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셀 차이나(2)
회사 임원들과의 미팅 이후, 우리 회사는 아주 조용하게, 은밀하게 중국 관련 자산을 공매도하는 상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FX 위안화 매도, 상해 주식 인버스 레버리지, 홍콩 항생 풋옵션 등등. 한국, 미국, 중국, 홍콩, 싱가포르 할 것 없이 다양한 시장에서 상품 중국 관련 자산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라면 조금씩 손을 댔다. 본래 나는 매우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FX 외환 거래를 계획했으나
‘사장님 그랬다간 정말 순식간에 전 재산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장 부사장의 만류에 분산 투자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내게 나온 미래뉴스는 정확하게 몇 월 며칟날 위안화가 얼마고, 상해지수가 얼마라고 쓰여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대략적인 방향성 뿐 만이었다. 우하향하는 자산도 장 부사장 말대로, 하루나 이틀 정도는 불쑥하고 올라갈 수도 있었으니까.
극단적인 베팅을 했다가 운이 매우 나쁘면 손실이 감당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커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돈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골드나, 플래티넘 단계까지 강등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다시 돌아오는데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소 상식적인 수준(그래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미친 수준이긴 했지만)으로 중국 자산 매도를 실행시켰다.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본래 모든 경제 사이클은 춘하추동. 사계절과 같아서 위기 뒤에 재건이 있고, 재건 뒤에는 호황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느 경제든 간에 한번 폭삭 망하고 나면, 알짜배기들만 남게 마련이다. 그것도 매우 싼 가격에.
그 때 벌어들인 돈으로 그 물건들을 싸게 사들이면 경제 재건과 동시에 수배의 돈을 벌게 된다. 내려갈 때 한 번, 올라갈 때 또 한 번. 두 번 크게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산의 변곡점을 파악할 수 만 있다면, 계절이 변하는 타이밍을 알 수만 있다면 돈을 완전히 쓸어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올해 7월.’
아마도 글로벌 헤지펀드 몇몇도 눈치는 채고 있었을 것이다. 글로벌 경기가 가을이 지나서 겨울.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몇몇 이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차이나 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에 조금씩 프리미엄이 끼고 있습니다.’
‘개인 외환 딜러들은 고시된 환율보다 조금 싸게 위안화를 팔고 있습니다.’
‘헤지펀드 옐로스톤이 알리바바 지분을 처분하기로 했답니다. 할인율이 꽤나 높습니다.’
그런 뉴스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3월. 가든 로얄 봄 모임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늘 그랬듯이 이곳에서는 입하나 벙끗하지 않았지만(특히 미래뉴스에 관한 내용이라면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모임에 참석한 재벌 3세, 4세들도 중국 이야기를 해댔다.
“이번 중국 유통 진출 사업 조금 규모를 줄이기로 했어.”
“왜?”
“이사 몇몇이 태클을 걸어와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나 뭐라나. 올해 중국 경기가 다소 침체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투자 금액을 줄였어”
나는 그걸 들으면서 생각했다.
‘다소 침체?’
다소 침체가 아니라 대공황이다.
‘이사들이 바보로군. 아니... 바보가 아니라... 지나치게 똑똑할 수도.
그에게 ‘태클을 건 이사 몇몇’은 정확한 예측을 했으면서도, 오너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간언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너가 의욕적으로 어떤 사업을 진행해보려고 하는데 어떤 간 큰 이사가
‘지금 당장 철수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하겠는가. 직언을 하더라도 적당히 비위 상하지 않게 돌려서 말하는 게 정석이다. 이사는 연봉은 높지만 모두 계약직이니까. 일단 목숨을 보전해야 일 이년 연봉이도 더 챙길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인간에게 미래는 예측의 영역. 이사들도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라고 했다가 독박을 쓰는 것보다는
‘이럴수도 있습니다. 저럴 수도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다.
“얼마나 줄였는데?”
“70%정도로”
‘0%로 줄였어야지.’
나름 우리나라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사람들도 약간의 낌새를 눈치 챘을 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그래도
‘중국에 대공황이 온다.’
그런 생각을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내가 지켜본 결과 이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성향 문제도 있었다. 이 재벌 3세, 4세들은 맨땅에서 대기업을 세운 본인들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세대와는 달리 조금 도전정신이 부족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면모가 있었다.
다들 물려받은 돈으로 규모의 경제에서 이기는 소위 ‘안전빵’만 챙길 뿐. 본인들의 선조들처럼 명운을 건 베팅은 잘 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커져서 그런 면도 있지만 말이다.
“중국에 침체가 온다고? 우리 그룹 경제연구소 팀은 별일 없을 거라던데. 한 대표 어떻게 생각해?”
개 중에는 내게 의견을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프로 투자자답게.
“위험할 수도 있겠지요. 조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정도로 말을 해두었다. 이것은 주식, 부동산과 따지지 않고 자산 가격 미래예측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의 말이다.
‘~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도 좋겠다.’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을 해놓는 것이다. 봐서 맞으면 맞는 대로 좋고, 틀리면 틀린대로.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벗어날 수 있는 사실상 들으나 마나한 애매한 말을 해놓는 것이다. 그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누군가가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봐 한 대표. 자네는 이쪽에서 완전 제일 프로잖아. 업 올 다운. 뭐야?”
나름 경영자다운 돌파력이지만 나는 얍삽하게 빠져나갔다.
