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58화 (15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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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 차이나(5)

    ‘디데이’이후, 중국은 난리가 났다. 회사들은 줄지어 부도가 나 쓰러졌고, 주가지수는 폭락했다. 환율 역시 미친 듯이 날뛰며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중국 정부가 애써 수습을 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평소 권위주의적인 정부에게 굴복하던 중국 국민들도 돈이 걸린 일에서는 위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들은 통제에 반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과 물건들을 시장에서 빼기 시작했다. 주식, 부동산, 현물 할 것 없이. 시장에 풀린 재화는 순식간에 사그러 들었고, 경제체제를 지탱하던 신용 자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 냄새라면 기가 막히게 맡는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일본에서 날아온 그들은. 마치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상어 떼들 같이 달려와 피를 흘리는 고래를 보고 잔인하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래리 화이트 레드락 인베스트먼트 CEO. 중국 침체 깊어질 것. 중국 증시, 위안화 매도 권고.’

    ‘트라이 파트너스 CEO 존 테퍼. 중국 시장 대폭락은 이제 시작. 부동산이 더 위험.’

    ‘레이 워커. 투자자들에게 중국 시장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할 것을 제안.’

    ‘노무라 증권 선임연구원 야마구치 가즈오. 위안화를 엔화나 달러화로 바꾸어야 할 때’

    그들은 중국 증시, 위안화를 먼저 매도해놓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전이자,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구호이다. 먼저 매도를 쳐 놓고, 이렇게 언론플레이를 하면 세계의 다른 기관투자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개미들까지도 그들의 편에 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돈이 매도 포지션으로 몰리고, 그러면서 그들의 수익이 극대화된다. 살을 베고 거기에 소금을 치는 매우 악랄한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히 그편이 돈이 되기는 했다. 누구보다도 빨리 중국에 매도 포지션을 잡고 있었던 나는 그들의 편승에 힘입어 매일 같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나는 매일 대회의실에서 4명의 핵심멤버들과 미팅을 잡고, 그들의 보고를 받았다.

    ‘미국에 상장된 상해지수 인버스 급등 했습니다! 달러 차익까지 생각하면 수익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안화 다시 폭락했습니다. FX시장에서 수익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엔화는 오늘도 상승했습니다. 엔화를 낮추려던 일본 정부쪽에서는 허망해하고 있습니다만, 저희에게는 잘 된 일입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수입은 모두 일일이 체크를 하기 어려울 정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몇 천 억씩 돈이 불어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세 명의 이사들은 내게 보고를 해올 때마다 흥분해 소리쳤다.

    ‘이건 기록적인 수익입니다!’

    ‘사장님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가 되실 겁니다!’

    ‘위안화는 내려가는데 달러는 폭등 중입니다. 이건 두 배로 버는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점잖은 편인 장 부사장까지도 내게 그런 소리를 해왔다.

    ‘우리는 투자 업계에서 신화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장님!’

    신화. 맞다. 이건 그야말로 신화였다. 나중에 대한민국 투자 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그런 신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신화 속에서 점점 돈의 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우리 회사가 중국에 매도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라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대중들에게 ‘중국 금융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과부제조기’

    돈은 벌더라도, 그런 별명을 얻고 싶지는 않다. 특히 앞으로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입단속을 해야만 했다. 주변에서 다 울고 있는데 나 혼자 잘나간다고 웃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핵심 멤버 4인방에게 절대로, 비밀을 엄수하라고 지시했다.

    ‘네 사장님.’

    그들 역시 사건의 엄중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에 절대적으로 따랐다.

    ‘대박입니다! 사장님!’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끼리 있을 때만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합의를 보고 말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

    “오빠 그런데 말이야...”

    아영이는 내 앞에 커피를 놓아 주며 말했다.

    “요새 괜찮아?

    나는 그녀가 타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들며 말했다.

    “응? 뭐가?

    “아니, 요새 중국에서 난리 났잖아. 그래서 우리나라 주가지수도 계속해서 빠지고 하는데... 오빠 회사는 괜찮은가 해서.”

    우리 회사 상태는 괜찮은 것 이상이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나름 리스크 관리를 해왔거든.”

    “흐음 그래? 그럼 다행이고.”

    “왜 걱정했어?”

    “아니 이 회사 저 회사 다 쓰러진다 뭐한다 하니까. 우리 회사도 어렵지 않나 했지.”

    나는 잠시 내 자회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음. 몇 개는 어려울 거야. 아마도.”

    중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하게 우리나라를 때렸다. 해외에서

    ‘중국발 금융위기, 최대 피해국은 중국 다음 한국.’

    그런 리포트가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많은 회사들이 중국에 투자를 했던 것이 폭삭 망했다든지, 아니면 중국 쪽에서 받기로 한 돈을 떼였다든지 하는 바람에 휘청거렸다. 주가지수도 그에 반영이 되어서, 코스피, 코스닥도 연일 하락했다.

