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59화 (159/198)
  • # 159

    셀 차이나(6)

    나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내 앞에 놓여 있는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내 앞에는 아주 두꺼운 보고서 네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걸 하나씩 들춰서 보려다가, 그 안에 빼곡하게 쓰여 있는 숫자들을 보고는 다시 덮어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것들은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보는 것으로 하고요. 그냥. 핵심만 추려서 말해주세요. 얼마나 벌었습니까?”

    내 말에 다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치를 살핀다. 나는 맨 위에 ‘일본 시장 투자 현황 – 강기욱 이사’라고 쓰여 있는 보고서를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

    “강 이사님부터 말해보시죠.”

    강 이사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입을 뗐다.

    “오늘까지 2900억 엔 한화로 3조 1천억 원 정도 됩니다.”

    나는 그 다음 보고서를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

    “김 이사님은요?”

    “42억 유로 우리 돈으로 치면 대략... 5조 9천억 원 정도 되는군요.”

    “그러면 정 이사님은?”

    “74억 달러. 환차익까지 생각한 수익은 한화로 8조 8천억 원 정도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내 옆에 있는 장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장 부사장은 내가 묻기도 전에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해주었다.

    “외환거래로 번 돈 오늘까지 15조 4천억 원입니다.”

    나는 머릿속으로 숫자들을 합산 해보았다.

    “그럼 대충 잡아도 33조 2천억이로군요?”

    그 어마어마한 액수에 다들 잠시 말을 잊는다. 33조 2천억 원. 우리는 요 몇 달 만에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버렸다. 사실 이것도 내가 인간적인 면모를 흘리느라, 조금 여유를 둬서 이정도일 뿐이다. 만약 내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직접 베팅을 했다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겼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이제 슬슬 정리합시다. 분위기 봐가면서 투자 정리하세요.”

    2021년 12월. 연말이 다가올 때 즈음. 나는 투자를 멈추고 수익금을 챙기기로 했다. 중국 대공황 이후 5개월, 그 여파로 혼란은 지속됐지만 그래도 급락했던 자산 가치들이 점차 하향 안정화되가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정부의 극약처방 때문이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던 중국정부는 대공황 초반 때만 해도, 국민들에게 만들어진 뉴스, 조작된 통계로 안정화를 꾀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폭로로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자산시장 폭락에 부채질을 하게되었다. 결국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치안 문제까지 불거지자 중국 정부는 결국 자신들의 실정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안으로는 옛날에 IMF때 우리나라에서 했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운동을 주도하고, 밖으로 자존심을 굽히고 해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캐나다, 호주에까지 심지어 역사 문제로 으르렁대던 일본에까지 손을 벌리면서 금융위기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꽤나 굴욕적인 계약 조건으로 차관을 얻어오게 되면서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되었던 것이다. 미래뉴스를 몇 달 빨리 받아보던 나는 이때 즈음 폭락이 멈추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 사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님.”

    이 비밀회의의 멤버들은 내 수족과 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에게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단. 외화로 번 돈은 일단 외화로 내버려 둡시다. 한국 사정도 한동안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건 사실이었다. 중국의 금융위기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중국 본인 다음에 바로 우리나라 한국이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대외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바로 중국이고. 중국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역시 크게 손실을 본 것이었다. 그래서 원화가치도 낮아진 터라, 달러, 엔, 유로가 일시적으로 가치가 더 높았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보고서를 한데 모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습니까? 요새 다른 투자회사들 분위기는?”

    정 이사가 먼저 입을 뗐다.

    “말도 마십시오. 다들 투자자들에게 욕먹고 멱살 잡히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강 이사가 그 말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인버스 산 사람 말고는 번 사람이 없다는 말이 돌 정돕니다. 어느 정도 사실이고요.”

    중국이 대공황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 주가 지수 역시 30%가 넘는 조정을 받았다. 말이 30%지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들은 모두 거덜이 나는 수준이다. 개미들은 대부분 소형주 위주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재무구조가 건실한 대형주는 하락을 해도 디딜 바닥이 있지만, 소형주는 그런 것이 없다. 70%, 80%손실을 보게 되면 개미는 회생 불가능한 타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장 부사장도 말을 덧붙였다.

    “여의도도 분위기 썰렁 합니다. 어제도 누구 한 명 한강에서 투신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안타깝더군요.”

    35조원의 돈을 벌고도 표정관리를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아무리 좋아도 누군가 죽고, 누군가 우울증에 빠지는 상황에서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가셔서 이제부터 조금씩 수익을 내고 나오는 걸로 방향 잡고 일 해주세요.”

    일동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사장님.”

    다들 일어서서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중에, 나는 손짓으로 몰래 장 부사장만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다른 이사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간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찾아보셨습니까?”

