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셀 차이나(3)
빈 A4용지에, 커서만이 점멸하고 있다. 나는 그걸 마주하고는 팔짱을 낀 채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요 몇 년간 미래뉴스건 현실뉴스건 엄청나게 많은 뉴스를 봐 왔던 나지만, 내가 직접 뉴스에 실릴 원고를 쓰려고 보니 막상 그게 쉽지만은 않다.
‘중국의 금융위기 현실화 한국의 대응 방안은?’
제목만 뽑아놓고 거의 한 시간 째 모니터를 째려보던 나는 우하단으로 시선을 돌려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2시. 오전에 정소영 대표를 불러놓고 호기롭게
‘오늘 퇴근하시기 전에 원고 보내드릴 테니 바로 검토 해주세요.’
그런 말을 해놓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정작 단 한 줄도 쉽게 나오질 않았다.
‘퇴근하시기 전이라고 해놨으니 3시간 아니면 늦어도 4시간 내로 써서 보내야하는데...’
마감에 시달리는 작가들 심정이 이런 것일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생각했다.
‘조금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할까? 저녁에 어디 한적한 카페에 들러서 글을 써보는 거야 그렇다 한들 정소영 대표가 나를 타박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냐. 오전에 그렇게 폼 잡고 말했는데 기한 좀 연장해달라고 하면 모 회사 사장으로서 권위가 떨어지잖아. 그냥 하자’
‘아냐 회사 중요한 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하면 되지. 지금 내가 조 단위의 돈을 움직이는데, 더 중요한 일이야 얼마 든지 있을 수 있잖아?’
‘그건 맞아. 하지만 그런 식으로 미루고 미루다보면 결국 못 쓸걸.’
스스로 내적 갈등을 반복 하던 나는.
“후우읍.”
길게 숨을 한 번 들이 키고 키보드에 손을 가져가 가까스로 첫 문장을 뗐다.
‘현 시대, 전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현 시대, 전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걸 오빠가 썼다고?”
내 사설이 올라가 있는 인터넷 페이지를 보던 아영이가 나를 보며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어때?”
“잘 쓴 것 같은데? 어려운 내용인데 술술 읽히고?”
“술술 읽히는 것은 아마 전문가들이 만져줘서 그럴 거야. 처음에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래도 대단하다아. 이런데 글도 써서 올리고.”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게 생각보다 고된 일이더라고.”
“아무래도 그렇지. 나도 이렇게 긴 글 쓰라고 하면 며칠은 고생할 것 같은데? 수고했어. 우리 대표님. 글도 쓰시고 말이야.”
아영이는 내 뒤로 와서 내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런데 아마 이런 걸 세 네 번 더 써서 내야할 것 같아.”
“음? 왜?”
“글쎄...애국심 때문에?”
“애국시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영이는 영문을 몰라 했지만 나는 내막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있어. 그런 게... 아 참 그리고 이거 내가 썼다는 거 일단 비밀이야.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한테도 말하면 안 돼?”
“...그래? 으음... 알았어.”
내 진지한 말투에, 아영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은 내 말을 받아들였다. 오라클 뉴스의 사설은 대단히 은밀한 소통 창구였다. 내가 대통령에게 직접 쏘는. 이게 밝혀지면 나는 비선실세라 못 박혀 대중들의 비난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잘 하든 못 하든 간에, 우리나라사람들은 비선실세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있지 않다. 애초에 비선실세라는 게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어찌되었든, 나는
‘한국 정부, 기업의 대중국 투자를 줄여야한다.’
‘중국발 금융위기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과다한 신용을 줄이고 부실을 털어내야 한다.’
‘지금은 투자보다 긴축을 해야 할 때’
라는 식의 사설을 주기적으로 써서 내보냈다. 선거가 이루어지고, 결과가 나오고, 취임식을 하는 때 까지. 그리고 그것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
2021년 5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자 제 7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한 주성원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하는 것과 동시에, 이미 집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정부의 대중국 투자 규모를 줄이고, 기업들의 중국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사람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대게 새로 취임한 대통령들은 국회 그리고 검찰청과 같은 다른 권력기관을 견제하면서 권력을 쥐는데 전념하기 마련이데. 뜬금없이 해외투자를 막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주성원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언론사조차 이것을 ‘생뚱맞은 행위’로 언급했고 야당에서는 ‘GDP 2위 대국과의 경제 교류를 망치는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6월 들어서 몇몇 중국 업체가 채권 만기에 빚을 갚지 못하고 망할 때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성원 대통령을 두고 ‘G2이자 패권국인 중국을 무시하는 위험한 베팅을 한다.’며 비판했다. 그리고 7월이 되었다.
*
7월 1일. 나는 대회의실에 앉아, 네 명의 최측근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미국 내 차이나인버스는 거의 대부분 매수 완료했습니다..”
“닛케이 상장 ETF도 매수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달러 매수, 위안화 매도 목표치에 근접해 있습니다.”
2월 첫 소집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이들에게 분배한 5조원의 투자금액은 거의 다 투자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다들 수고 많네요. 다들 마지막까지 힘내 주세요.”