    거기에 위안화와 연동계수가 높은 원화 자체가 많이 내려가는 바람에 환차손 우려를 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면서 시장 하락은 더더욱 가속화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OH엔터테인먼트, 지우엔터 그리고 블루E&M 같은 주식은 순식간에 2/3토막이 나버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회사들은 워낙에 시가총액이 작았으니까. 몇 백 억대 타격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 돈은 해외 시장에서 매일 마다 벌어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화이자에 팔았던 현영제약인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제약주들 거품이 꺼지면서 현영제약 역시 1조원 시총을 잃어 가며 반토막이 나려고 했다. 그래서, 조금 미안하지만.

    ‘역시 팔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두 만드는 창해식품과 술 빚는 송원양조는 잠깐 떨어지는 듯 하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 원재료로 한국 돈을 받고 한국에다가 물건을 파는 이 회사들은 글로벌 위기가 와도, 딱히 떨어질 요소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영이는 우리 회사가 무슨 주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았다.

    “맞아 오빠. 그 OH엔터테인먼트 주식 많이 떨어졌던데 그건 괜찮아?”

    “괜찮아. 꽤 떨어지긴 했는데... 그 정도는 다른 곳에서 벌고 있으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구.”

    그런데 그 와중에 주머니에 있던 내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나는 아영이에게 눈짓을 하고 전화기를 들어보았다. 전화기를 들어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권오혁 사장이다.

    ‘양반이 못 되시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네 대표님. 접니다. 권오혁. 잠깐 통화 가능하실까요?”

    “네네 말씀하시죠.”

    권 사장은 내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희 괜찮을까요? 사장님?”

    나는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 악영향을 받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조금 기다리시면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 겁니다. 지난 번 합작 법인 연기된 이후로 중국에 투자 크게 하신 일은 없으시잖아요?”

    나는 작년 정례 보고 때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만 해도 권오혁 사장은

    ‘그러면 저희 애들이 일정이 안 맞는데...’

    그러면서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아 참 먼저 말씀드린다는 게 깜빡했습니다. 대표님.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대표님이 그 때 중국 법인 투자를 막으셔서 가까스로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뭘요. 어쨌든 유보금 조금 까먹더라도 버티고 계세요. 중국 향 매출은 조금 줄겠지만... 아 이 참에 일본이나 미국 유럽 남미 쪽으로 활로를 뚫어보는 것도 생각해 보시고요.”

    내 말에 그는 바로 대답한다.

    “네 사장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권오혁 사장은 내게 그렇게 인사를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물끄러미 그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중국이야 바다 건너 일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OH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게 뻔했다.

    내 사설을 본 주성원 대통령이 동분서주하며 나름 노력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2년간 준비를 했다 한들,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문득 든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서 정치 1면을 보았다.

    ‘주성원 대통령 중소기업대표 면담. 향후 대책 방안 논의.’

    그는 예전에 내가 미래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내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청와대에서 계속해서 내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 할 것 같네. 여태까지 이끌어줬으니. 다음 것도 궁금해 하겠지? 하지만 이제 내가 따로 뭐라고 해줄 건 없... 아니 있군.’

    나는 커피를 머리를 굴리다가, 다음 작. 오라클 뉴스에 올릴 다음 사설 제목을 떠올렸다.

    ‘위기는 곧 기회다. 중국발 금융위기. 한국으로서는 재도약 기회.’

    사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차, 화학, 조선, 전자제품 등등 중국과 제조업 하는 게 너무 똑같아서, 중국이 크면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몰락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얼마 전까지야 돈의 달콤함에 취해서 대중국 무역을 늘려가곤 했지만, 사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목을 옥죄는 일이긴 했다.

    당시에 한국에서 적게는 세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 연봉을 제의 받고 중국으로 넘어간 반도체 기술자만 몇 만명이라는 말 있었으니까. 일본이야 체급이 비슷해 경쟁을 할 만했지만(특히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가 압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중국은 달랐다.

    그 쪽은 수많은 인구와 넓은 땅덩어리로 우리나라를 완전히 압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중국의 이번 위기는 한국에게 단기적으로는 악재였지만, 장기적으로는 호재라고 봐도 됐다. 물론 지금 준비를 잘 해놔야겠지만.

    ‘뭐 그런 식으로 쓰면 되겠군. 지금 너무 당황해 하지 말고, 오히려 이럴 때 준비를 잘해서 재도약할 기회를 잡자고... 그러면 대통령님도 알아들으시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참 우리 회사도 슬슬 넥스트를 준비해야겠지?’

    우리 회사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네 부사장님.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생각해보지요. 조금 이르긴 하지만. 빨라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다음 단계요?”

    “네. 이제 이사 분들 몇몇 시켜서 우리나라 기업들 중국 투자 현황 좀 조사하게 시켜주세요. 어떤 회사가 어느 분야에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그리고 더불어서 자산 대비 규모가 얼마나 되고, 그게 부실이 되었을 때 어떤 여파가 있는 지 등등도 말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락장에 베팅해서 맞췄을 때 얻는 이득은 바로 이것이다. 내릴 때도 돈을 벌지만 돈을 벌고 나면, 현금 한 장 아쉬워하는 굶주린 기업들이 싸게 나와 있다. 남들이 사건이 터져서 당황해 할 때, 나는 미리 다음 수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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