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54화 (154/198)
  • # 154

    셀 차이나

    2021년 2월. 평소처럼 사장실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던 나는,

    ‘띠리리~’

    딱 한 번, 울리는 전화기를 바로 들어 받았다. 박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 모이셨답니다. 사장님.”

    “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한 번 고쳐 입고 사장실 밖으로 나섰다. 박 비서가 내 곁에 동행한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비상계단을 통해서 딱 한 층 아래로 내려왔다. 사장실 바로 아래에는 대회의실이 있다. 나는 그 곳으로 걸어가며 박 비서에게 말했다.

    “도청이나 그런 건?”

    “모두 점검해두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나는 그 말을 하며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회의실 안에는 네 명의 사람들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장 부사장을 필두로, 김 이사, 정 이사, 강 이사. 딱 네 사람. 모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창립 때부터 나를 보필해온 회사의 핵심들이었다. 네 사람은 내게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테이블의 끝 상석에 앉으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손짓을 하며 앉기를 권했다.

    “앉으세요.”

    네 명의 간부들은 내 지시대로 그 자리에 앉는다. 나는 이어서 박 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박 비서는 앞으로 나와 말했다.

    “회의를 시작하시기 전에, 부사장님. 그리고 이사님들은 모두 휴대폰을 꺼내서 저에게 주십시오.”

    장 부사장과 이사들은 박 비서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주섬주섬 바지춤을 뒤져서 휴대폰 하나씩을 꺼내놓는다. 나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해해주십시오. 오늘 회의는 사안이 엄중한지라, 보안에 특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였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게 사용하는 사람도 믿을 수 없는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휴대폰은 회의가 끝난 뒤, 바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네 사람은 고개를 숙인다. 박 비서는 그걸 하나 하나 챙겨서 내게 고개를 숙인 다음 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커다란 대회의실 안에는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만이 남았다. 나는 좌우를 한 번 살펴보았다. 좌측의 장 부사장, 정 이사, 우측의 김 이사, 강 이사는 살짝 긴장한 상태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핵심 멤버를 불러서, 휴대폰을 걷어가다니 창립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큼흠.”

    한 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오시라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네 사람의 시선이 내게 주목된다.

    “오늘 부로, 회사 명운을 건 베팅을 시작하려고 하려고 해서입니다. 우리가 만약 여기서 승리한다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우리나라 재계 서열상으로 손가락에 꼽힐만한 그런 회사가 될 것이고, 여기서 실패하게 되면 아마 그대로 문을 닫아야할 겁니다.”

    누군가가 꿀꺽 침을 삼킨다. 나는 신중하게 첫 말을 꺼냈다.

    “우리 시대에 가장 큰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다투는 거대한 전쟁이에요. 보이지 않는 전쟁이지요. 2018년. 그러니까 3년 전이지요. 도날드 트럼프가 중국에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했던 것이 그 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 일 적당히 봉합되는 것으로 보였지요.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 몇몇 기업의 국가보조금 지급 철폐, 위안화 절상.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네 사람은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 협상은 끝이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중국을 공격할 단초를 마련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일본을 떠올려 보지요. 강제적 엔화 절상을 해준 플라자 합의 하지만 그 이후로, 높은 환율로 가격경쟁력을 잃으면서 일본은 쭈욱 내리막길을 걸었지요. 잘 팔리던 물건이 팔리질 않으니까.”

    다들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사이에 상대적으로 환율이 낮았던 우리나라가 그 틈을 타서 일본의 자리에 치고 들어와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2010년대 들어서 일본과 똑같은 처지에 처했죠. 저가 인력, 저환율로 치고 들어온 중국 때문에 가전, 조선, IT, 화학 할 것 없이 주력 산업 모두가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내 말에, 다른 이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는 투자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교과서에 나올만한 이야기들이다.

    “자 여기서 말입니다. 2년 전. 2019년. 중국은 결국 미국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위안화를 절상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국은 구매력이 늘어나고, 주가도 오르는 등 단기적인 호황을 겪었지요. 하지만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플라자합의 이후에도 일본도 몇 년간은 호황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여기에서 장 부사장이 동의를 표한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하지만 이제 중국도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강제적 위안화 절상으로 국민들 구매력이 높아져 잠시 살기 좋아진 것 같지만, 수출은 악화일로를 하고 있습니다. 와중에 높은 성장률을 지탱하기 위해 끌어 써온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고요. 제 생각에 여기서 중국 경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미국 내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적 투기세력이 중국을 공격하리라고 봅니다. 미국 정부의 용인 하에서요.”

    내 말에, 정 이사가 내게 말한다.

