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페이크 뉴스
2021년 12월 25일. 성탄절. 중국 발 경제 한파가 덮친 한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곳곳에는 트리가 걸리고, 캐롤이 울려 퍼졌다. 나는 오랜만에 아영이와 함께 종로로 데이트를 떠났다. 한동안 회사 일 하느라 집, 회사, 집, 회사 엘리베이터 타고 왔다갔다만 해서 조금 답답하던 차에 아영이가
‘오빠 같이 명동성당이나 다녀올까?’
이야기를 해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 아영이 본인은 종교가 없었지만 성탄절 명동성당 주변의 그 분위기가 좋단다. 그래서 나는 아영이와 함께 종로의 오래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명동성당에 들러서 기도도 하고, 그러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마침 눈이 조금 내려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어서, 그 운치가 더 좋았다.
“좋다. 오빠 그치?”
“그러게. 마침 눈이 와서 더 좋네.”
크리스마스 명동성당 주변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기도를 하러 온 신도들도 많았지만 그냥 우리처럼 데이트를 즐기러 온 커플들도 많이 보였다. 나는 그 수많은 인파를 보면서 내심
‘혹시 누군가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 커플에게 눈길을 돌리곤 했지만, 나보다도 아영이를 쳐다보는 사람들이었다. 등 뒤로
‘와 저 언니 예쁘다.’
‘야 야 봤냐? 저 사람 연예인 아냐?’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100%였다. 나도 나름 유명하긴 했지만 그건 투자업계 사람들, 기업인들 사이에서나 유명한 것이고 일반인들이 알아보는 수준은 못되는 듯했다. 애초에 나는 ‘흙수저 출신에 부자가 된 주식투자자 한상훈’ 그 타이틀만 유명한 것이어서 내 얼굴을 보고 한상훈과 매치시킬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길가다 누군가 나를 보면 ‘돈 있는 집안의 사회초년생’정도로 볼 것 같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렇게 길거리를 싸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몇 달이 지나면 우리 회사가 7월 대폭락 이전에 일찌감치 중국에 매도포지션을 잡아놨다는 것이 알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대개 2등, 3등은 잘 몰라도 1등만큼은 기억을 하는 법이다.
내가 중국 대폭락을 예견하고 미리 투자해서 무려 33조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래서 모든 대기업 총수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제 내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까지도 기억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 그 타이틀은 누구나 한 번쯤 알고 싶어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렇게 나다니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대한민국 부자가 저기 간다.’
하면 너도 나도 한 번쯤은 얼굴이라도 보려고 할 테니까. 어쩌면 이상한 짓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구걸을 한다든지, 아니면 협박을 한다든지 말이다.
‘음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별로로군...’
더 이상 이렇게 평범하게 길거리를 걷는 것조차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니 그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되어버린 것을. 이건 일종의 세금 같은 것이다. 유명세에 뒤따르는 세금. 아영이만 해도 저렇게 수군수군 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영이는 미모에 따르는 세금을 내는 것이고, 나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이건 피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니까. 4년 전에 회사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오늘은 지각해도 혼나지 않습니다.’
그 찌라시를 주워 들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예정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라... 어쩔 수 없군. 어쩔 수 없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오빠. 대체 무슨 생각해?”
곁에 있는 아영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응? 아니. 그냥. 눈이 와서 그런지 날도 포근하고 좋다 싶어서.”
앞으로 이런 평범한 데이트를 더 이상 하기 어려워 질 거란 것을 알면 아영이도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으음. 그래.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아영이는 그 말을 남기고는 명동성당의 한 건물로 들어 가버렸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년부터 데이트는 해외로만 다닐 수 있겠군.’
그런데 그 때였다.
“어?”
짧은 머리, 안경을 쓴 40대 남자 하나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저... 한상훈 대표님 아니십니까?”
그래도 결국 알아보는 이가 있긴 했다. 본래는
‘아니 나를 아무도 못 알아보나?’
싶었는데 막상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보니
‘귀찮겠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모르는 척 해볼까?’
하지만 그는 이미 확신을 한 말투로 말했다.
“인빅투스... 맞으시지요?”
나는 거짓말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이 들어서, 주변을 살피면서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 남자는 눈치가 빨랐다. 내가 사람들 몰려드는 것을 싫어한다고 티를 내자 그 역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정도경제 고유성 기자입니다.”
경제지 기자. 그러니까 나를 알아본 모양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일전에 멀리서 뵀는데, 저 기억나지 않으시지요?”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일 하면서 때때로 기자들과 마주치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네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주성원 대통령님 서울시장이시던 때, 그 때 상 받으러 오셨었잖아요? 그 때 뵀었습니다. 1년 전인가요 2년 전인가요. 하하”
“아아 그러셨군요.”
나는 대충 대답을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아영이는 지금 화장실에 가 있었지만 곧 돌아올 참이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자들 중 몇몇은 돈만 되면 남의 사생활도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다. 오현주의 뒤를 쫒던 파파라치나, 대원일보 이원재의 충견들처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게 질문은 해왔다.
