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9화 (149/198)

# 149

‘도이~ 도이~ 도이~ 도이~’

나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 쪽을 바라보았다. 요상한 목소리의 새가 계속 운다.

‘저건 무슨 새가 저렇게 운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머리의 절반 정도, 백발인 중년 남자가 내게 말한다.

“이 쪽으로 오시지요. 대표님”

“아 네.”

나는 그를 따라서 눈앞의, 공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경기도 남부 산기슭에 위치한 한 만두공장. 코스닥상장사인 창해식품의 주력 제품들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공장 안에는 앞치마에 라텍스장갑, 머리에 캡을 쓴 아주머니들이 쉼 없이 손을 놀리고 있다.

“저희 시설은 모두 HACCP인증을 받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직원 관리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고요.”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나와 동행한 장 부사장, 그리고 박 비서도 유심히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개중에는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있었다. ‘비벼라 만두’시리즈. 예전에 자취할 때, 싸고 맛있어서 대량으로 사놓고 두고두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요새는 워낙에 좋은 것만 먹고 살아서 사 먹어 본지 꽤 됐지만, 가난했던 자취생일 때 당시에는

‘이거 가성비 대박인데?’

라고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비벼라 만두는 계속해서 매출 늘어나고 있지요?”

“네. 출시 초기 때만큼 폭발적인 성장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매출 자체는 계속해서 잘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홍콩식 딤섬과 일본식 야끼만두까지 제품을 다각화하려고 하고 있고요. 현금이 조금 더 쌓이면 근처 생산라인을 인수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음. 그 돈은 우리 회사에서 대주면 되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생산 라인을 더 둘러보다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잘 봤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양 손을 붙잡은 채로 내게 물었다.

“그럼 대표님 결정은 언제 즘?”

“저희 쪽에서 검토해보고, 한 달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대표님.”

인사를 하면서, 나는 그의 작업복에 수놓아져 있는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우해진.’

공장에서 나온 우리는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 차에 탔다. 타자마자,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저는 좋아 보이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 부사장은 내게 말했다.

“저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없었습니다.”

창해식품은 시총 천오백억대. 작지만 창사 이래로 적자를 내본 적이 없는 알짜 기업이었다. 대개 이런 식품회사는 국내용이라 딱히 투자를 받을 요소가 없었는데, 비벼라 만두가 대박이 나면서 우해진 사장이 중국, 동남아 진출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만두도 좋고 개인간편식도 좋아요. 요새 어차피 다들 결혼도 하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누가 음식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쪽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겠죠.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군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사장님 말씀이 맞으십니다. 그러면, 바로 인수 절차 진행하도록 할까요?”

“아니요. 마지막으로...”

나는 내 휴대폰을 들었다. 메일함에 가서, 미래뉴스를 열고 크로우와의 약속을 잡았다. 크로우를 불러다가 창해식품 재무구조가 정말 깔끔한지, 그 돈이 우해진 사장한테 유용되는 일은 없는지 등등을 조사시킬 작정이었다. 재무상으로는 깔끔했지만, 가끔 재무도 속이는 회사가 있긴 하니까. 크로우를 쓰면 완벽해진다. CEO의 도덕성까지 검증하는 일종의 이중검증 시스템이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한 달 정도... 개인적으로 더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네 사장님.”

그 한 달은 크로우의 조사결과가 나오는 한 달이다. 지금은 2020년 9월. 아직 ‘디데이’가 오기 전까지 10개월 정도 남아 있으니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럼 일단 오늘은 됐고. 다음 주는 어디라고 했죠?”

“다음 주는 강원도입니다. 강원도 춘천 인근. 송해양조.”

송해양조 역시 우리 회사 쇼핑카트에 들어 있는 회사 중 하나다. 창해식품과 마찬가지로 내수 중심, 적자 낸 적 없고 당기순이익 쌓여서 BPS가 점점 늘어나는 경기방어주 중 하나다. 경기가 나쁘면 나쁠수록 속 쓰린 사람들이 술을 더 마신다는 속설 때문에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경향도 있다. 실제로 매출이 늘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그래요. 그나저나 현영제약 매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일단 최대한 정보 풀지 않고 조심스레 접촉하고 있습니다. 파는 이유도 다른 거대 M&A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는 것이라고 소문내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값을 받을 테니까요.”

“제값이라면?”

“지금 현재 주가로 따지면 8천억원 정도지만 미래 성장성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하면 1조원에서 1조 2천 억원 정도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조에서 1조 2천억 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유능한 사람이었다.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나는 확실히 강조를 해두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늦어도 내년 초에는 팔수 있도록 해주세요. 가격은 조금 낮아도 상관없습니다.”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여 말하면서도, 잠시 나를 묘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긴 그가 보기에 갑자기 경기방어주 두 개를 인수하고, 잘 나가는 회사를 급하게 정리하는 게 이상하긴 했을 것이다. 서울대경제학과를 나와 엘리트코스만 걸어온 그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하여간 이성 너머로 벌어지는 것들이 자주 있다.

내년에 있을 일이 그런 종류의 일이다. 미래를 알지 않고서는 예측하기 힘든, 그런 일. 그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놔야 한다. 그러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바로 철저한 준비다.

‘다음 주는 강원도라... 내가 운전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피곤하겠군. 송원양조... 송원양조라...’

나는 그 이름을 되뇌다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송원양조는 뭐가 주로 팔리죠?”