    “하지만 사장님 그 가설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수입의 미국과 수출의 중국. 차이메이카 시스템을 흔들 정도라면... 미국이 중국을 친다하더라도 본인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텐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 이 가설에 반박으로 나오는 말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히 그 정도 희생을 감내하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니까요. 똑같은 일을 겪은 일본을 생각해보죠. 일본은 핵무기도 없고, 자기들 섬을 지킬 해군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태평양함대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죠. 사실상 미국이 일본의 기생을 허용해줬다고 봐야겠지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공습을 한 이후로 다시 미국에 대들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테이블을 툭툭 두 번 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죠. 그럴 만도 합니다. 중국은 잠재력이 큰 나라니까요. 엄청난 인구와 높은 교육열. 그리고 핵무기도 가지고 있지요. 예전 소련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을 할 만한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려고 했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 미국은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장 부사장이 내 말에 덧붙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정말로 싼 가격에 물건을 만들 나라를 찾는다면 중국 말고도 다른 대안은 있습니다. 같은 태평양권에 세계 인구 4위의 인도네시아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중국을 넘어 인구수 1위를 향해 가는 인도도 있지요. 중국은 같이 크기에 너무 강한 상대입니다. 여기서 한 번 그 기세를 강하게 꺾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여기서 손을 모으며 말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들어 중국 경제 쪽에 이상한 징후가 많이 보이곤 했죠. 왜 저희가 인수한 지우엔터테인먼트도 그런 케이스였지요. 중국의 대기업이 한국 기업을 비싼 가격에 사 갔다가, 급하게 팔았죠. 별 문제도 없는 기업을 말입니다. 최근 들어 그런 묘한 일들이 조금씩 더 늘어나고 있을 것을 보면... 제 생각에는 파국이 머지않았다. 라는 예감이 듭니다.”

    강 이사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파국이요?”

    “네. 파국. 수출이 줄어든 중국 기업은 빚으로 그걸 막다막다 결국 부도가 날 것입니다. 작은 기업에서부터 큰 기업까지. 그러다가 은행까지 문제가 생기겠죠. 그렇게 되면 국가 신용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안화 역시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 IMF때와 같은 외환위기를 겪겠지만 미국은 외면하겠죠. 몇 년간 숨도 쉬지 못하게.”

    강 이사가 내게 말한다.

    “저 사장님. 그러면 우리나라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근 몇 년간 미국보다도 중국 의존도가 더 커졌는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매우 큰 위기를 겪겠죠.”

    “그러면 돈을 어서 안전자산에...”

    그는 그 말을 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는 우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현금을 금, 은으로 바꿔놓았던 장본인이니까. 나는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작년 중반부터 저의 장 부사장님이 해온 일들이 모두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회사를 팔고, 투자를 줄이고, 안전자산으로 자산을 옮기는 것으로요. 저는 본래 이정도만 하고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잠시 카지노 테이블에서 떨어져 있는 것으로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확신이 들었습니다. 중국경제의 대위기가 코앞에 왔다는 확신이요. 그래서, 단지 몸을 웅크리는 게 아니라, 공격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솔직한 말이었다. 반년 전 해외여행을 갔을 때 본 뉴스 이후로도 계속해서 ‘경제’와 ‘세계’란에서 중국발 뉴스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모은 채로, 핵심을 말했다.

    “잘 들어 두세요. 앞으로 몇 달간, 우리 회사는 위안화를, 중국을 공매도 할 겁니다. FX시장에서 직접 외환투자를 하는 것으로부터 미국, 싱가포르, 홍콩, 가리지 않고 중국내 자산 풋을 사려고 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5조원의 현금을 모두 투자해서요.”

    내 말에, 이사들은 물론 장 부사장까지도 놀란다.

    “5조원의 현금을 모두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네.”

    장 부사장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내게 간언했다.

    “사장님 그건 너무 위험한 게 아닐까요?”

    강 이사도 말했다.

    “환율은 신도 모른단 말이 있습니다. 사장님. 너무 위험한 투자를 계획하시는 것 아닌지.”

    정 이사도 여기 가세했다.

    “일본은 몰라도 엔화는 플라자 합의 이후로 안정화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위안화가 그렇게 하락을 할까요?”

    나는 여기서 미래뉴스에서 본 것을 토대로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엔화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일본의 기생을 허용해줬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하면서, 고통스러운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도 그냥저냥 먹고 살게 해준 거죠.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미국은 중국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국가부도 사태까지 몰고 갈 겁니다. G2의 위상을 뺏고 동시에 몇 년간 아예 재생을 하지 못하게.”

    내 말에, 정 이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미래뉴스를 읽으면서 얻은 지식들을 더 풀었다.

    “IMF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역시 미국에 의해 컸다가 미국에 의해서 죽은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외환이 들어올 때는 급격히 살이 쪘다가, 빠져나갈 때 거의 비틀어져 죽을 뻔 했죠. 하지만 그 때 다시 살려줬죠.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말 잘 듣는 양이니까. 양이 온순하다면, 주인은 양털을 깎기만 하고 다시 키웁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커진다면? 그리고 주인을 공격하려고 한다면? 주인은 너무 커져버린 양은 죽여 버릴 수도 있겠죠. 제 생각에 앞으로 일어날 일은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내 말에 장 부사장과 이사들은 서로를 눈알을 굴릴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에게 거역을 할 수는 없다. 우리 회사는 단 한 푼도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내 결정에 반대를 할 다른 주주나 그런 사람은 없다. 나는 여기서 확실하게 못을 박아놓았다.

    “셀 차이나Sell china. 그것이 올해 우리 회사의 기조입니다. 그리 아시고, 움직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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