“저 이번 중국 사태가 우리나라까지 여파가 컸었지요. 여의도 많은 회사들이 이번에 고생 깨나 했는데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중국에 투자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경제신문 기자답게 경제 쪽 질문이긴 했지만, 나는 딱히 인터뷰를 응할 생각이 없었다. 벌써부터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요.’
라고 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그에게 대충 말해놓았다.
“뭐... 투자 했었죠. 중국에.”
그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투자의 방향을 생략해서 그렇지.
“아 그러셨습니까? 그럼 손실이 꽤... 있으셨겠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날아오는 데에, 멀리서 아영이가 들어갔던 건물에서 나왔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나는 아영이가 유명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인터뷰를 받고 싶지는 않군요. 저 놀러온 것이라 서요.”
그는 내게 더 뭔가를 묻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를 비켜나가며 아영이가 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자, 그는 나를 더 따라오지는 않았다. 아영이는 내게 물었다.
“오빠 아는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자야. 가자. 너 얼굴 보여주지 마. 괜히 인터넷 뉴스에 나올라”
“에이 카메라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뭐.”
나는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조금 수상하다. 아영이 말대로 카메라 같은 건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유성 기자는 나를 대상으로 기사 하나를 썼다. 내가 그걸 받아본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12일 뒤.’
뉴스에 내 이름을 적던 나는 요상한 뉴스 하나를 맞이했다.
‘승승장구하던 한상훈 대표. 대 중국 투자로 큰 손실?’
여태 봐왔던 미래뉴스에서 이런 뉴스는 없었는데, 크리스마스 날 만들어진 우연이 새로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듯하다. 나는 그 기사를 읽어보았다.
‘...한상훈 대표가 대중국 투자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카이게임즈, 현영제약, 퓨쳐싱크등 연이어 대박을 터트리며 투자계의 큰손이 된 한상훈 대표는 그 기세를 몰아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최근 중국에 대공황 사태를 겪으며 크게 낭패를 보며 여태까지 벌어온 투자금 대부분을 날린 것으로... 난관에 봉착한 그는 신앙의 힘을 빌리기 위해 명동성당을 찾아 기도를 드린 것으로...’
나는 보다 말고 이마를 짚었다. 아주 소설을 써놓았다.
‘그거 한 두 마디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써놨단 말이야?’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최근 반년 간 ‘투자회사가 돈을 잃었다’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수준이었으니까. 거기다가 나도 조금 오해를 하게 답변을 하긴 했다. 물론 그거가지고 기사를 쓴 건 잘못한 일이지만.
‘그래 이거 조회수 좀 나오겠다. 나 망하는 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꽤 있겠지.’
늘 그렇지만 대중들은 누가 망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체면상 대놓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나가던 누군가가 달리다 자빠졌다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매우 좋은 양식이 된다. 흙수저 출신에 승승장구하던 30대 초반의 청년. 나는 남들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가보면 내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저 새끼 다니던 회사도 학벌도 2급인데 그냥 운 좋아서 저렇게 된 듯.’
‘사람 운이 좋다는 거 같아요. 실무는 아래 있는 사람 장 부사장인가 그 사람이 다 본다던데.’
‘저거 운 빨 오지네. 저거.’
나는 그 기사를 두고 생각했다.
‘나오지 않게 막을까? 사실이 아니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니 망했다는 기사 먼저 나오고 후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그게 더 극적일 거 같긴 하다.
‘아유 결국 망했구나 저 새끼 저럴 줄 알았다 저거.’
그런 생각 하는 놈들에게 빅엿을 먹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내버려 두자. 이제 나도 유명인인데 늘 좋은 뉴스만 듣고 살 수는 없겠지.’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도 다 겪는 일이다. 일단 뭐만 했다 하면 악플 세례 달리는 일 말이다.
*
크리스마스 다음 날. 오전. 아직 그 뉴스는 뜨지 않았다. 기사 쓰고 내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뉴스가 뜰 거란 것을 먼저 안 사람이 있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은 ‘대원일보 이원재’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걸 받았다. 그는 별일이 없을 때도 이런 연말 때 나에게 안부 인사를 하곤 했었으니까.
“대표님 잘 지내시지요?”
나는 가볍게 그의 인사를 받았다.
“네네. 전 잘 지냅니다. 이 대표님은요?”
“네 저도 잘 지냅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묘한 뉴스가 하나 나왔더라고요?”
‘묘한 뉴스’라는 말에 나는 딱 그 뉴스임을 직감했다. 그는 그렇게 누구보다도 먼저 그 뉴스를 받아본 듯하다. 대원일보 계열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한 대표님이 중국 투자를 해서 크게 손실을 보셨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왜? 그게 진짜면. 나랑 연 끊게?’
그런데 그 때, 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 바보 같은 거짓 뉴스가 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