“아무래도 50년 역사의 된 막걸리가 주력 상품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막걸리도 밤을 넣어서 밤막걸리를 만든 다든지, 바나나 향을 넣어서 바나나막걸리를 만든 다든지, 해서 종류를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그런 걸 자주 마신다더군요.”

“그래요? 그럼 오늘은 서울 도착하면 저녁식사 대신에 괜찮은 술집 잡고 그 쪽 막걸리로 한 잔 해보죠. 내일 공장 견학하는 것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장 부사장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시지요. 사장님.”

*

“들어가시지요.”

“아아 그래.”

나는 박 비서의 배웅을 받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P’버튼을 누르자 곧 기계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비밀 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나는 빠르게 층수 몇 개를 눌렀다.

‘32, 18, 7, 3, 21, 15’

그러자 그 기계음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흘러나온다.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한 번 입력해주십시오.’

‘으음? 틀렸다고?’

나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32, 18, 7, 3, 22, 15’

이번에는 정확하게 비밀번호가 되는 층들을 눌렀다. 그제야 엘리베이터는

‘펜트하우스’

내가 가려는 층을 말하고, 스스로 문이 닫혔다. 이윽고 펜트하우스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거기에는 앞치마를 한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아영이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손을 들어 말했다.

“나 왔어.”

그녀는 빨갛게 붉어진 내 얼굴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오빠 오늘 많이 마셨네?”

“음? 으응. 장 부사장님 따님이 학교에서 전교 1등 했다고 기분이 좋으셔서 계속 많이 드시더라고. 아무리 나보다 직급이 낮아도 연장자가 드시는데 거기서 뺄 순 없잖아. 같이 마셔드리다가 오랜만에 많이 마셔버렸네.”

그녀는 내 자켓을 벗겨주며 말했다.

“그래도 적당히 마셔 오빠. 큰 일 할 사람이 이렇게 취해서 돌아다녀도 되겠어?”

그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벌써부터 잘한다?”

“뭐?”

“와이프 역할.”

아영이는 내 넥타이를 끌러주다 말고, 손바닥으로 팍 내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

“됐어.”

나는 실실 웃으면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영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같이 산 지 이한 달째. 일단 우리는 서로 별 불만 없이 지내고 있었다. 애초에 지난 오피스텔 때도 바로 옆집이어서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해서, 서로에게 익숙해진 면도 있었다. 나는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해장국이나 해줘. 뭐. 북어국이랄지, 콩나물국이랄지 그런 것으로. 학원에서 배운 게 있을 거 아냐?”

그녀는 요새 다니는 학원을 바꾸었다. 아나운서 학원에서, 한식 조리 학원으로.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미 해놨네요. 북어국.”

“그래?”

아영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앞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응. 저녁 하려고 했는데, 오빠가 저녁 안 먹고 술 마시러 간다고 해서. 해장국으로 준비해놨지.”

“아유 그래 잘했다. 똑똑하다. 우리 아영이”

나는 아영이의 입에다가 살짝 키스를 했다. 부드러운 아영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으니, 바로 불이 붙는다. 나는 손을 앞치마 안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아유 술 냄새.”

아영이가 바로 나를 밀어내며 말했다.

“씻고나 오세요.”

“아아 그래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샤워실로 향했다. 아직 같이 산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정도면 쭈욱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2020년 11월. 나와 장 부사장은 창해식품과 송해양조 모두를 인수했다. 기존 투자자에게서 프리미엄을 주고 지분을 인수하고, 모자란 부분은 유상증자를 하는 식으로. 세간에는 이번에도 내 투자가 화제가 되었다. 언론에서는

‘투자의 귀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창해식품 인수.’

‘창해식품 피인수. 한상훈 대표 먹거리 시장에 나서나.’

‘한상훈 대표 창해식품에 이어 송해양조 인수.’

‘강소기업 줄줄이 사재끼는 인빅투스. 한상훈 대표의 속내는?’

그런 뉴스를 내보내고. 개미 투자자들은.

‘지금 사자. 사서 3년만 쥐고 있으면 부자 되는 거 맞죠?.’

‘카이게임즈 20배. 현영제약 3배. OH엔터 2배. 한상훈만 따라가면 부자 됩니다.’

‘한상훈 대표 믿고 아파트 팔아서 사봅니다. 인생역전 가즈아!’

그런 반응을 보였다. 주가도 일시적으로 폭등했다. 이건 일종의 유명인 효과다. 예전에 워렌 버핏도 한국에 와서 한 종목을 산 게 밝혀져, 그를 따라서 산 기관 개미들 때문에 주가가 살짝 올랐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상황은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나는 그걸 보면서

‘딱히 오를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나는 오를 주식이 아니라, 내리지 않을 주식을 골랐으니까. 이와 동시에 나는 현영제약 매각도 진행시켰다. 본래 8천억 원 지분을 1조 2천억 원. 다소 높은 값에 가격을 불러놨는데, 일단 그건 물렸다. 왜냐하면 현영 제약 신약이 미국에 판매되면서 점차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8천억원 하던 내 지분은 요새 1조1천억원의 정도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호가가 오르는데 똑같은 가격에 팔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복덕방에 매물 내놨다가 값 오르는 거 보고 쏙 빼는 강남 아파트 판매자처럼, 매물을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1조 5천억원에다 올려놓았다. 3천억원이 올랐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사러 올법하다. 연말까지 현영제약이 더 오를 것 같았으니까.

‘내년 7월...’

나는 디데이를 유념해두면서 그렇게 매매 플레이를 했다. 애초에 회사를 사고팔고 이 모든 것들이 대비였다. 내년 7월에 있을 본 게임을 위한 대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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