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페이크 뉴스(2)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하러 가도 정승이 죽으면 조문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정승이 살아있을 때는 그 권위에 눌려서 개가 죽어도 문상을 오지만, 그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사람에게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꼬집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세울 때부터, 꼬이는 사람이 많았다.
‘한상훈이 로또 당첨된 금액으로 코인을 사서 대박이 났다.’
는 소문이 퍼지자, 갑자기 대학 동기한테 연락이 와서
‘좋은 투자처가 있는데 여기 투자해보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옛 고등학교 친구한테 몇 년 만에 연락이 와서
‘좋은 보험상품이 나왔는데 이거 가입해보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듣기고 했고,, 옛 초등학교 동창라는 사람(기억도 가물가물했다.)이 회사에 찾아와서
‘제주도에 좋은 땅이 있는데 사보지 않겠느냐?’
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단호하게 다 쳐 냈다. 내 돈을 보고 달려드는 날파리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3년이 지났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일에 관계된 사람들, 혹은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 양쪽 다. 그 사람들은 앞선 동창들처럼 대놓고
‘너 로또 맞았다며? 한번 벗겨 먹어보자.’
하고 달려든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이권에 따라 모인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쩌면 ‘한상훈 망했다’는 이 거짓 뉴스는 내가 좋지 않을 때도 내 곁을 지켜주는 진짜 인맥을 솎아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원재는 내게 말했다.
“혹시 이게 거짓말이면 제가 제 선에서 잘라 드리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그거 소설입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잠시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그에게 말했다.
“...음... 그런 기사가 떴군요...”
덤덤하게, 혹은 살짝 침울하게 말이다.
“네?”
이원재는 살짝 놀란 눈치다. 나는 그에게 이어 말했다.
“뭐... 그런 기사가 뜬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요.”
“네에? 그럼...”
그 뒤에 이어질 말은
‘이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정도 일 것 같은데.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쨌든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회의가 있어서 이만.”
“아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는 통화를 끊은 다음 씨익 웃었다. ‘아니다.’혹은 ‘그렇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오해를 살만 하다. 내가 대중국 투자로 큰 손실을 봤다고 말이다. 기사가 나가고 나면 어느 쪽이든 반응이 올 것이다. 나는 잠시 그걸 지켜보기로 했다.
*
그 날 저녁.
‘승승장구하던 한상훈 대표. 대 중국 투자로 큰 손실?’
결국 그 뉴스가 떴다. 이원재가 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를 자르지는 않은 듯 했다.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댓글을 읽어보았다. 예상대로
‘운빨로 승승장구하더니 결국 좆 됐구나.’
‘벼락부자는 가는 것도 한순간이죠. 운으로 흥한 자. 운으로 망했을 뿐.’
‘로또 되고 나서 계속 부자인 사람 봤음? 쟤도 마찬가지임. 이제 좋았던 시절 때문에 인생 나락으로 가는 거지.’
‘최근 산 만두 회사, 막걸리 회사도 주가 지지부진임. 운 좋아서 이겨오다가 이제 실력 드러난 거지.’
그런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물론 호의적인 댓글들도 가끔 있긴 했다.
‘여태 벌어놓은 게 조 단위인데 아무리 잃었어도 너네보단 부자일 듯.’
‘카이게임즈 현영제약 매수한건 진짜 신의 한수였는데... 늘 딸 수는 없지요.’
‘이번 중국 대공황은 진짜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죠. 인빅투스도 거기 휘말렸나 봐요. 한상훈 대표 능력 있으니 다시 재기할 듯요.’
‘여의도에 죽는 사람 천지고, 망한 회사도 부지기수인데 뭐. 투자회사는 어쩔 수 없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좋은 댓글을 써주니 매우 고맙다. 하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저 새끼 망했구나 잘됐다. 좋다.’
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하긴 일반인들 눈에는 내가 크게 손실을 봤다는 이 기사가 꽤나 신빙성이 있게 읽혔을 것이다. 워낙에 투자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크게 손실을 본 상태였으니까. 그들은 내가 중국 내 자산에 공매도를 쳤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망한 게 아니라 반대로 엄청나게 흥했는데...’
나는 33조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와, 회의실에 모이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4명의 핵심멤버들 뿐이었다. 심지어 그 회의실에 사람을 모으는 박 비서도 그걸 몰랐다. 이번 일은 혹시나 미리 정보가 샐까, 내가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내에 투자를 실행한 몇몇 실무자들도
‘중국에 매도포지션을 취해 돈을 벌었다.’
정도는 알긴 알았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매도 버튼을 누른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들도
‘아예 매도에 올인 했다.’
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보통 매도포지션을 잡는 것은 위험을 회피할 때 헷지용도로 조금씩만 사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들은 아마
‘나 덕분에 회사가 조금은 손실을 덜 봤을 것이다.’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부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매도 포지션을 잡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결국 내가 대한민국 최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모두 나 포함 다섯 명 뿐. 그마저도 내가 다른
‘대중국 투자 내역에 대해서는 일체 언론에 함구해라.’
라는 식의 지침을 내려놓아서 누구 하나 입을 열 사람이 없었다. 나는 여기다가 오늘 확실하게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혹시나 우리 회사가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떠도 부정하지 말아라.’
라고 말이다. 이것으로 나는 일시적으로‘중국에 투자해서 엄청나게 손실을 본 사람’이 되었다. 어차피 진실이 곧 밝혀지겠지만 그 때까지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펴볼 생각이다. 그런데 그 것은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다.