    “지금 찾아보고 있습니다. 워낙에 시장이 혼란에 빠져 있는 지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내가 찾는 것은, 위기에 빠져 있는 우량주였다. ‘위기에 빠져 있는 우량주’라는 말 자체가 조금 모순적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종종 존재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사업도 잘 되고 돈도 잘 벌어오는데 이번 중국 사태 때 실수로 거액의 돈을 잃게 되었다든지 하는 회사들 말이다. 이제 금융위기는 끝나가고 있었으니, 그런 알짜배기 회사를 싸게 주을 때다. 아까 장부사장도 말하지 않았던가

    ‘어제도 누구 한 명 한강에서 투신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라고 말이다. 오래된 주식격언 중 ‘누군가 투자 실패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그 때부터 매수를 시작하라’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전 재산을 날리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죽거나 죽으려고 할 때가 시장의 바닥이란 말이다. 조금 잔혹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개미들 시체 위에서 새로운 싹이 트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격언에만 의지해서 매수를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뉴스에서도

    ‘코스닥 하락 반전. 기나긴 하락 끝나나?’

    ‘코스피 5달만의 양봉. 희망봉이 될 수 있을까?’

    ‘5달 만에 돌아온 외국인 환차손 생각해도 한국 주식 싸다.’

    와 같은 희망적인 뉴스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중국 본토에 투자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중국에도 기회가 있겠지만 중국은 외국인 투자가 쉽지 않고, 정치 이슈에 왔다 갔다 하는 면이 있어서 내가 컨트롤하기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결국 싸진 한국 주식, 한국 회사를 사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그편이 미래뉴스의 등급을 올리는 데도 좋았다. 미래뉴스는 ‘한국에 상장된 기업’만 쳐주니까 말이다. 나는 여기서 바로 그랜드마스터 등급까지 달려갈 생각이었다. 될 수 있으면 그 ‘XXX’가 이어진 요상한 등급까지 가면 더 좋고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주시길.”

    “네 사장님.”

    그렇게 11월을 기점으로 내 네 명의 심복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해 왔다. 조 단위 수익을 가지고 말이다. 내가 수익을 챙길 때 즈음이 되니 타이밍 좋게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간 폭락을 겪으며 ‘IMF시절’공포를 떠올렸던 한국도 한 숨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사람은 바로 주성원 대통령이었다. 5월 취임하자마자 중국 투자를 제한했던 그는 당시에는

    ‘뜬금없다.’

    ‘중국을 무시한다.’

    ‘외교 결례다.’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 때 했던 행동이 ‘뛰어난 통찰력’, ‘과감한 행동력’등으로 묘사되며 엄청난 칭찬을 받았다. 지지율도 7~80%대로 고공행진하며 앞으로 몇 년간 국정운영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 된 일이었다. 주성원 대통령과 나는 일종의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협력자가 잘 되면 나도 좋은 일 아닌가.

    동시에 주성원 대통령도 내게 더욱 의지를 할 게 뻔했다. 이번 일로 크게 칭찬을 받았으니, 이제 보지 말라고 해도 오라클 뉴스를 찾아서 볼 판이다.

    *

    2021년 12월. 나는 평소처럼 8시 50분에 메일을 받고 뉴스를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물검색을 해서 한 번 더 뉴스를 받아보았다. 맨 처음 쓴 사람 이름은 ‘주성원’이다.

    ‘주성원 대통령 구미 공단 방문. 제조업 실태 보고 받아’

    뉴스를 읽어본 나는 다음으로 ‘김진표’를 써보았다.

    ‘김진표 경제부총리. 글로벌 경기 지켜보고 있다. 한국도 안정화 될 것.’

    “...음...”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두 번째 뉴스를 완독한 나는 마지막으로 ‘한상훈.’바로 내 이름을 써 보았다. 앞의 두 사람은 그 때 그 때 매번 변하지만 내 이름만은 늘 고정이다. 나는 거기에서 내 뉴스를 몇 개 받아보았다.

    ‘32세의 나이에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된 남자. 인빅투스 인베스트 한상훈 대표.’

    12달 뒤 뉴스에 그런 뉴스가 뜬다. 이전에도

    ‘포춘지 선정 대한민국 최고 부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 대표.’

    ‘천재 투자자. 세상을 놀라게 하다. 흙수저 출신에서 국내 최고의 부자로.’

    결국, 내 자산이 밝혀지긴 하는 모양이다. 나야 최대한 비밀로 했지만 세금 내고 영업하는 법인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뉴스까지 읽으면서 나는

    “후우... 그렇게 되었군.”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휴대폰을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국내에서 압도적인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감흥은 그저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내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언제든 이렇게 될 일이었어. 결국 시간 문제였지.’

    내가 내 이름으로 나오는 뉴스를 다 아는데, 이렇게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어렵다. 누구든 미래 뉴스만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의지만 있다면 나와 비슷하게 부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

    ‘33조원이라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내게 아무도 누구도 대항하지 못하게 되었군... 심지어 대통령마저도 내 꼭두각시나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어찌되었든 대한민국 정상에 서게 되었으니 만족감은 있었다. 강함이란 바로 자유로움을 뜻한다. 나는 누구보다 강한 상태가 된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고, 누구의 명령도 따를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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