투를 뜯었다. 이제 나보다 더 자산이 낮은 가난한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래도 한국 내에서는 괜찮은 정보를 몇 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이번 신용위기에 다들 대처하는 방식이 나와 비슷할 것이었다. 망해가는 알짜회사 싸게 사들이기 말이다.

*

경기는 늘 불황과 호황을 오간다. 호황일 때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이 오르고,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가치도 오른다. 서민들도 살기가 좋고 부자들은 살기가 더더욱 좋다. 반대로 불황일 때는 대규모 해고가 일어나고, 소득은 줄며, 부동산는 경매에 붙여지고, 주식은 하락한다. 서민들은 살기가 어렵고, 부자들은.

‘살기가 좋다. 여전히.’

가든 로열의 신년회. 거기 참석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바깥 세상 일반인들과 다르게 얼굴에 불황의 그늘이 그려져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얼핏 봤을 때 부자들은 경기 호황기에 돈을 버는 것 같지만, 그 반대다. 불황일 때, 모든 자산이 싸게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기 불황기에는 기업이 망하고, 부동산, 주식이 매우 싸지는데, 그 때 서민은 뭔가 사거나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때 정작 본인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자산을 싸게 매입하는 것은 역시 부자들이다.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 같아도, 현금이 있는 사람들. 혹은 현금을 빌려올 신용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나처럼 매도 포지션 베팅으로 미친 수익을 올리지는 못할지 몰라도 그들도 역시나 천천히, 돈을 벌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죽어 사라지니까. 그들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그것을 싸게 줍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호황기에 자연스럽게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서민들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가격으로 말이다.

“어때 요새? KJ는?”

미래자동차 정성수 부회장 정성수의 물음에, KJ쇼핑 회장 장한설이 대답한다.

“뭐, 죽을 맛이지. 중국 쪽 사업이 워낙 힘들어서”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는 표정은 웃고 있다. 이미 기득권으로 수십 년, 여러 해 불황을 겪어온 지라 그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것을 몸으로 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지성패션 회장 고진희가 묻는다.

“회장님. LC텔레콤 어때? 지금 들어갈 만 하지 않아?”

바로 LC건설 사장 허준익한테 말이다. 허준익은 대답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개미들 손절 아직 덜 나왔어. 24만원 오면 살만해. 길게 보면 손해는 안 볼거야.”

그들 역시 자신들 자산이 쪼그라들긴 했지만 버틸 만은 하다. 장부상 숫자 몇 백억이 줄긴 했지만 그거 없다고 못 사는 거 아니니까. 기다리면 다시 가격은 오른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막강한 현금, 그리고 신용을 가지고 있으니, 천천히 봐서 내린 자산을 사들이기만 하면 된다. 위기일 때 무너지는 것은 그들이 아닌 ‘어설픈 부자들’뿐이다. 이번엔 수성기획의 김신이 물었다.

“어이 한 대표. 한 대표는 어때? 요새 요상한 소문이 돌던데?”

바로 나한테.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느껴진다. 그가 나를 그 수많은 ‘어설픈 부자들’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쉽지는 않지요.”

또 대충 거짓말은 안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말이다. 내 말에 그는 씨익 웃는다. 그 역시 기사가 사실이라고, 내가 크게 손실을 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설픈 부자는 내가 아니라 너네들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그런데 와중에 김신은 계속해서 말을 해 왔다.

“우리 모임은 자산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초청장이 안 가. 조심해. 한 대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정말로 우스워서. 그런데 그 모습이 살짝 실성해보인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장한설이 내게 달라붙으며 묻는다.

“뭐야 한 대표. 요새 정말 어려워? 중국에 투자 크게 했던 거야?”

나는 거의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투자 크게 했었지요. 거의 올 인으로.”

역시 거짓말은 아니다. 장한설은 눈이 커져

“오 그래에? 그럼...”

그러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진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뭐야. 다들. 한 대표가 손실 좀 봤다고 여기서 내쫒기라도 하겠단 듯이 말하네. 어쩜.”

그리고 그 때에 마지막으로, 탁문수가 나타나 말했다.

“에이 그렇다고 한상훈 대표를 내칠 수야 있나.”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평소처럼 늘 말을 좋게 해주었다.

“우리한테 가끔 조언도 해주던 차인데. 우리가 전에 도움 받았으니 어려울 때는 우리가 도와 줘야지. 안 그래?”

그런데 그 말을 할 때, 갑자기 한 손으로 수도를 만들어서 자신의 다른 쪽 손목을 툭툭 치며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손짓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저 손짓은 분명. 그가 탁준기를 ‘보내 버릴 때’하던 그 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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