“미래는 아무도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주식시장에 그런 말이 있지요. 주식은 예측하는 게 아니고 대응하는 것이다. 중국 내 경제지표가 어떻게 나오는지 환율 움직임은 어떤지, 주식 시장은 어떻게 흘러가는 지 지켜보세요.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대응하세요. 그러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조금은 양심에 찔렸다.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경제지표라고 해서 다 믿을 것도 못 되는 게, 중국은 정치든 경제든 권위주의적인 면이 강한 나라여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통계를 조작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데이 5개월 남은 지금도 경제 지표는 잘 나오고 있었다. 현실세계에서는 어떻게 썩어 문드러져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와중에 탁문수는
“너무 그렇게 한상훈 대표 몰아세우지 마. 한 대표가 우리 전속 자문도 아니고.”
또 내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여간 그는 내게 늘 좋은 사람이다. 그가 왜 내게 그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럴 때는
‘참 좋은 사람이다.’
혹할 것 같았지만. 그 때 그 수연여행 옥상에서 탁준기를 보면서
‘보내버려.’
한 손으로 자신의 나머지 손목을 탁탁 치던 그 모습 때문에 그를 좋게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도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싱글벙글한 인상이 가을까지도 갈까?’
하는 생각 말이다.
*
4월. 4월에는 예정된 이벤트 두 개가 일어났다. 먼저 탁문수의 아버지 탁우경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뉴스대로다.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꽤나 정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였는데, 갑작스럽게 그렇게 심근경색이 와버렸다.
대기업의 오너로서 전문 의료진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을 텐데. 하여간 인명은 재천인 듯하다. 물론 나한테 심근경색이 온다고 하면 아예 병원에 가서 누워있었을 테지만. 탁우경이 그렇게 병원에 실려 가면서 알만 한 소수의 사람들은 대부분.
‘탁우경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죽으면 상속세 문제가 있을 텐데?’
‘그러면 수연그룹 승계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식의 생각을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언론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질 않았다. 이슈가 되지 않도록 수연그룹에서 입단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탁우경이 죽을 때 기회를 노린다.’
탁준기의 말을 떠올렸지만, 일단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으니까. 나는 그를 보는 것보다도, 매일 미래뉴스에서 중국 쪽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이사들에게 투자에 관한 보고를 받는 것으로 매일매일을 바쁘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두 번째 예정된 이벤트는 다름 아닌 대선이었다. 대선투표는 5월 2일. 투표를 한 달여 앞두고 다시 한 번 더 대선 레이스가 펼쳐졌다. 내가 판을 짜놓은 대로, 주성원 시장은 단연 1등. ‘주성원.’으로 인물 검색을 해봐도 그가 계속해서 당선이 되는 것으로 나왔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주성원 시장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큰 위기에 봉착한다는 점이었다. 본인은 규제완화, 저소득층지원, 복지강화, 중소기업 지원, 창업 활성화 등등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공약을 들고 나왔는데 ‘주성원’으로 미래뉴스를 보면
‘주성원 대통령 세종시 찾아 금융위기 피해 없게 만반의 준비 지시.’
‘주성원 대통령 저축은행 부실여부 직접 살핀다.’
‘주성원 대통령 부도 위기 기업에 공공자금 지원 명령.’
그는 중국 발 금융위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한국 경제를 수습하느라 그런 걸 할 여력이 없어보였다. 사실 국정운영이라는 게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하는 면도 있는데 그는 시작 운이 좋은 편은 아닌 듯하다. 어차피 결과도 알겠다. 나는 대선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는 않았는데,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 알아놓았다.
‘대선투표는 5월 2일... 그러면 언제부터 취임이지?’
대개 신임 대통령은 투표 이후에 2달 정도 뒤 취임하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개헌으로 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 줄어들면서 5월 초에 투표를 하고 바로 5월 말부터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주성원 시장은 5월 말에 대통령에 취임하고, 바로 2개월 뒤에 중국발 금융위기를 마주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걸 본 나는 바쁜 와중에도 조금 손을 써주기로 했다.
*
4월의 어느 날. 나는
“박 비서, 오라클 뉴스의 정소영 대표님 좀 오시라 그래.”
정소영 대표를 사장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정소영 대표는 언제나 그랬듯 비비드한 원색 컬러의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여자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매력적이 되는 것 같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녀와 같은 사람이 있긴 하다.
‘왜 아직도 미혼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작년에 말했던 대로 오라클 뉴스에 제가 원하는 사설을 한 편 올리고 싶어서요.”
“어떤 종류의 사설 말씀이십니까?”
“경제 종류입니다. 제목은...”
나는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어번 치다가 말했다.
“중국의 금융위기 현실화 대한민국 대응 방안은? 정도로 하고 싶군요.”
그녀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말했다.
“어 설마 사장님이 직접 쓰시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쓰겠습니다. 단. 이건 절대, 절대로 비밀입니다. 외부에는 흘려나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네 사장님. 그러면 원고 보내주시면 저희 쪽에서 교정만 본 다음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래주세요.”
정소영 대표가 사장실을 떠난 이후, 나는 바로 원고작성을 시작했다. 미래 뉴스를 본 것을 토대로, 말이 사설이지 사실상 앞으로 어떻게 국정운영을 해야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리고 주성원 차기 대통령은 이 글을 분명 볼 것이다. 아직 내게 목줄이 잡혀 있었으니까.
중국과 교역규모 가 큰 우리나라 특성상 중국 경제위기에 영향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걸 보고 국정 운영을 한다면 주성원 차기대통령은 최소한 충격을 완화하는 조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주성원 대통령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것. 오라클 뉴스에서 나온 사설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본다면, 주성원 대통령은 나를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부에 대한 내 영향력은 더더욱 커질 것이 분명했다. 둘째는 조금 더 단순한 이유로, 나도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우리나라가 잘 돼야, 나도 더 잘 되지 않겠는가. 여러 모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