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57화 (157/198)
  • # 157

    셀 차이나(4)

    현대의 경제체제는 신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 위인이 그려져 있는 종이 쪼가리로 밥을 사 먹거나, 신발을 사 신거나,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로 갈 수 있는 것은 그 종이 쪼가리가 그 정도 가격을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핀테크가 점차 발달하면서 그마저도 거의 쓰이지 않고, 우리는 단지 우리의 자산을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숫자로만 인식하고, 주고받는다. 디스플레이에 출력되는 디지털 기호만으로 우리는 세금을 내고, 차에 기름을 넣으며, 해외여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신용에 금이 갔을 때다.

    만약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단지 인물화가 그려진 종이쪼가리가 된다면. 우리 계좌에 들어 있던 숫자들이 진짜로 디지털 기호에 지나지 않게 된다면. 그러면 우리 사회는 순식간에 파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해가 뜨면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걸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현재 시각은 7시 59분. 그것이 딱 8시 00분으로 바뀌는 순간.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알람이 울리며 화면에 ‘디데이’라는 문구가 떴다. 나는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다가, 알람을 껐다. 뒤쪽에서 아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좋은 아침.”

    창 밖에 뜨는 해나, 아영이 인사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이다. 나는

    “응 좋은 아침.”

    아영이의 인사를 받으면서 피식 웃었다.

    “오빠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는데... 그냥 간단하게 차려줘. 조금만 먹고 내려가려고.”

    “오늘 출근하려고?”

    “응.”

    “알았어. 좀만 기다려.”

    아영이는 자신의 머리를 묶은 다음

    “흠~ 흠~ 흠~”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햇살에 그녀의 뒷목이 붉게 변한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모든 신용 위기들은 이런 평범한 날 중에 일어난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

    고 여겨지는 어느 날에. 갑자기 툭, 하고 하나가 쓰러지고, 다른 하나가 쓰러지고, 그것들 때문에 어떤 커다란 게 하나가 쓰러지고 그것에 의지하던 여러 개가 쓰러지고 쓰러지고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런 일들이 늘 반복되면서도, 사람들은 이런 것이 늘 반복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연에 방지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은밀하게 우리를 찾아온다.

    *

    아영이가 해준 아침을 챙겨 먹은 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로 출근했다. 사장실 앞을 지키던 박 비서는 나를 보고 살짝 놀라더니 인사를 했다.

    “아 오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그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놀래?”

    “아... 오늘 일정이 없으신데 출근하셔서요.”

    오늘은 공식적인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은 날 중 하나였다. 요새 주주총회다, 자회사 미팅이다, 신규 사원 환영회다, 뭐다 워낙에 바빠져서 자주 있는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예 일정이 없는 날이 있기도 했다.

    나는 보통 이런 날에는 집에서 아영이랑 영화 보고 밥 해먹으면서 놀거나, 아니면 차 끌고 다른 곳에 드라이빙을 가곤 했다. 거의 대부분 말이다. 그러니, 박 비서가 내 일정표를 보고 출근 한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아아... 그렇지. 어제 갑자기 해야할 일이 생각나서.”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몇 시쯤 진행될까요?”

    박 비서는 완전히 프로 비서 모드가 되어 내게 물었다.

    “아 그게... 조금 있다가 내가 말해줄게.”

    지금은 일이 없지만, 잠시 후 일이 생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나는 미리 내려온 것뿐이다. 나 찾기 전에 와서 앉아 있으려고.

    “네 그러십시오. 사장님.”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실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벽걸이 시계가 딱 8시 48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바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8시 49분. 부팅이 완료되고 나는 메일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집어넣고, 메일함에 가보았다. 딱 메일이 네통 와 있다.

    ‘M 12시간 뒤’

    ‘M 12일 뒤’

    ‘M 12주 뒤’

    ‘M 12달 뒤’

    나는 ‘12시간 뒤’ 메일을 열어보았다.

    정치 – 주성원 대통령 중국발 대공황 최대한 영향 없도록 철저 지시

    경제 – 상해 지수 폭락 중국판 블랙먼데이. 국내 증시도 따라 와르르

    사회 – 은행 앞 줄 선 조선족 동포들.

    생활/ 문화 – 위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 영화 ‘빅 쇼트’해설.

    세계 – 상해, 홍콩 증시 대폭락. 망연자실한 사람들.

    IT/과학 – 인공지능의 반란. 자동매매 알고리즘이 대폭락을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난리가 나 있다. 스포츠와 연예 면을 제외하면 전부 다 중국발 금융위기 관련 뉴스뿐이다. 나는 그걸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일은 큰일이로군...”

    미리 다 알고 있었지만, 직접 당일 날짜가 되니 실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 이후로, 망하는 회사, 망하는 오너들, 회사에서 짤리는 사람들,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는 사람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메일을 닫고, 내 전용 HTS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가 더블 클릭을 했다. 보통 이 시간에 HTS를 켜서 인공지능이 알고리즘 매매가 되도록 가동을 시켜놓고 나는 딴 짓을 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물지도’ 역할을 하는 내 일정표 앱이 한동안 완전히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시작으로 며칠간, 코스피건 코스닥이건 급등하는 종목은 없다.

    ‘제성약품 임상 2상 통과 상한가 도달.’