“오빠. 이거 정말이야?”
나와 같이 사는 사람. 아영이가 먼저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나는 당황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영이는 이 테스트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건 간에 그녀가 나를 떠난 다는 상상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거. 가짜 뉴스야.”
아영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정말? 오빠 괜히 내 앞에서 괜찮은 척 하는 거 아니지?”
아영이는 전에도
‘오빠 요새 중국 어렵다던데 회사 괜찮아?’
내게 그렇게 물어오곤 했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뉴스가 떴으니 오해를 할만도 하다.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야. 뒷부분 봐봐. 뭐 내가 힘들어서 신앙의 힘을 빌리려고 성당을 찾았다나 뭐라나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네가 놀러가자고 해서 놀러간 거였는데. 그 때 그 기자 놈이 썼나봐.”
아영이는 스마트폰을 더 보더니
“아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영이는 기사 첫 부분만 보고 놀라서 내게 달려온 듯하다. 그녀는 마치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휴 다행이네. 나는 또 내 오피스텔 팔아야 하는 줄 알고 놀랐지 뭐야.”
예전에 내가 살던 바로 그 오피스텔들 말이다. 나도, 아영이도 이 펜트하우스로 이사 온 지 꽤 되었지만 아영이는 여전히 거기서 월세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팔긴 왜 팔아 그걸. 부모님 유산이라면서.”
그 오피스텔들은 아영이의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아영이에게 남겨준 마지막 유산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아영이는 그걸 재산 이상의 의미로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혹시나 오빠가 폭삭 망했으면... 내 거라도 팔아서 도와주려고 했지. 급하게 팔아도 100억은 나올 테니까. 그거면 오빠가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됐어요. 됐어.”
나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기뻤다.
‘내 거라도 팔아서 도와주려고 했지. 급하게 팔아도 100억은 나올 테니까.’
라는 그녀의 말이 진심 같아 보였으니까.
‘아영이는 합격.’
사실 같이 1년간 살면서
‘오빠 그럼 이제 거지야? 그럼 나는 떠날게. 잘 있어.’
그런 시나리오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로나, 가슴으로나 말이다. 아영이에 이어서 고향 집에서도 전화가 왔다.
“얘 그거 사실이니? 너희 어머니가 걱정한다.”
아버지에게서도 왔고
“얘 뉴스가 정말이니? 너희 아버지가 걱정하시더라.”
어머니에게서 왔으며
“오빠 그거 정말이야? 정말? 부모님이 걱정하셔.”
동생에게도 왔다. 가족은 내가 망했던 흥했던 걱정한다는 소리뿐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역시 가족이 좋긴 좋군.’
어느 대기업 총수 일가는 돈 때문에 부모형제끼리도 척을 진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 다행이다.
*
다음 날. 나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사장실 앞에는 늘 그랬듯 박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는 평소와 너무 똑같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박 비서.”
“네?”
“자넨 뉴스도 안보나?”
박 비서는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주 보지는 않습니다.”
“그래? 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 회사 힘들어질지도 몰라.”
그런데 그 말을 하자, 그가 말했다.
“아아 그건 봤습니다. 뉴스. 저희 회사 중국 쪽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실을 봤다고...”
“응. 봤구나?”
“네.”
박 비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마도 어제 뉴스를 보고도, 내게 티를 내지 않기로 했던 모양이다. 혹시나 내가 침울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역시 이 녀석은 믿을만하다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혹시나 우리 회사 망할지도 몰라. 그리고 너는 잘릴지도 모르고.”
박 비서는 고개를 살짝 떨어트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어찌되었든 끝까지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여태 좋은 조건으로 일했으니 몇 달은 무급이라도...”
하여간 이 녀석은 반응이 재미가 없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뻥이야 임마. 망하긴 왜 망해. 앞으로 천년은 더 갈 거다. 우리 회사는”
출근을 한 뒤 몇 시간 뒤 즈음 한창 스타트업 회사를 꾸려나가던 전 비서, 지훈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기사 봤는데... 괜찮으시지요?”
나는 이 녀석에게도 장난을 쳐보았다.
“아니 괜찮지 않아. 어쩌면 너한테 했던 투자금 돌려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십니까?”
“응.”
“참 그거... 그렇게 됐군요. 정 그러시면 투자금 받은 건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제가 따로 열심히 노력해서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 형님이 저한테 오피스텔 사지 마라 하신 것 덕분에... 응?”
그는 그 말을 하다가 조금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나는 이미 그에게 몇 달 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다. 큰 이벤트가 있을 것이다.’
경고를 한 장본인이었으니까.
“푸하하하 너 내 곁에서 봤잖아. 내가 질 리가 있냐.”
나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고,
“아나... 나름 걱정 돼서 전화한 사람한테.”
지훈이는 투덜거렸다. 어찌되었든 현역 비서나, 전 비서나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둘 다 합격이로군.’
애초에 이 두 사람은 그 정도가 되니까 내가 곁에 둔 것이긴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음... 결국 누구 하나 내 뒤통수룰 쳐주는 사람이 없네. 기사가 사실이라고 믿지 못해서인가? 나름 재밌는 덫이라고 생각했는데... 걸려드는 사람이 없으니 아쉽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며칠 뒤, 이 덫에 생각보다 대어가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