나는 그들 앞에서 일단 그렇게 말해놓았다. 이제 곧 파국의 시작이다. 하지만 와중에 사정을 잘 모르는 김 이사가 내게 묻는다.
“저어 사장님 그런데 괜찮을까요? 과연 중국이... 정말 신용위기를 겪게 될까요?”
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어 보인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조금 안타깝지만 이해를 못 해줄 것은 아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세계 4위의 커다란 면적에 세계 1위의 13억 명의 인구수를 가진 나라였고, GDP역시 맹렬하게 미국을 쫒아가는 중이었다. 중국의 정치체계는 권위적이고 뻣뻣했지만 그만큼 효율적인 면모도 있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 조금 이익을 보는 중인데 여기서 그만 빼는 것이 어떨까요?”
여태까지의 투자는 조금, 아주 조금 수입을 내고 있었다. 최근 하나 둘 부도가 나는 기업들을 본 중국 정부가 위기감을 느낀 적극적으로 기업 구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고 해도 5조원 투자였기 때문에 백억 단위는 됐지만.
“혹시라도 중국 경기가 반등이라도 한다면 저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의 말대로 손실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몇 천억, 몇 조까지도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십 수백 번 30%, 40%, 70%, 120% 수익을 내던 사람도 –99%. 손실을 보면 바로 거지가 된다. 그리고 지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상황이 바로 –99%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미래뉴스 전부가 중국 관련 뉴스로 도배되어 있는데 무슨 변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스포츠 면에서도
‘중국 진출한 김규환 선수. 위안화 폭락에 연봉도 같이 폭락.’
그런 뉴스가 뜰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에게 대놓고 반박을 하지 않았다. 본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김 이사도 이쪽에서 구를 만큼 굴러본 투자의 베테랑.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김 이사님 말씀은 이해합니다. 대마불사.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군요. 큰 말이 죽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라고요.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에서부터 최근 3년간 있었던 일들은... 제 생각의 일종의 준비 아니었는지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중국을 제대로 치기 위한 준비 말입니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이번에는 강 이사가 슬쩍 껴들었다.
“저... 저는 대표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번에 미국 투자를 하면서 월가 쪽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미국에서도 놀랍게도 그런 동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헤지펀드들이 위안화, 그리고 중국의 신용 부실을 체크하고 있답니다. 몇몇은 벌써부터 팔고 있고요. 위안화를 팔면서 언론플레이까지 더 해진다면 중국의 신용은 급격하게 나빠질 겁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나 말고도 중국의 붕괴를 예측하는 세력은 또 있는 듯하다. 월가에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수익률만 생각하는 헤지펀드들 말이다. 이쪽 업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죽는 것에도 눈 하나 깜딱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쪽 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지 소로스. 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 엔화 매도, 영국의 ERM 탈퇴 당시 파운드 화 매도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부제조기, 위도우 메이커(Widow maker)라는 별명이었다. 국가 신용 위기나 화폐가치 하락을 예견한 그가 나라 단위 매도를 들어가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면 그 나라의 실업률이 치솟고, 가장들이 자살하면서 과부가 만들어진다는 속설에서 붙은 것이었다.
‘과부제조기, 위도우 메이커라...’
문득 그 생각을 하던 나는 잠깐 나에게도 그런 별명이 붙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 일이긴 하지만, 나 역시 IMF때 당시의 일들은 기억하고 있다. 어디론가 이사 가던 주변 사람들, 반대로 우리 집 근처(18평짜리 주공아파트였다.)로 이사를 오던 주변 사람들, 도장을 접을지 말지 고민하던 아버지. 식당 아르바이트에도 자리가 없다는 어머니. 전체적으로 우울한 사회 분위기 등등.
그런데 지금 중국이 딱 그 꼴이 나게 생겼다. 이대로라면 중국 내에도 수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자살하는 사람,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 파탄 난 가정 들들이 속출할게 분명하다. 어쩌면 내가 그 상황을 빚어낸 사람 중 하나로 여겨질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한 마디를 해놓았다.
“어쨌든 우리 회사 투자 내역은 계속해서 비밀로 해두세요.”
어차피 나중에 밝혀지긴 할 테지만. 우리 회사가 다른 헤지펀드들보다 선제적으로 ‘셀 차이나’를 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다. 애초에 공매도라는 것은 어떤 것의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행위여서 당사자에게는 매우 고통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나야 뭐 시대의 조류를 먼저 읽고서 움직인 것뿐이지만. 그래도 과부제조기 같은 별명은 얻고 싶지 않다. 장 부사장도 한 마디를 한다.
“본래 매도로 수익을 냈을 땐 입을 닫고 있으란 말이 있지요. 그게 우리에게는 이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될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맞잡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들 아시고. 계속해서 노력해주시길.”
나는 짧은 미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반론을 펼쳤던 김 이사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어차피 파국이 머지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내 휴대폰 일정표 앱에서
‘디데이’
라고 알람이 울린 날. 파국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