    ‘유성제지 펄프값 하락으로 인해 6거래일 연속 상승’

    ‘피엔게임즈. 신작 모바일게임 양대마켓에서 매출 1위 달성. 52주 신고가.’

    이러한 뉴스가 나오는 대신 그곳을

    ‘우진건설 2연속 하한가’

    ‘기관들 로스컷 물량 쏟아져 나와 ’

    ‘외인들 신용경색 우려에 연일 매도’

    그러한 뉴스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딱히 매매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애초에 여기서 버는 돈은 적은 돈(한 달에 400억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이제 오늘 뉴스가 뜨면 나는 하루에 몇 천억 씩 벌게 될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오전 10시. 우리나라와 한 시간차를 두고 개장한 상해지수는 최근 늘어난 기업 부도 때문에 –1%하락한 수준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하락해서 –2%, -3%대 거래가 지속되었다. 보통 투자자들은 종합주가지수가 –1%정도까지 빠지면 조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2%가 빠지면 슬슬 폭락이라고 이야기하며, -3%대부터는 대폭락으로 분류를 한다.

    중국 상해 시장은 조정으로 시작해서 장 개시한지 1시간 만에 대폭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양손을 모은 다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즈음 중국 위안화, 그리고 주가하락에 베팅해 놓은 내 돈들은 급격히 불어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리고 11시 경. 상해 종합주가지수가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수준인 –4% 되던 때에, 전화가 왔다.

    “사장님. 장 부사장님이 찾아뵙고 싶어 하십니다.”

    “들어오시라 그래.”

    장 부사장은 살짝 들뜬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사장님. 큰일입니다.”

    “...아 네. 저도 보고 있습니다. 상해 종합주가지수가 4%나 빠졌더군요.”

    나는 다소 놀랍다는 말투로 말했다. 물론 나름 연기를 한 말투다. 장 부사장은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단지 내게 자신이 알아온 뉴스를 말했다.

    “오늘 중국은행이 부도가 난 지방 국영기업에 대한 자금 수혈을 거부했다는 뉴스가 돌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파장이 엄청날 겁니다.”

    그가 말하는 ‘중국은행’은 중국의 은행을 총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BK은행’혹은 ‘우리들은행’ 혹은 ‘두리은행’처럼 중국의 한 국영은행을 말하는 것이다. 한자로는 딱 中國銀行. 영어로는 ‘Bank of China’ 그야말로 중국을 대표하는 은행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은행이 국영 기업부도를 막아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전 우리나라 국영기업, 한국전력 같은 기업이 망하는데 나라에서 돈을 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거 놀라운 이야기로군요.”

    나는 계속해서 어설픈 연기를 펼쳤지만 장 부사장은 당장 벌어진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그것과는 상관 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런데 그 때, 내 모니터에 띄워져 있던 상해종합주가지수가 쭉 하고 그린 듯 하락했다. 1초만에 -7% 그리고 다시 3초 만에 –9%그리고, 거기서 지수가 멈추었다. 나와 장 부사장은 동시에 소리쳤다.

    “서킷 브레이크”

    “서킷 브레이크”

    서킷 브레이크란 시장 투자자들의 공포심이 너무 심해서 주가가 지나치게 내릴 때 시장의 주재하는 주체가 일시적으로 거래를 멈추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너무 변동폭이 커지면 그것 때문에 탐욕에 젖거나, 공포에 질려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장 부사장은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상해지수가 –9%라니...”

    동시에 코스피도 –4%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5%가면서 서킷 브레이크. 한국도 걸렸다. 일본도 마찬가지, -4%. 동남아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장 부사장은 혼란스러워했다.

    “이거 큰일. 아니 사장님. 저희?”

    나는 손을 두어 번 쥐었다가 펴면서 서로 맞잡았다. 장 부사장은 그제야,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대박입니다! 사장님!”

    하지만 나는 얼굴을 굳힌 채로 가만히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그 때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 띠리리~”

    나는 그걸 받아보았다. 박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강 이사님이 찾아뵈시려고... 아 그리고 김 이사님... 아 그리고 정 이사님도 오셨습니다.”

    “두 분다 들어오시라 그래.”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끊었다. 곧 두 사람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대박입니다 사장님! 닛케이에 사놓았던 중국인버스 ETF가 수익률이 30%가 넘었습니다.”

    “FX 쪽도 엄청납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위안화 거래는 막혔는데. 재개되면 수익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미국은 장이 열려 있지 않아서... 하지만 이미 선물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바로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될 겁니다!”

    나는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네네. 잘 됐군요. 제 예상이 맞아서. 하지만 전에 말했지만 다들 너무 티내고 다니지는 마세요. 저희는 단지 국제 투기 세력하고 발맞추어서 위안화, 그리고 중국 주식을 매도한 것 뿐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다들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회사 돈이 완전히 돈을 쓸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일단 자기들 자리에 돌아가셔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확인해보세요. 저도 그러고 있겠습니다.”

    “네 사장님.”

    흥분한 마음에 사장실로 직접 찾아왔던 그들은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모두 사장실 밖으로 나간 뒤, 나는 나는 두 손을 잡고, 사무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후우......”

    기일게, 숨을 내쉬었다. 그들더러 흥분을 감추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지금 심장이 뛰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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